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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회복의 필요성
-하나님을 하늘아버지이자 하늘어머니로 이해하기-
2013년 1월 7일 고 문선명 총재의 부인이자 통일운동의 현 수장인 한학자 총재가 중대한 역사적 선포를 했다. 그 날을 기해 앞으로 통일운동 구성원 모두가 하나님을 하늘아버지(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하늘부모”로 호칭하기로 했다. 한국어로 “부모”라는 단어는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뜻하기에 “하늘부모”라 함은 하나님이 동등하게 하늘아버지이자 하늘어머니라는 사실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지금까지 통일운동에서는 하나님을 남성격인 하늘아버지로 지칭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는 주로 하나님을 남성격으로 보는 신구약시대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통일신학의 주요 교재 중의 하나인 원리강론은 그 자체가 기독교인들을 위해 쓰여졌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이것은 원리강론의 ‘서문 및 머리말’에 나온다. 하지만 원리강론의 초기본인 “원리원본”에서 문선명 총재는 하나님이 하늘아버지이자 하늘어머니임을 언급하고 있다.
첫 유일신교인 유대교를 통해 복귀가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여성의 복귀는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았고(“복귀된 여성이 있다”는 선포가 없었다는 말), “이중죄(두 번에 걸친 성적타락)를 저지른” 해와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여성 전체가 “한번의 죄를 저지른” 아담에 비해 절대가치의 기준으로부터 두 번 떨어진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복귀는 남성 중심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예수님조차 하나님을 남성격으로 인식하였다. 그저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실상에 대한 남성적 해석의 확고한 입지를 유지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 후 기독교의 섭리적 사명과 그 유산을 계승 받은 통일운동은 처음에는 아버지 하나님과 남성 중심인물을 중심으로 출발하였다.
1. 통일신학의 문제점
원리강론에 “모든 피조물은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에 의하여 서로 존재하도록 창조되어” 있다는 것을 피조세계를 통해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또는 하늘부모는 이성성상이 일체가 된 존재이며,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면서도 상대적인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원리강론의 다른 페이지에 하나님이 “성상적인 남성격 주체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아버지라고 불러 그 격위를 표시한다.”는 뜻밖이고 상반된 주장이 나온다.
이것은 피조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성성상이 하늘부모를 오로지 이성성상의 한 측면 즉 하늘아버지로서 표시되는 모순적 주장이다. 인간세계에서 볼 수 있듯이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머니와 상관관계가 있다.
문선명 총재의 가르침을 선별한 “천성경”에서도 문총재는 하나님이 “사람과 같고” 우리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다”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필자는 무형으로 계시는 하늘부모를 그 피조물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원리강론의 기본 전제에 동의한다. 그리고 하늘부모가 그 이성성상 또는 이중 격위가 일체화된 존재라는 추론 또한 동의한다. 왜냐하면 삼라만상이 각계각층에서 이중 격위를 가지도록 창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하늘부모를 파악하는데 최선의 방법은 하늘부모의 형상으로 창조된 가장 완벽한 존재, 즉 남성과 여성의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다.
특히 하늘부모의 형상으로 피조세계를 실체화하기 위한 창조의 과정에 대한 하늘부모의 마무리 과정에 아담이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아담과 해와,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였다. 창조주요 인류의 궁극적 부모가 되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온전한 해석은 바로 인간이 3대축복의 제2축복을 완성하여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운명이 있듯이 하늘부모도 성별이 평등하고 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라는 동등한 격위가 일체화된 근원(정, 正)이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이 하늘부모(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인 이유 – 창조를 전후한 하나님의 동향에 대한 고찰
여기에서 하늘부모에 대한 두 가지 쟁점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하늘부모인 하나님을 복수형으로 지칭하는 것이 더 나은지의 여부이고,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남성격이고 하나님의 하늘어머니라는 측면은 하늘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의 기본 정체성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나님을 원인적 입장과 결과적 입장으로 구분할 때 원인적 입장에 있던 창조 전의 하나님은 그 당시 근원적 존재로서 홀로 존재했기 때문에 분리되지 않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본연의 일체로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본연의 일체로서 홀로 존재했을 때 설사 이성성상이나 이중 격위같은 성질이 하나님에 내재하였더라도 하나님을 그 어떠한 범주로 구분하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근원적 입장의 하나님은 수리적으로 1수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필연적으로 그 어떤 구분 없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려고 한 후에도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게 될 과정을 규정하는 그 심정에 뿌리를 둔 뜻, 목적, 이상, 즉 심정원리를 수립한 시점을 별도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이러한 절대 영원한 뜻만 세운 상황에서 하나님은 실질적인 피조물 없이 혼자 존재했기 때문에 여전히 1수로 봐야 할 것이다. 그 때는 하나님만 존재했다. … 그것은 본격적으로 창조를 시작하기 전, 단수 격으로 존재한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
원리강론에서 “하나님은 절대자이면서 상대적인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이시기 때문에 3수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도 하늘부모의 ‘정(正)’의 입장에서의 수리적 가치는 이미 논한 바와 같이 1수이다.
