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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 2015년 |
통계청 발표(A) | 501만 | 389만 |
천주교 주교회의 발표(B) | 466만 | 565만 |
차이 (A-B) | 35만(+) | 176만(-) |
이번 통계청 발표는 한국 천주교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왜 신자들이 냉담을 넘어 종교가 없는 쪽으로 갔는지, 둘째는 왜 잠재적인 예비 천주교신자로 조사에 응했던 국민들이 사라졌는지 입니다.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가 서구처럼 탈종교화한다는 현상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신자수가 증가한 개신교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0년간 개신교는 106만명이 늘어난 반면 천주교는 오히려 112만명이 줄었습니다. 10년 전에는 비록 냉담하고 있었더라도 자신을 천주교인으로 생각하는 신자들이 대다수였기에 통계청의 조사에서 자신들을 천주교인으로 답하였던 신자들이 10년 후에는 자신들은 이미 교회와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답하였음은 한국교회가 무척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2005년 | 2015년 |
개신교 | 18.2% (861만) | 19.7% (967만명) |
천주교 | 10.6% (501만) | 7.9% (389만명) |
2013년 6월 미래사목연구소의 차동엽 신부님은 ‘본당 봉사자 사목을 위한 특강’에서 냉담교우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고 증언하였으며 그 이유로는 종교적 속박을 싫어하는 포스트 모던 세대의 증가, 생활고, 신앙에 대한 회의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로 성직자, 수도자에 대한 실망 등의 이유를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신부님이 사목의 일환으로 가정방문을 할 때 아예 문도 열어주지 않는 ‘적대적 냉담자’의 수가 증가하였다고 합니다.
2. 끝없는 독선과 교만에 빠진 한국 천주교회의 사제들
사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삶의 현장이 팍팍해지므로 인간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종교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이러할 때 종교가 영혼의 안식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적으로 편향된 처신으로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증오심만 심어, 교회를 찾는 신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환멸만을 안겨준다고 한다면 그런 교회를 어떤 평신도들이 찾게 될 것인가? 여기에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이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무종교인에게 종교에 대한 호감도를 질문하였을 때 가장 호감을 갖는 종교가 천주교라고 대답한 비율이 한 때 70%에 달할 정도로 천주교는 종교를 갖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영혼의 쉼터로서 가장 인기 있었습니다. 개신교의 지나친 물량위주의 성장,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목사를 포함한 지도자들의 재정, 사생활의 추문, 지나치게 십일조를 강조하는 돈 중심의 교회라는 개신교 이미지에 비하여 조용하지만 엄숙하며 신비함을 지닌 천주교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마음에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124위 순교자 시복식을 위하여 방한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80만명이 운집한 광화문 앞의 시복식의 장관(壯觀) 등은 입교자를 훨씬 더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황님이 한국을 다녀가신 후 세월호 사건을 둘러싸고 유가족을 위시한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의 끝없는 분탕질, 제주교구의 해군기지 반대 생명 • 평화미사 등이 이러한 분위기를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만약 개신교에서 이러한 이벤트가 있었다면 이들은 일치단결하여 새로운 입교 신자수를 엄청나게 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의 사제들의 교만과 독선은 끝간 데를 모를 정도이며 평신도의 바람과 청원에는 아예 귀를 닫고 있습니다.
