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금석이 김포비행장 상공에 도달한 것은 순안비행장 이륙으로부터 17분 뒤였다.
그러나 조선반도에서 가장 혼잡하다는
김포비행장 상공에 진입할 때까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활주로 북쪽에서 진입하여 남쪽으로 활주하여 착륙했다.
이것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진입하는 미군과는 정반대의 착륙 방법이었다.
그 시간에 F86 세이버 콕핏(Cockpit)에 앉아
'놀라운 이야기(Astounding Stories)'라는 SF 잡지를 보며
출격 대기하고 있던 한 미군 조종사는
반대 방향으로 착륙하는 노금석의 미그기를 보며
'어느 놈이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있구나'라고 중얼거렸다.
노금석은 김포비행장이 처음이지만 그다지 생소하진 않았다.
1년 전 김일성은 북한 공군에게 김포비행장을 기습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그 작전에 뽑힌 노금석은 모형과 지도를 갖고 김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숙지하며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김포 기습 공격 작전'은 스탈린과 주은래의 만류로 실행되지 않았다.
전략적으로 득보다 실이 크다는 이유였다.
미그를 처음으로 알아 본 미군 조종사 몇 명이 노금석에게 달려갔고,
미그에서 뛰어내린 노금석이 활짝 웃으며 미군 조종사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곧이어 많은 조종사들이 노금석 앞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노금석이 착륙하던 그 시간에 공교롭게 김포 기지의 레이더는
보수를 위해 스위치를 꺼놓은 상태였다.
1년 전 중도에 포기한 김포 기습 계획과 레이더의 보수는 결과적으로
노금석이 김포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셈이다.
나중에 상황을 인지한 기지사령부 측에서 대응조치를 취하기 시작한다.
곧바로 동경에 있는 극동군 사령부에서 심문 요원과 통역요원이 파견되었다.
심문 요원과 통역요원은 일본계 미국인이었는데,
노금석은 한국어 대신 유창한 일본어로 심문에 응했다.
1953년 4월 미군은 '물라(Moola) 작전'이라는 것을 개시했다.
물라는 속어로 돈이라는 뜻인데, 우리말의 '쩐'과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다.
이 작전은 소련 중국 북한의 파일럿을 대상으로
'비행 조종 가능한 상태의 MIG 전투기'로 망명한 최초의 파일럿에게
1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한다는 내용이다.
노금석은 이 조건에 딱 부합되었고, 미군 관계자도
노금석이 보상금을 노리고 망명한 것으로 판단했다.
전 세계의 매스컴도 여기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노금석은 금시초문이었고, 대통령에 막 취임한 아이젠하워도
'물라 작전'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
외국 정부의 재산을 훔친 자에게 국민의 세금을
지불하는 것은 페어 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미군 당국은 노금석의 망명을 '물라 작전'의 대성공으로 선전하려 했으나
정작 돈을 '줄 사람'과 '받을 사람'의 반응이 냉담하자 당황한다.
'물라 작전' 관계자들은 아이젠하워를 설득했고,
노금석에겐 '물라 작전을 알고 있었다'라고 '거짓말'을 해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보상금 10만 불(지금의 가치로 대략 90만 불)은 우여곡절 끝에
리그스 내셔널 은행의 신탁기금 형식으로 노금석에게 지급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탁기금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던
노금석이 일시 사인을 거부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보상금을 받은 후에도 '돈을 바라고 미그를 훔쳤다'라는
세간의 인식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노금석은 김포에서 오키나와의 카데나(嘉手納) 기지로 이동하여 미군의 조사를 받았다.
그가 오키나와에 있을 때 대구에서 살고 있던 모친과 연락이 닿았다.
신문을 보고 아들을 알아 본 모친은 즉각 인근의 한국군 부대에 신고했고,
미군은 프로파간다 차원에서 노금석을 서울로 보내어 거창한 기지회견을 열었고,
기자회견 현장에서 모친과 극적으로 상봉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미군 당국은 노금석에게 200불 상당의 한국 돈을 주면서
어머니에게 드리라고 명령(?) 했고,
노금석은 충실하게 그 명령을 이행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노금석은 승승장구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듀폰에 입사한 그는 그 후 보잉과
제네럴 다이나믹스를 거쳐 기밀정보 취급 자격을 얻는다.
GE, GD, 로키트, 그라망, 웨스팅하우스, Pan Am 항공 등에서 근무했고,
말년엔 '하늘의 하버드'라고 하는 엠블리 리들 항공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68세에 은퇴한다.
노금석은 1960년 개성 출신의 교포 '클랄라. 로'와 결혼한다.
가톨릭 신도였던 어머니가 같은 가톨릭 신도인 신부를 중매했다.
신부는 노금석이 어렸을 적부터 동경해 오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65층에서 가톨릭 단체의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노금석 부부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자식농사'에서는 불행한 일이 많았다.
장남은 정신장애아이고, 항공우주엔지니어였던 차남은 결혼 직후
부인을 권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권총을 쏴 자살했다.
아들은 공교롭게 노금석이 북한을 탈출한 9월 21일에 자살했다.
노금석은 신부의 학력이 아들보다 떨어진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고,
부모의 반대에도 결혼을 강행하자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교포사회와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어울리지 않았고,
부부간의 대화도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할 만큼
철저하게 '탈북입미(脫北入美)를 지향했던 것 같다.
평소 한류드라마를 좋아했다는데,
한국어가 서툴러 영어 자막을 통해
이해할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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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독후기(脫讀後記)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노금석은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귀순한 북괴 조종사'였다.
필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가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미그기 위에서 손을 흔드는 장면의 USIS '뉘우스'영화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책 어디에도 그가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는 내용은 없다.
뿐만 아니라 김포에 도착한 이후 한국 정부나 군 관계자를 만났다는 내용도 전무하다.
노금석이 만난 한국 사람은 그에게 콜라 한 잔을 건넨 한국인 종업원과
미군의 프로파간다 차원에서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난 것이 전부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그는 북한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적도 없고,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도 없다.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를 찾아,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의 꿈인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한 '탈북입미(脫北入美)'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노금석의 행위는 망명도 귀순도 아닌 단순한 탈북이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과 그것을 받아들인 미국의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망명과 귀순으로 과대포장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책에서 시종일관 '미그를 훔쳐... ( ミグを盗んでから...)'라는 말이 이어진다.
노금석의 행위를 '미그를 훔친 행위'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법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는 요소는 농후하다.
예를 들어 어느 특정 단체가 관할하고 있는 지역에서,
그 단체의 소유 재산을, 그 단체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임의로 관할 지역 밖으로 옮기는 행위를 밀반출 또는 불법 반출이라고
정의한다면, 노금석의 행위는 밀반출의 요건을 완비했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인 글의 맥락을 봤을 때 노금석이 대한민국을 자신의 모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진 않다.
개인적인 소망을 이루기 위해 감행한 행위가 적시(適時)에 맞아떨어진
운과 결합된 희소적인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한 개인의 개인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이외에 F86 세이버와 MIG-15의 공중전 그리고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던
소련군 파일럿의 참전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부수적으로 다루고 있다.
끝으로 이 책의 원서인 영어판은 아직 수입되지 않았다. -교보문고 기준-
한국어 번역판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고,
일역판(日譯版)의 재고는 이 책 딱 한 권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에 딱 한 권인 이 책을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 최고의 피서 공간에서 편안하게 '공짜'로 읽을 수 있었다.
교보문고 측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