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家具와 가구假具
석현수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한동안 유행어가 되었던 상업광고다. 사람들은 이 광고 때문에 아이들에게 혼동을 준다며 불편스러워했다. 아니나 다를까 초등학교 시험문제에 등장했다. 가구家具가 아닌 것을 택하라는 문제다. 장롱, 식탁, 이불, 침대 중 아이들은 만장일치로 침대를 답으로 썼다. 방송에서도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했으니 두말할 것도 없다는 식이었다. 참으로 현명한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매스컴에서 떠든다고 해서 반드시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을 것이다.
생활용 가재도구에 가구家具가 포함된다. 가구家具에 용도 이상의 돈 투자를 하면 가구假具로 둔갑한다. 가구假具는 별 쓰임새도 없으면서 치레로 진열해 놓는 것들이다. 특히 사업하는 사람들은 으리으리한 가옥假屋과 가구假具와 허虛자 번호판의 자동차가 필수다. 은행 담보나 남의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있는 척해 보이도록 하는 처세술이다. 약한 실력도 있어 보이도록 가책假冊까지 늘어놓는다. 내용은 여하 간에 금장金裝 이거나 두꺼운 전집만을 골라서 멋있게 진열한다. 지식을 가장한 빈 머리치장이다. 유리가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나는 것은 깨지기 쉬운 취약함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침대가 가구家具가 아니라는 말은 틀린다.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정신병원에 가 봐야 한다.
침대는 가구假具가 아니라는 말은 맞다. 장식용으로 쓰는 물건이 아니라는 말이니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침대는 외형보다는 쓰임새가 맞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겠지만 잠까지 사오는 것은 아니다. Money can buy a Bed, but not Sleep. 광고의 주안점은 가구假具가 아니라 가구家具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침대는 과학이어야 한다. 도입부를 의도적으로 거두절미하여 크게 반전을 꾀하는 역설적인 광고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을 것이다.
나는 가구家具다운 가구도, 치레의 가구假具도 없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집 안으로 들이지를 않는다. 그럴수록 궁금증 효과는 늘어나 잘해 놓고 살 것이라는 의구심이 커진다. 간간이 지갑이나 잽싸게 뽑아들고 계산대로 나서면 절대로 빈한 테가 나지 않는다. 허허실실虛虛實實 살아가는 내 식이다. 예전엔 형편이 안 되어 없었고 이제는 놓을 자리가 없어서 들이지 못한다. 가구家具도 못 들이는 판에 가구假具까지 욕심내기란 무리다. 주거 공간이 좁아 몇 안 되는 가구들이 오히려 나더러 자리를 비워 달라고 한다. 있는 것을 버려야 새것을 들여 놓을 수 있는 선입선출先入先出의 논리를 따른다면 가재도구 태반을 내다 버려야 가까스로 더블베드 하나가 좌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말 사면 종 둔다고 했다. 도무지 말〔馬〕 생각이 없는 걸 보니 어지간히 마구간이 시원찮은 사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