이미 평신도들이 인지하듯이 대한민국의 천주교회는 붉게 물든 사제들을 중심으로 극렬한 정치개입과 강론대를 오염시키는 반정부 강론으로 평신도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혐오감과 환멸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보수정부가 들어서기 시작한 2008년부터 천주교회의 사제들은 격렬한 반정부 시위, 시국미사와 분열 책동으로 교회를 끝없는 갈등의 격랑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광우병 촛불폭동, 4대강사업,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밀양송전탑 건설, 국정원의 댓글 선거개입, 세월호 비극,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드배치, 최근의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인 이슈가 있을 때마다 북한의 입장과 야당의 주장에 편향된 정의구현사제단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로 인한 반목과 분열로 인해 천주교회는 거의 파국수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편향성의 배후에는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 인민들의 처참한 고통에는 침묵하면서 북한 지도자의 입맛에 맞는 행동만 하였던 교회의 주교와 지도자가 있습니다. 2010년 춘계주교회의에서 주교회의 의장이 임의로 천주교회의 4대강 반대성명을 발표하자 교회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을 중심으로 성당에 ‘4대강 반대’ 플래카드를 내거는 등 교회 안에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2010년 12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께서는 ‘신자들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4대강에 대하여 찬성, 반대할 수 있으며 반드시 천주교에서 4대강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지극히 온당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사탄의 세력들이 들고 일어나서 천주교회의 갈등을 부추겼다고 하면서 추기경의 용퇴를 주장하는 패륜을 범하였습니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면 한국의 정치상황은 대통령 탄핵국면을 맞아 일반 국민들도 탄핵반대와 찬성으로 나뉘어져 엄청난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 사제들이 촛불집회에 단체로 참여하여 대통령 하야를 부르짖고 성당 외벽에 대통령 하야, 대통령 탄핵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성당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갈등을 봉합하고 화합을 권해야 할 교회의 지도자인 몇몇 주교들이 그리스도의 강생을 기뻐하는 성탄 축일 메시지에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이를 위한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편향적이고 반 성령적인 짓거리를 자행하여 신자들을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교회의 지도자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후안무치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지옥의 악령들이 한국의 교회를 파멸로 이끌기 위하여 총출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나마 이런 파국의 순간에 교회를 지키는 것은 성모신심을 갖춘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강한 성모신심이 요구됩니다. 교회의 대표적 신심단체인 레지오 마리애 단원수는 2014년 말 기준 24.8만명으로 전년보다 약간 줄었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의 입교권면 등의 전교활동으로 2014년 신영세자 수는 11.8만명, 2015년 11.6만명이 새로이 입교하였습니다.
하지만 레지오 단원들이 힘겹게 입교권면을 하여 입교시켜놓으면 신부들이 사탄의 놀음에 놀아나 신자들을 쫓아버리는 예가 최근 현저하게 늘고 있습니다. 레지오 단원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번은 세례를 받고 처음으로 교중미사에 참례한 신영세자가 주임신부의 4대강 반대, 해군기지 반대 등 정부비방 강론에 그만 환멸을 느껴 첫 주일 교중미사를 끝내고 그대로 교회에 발을 끊었다고 합니다. 전 신자 대비 주일미사 참여자 수는 2004년 28.1%에서 십년후 인 2014년 20.7%로 7.4%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쉽게 말하면 신자 5명 중 4명은 주일미사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3. 내적으로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는 한국의 천주교회
천주교의 신자수가 이처럼 줄어드는 이유는 외적으로는 시국미사 등으로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정치사제들만이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천주교회의 내적인 문제는 정치사제들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실제에 있어 전례의 파괴, 성체신심의 무력화, 사도좌로부터 이탈된 한국의 천주교회는 이미 붕괴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 과정은 평신도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치밀하고 은밀하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천주교회의 개신교화’입니다. 이들이 개신교와의 일치를 원하는 것은 첫째 그들이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정통 가톨릭의 신앙을 부정하기 때문이며 다음으로는 사제의 세속화 경향 때문입니다. 또한 일부 정치적인 사제들은 한국의 천주교회를 로마 교황청의 통제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교회로 이끌고자 합니다.
천주교회를 개신교와 구분하는 세 가지 축은 성체신심, 사제의 독신제, 교황의 수위권입니다. 만약 이 세 가지가 빠져버리면 천주교회는 개신교와 다를 바 없게 됩니다. 개신교에서는 성체전례 없이 말씀의 전례만 행해지고 있고 성공회는 성체성사가 있으나 성체의 실체변화 교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공회나 개신교에서 로마 교황의 수위권은 인정되지 않으며 성직자가 독신제를 지키지도 않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천주교회가 지향하는 교회가 바로 성공회방식의 교회입니다.