‘정’의 입장에 있는 하나님을 하늘부모로 지칭하는 행위는 창조가 끝나는 시점에서 인간 앞에 드러낼 하늘부모의 부성과 모성을 미리 예고하는 격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하늘부모를 부를 때 중화적 존재로서의 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와의 대면을 희망하는 것이다.
피조만물의 근원인 하나님이 오직 하늘아버지로 존재하고 하늘어머니는 단순히 피조물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논증은 아래를 죽 읽어야...)
하늘아버지가 하늘어머니보다 먼저 출현했다는 주장은 본연의 일체성의 본체인 하나님이 완벽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사전에서 “완벽(완전)”이라는 단어를 “더 이상 개선할 것이 없다”는 점에서 “결함이 없이 완전하다”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본연의 일체성의 본체인 하나님이 말 그대로 완벽하다면 창조과정에서의 하늘부모의 책임분담의 완성으로 하나님의 내재적인 부성이나 모성을 포함하여 피조세계를 통해 현현되는 모든 것이 완벽한 하나님이 이미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하나님이 완벽하기 때문에 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의 잠재성이 이미 본연의 일체성의 본체인 하나님에 똑같이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정’의 입장에서 하늘아버지만 존재하고 하늘어머니는 없었다는 주장은 근원인 하나님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된다.
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에 대한 불공평한 대우와 편견이 하늘부모의 창조목적과 절대가치기준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히려 타락과 연결되어 있다. 사실 인간의 가치와 인간타락의 결과를 정확히 인식할 때 성불평등이 어떻게 우리의 현실로 자리 잡았고, 하늘부모의 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의 측면을 잘못 이해하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3. 3대축복 완성을 위해 하늘부모의 공동 창조하기 위한 인간책임분담
1) 3대축복의 다섯 가지 역할에 대한 개요 및 개인적, 집단적 차원의 책임분담
(2) 제2축복 완성을 위한 두 번째 역할
제2축복 완성을 위한 두 번째 역할은 참된 남편과 참된 아내가 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한 명의 이성의 배우자를 갖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자나 여자는 모두 하늘부모가 단 한번 창조한 천주를 총합한 실체상이기 때문이다. 하늘부모는 인간시조를 창조함으로써 그의 책임분담을 완성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으로서 동등한 가치를 지니면서 성별이 다른 한 남성과 한 여성, 즉 아담과 해와였다.
하늘부모가 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로서 하나의 통일된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하늘아버지는 하늘어머니라는 단 하나의 아내가 있고, 하늘어머니는 하늘아버지라는 단 하나의 남편을 갖는다. 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의 온전한 형상을 닮은 남성과 여성이 단 하나의 이성을 영원한 배우자를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을 하늘부모가 바랬을 것이다.
2) 하늘부모가 한 인간이 아닌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창조의 과정을 완료한 이유
원리강론에서 말하는 사위기대의 한 예로 하나님을 ‘정’의 입장, 남편과 아내를 ‘분’의 입장, 그리고 자녀를 ‘합’의 입장에 두고 있다. 이들은 하늘부모의 본연의 가치의 절대기준에 따라 사방으로 수수작용을 전개하게 된다. 하늘부모를 중심한 사위기대가 조성되어 모든 관계가 자유롭게 소통하게 되면, 다른 인간을 포함하여 피조세계의 번식이 이뤄지게 된다.
영원한 창조목적이 수리적 가치가 1수인 유일한 하늘부모를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각 위치는 개체적으로도 그 수리적 가치가 1수가 된다. 하늘부모를 ‘정’으로 하는 사위기대에서 남편과 아내가 ‘분’이 되고 그 자녀가 ‘합’의 입장에 있을 때, 남성과 여성의 창조의 가치는 동일한 것이 된다.
사위기대의 과정에서 ‘분’의 과정에 대해서 한 가지 중요하게 언급할 것이 있다. 영원한 창조목적은 동일한 개체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 즉 개성진리체를 창조하는데 있고 이러한 개성진리체들이 모여 하늘부모 아래 하나의 피조세계를 이루게 된다.
