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 어만의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를 비롯한 비슷한 류의 주제들은, 사실 나에겐 큰 관심 사항이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이 바트 어만 류의 글을 읽고 생각의 전환을 겪고 있으며, 진화교 사제들과 신도들도 이같은 책을 통해 성경을 왜곡해서 바라보는 것이 일종의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트 어만의 사상을 한번 쯤은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바트 어만이 가진 생각의 편린들을 들여다 보면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고 얘기하고 싶군요. 바트 어만을 비롯한 당대 학자들의 생각은 일종의 '가두리'에 갇힌 물고기처럼, 성서라는 '신의 메세지'를 인간적 관점에서 이해하려 했다는 우(愚)를 범했기 때문에 늘 평행선을 그을 수 밖엔 없다는 사실입니다.
1. 관점
성서를 대할 때, '인간의 시간적 저술물이냐?' 아님 '신의 메세지냐?' 라는 관점에 따라 내용의 결과는 하늘과 땅 만큼 벌어지게 된다. 모든 성서 옹호자들과 성서 비판자들이 반드시 성서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 성서가 청동기 시대 인간들의 '망상'과 후대에 편집된 저작물의 혼합체라 생각한다면, 성서에 숨겨진 내용은 신화적 서사에 불과해진다.
` 반면에 성서가 신의 메세지임을 확신한다면, 신학이란 틀을 통해 발전한 껍데기를 성서 그 자체로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중도적 시각을 유지해야 하지만,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바트 어만은 처음엔 성서를 신뢰의 바탕에서 탐구해 나갔지만, 학계 주류의 시각 즉 성서는 '오류 투성이의 혼합 저작물'이란 사고에 당하고 만 희생자였다. 그 이유는 성서가 가진 함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는 어려서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며 도그마화한 교리 테두리 내에서 성서를 바라 봤다가, 자신이 알던 성서와 다른 얘기와 맞닥 뜨리며 회의에 빠지게 된다.
2. 성서의 함의
성서는 '신의 메세지'다. 따라서 성서를 읽을 땐, 다음의 몇가지 함의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
(1) "진리는 서시히 밝혀진다"는 원칙 : 모든 66권 성경은 커다란 '빅 빅처(Big Picture)'를 위한 단편적 퍼즐 조각들이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인 사도들조차 예수라는 분이 긍극적으로 무엇을 완성할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예수가 다윗의 적통자로서 예루살렘에 왕으로 임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예수께서 붙잡히시자 그들은 모두 도망가게 된다. 예수의 계획이 실패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들은 퍼즐의 전체를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동생 야고보조차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서야 예수를 믿게 됐지만, 그는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보았고 예루살렘 회중의 수장으로서 다른 지역 공동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들의 인식이 바뀐 절대적 계기는 부활한 예수와의 재회였고,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서서히 자신들의 생각을 조정해 나갔다. (어만은 이를 오해해 예수가 집단적 전승에 따라 점차적으로 인간에서 신으로 승격 됐다고 보았다)
2. 신약의 저술자들은(구약의 저술자 포함) 자신이 듣고 본 것만을 기록했다 : 복음서는 당시 수 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듣고 본 것에 기초해 저술한 것이다. 다만 복음서의 대상 독자들에 따라서 설명이 부연되거나 첨가됐을 뿐이다. 이는 모든 성경 저술자들의 공통사항으로서 그들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의도적 비틀기를 하지 않았다. 그들의 신념이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종교' 또는 '도(道)'의 세계에 대해 정통해야 한다. 어만은 이 부분에 대해 의도적으로 피해 갔다)
3. 예수는 스스로를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로 밝혔다 : 예수의 첫번째 임무가 대속을 통해 인간과 하느님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는 것이었다. 대속은 등가의 법칙이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아담 vs 예수는 동일한 '인간성'을 가져야만 했다. 이것이 완성돼야만 왕으로 임재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의 전재적 존재인 신(神)의 영역이 아닌 순수 인간임을 강조하기 위해 지속해서 자신을 '사람의 아들(人子)'라고 호칭했다. 그러나 부활 후의 예수는 자신을 인자(사람의 아들)이라고 호칭하지 않았다. (어만은 이를 역사적 예수의 실체라고 이해했다)
4. 바울은 예수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 예수의 12 사도들은 기초석으로 선택된 인물들이다. 집을 지으려면 가장 먼저 기초석을 튼튼하게 다져야 한다. 그래야만 집이 오래 견뎌 낼 수 있다. 그 위에서 형체를 만들어 내는 역할이 바울이다. 예수께서 직접 바울에 대해 "가라 이 사람(바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행전 9:15)
바울은 예수의 말처럼, 수차례의 전도 여행을 통해 예수의 이름을 로마 제국 전 영역으로 확대했다. 바울은 예수의 부활 이후 예수의 실체를 이해했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 본질임을 파악했기 때문에 '의도적 선택'을 통해 역사적 예수 보담 신적 존재에 대한 논증에 집중했다.
이제 마칩니다. 바트 어만이나 기타 성서 비평가들은 대부분 기존 기독교인들보다 성서를 더 많이 읽고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성서를 불완전한 텍스트로 이해한 근본 원인은, 자신들이 듣고 배웠던 기독교 교리와 다른 이야기를 성서를 통해 직접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성경 비판 대상은 사실 기독교의 도그마화한 교리에 바탕합니다.
그래서 카렌 암스트롱같은 비교종교학 학자가 "헛깨비에 헛발질한다"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서 비평의 근간은 기존 도그마화한 기독교 교단의 낡아빠진 교리에 바탕합니다. 이를 타파해야 할 절대적 이유는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나 일반인들이 기독교의 교리에 바탕해 성서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매트릭스를 해체하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순수 기독인(크리스찬)들의 소명이라 봅니다.
PS : 리처드 도킨스에 대한 저술물들에 대해서도 글을 올리려 했지만, 바트 어만에 대한 글을 쓰면서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청 무더운 날씨엔 그저 시원하게 집에서 머무는 게 최고란 생각입니다^^
첫댓글 이 글은 주인장 저장 목록에 넣고 썼어야 하는데, 깜빡하고 '성서사상탐구' 카테고리에 넣고 글을 쓰다보니, 처음 들어와 보신 분들은 미완성된 글과 점차적으로 덧 붙여진 것을 보셨을 겁니다. 마지막 결론 부분은 시간이 없어 내일 완성하기로 하고 ... 내일을 위해 샤워 후에 잠자리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