가. 성체의 실체변화를 부정하는 사제들
한국 천주교의 상징이며 서울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인 명동성당에서 한 평신도가 입영성체를 청하였다가 성체를 분배하는 보좌신부로부터 모욕과 함께 내침을 당하였습니다. 이것이 말이 되는 행위입니까? 서울 대교구장이신 염수정 추기경님께서는 성전이 이러한 이단적인 사제에 의하여 모독되고 있음을 아시는지요? 그런데 이 보좌신부는 일정한 정치적 성향을 지녔고 성체분배단봉사자들에게도 신자들에게 입영성체를 주지 말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성사의 사효성’에 의하여 유효하게 성품을 받은 신부가 드리는 성사는 집전 사제의 성덕 여부에 관계없이 그 효력이 동일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교황이 드리는 미사와 평 사제가 드리는 미사의 효력 역시 동일합니다. 성사는 보이지 않는 은총을 보이는 표시로 수여하는 그리스도의 행위입니다. 미사는 신부가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행위입니다. 단지 신부는 도구적 집전자이며 원집전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미사는 2000년전에 행해진 그리스도의 만찬을 오늘에 와서 회고하는 기억의 제사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장소이며, 전례는 바로 ‘은총의 보이는 표지’(a visible sign of Grace)입니다. 즉, 성사는 내용이고 본질이며 전례는 형식이고 그릇입니다. 따라서 전례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질료(matter)와 형식(form), 그리고 지향(intention)이 순수하고 정통적이어야 하며, 그 순수성과 정통성을 담보하는 것이 사도로부터의 전래성(Apostolic tradition)입니다.
떡이나 실제의 빵을 쪼개면서 성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질료’ (Matter)의 사도적 전승을 위배한 것이므로 이 성체성사는 무효입니다. 성체성사에서 밀떡은 누룩이 없어야 하며, 물과 소금, 순수한 밀가루 이외의 어떤 재질이 들어가서도 안 됩니다. 심지어는 고사떡을 가져다가 성체로 축성하여 분배하는데 이는 잡신을 섬기는 무속행위이지 거룩한 성체성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성체의 파편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손영성체는 사도로부터의 전래성이 사실 불확실합니다.
성사의 유효성의 전제 중 하나인 ‘지향’(intention)은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교황과 속지주교(당해교구의 주교)와 일치하며 교회가 바라는 대로 지향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미 대한민국의 천주교회는 로마 교황청과 일치를 바라지 않는 정치사제들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고 정치사제들의 정신적 우두머리들이 주교로서 주교회의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천주교회는 사도좌에게 순명하는 교회가 아니라 개별교회와 속지독립주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개별교회라 함은 교황으로부터 독립된 교회, 교황의 간섭을 배제한 교회를 뜻하며, 속지독립주의는 갈리카니즘(Galicanism; 프랑스교회독립주의)이라고도 부릅니다. 18세기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의 권력이 하늘에 이르던 시절 이들은 교황청 칙령도 무시하고 교회를 운영하였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 가운데 사도전승의 가톨릭예법으로 신자 영성체를 전심으로 준수하는 사제를 보았습니까?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은 대체로 신자들에게 입영성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정통신학이 아니라 해방신학을 떠받드는 신부이며 교회의 정통신학인 성체의 실체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유일신 체제의 북한을 따르는 종북사제들, 해방신학을 추종하는 사제들이 실체변화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사도전승의 진실된 가톨릭 예법으로 신자들에게 성체를 영하게 하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전 세계에서 사제들이 신자들이 청하는 입영성체를 거부하는 경우는 한국의 천주교회가 유일합니다. 정치사제들이 한사코 성체의 실체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성체의 실체변화를 인정함과 동시에 그들이 지금까지 발을 딛고 살아왔던 모든 이념, 신앙체계, 이단적 사고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실체변화의 교리를 부정한다면 하느님의 실제 현존을 부정할 우려가 있습니다. 평신도가 자신의 손으로 성체를 집어서 행하는 셀프 성찬례는 새로운 무신론주의로 이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공산주의를 따르는 종북주의와 새로운 무신론주의는 결코 무관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하느님의 현존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나. 왜 해방신학을 따르는 사제들은 성체의 실체변화를 부정하는가?
