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산업의 바퀴(3)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의 삶
산업혁명은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와 값싸고 풍부한 원자재라는 전대미문의 조합을 내놓았다. 그 결과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성장은 농업에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느껴졌다. 우리는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보통 도시의 연기 나는 굴뚝을 생각하거나 지구의 내장 속에서 땀에 절은 채 착취당하는 석탄 광부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은 무엇보다 제2차 농업혁명이었다.
지난 2백 년간 산업적 생산기법이 농업의 주류가 되었다. 트랙터 같은 기계들이 과거 근육의 힘으로 수행되었거나 아예 수행되지 않던 일들을 떠맡기 시작했다. 농경지와 가축의 생산성은 인공비료, 산업적 살충제, 호르몬과 약물이라는 무기고 덕분에 크게 높아졌다. 농산물은 냉장고, 선박, 항공기 덕에 몇 개월씩 저장되었다가 신속하고 값싸게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다. 유럽인들은 신선한 아르헨티나 쇠고기와 일본 스시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동식물까지 기계화되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인간 중심 종교에 의해 신성한 지위로 격상될 무렵, 농장 동물들은 더이상 고통과 비참함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로 간주되지 않았고 기계 취급을 받게되었다. 오늘날 동물은 공장 비슷한 시설에서 대량 생산되며, 몸체의 형태도 산업 수요에 맞게 형성된다. 거대한 생산라인의 톱니로서 전 생애를 보내며, 그 수명과 삶의 질은 해당 기업의 이익과 손해에 따라 결정된다. 산업이 동물들이 제법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도록 신경 쓰는 경우에도, 그들의 사회적, 심리적 욕구에는 본질적 흥미가 없다(생산량에 직접 영향이 있는 경우는 예외다).
예컨대 산란용 닭에게는 복잡한 형태적 욕구와 충동의 세계가 있다. 닭은 자기가 사는 곳을 정찰하고, 사회적 위계를 결정하며, 둥지를 짓고, 스스로의 털을 고르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양계 산업에서는 암탉들을 비좁은 우리에 가두워 키우며, 한 우리에 네 마리를 밀어 넣는 일도 드물지 않다. 한 마리에게 주어지는 바닥 면적은 가로 25센티미터, 세로 22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닭들은 모이는 충분히 받지만, 영역을 주장하거나 둥지를 짓는 등의 자연스러운 활동은 할 수 없다. 사실 우리가 너무 좁아서 날개를 펴거나 똑바로 설 수조차 없다.
돼지는 포유동물 중 가장 지능과 탐구심이 뛰어난 축에 속한다.이를 능가하는 동물은 유인원뿐이다. 하지만 산업화된 돼지 농장의 축사는 너무 비좁아서 돼지가 몸을 돌릴 수조차 없다( 걷거나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암퇘지는 출산 후 4주 동안 밤 낮으로 이런 우리에 갇혀 있다. 그후 새끼들은 살을 찌우는 비육이 되기 위해 어디론가 옮겨지고, 암퇘지는 다음번 새끼를 임신한다. 많은 젖소는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비좁은 울타리 속에서 자기가 싼 대소변 위에서 서고 앉고 잠을 자며 보낸다. 기계장치가 이들에게 사료와 호르몬, 약품을 공급하며, 또 다른 장치가 몇 시간마다 계속 우유를 짜낸다. 그 기계들 사이에 낀 암소는 원자재를 받아들이는 입과 상품을 생산하는 젖통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한다. 복잡한 감정 세계를 지닌 살아 있는 동물을 마치 기계처럼 대하는 것은 그들에게 육체적 불편뿐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스트레스와 심리적 좌절을 안겨준다.7
대서양 노예 무역이 아프리카인을 향한 증오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처럼,현대의 동물산업도 악의를 기반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 연료는 무관심이다. 달걀과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짬을 내어 자기가 살이나 그 산물을 먹고 있는 닭과 암소, 돼지를 생각하는 일이 드물다. 실제로 생각해본 사람들은 종종 그런 동물은 실제로 기계와 다를 것이 거의 없어 감정이나 느낌이 없고 고통을 느낄 능력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얄궃게도 우리의 우유 기계나 달걀 기계를 빚어내는 바로 그 과학 분야는 최근 포유류와 조류가 복잡한 감각과 감정적 기질을 지녔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을 증명해냈다. 