‘분’의 입장에서 공통성뿐만 아니라 차이가 존재해야 된다는 뜻이 된다. 양쪽 모두 유일한 하늘부모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의 공통성이 존재해야 하고 이와 동시에 영원한 창조목적이 동일한 것을 복제하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에 차이도 존재해야 한다.
하늘부모가 그 95% 창조의 과정의 여섯째 단계에서 한 인간이 아닌, 천주를 총합한 실체상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서로 다른 성별을 가진 한 남성과 한 여성을 각각 창조함으로써 완료시킨 이유였다. 이로써 인간은 양성이면서 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로 동격으로 존재하는 하늘부모를 닮게 되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영원한 창조목적이 인간을 공동의 창조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하늘부모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사위기대를 조성하여 번식을 통해서 자녀를 번식할 수 있도록 인간 하나가 아니라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창조함으로써 그의 책임분담을 완성하였다. 이들의 자녀도 같은 과정을 통해 하늘부모의 이상을 실현한 인간을 번식하여 혈통을 영속시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위 기대의 작용을 통해서 인류가 만들어진 것인데, 한 인간밖에 없었다면 피조세계를 총합한 가치를 지닌 인간을 번식하는 영원한 공식이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4. 인간 타락과 원죄
아담과 해와의 죄를 개인적, 집단적 차원에서 구분해야 해와의 (개인적 차원의) 이중 원죄가 남성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히려 해와의 딸인 모든 여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더 나아가 남성보다 낮은 입장에 떨어지게 되었던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로 인해 하늘어머니를 하늘아버지와 동격으로 보지 못하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1) 아담, 해와와 루시엘의 성적인 타락
천사장이 해와를 성적으로 유혹할 당시 해와는 십대였고 아직 미성숙했지만 해와는 하급 피조물과 성관계를 맺어져는 안 된다는 것을 하늘부모의 가르침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부모의 95%의 부모로서의 책임분담이 해와에게 하급 존재와 성관계를 맺지 말라고 교육하는 것이었지만 하늘부모는 누시엘이 해와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유혹할지에 대해서 사전에 주의를 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해와의 5%의 책임분담에 간섭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하늘부모로부터 배운 절대가치기준을 해와가 실천하여 누시엘이라는 하급 피조물의 비원리적 유혹을 뿌리쳐야 했다. 해와는 루시엘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바로 하늘부모에게로 가서 그의 심정원리적 지혜를 얻고 그 상황을 대처하여 하늘부모로 하여금 루시엘을 상대하도록 했었어야 했다.
해와는 루시엘과 영적으로 타락한 후, 하급 존재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죄에 대한 탕감을 치르지 않은 채 아담을 찾아가 유혹했다. 아담은 해와의 유혹에 넘어가 남성과 여성이 모두 타락하게 되었다. 이때 아담 또한 중대한 실수를 했다. 타락한 해와가 아담에 접근했을 때 하늘부모 앞에 인도하여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심정원리적 지혜를 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아담 역시 그 기준에 맞게 행동하지 못하고 해와와 성적으로 타락하여 타락의 현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2) 아담과 해와의 3대축복의 다섯 가지 역할의 실패로 생긴 원죄
(1) 아담 해와는 하늘부모의 참자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개성완성을 하여 하늘부모와 상시 심정원리적 참사랑으로 일체화되는 완성한 이상적인 인간이 되지 못했다.
(2) 아담 해와는 서로 참된 형제자매가 되지 못했다.
성장 기간 동안 형제자매였던 둘은 성관계를 맺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둘은 서로 지켜주면서 한 쪽이 비원리적인 유혹을 받았을 때 하늘부모의 심정원리적 참사랑과 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늘부모로 인도해줘야 했다.
(3) 아담 해와는 서로 참된 배우자가 되기를 포기했다.
성숙한 성인이 되기 전에 타락했기 때문에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참된 배우자가 될 기회를 잃어버렸다.
(4) 아담 해와는 그 자녀 앞에 참부모가 되지 못했다.
아담과 해와의 서로 상이한 개인 죄로 인해 남성과 여성이 집단적 차원에서 불평등한 관계가 야기되었고, 가인과 아벨도 불평등한 관계가 되었는데 이것이 인간 공동의 영역에서 하나의 공식이 되어버렸다.