해방신학의 매력은 너무나 그럴듯하고 단순명쾌하기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듭니다. 사실, 가난한 이들을 위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 문제는 올바른 지향(영혼구원을 저해할 정도의 심각한 물적 결핍을 보조해주는 차원)이 아니라 과도한 물적 만족(부자 가난하게 만들어 나도 부자되자)의 혁명적 기대심리를 이용해 즉, 좌파 포퓰리즘으로 흘러가는 게 인간이 피하기 힘든 유혹입니다. 즉, 광야에서의 빵의 유혹입니다. 빵의 유혹이라는 길로 가면 그리스도 예수가 아니라, 바라빠, 폭동선동자(insurrectionist)의 길이며 20세기 바라빠가 바로 체 게바라이고 해방신학은 그리스도 예수가 아니라 Che-Jesu를 따르는 이단인 것입니다.
1984년 라칭거 추기경(후일 베네딕토 16세)은 신앙교리성 훈령 ‘자유의 전갈’에서 해방신학은 빵의 유혹에 빠져 구원의 복음을 지상의 복음으로 추락시켰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독생성자로서 이 세상에 강림하신 구세주로서의 예수님이 아니라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나자렛의 혁명가, 민중봉기를 선동한 선동가(insurrectionist)로서의 예수(역사적 예수)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살과 피라고 제정하신 성찬례를 신으로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실체적인 몸과 피로 승화시키는 순간 해방자, 혁명가로서의 예수는 사라지고 진정한 신성을 지니신 예수가 되기 때문에 이들은 성체신심을 무력화시키고 성체의 실체변화를 부정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지극한 성체신심을 지닌 평신도를 원수 대하듯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신앙의 목적은 영원한 생명과 그리스도 부활에의 동참이 아니며 초자연적 은총보다 인간적 수단(해방투쟁)을 강조합니다. 현실의 불의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은 신앙의 부정이라고 강변하면서 그들의 편파적이며 반영성적인 정치활동을 끝까지 옹호하고 늘어집니다. 현실에 참여하지 않는 은수자(隱修者), 영혼의 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상에서의 구원에 방해되는 사람들이라고 이들은 공공연히 적대감을 표합니다.
이들에게 구 교우는 골치 아픈 존재이며 신영세자에게 조작된 사회교리(해방신학)를 가르쳐서 그들 목적대로 체제전복의 동지로 참여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이들이 구교우를 쳐내는 방법은 전례의 파괴와 성체신심의 무력화입니다. 이들은 신심이 강한 평신도들을 교회에서 내쫓기 위한 방편으로 입영성체를 원하는 신자에게 성체수여를 거부하고 성전에서 쫓아내는 만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릅니다. 전 세계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입영성체를 하겠다고 하는 신자를 성전에서 쫓아내는 교회는 대한민국의 교회가 유일합니다. 물론 온전한 사제는 당연히 신자들의 입영성체 청원을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혁명, 체제전복을 열망하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은 신자들의 입영성체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다. 해방자(Liberator)로서의 역사적 예수
이미 비오12세 교황께서 회칙 '영원하신 임금님'에서 경고했듯이 역사적 예수라는 관점은 칼케돈 공의회신조(온전한 하느님이며 온전한 사람이신 그리스도)에서 벗어날 우려가 있습니다. 즉, 역사적 관점에서 인간예수를 보면 그 신성이 가려지거나 흐려지고 초자연적 은총보다 인간적 수단(해방투쟁)이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해방신학에 몰입하게 되면 지상낙원의 재건이라는 유물론적 이상을 추종할 뿐 영혼구원은 뒤켠으로 제쳐두게 됩니다. 해방신학을 추종하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한결같이 현세의 인간적 수단(정치적 투쟁)을 강조하는 믿음의 근저(根底)에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저술하신 ‘나자렛 예수’라는 책이 있습니다. 교황께서는 ‘예수님은 신화가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진 실존인물이며 복음서들이 예수님의 역사적 진실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진정한 믿음을 갖는다면 역사적 예수와 믿음의 예수는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다르다면 사도신경에 나타난 우리의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모습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실패한 반로마 혁명가였다면 어찌하여 오늘 세계에서 20억의 인구가 예수님을 구원자(savior), 그리스도(Christ)로 고백하고 믿을 수 있을까요?