(5)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인간은 영인체로만 구성된 피조물(천사)이나 육신으로만 구성된 피조물보다 낮은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타락의 결과 영계에 대한 지식이나 영적인 감각이 없어져 천사를 부러워하고 자연계의 이치에 대한 이해가 없어 참된 관리인이 되지 못하여 하늘부모가 지상세계를 위해 부여한 자연계의 평형을 보살피고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5. 타락과 원죄의 결과들
1) 천주적 사위기대의 파괴 – 하늘부모 대신 부모의 자리를 차지한 루시엘
원래 천주적 사위기대에서 하늘부모가 ‘정’인 입장에 있고, ‘분’의 자리에 천사를 정상으로 한 영계와 동물을 정상으로 한 지상세계가 있고, ‘합’의 자리에 두 세계를 아우른 천주를 총합한 실체상인 인간이 있는데 큰 타격을 주었다.
인간 이외의 피조물은 단순히 종족의 번식이라는 창조목적에 순종하고 있는데 인간의 창조목적과 다르다. 아담과 해와는 피조세계의 참된 주인이자 참된 관리자가 되었어야 한다.
타락의 결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요 8:44)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누시엘이 하늘부모가 앉아야 할 인류의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2) 해와의 더 큰 죄로 낮아진 여성의 위치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인류에게 미친 또 다른 안타까운 결과가 바로 남녀 불평등의 문제이다.
수리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창조의 가치는 1수가 되어야 가정 단위의 사위기대를 조성하여 1수의 수리적 가치를 지닌 또 다른 완성한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 1수의 수리적 가치를 지닌 하늘부모를 ‘정’으로 하여 피조세계를 총합한 가치를 지닌 남편과 아내가 각위에서 1수라는 수리적 가치를 지녀야만 하기 때문에 이들의 합으로 결실 맺는 자녀도 동일하게 1수라는 수리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해와는 하늘부모의 축복결혼의 대상이 아닌 천사장 누시엘과 미래의 배우자가 될 아담과 비원리적인 성관계를 갖는 이중의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아담보다 해와의 잘못이 더 컸다. 반대로 타락한 해와를 경솔하게 따라간 아담은 타락한 해와와의 비원리적인 성관계를 가졌을 뿐, 아담의 죄는 이중죄가 아니라 단일죄가 되었다.
인간의 가치를 놓고 남녀 불평등의 문제는 애당초 하늘부모의 영원한 창조목적에 없었다. 남성과 여성에게 각각 다르게 영향을 끼친 개인적 차원의 아담과 해와의 비원리적인 선택이 복귀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복귀될 수 없다.
해와는 보다 과중한 성적 죄를 저지르게 되어 앞으로 탄생하게 될 모든 여성을 남성보다 낮은 자리로 끌어내리게 되었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가치를 규정하는 하늘부모의 본연의 창조목적을 되찾기 위한 탕감복귀가 완성될 때까지 남녀간의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는 계속될 것이다.
하늘부모가 모든 여성과 이러한 비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은 해와의 이중죄로 말미암아 해와의 딸들, 즉 모든 여성이 하늘부모의 절대기준에서 두 단계 떨어진 입장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담은 한 번만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든 남성은 한 단계만 떨어진 입장에 있다.
여기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하기 위한 여성 중심인물의 기여도 결여되어 있었다. 인간책임분담 완성을 위한 중심인물을 선택할 때 하늘부모는 여성 중심인물과 직접 대할 수 없었고, 남성 중심인물과 먼저 연결된 다음에 비로소 대할 수 있었다.
그 예로 성서에 노아, 야곱, 모세, 예수와 같은 남성 중심인물에 비해 그 아내들(성서에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노아의 아내, 사라, 라헬, 십보라, 그리고 예수의 아내)은 여성을 위한 기여를 많이 못했다. 주목할 만한 예외는 리브가였다. 리브가는 이삭이 편애한 가인형 아들인 에서보다 아벨형 아들인 야곱을 인정하고 지지했다. 그러나 리부가와 이삭 노정의 섭리적 때가 아담과 해와의 죄를 복귀할 수 있었던 세계적, 천주적 기대를 조성하기 위한 노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리부가의 헌신은 모든 여성과 천주적 사위기대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3) 하늘어머니의 강림이 가로막혀 있었다.
인간 타락의 결과로 해와와 그 딸인 모든 여성이 아담과 그 아들인 모든 남성보다 낮은 위치에 떨어지고 하늘부모의 하늘어머니 측면이 상실되어 통일사상에서 봤을 때 주체 입장인 하늘어머니 앞에 대상 입장인 여성 전체가 상실 되었다. 그 결과 하늘어머니의 존재는 인류에게 드러날 수 없었다.
타락역사를 통해 타락한 아담과 해와의 상이한 선택으로 각각 다르게 영향 받은 남성들과 여성들이 복귀되지 않을 때마다 인류는 하늘부모의 하늘어머니 측면을 배울 수가 없었다. 하늘부모의 반쪽 속성이 가려져 하늘부모는 인류 앞에 하늘아버지로 부족하게나마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통탄할 상황으로 말미암아 하늘어머니는 그 자녀와 단절된 입장에 서게 되었다. 더욱이 그 자녀마저도 하늘어머니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하늘어머니에게 정말로 가슴 아프고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죄악이 덜한 남성에 의해서 하늘아버지가 인류를 대할 수 있는 첫 기반이 있었는데 그 기반에서 인류는 하늘아버지를 상대하게 되었다. 하늘아버지는 하늘어머니보다 덜한 충격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와와 여성이라는 대상이 없는 하늘어머니는 그 자녀들이 자신의 존재를 모른다는 사실에 폭포와 같은 원통의 눈물을 흘리면서 “역사적인 한과 슬픔과 고통”을 견디고 그 자녀들과 연결되기를 고대해왔다.<천성경(2006), P.132>
*아들딸을 잃은 충격, 슬픔의 하나님 ⓵ 영원한 독자를 잃은 하나님 <천성경(2006), P.132>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그렇게 믿고 있는데도 자식이 배반할 때, 그 믿음에 비례해서 부모가 받는 충격과 고통, 그리고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6. 양성평등의 진도가 저조한 복귀역사
1) 양성평등 복귀에 대한 중심인물의 반복된 실패
해와의 이중죄와는 다르게 아담의 단일죄로 인하여 하늘부모는 특정한 섭리적 시대마다 중심인물을 위한 기대를 출발할 때 어쩔 수 없이 남성 중심인물을 중심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탕감노정이 반대경로를 간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노아는 “의로운 자”였다. 그러나 노아가 그 아내로 하여금 여성을 위한 개인을 중심한 기대를 달성하도록 하는 참된 배우자였다는 기록은 없다. 성서는 노아 아내의 이름을 아예 소개하지도 않았는데 이는 그녀의 신앙의 수준을 암시하고 있다. 가정 중심으로 노아와 그 아내가 복귀섭리 목적을 위해 참부모로서 가인형, 아벨형 자녀인 셈과 함이 섭리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기록도 없다.
원래 인류는 아담과 해와 가정, 노아와 그 아내의 가정에서 세계적으로 확대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가정이 되었어야 했다.
성서와 원리강론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남성 중심인물의 개인적인 노력은 인정하지만 사라, 리브가, 라헬과 같은 여성 중심인물들이 섭리와 여성을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남성과 여성은 각각 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를 대표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평등한 현실 때문에 하늘부모의 하늘어머니 측면이 그 자녀 되는 인류로부터 소외되고 무시되는 끔찍한 상황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2) 애니미즘에서 다산의 여신을 거쳐서 남성 유일신으로
타락 후 아담과 해와는 복수의 부모를 모시게 되었는데 하늘부모뿐만 아니라 하급 피조물을 모시게 되었다. 신성에 대한 다신교 숭배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 원시시대 사람들은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지 않았고 심지어 신성에 대한 상상은 자연계의 여러 존재에 대한 국한시켜 경외와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여성 신은 흔히 과장되거나 심지어 기괴한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가슴과 음문’ 등 생식기에 공공연하게 초점을 둔 기형의 모습이나 불균형한 형태로 전시되었다. 물론 여성 신을 이렇게 천하고 음탕한 형식으로 묘사하는 행위는 남성 신을 자애롭고 성스러운 존재로 경외하는 후대의 유일신교인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해와의 이중죄가 완전히 복귀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어머니와 여성 전체는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할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여성 신에 대한 타락인류의 관념은 천박할 정도로 저급한 것이었다. 하늘부모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5% 책임분담의 수준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늘부모는 이러한 굴욕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황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남성유일신교가 발전하면서 여성을 대표하는 하나님이 없어졌다. 남성 유일신교는 하나님의 여성성의 권한과 권위를 강등시키는 수단으로 성별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메리 데일리가 말하는 여성을 낮은 지위로 폄하하는 ‘성 계급제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3) 히브리교의 남성 유일신교