4.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꿈꾸는 한국 교회의 미래상은 무엇인가?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이 꿈꾸는 이념 속의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실현된다면 꿈같은 드림랜드가 세상에 펼쳐질까요? 사유재산만 없으면 유토피아가 전개될 것이라고 했던 마르크스의 허망한 처방을 지금도 좇는 멍청한 사제들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그렇게 단순한 방식으로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이 다스리는 나라, 정의로운 세상은 정의구현사제단이 생각하는 나라나 정의가 결코 아닙니다.
지금 정의구현사제단이 꿈꾸는 한국교회의 미래상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교회가 결코 아닙니다. 이들은 바로 김정은의 하수인이요, 지옥의 악령이 이 세상에 파견한 사탄의 종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주교들도 신부들이 투표하여 선출하겠다고 합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천주교회의 주교는 정의구현사제단이 선출하는 뼛속까지 붉은 사제가 모두 차지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비록 일시적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자신은 천주교인이라고 밝혔던 신자들 중 이제는 200만 명 이상이 자신은 천주교인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붉은 사제들이 귀와 눈을 막고 평신도들을 무시하고 오직 My Way 만을 외치는 이런 교회에 신자들이 교무금 내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나갈 이유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시면서 사도로부터 이어져온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는 가까운 장래에 대한민국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제의 독신제, 전례 및 교계제도를 파괴하고 교회를 성공회(Anglican Church)처럼 개신교화한 다음, 종교다원주의로 나아가서 종국에는 현세에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 무신론적 우리식 종교를 만들겠다는 것이 바로 정의구현사제단이 꿈꾸는 한국형 천주교회입니다. 이 중심에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교황성하를 교종(敎宗)이라고 부르는 주교들이며 이들을 추종하는 졸개들이 바로 정의구현사제단, 정의평화위원회 사제들입니다.
결론적으로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은 이론적 무신론자(마르크스주의자)이거나 실천적 무신론자일 따름입니다. 실천적 무신론자는 결론적으로 이신론(理神論)에 입각하여 신은 천지창조 이래 인간 세상에 간여한 적이 없으며 따라서 기적과 계시를 믿지 않습니다.
저는 금년에 어떤 자매님이 소개하셔서 두 차례 나주의 성모동산을 순례한 경험이 있습니다. 나주에서 성체의 기적이 20여 차례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교황청의 공식입장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저는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나주에서의 성체 기적에 대하여 광주대교구의 조사위원들이 단 한 차례도 기적의 현장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과거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표를 지낸 신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광주대교구의 한 신부님은 나주에서의 성모님 발현과 여러 가지 기적에 대하여 광주 대교구의 사제들이 처음부터 기적현장도 조사하지 않고 기적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이론적 바탕이 바로 실천적 무신론에 연유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조사위원회의 조사위원을 지낸 어떤 신부께서는 주교회의 발간 ‘사목’지(1998. 3.)에서 ‘광주대교구에서 나주의 성체현상을 배척하는 진짜 이유는 개신교 신자들과의 일치라고 하는 대명제를 위해서였다.’라고 과감하게 고백한 바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천주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인 ‘천주교회의 개신교화’, ‘실천적 무신론’등이 바로 나주의 성모동산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2017. 4. 10. 김원율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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