아담과 해와의 이야기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해석을 놓고 오늘날 많은 성경학자들이 창세기 1장 27절과 창세기 2장 21~22절의 상충되는 두 가지의 창조 이야기가 원래 별도의 이야기였다가 나중에 합쳐져서 창세기를 구성하게 되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하나님이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창세기 2장 21~22절의 이야기는 ‘민족전통의 언어’로 쓰여 있고, 기원전 1,000~900년 사이의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모두 창조했다는 창세기 1장 27절의 이야기는 기원전 400년의 것인데 ‘바빌로니아 유수 이후의 신학자’나 ‘제사장직 편집’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가치를 찾는 사람이라면 창세기 1장 27절의 이야기를 선택할 것이고 여성의 열등함을 주장하는 사람은 창세기 2장 21~22절이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야훼를 음탕하고 난잡한 가나안 신을 비롯한 여성 신과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서 히브리 선지자와 저술가들은 성과 완전히 단절된 극단적인 야훼를 그리게 되었다. 이들은 ‘성’을 ‘성(聖)스럽지 못한 영역’으로 가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 영역에서 벗어나 ‘성스러운 자’ 무성(無性)의 야훼를 만나게 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야훼가 남성으로 알려졌지만 음란한 가나안의 남성 신 엔키와 바알처럼 남근을 가지거나 성행위를 한다는 식으로 한 번도 서술되지 않았다. 원래 남성 신으로 알려진 야훼를 이렇게 무성(無性)의 존재로 묘사하는 야훼 신앙은 나중에 ‘성스러운 결혼 상징물’을 세우려고 했을 때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야훼 신앙에서 남성보다 여성을 ‘악하고 사악한’ 존재로 언급하며 과도할 정도로 이 표현을 반복하고 있다.
4) 남성 유일신교의 연장으로서의 기독교
기독교는 예수의 마지막 선택에서 발전하였는데 예수 신부에 의한 기여는 없고 남성에게만 이득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주님과 그 신부를 준비하는 노정에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여성성을 인식하기 위한 하늘부모의 95% 노력이 기독교 초창기 단계 때부터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그노시스파의 저술과 위경 복음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그노시스파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단순히 남성의 하나님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요소를 모두 갖춘 이원론적 존재”였다고 일찍이 주장했다.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이 두 가지 영원한 성함, 신성한 존재의 부모로부터” 하면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 양측에 기도하고 있었다.
빌립의 복음에서 “우리가 히브리인이었을 때 고아였고 어머니만 있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되고 나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하여 양성 평등한 존재의 하늘부모를 인정하였다. 도마복음서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하늘어머니와 비교하면서 예수는 “내 모친은 나에게 (거짓을 줬지만) 내 진정한 어머니는 생명을 주었다.”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모친에 의해 히브리인이 된다는 말은 유대교 법규인 할라카에서도 유태인 여성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도 유태인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하나님을 아버지이자 어머니로 봤던 초창기 기독교인들은 곧 자칭 ‘정통파’ 기독교에 의해 묵살되었다. … 가장 논쟁이 되었던 주요 주제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여성성과 교회 내의 여성 지도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남성중심의 선택’과 ‘편집의 과정’을 수반한 “초대 교회의 점진적이며 꾸준한 가부장화”로 교부들이 어머니 하나님과 교회 내 여성들의 공로에 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제거하게 되었다.
마리아를 중심으로 발전된 개념에 그녀의 영원한 ‘처녀성’과 후대의 ‘무원죄 잉태설’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주제들은 예수의 기적적인 탄생을 성교와의 연관성을 완전히 제거하고 싶었던 교회의 금욕적인 충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섭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기독교의 금욕주의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예수는 그의 신부와 영육을 아우른 이상적 혼인관계를 이루지 못하여 육체 없이 영적인 기반만 조성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영육의 이중 결합으로 이뤄지는 남편과 아내의 “절대성”에 관한 하늘부모의 창조목적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반이 거의 없었다.
5) 남성 유일신교를 넘어 성별과 이중 격위가 평등한 하늘심정원리를 향해야 하는 통일운동
하늘부모와 예수가 20세기에 이르러 연장된 노정을 출발한 중심인물이었던 재림주와 그 신부에게 그 사명을 인계할 때 그들은 남성 중심인물부터 먼저 접촉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남성 중심인물이 … 그의 신부를 참된 배우자로서 세우고 그녀가 모든 여성을 대신해서 해와의 이중죄를 복귀하고 하늘어머니의 강림을 위한 개인 책임분담을 완성할 때까지 도와줘야 했다. 재림주와 그의 신부의 세계적, 천주적 노정을 위한 남성과 여성의 중심인물들은 아담과 해와로부터 시작된 모든 인류의 비원리적 선택을 복귀할 책임이 있다.
그들은 적절한 시기에 남성과 여성의 제1축복을 완성해야 했다. … 여성 중심인물은 복귀된 해와의 입장에서 여성과 그 딸들을 통해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가치를 되찾기 위한 수고를 해왔고, 하늘어머니가 하늘아버지와 동등하게 나타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제 그 남성 중심인물인 참아버님은 “다 이루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영계로 성화하셨다. 이는 참아버님이 남성 중심인물로서 남성을 대신해서 개인 차원에서 이룰 수 있는 것과 인류를 위한 집단적 차원의 일부를 이루었다는 뜻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모든 여성과 하늘어머니와 연관된 개인 차원의 여성 책임분담과 인류에 대한 나머지 집단적 부분을 이루는 것은 여성 중심인물과 그 딸들의 몫이 된다.
성화이후 참어머님이 통일운동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앞선 문화가 주로 가부장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하늘심정원리에서 요구하는 남성과 여성의 평들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 그 결과 참어머님은 그녀의 가인형과 아벨형 아들뿐만 아니라 일부 딸들로부터도 많은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 그들은 통일운동의 문화가 주로 기독교와 한국 유교 출신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따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와 한국 유교 사상이 타락한 과거의 다양한 문화의 영향의 산물인데도 말이다.
성 어거스틴은 남성인 아담이 영적인 무형의 남성격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일원화된 인간시조라고 하면서 해와는 아담의 “성욕에 의한 신체적 번식의 노역”을 도와주기 위해 아담의 갈비뼈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연 질서를 위해 “육신이 영의 주관”을 받듯이 여자는 종속된 존재로 남자의 주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을 받아들여 남자와 아들이 “만물의 영장”이 되고 모든 여자와 그 딸들은 신성한 정자가 없는 “결함 있고” “훼손된” “하급의” 존재라고 하였다. … 이렇게 왜곡된 생물학적 해석 때문에 부계 혈통의 상속을 주장하는 근본적 전제가 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아들만이 귀한 “정액” 혹은 “씨”를 “효과적이며 능동적”으로 운반할 매개체가 되고 “후대에 공로를 남기고” 남성이라는 우월한 형태의 인간 표본을 이어주기 때문이다.
참어머님의 지위에 반대하는 자는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해와가 먼저 천사장의 비원리적 사상에 동조하여 절대적 하늘심정원리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해와를 통해 모든 여성이 비하되고 비참한 위치로 내려가게 되었다는 것을. … 복귀된 해와의 입장에 선 참어머님이 그 딸들과 더불어 성별과 이중 격위에 평등한 하늘심정원리를 되찾아 이 원리를 그 아들을 포함한 인류에게 가르쳐야 한다.
참어머님이 “하나님의 독생녀”라고 지칭하여 자신이 참아버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해왔다. 이렇게 한 것은 통일운동의 문화에서 메시아의 지위에 대한 이해가 지극히 기독교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남성 중심인물과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남성과 여성 중심인물을 동등한 가치로서 분명히 인식할 때까지 필요한 교육이 이뤄지고 나면 그녀의 딸들도 그녀의 아들들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더 나아가 모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되찾기 위해 분명히 여기에 노력을 집중할 것이다.
동등한 인간 가치에 기초한 성별 불평등과 가인, 아벨의 불평등한 입장도 복귀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인간을 중심으로 한 하늘부모의 영원한 창조목적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
7. 결론
우리는 하늘부모의 완전한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인간으로서 동등한 가치를 지녔지만 남성, 여성으로 성이 다른 존재이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생긴 아담과 해와의 원죄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우리가 피조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이자 중심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타락으로 생긴 해와의 이중죄 때문에 타락한 인류는 여성을 경시하는 타락한 문화가 만연된 세계에 살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에서 여성이 본래 남성의 배우자로 창조되었듯이 하늘어머니가 하늘아버지와 동등한 입장에 있는 유능하고 생기가 넘치는 배우자였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20세기와 그 이후에도 섭리적 중심 기대로서 성장한 통일운동은 하늘부모의 ‘절대적 성’(absolute Gender)과 이중 격위가 균형된 하늘심정원리를 옹호할 중대한 책임이 있다. 이 원리 없이는 우리는 섭리적 복귀를 완성하여 온 인류가 하늘부모를 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로 모시는 날을 보지 못할 것이다.
문선명 총재와 한학자 총재의 첫 자녀로서 하늘어머니와 여성 평등에 대한 내용은 개인적으로도 필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통일운동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하나님을 남성 하나님에 국한해서 소개하는 것에 실망도 하고 불만도 갖고 있었다. 필자는 여성으로서 그런 하나님과 상대하는 것이 어려웠다.
기독교와 유교 모두가 인류에게 큰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초창기 한국 통일운동의 문화가 남성중심의 기독교문화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본래 불평등하다는 유교의 인간관계 가르침의 영향을 받은 고대 한국 문화의 남성 우월주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어쩌면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통일운동에서 이러한 사상적 혼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그 중에도 필자의 친형제자매도 있는데 그들은 심각하게 무엇인가 잘못 이해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인간의 성 평등을 인정하지 않는 과거의 가부장적 문화를 포기하지 못하고 현재 참어머님의 지도력을 아예 부정하고 있다. 그러한 행동은 참아버님의 뜻과 반대된다.
2012년 참아버님이 마지막으로 주관한 공식 행사 아벨여성유엔의 창설대회에서 참아버님은 “가치적으로 보아 남녀는 절대 평등한 관계”이며 “21세기는 여성들이 … 주역”이 된다고 하였다. 성화 후 참어머님이 지도적인 입장에 설 것을 이미 예상했다고 봐야 한다. 참아버님은 참어머님이 “승리한 세계적 여성대표”이자 “참된 여성 지도자”임을 선포하셨다.(청심평화월드센터, 2012년 7월 16일)
“세계여성시대의 도래”(아벨여성유엔의 창설대회)의 섭리적 시점에서 인류에게 이미 많은 사상적 혼돈을 일으킨 일방적이고 제한된 가부장적 문화로 섭리를 퇴보시키는 것보다는 섭리적 사명의 완성을 위해 참어머님과 그 딸들과 하나 되는 때가 왔다.
하늘아버지와 하늘어머니로서 동등한 가치와 권한을 지닌 하늘부모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회복하려는 본 논문은 필자에게 중요한 이정표이다. 이 연구는 학문적 관심 이상의 것이다. 참어머님의 발자국을 따라 하늘어머니의 형상으로 창조된 한 여성으로서 필자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실존주의적인 탐구이다.
통일운동의 다른 구성원도 필자처럼 이 주제로부터 영감을 얻고 통일신학이 하늘아버지이자 하늘어머니인 하늘부모를 균형 있게 이해하고 인간으로서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가치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 그 때서야 완전한 진리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통일운동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다고 믿는다.
* 이상은 <천일국 학술원 창립 총회 및 제1회 학술 심포지엄 '천일국 시대의 참부모님 위상과 섭리적 경륜', 천일국 학술원, 2016년 8월>에 실린 문예진님의 글을 파리가 일부만 뽑아 타자한 것입니다.
첫댓글 댓글을 달아봅니다.
먼저 통일원리에서 하나님을 남성격인 하늘아버지로 지칭하는 것이 관례가 아니라 총칭적인 하나님의 정체성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남성격으로 보는 신구약시대의 영향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어떠한 문화나 전통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으로 통일원리는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원리원본에서 언급한다고 하는 하나님을 하늘아버지이자 하늘어머니임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실체적인 하나님의 정체성을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왜 참어머님께서 하나님을 하늘부모로 호칭을 하도록 하셨는지 이해를 못하시나요?
즉, 통일교회와 천주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정체성이 어떻게 다른가를 모르시나요?
답변은 다른 글로 대신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내용을 늘어놓으셨네요.
역사적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함몰이 여성인 해와가 저지른 죄가 한번의 죄를 저지른 아담에 죄에 비해 절대가치의 기준으로부터 두 번 떨어진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복귀는 남성 중심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는 웝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을 남성격으로 인식하였다고요?
이것이 원리입니까? 똥입니까?
그리고, 해와의 죄 때가 아담의 죄보다 중하기 때문에 때문에 복귀는 남성 중심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요?
참으로 한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여성을 중심으로 복귀되어져 왔습니다.
아직도 모자협조시대를 모르시나요?
원로목회자라는 페이지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이해를 못하고, 참어머님꼐서 말씀하시는 바를 몰라서 어떻게 합니까?
아신다면, 이러한 글에는 누구의 글이라 하여도 바르게 바로 잡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위의 본문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를 한다면 원로목회자는 참어머님의 말씀을 이해를 못한다고 판단이 됩니다. 왜 참어머님께서 참아버님은 원죄가 있다고 하셨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천일국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정체성이 어떻게 규정되는지, 효정이라고 매일마다 외치면서 왜 외치는지를 모르고 하는 것 같습니다.
뭐 사실 2000년전에도 마찬가였으니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아는 제자들이 있었나요?
같은 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