육체적 통증을 느끼는 것은 물론, 정서적 고통도 느낀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가축의 정서적, 사회적 욕구는 그것이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이던 시절에 야생에서 진화한 것이다. 예컨대 야생 암소는 다른 암소나 황소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아야만 했다. 그러지 못하면 생존도 번식도 할 수 없었다. 필수 기술을 학습하기 위해서, 진화는 송아지에게 다른 모든 사회적 포유류의 새끼와 마찬가지로 놀이를 하려는 강한 본능을 심어두었다(놀이는 포유동물이 사회적 행위를 학습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어미와 유대감을 형성하려는 더 강력한 욕구도 심어두었다. 어미의 젖과 보살핌은 생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농부가 어린 암송아지를 어미에게서 떼어내 좁은 우리에 가두고, 물과 사료를 주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접종을 하고, 충분히 자랐을 때 황소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시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객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송아지는 더 이상 생존이나 번식을 위해 어미나 놀이친구와의 유대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송아지 입장에서는 여전히 어미와 유대를 맺고 다른 송아지와 놀겠다는 강력한 욕구를 느낀다. 만일 이런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송아지는 크게 고통스러워한다. 진화심리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본 교훈은, 야생에서 형성된 욕구는 설사 더 이상 생존과 번식에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할지라도 계속 주관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산업화된 농업의 비극은 동물의 주관적 욕구는 무시하면서 객관적 욕구만 잘 챙긴다는 점이다. 이 이론이 옳다는 사실은 적어도 1950년대 이래 알려져 있다.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가 원숭이의 발달을 연구한 덕분이었다. 할로는 갓 태어난 원숭이들을 출생 몇시간 만에 어미와 떼어놓았다. 새끼들은 우리에 가둬진 채 인형 어미의 젖을 먹었다, 할로는 두 종류의 인형을 배치했는데, 하나는 철사로 만들어졌고 새끼들이 빨아먹을 수 있는 우유병이 달려 있었다. 또 하나는 나무로 제작해 겉에 천을 씌운 것으로 진짜 어미 원숭이를 닮았지만 새끼들에게 물질적인 자양분은 전혀 줄 수 없었다. 새끼들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 천 엄마보다 영양을 공급하는 철사 엄마에게 매달릴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끼 원숭이들은 천으로 된 엄마를 훨씬 더 좋아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두 엄마가 가까이 놓여 있으면 심지어 철사 엄마에게서 우유를 빨기 위해 목을 뻗으면서도 천 엄마에게 매달려 있었다. 할로는 새끼들이 추워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는 철사 엄마의 내부에 전구를 장착해서 열을 내게 했다. 그러나 아주 어린 새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새끼는 계속해서 천 엄마를 좋아했다.
후속 연구 결과, 할로가 고아로 만든 새끼들은 필요한 모든 영양을 제공받았음에도 성장한 후 정서장애가 생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원숭이들은 원숭이 사회에 결코 적응하지 못했고, 다른 원숭이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높은 수준의 불안과 공격성에 시달렸다. 결론은 뚜렸했다. 원숭이는 물질적 필요를 넘어서는 심리적 필요와 욕구를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고, 만일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매우 큰 고통을 받는다. 할로는 새끼 원숭이들이 젖도 안 주는 천 엄마의 품에서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한 것은 이들이 젖만이 아니라 감정적인 유대도 찾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후 몇십년 동안 수없이 많은 후속연구가 이루어져, 이 결론은 원숭이뿐 아니라 여타 포유류와 조류까지 적용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오늘 날 수백만 마리의 가축이 할로의 원숭이와 동일한 환경에 처해 있다. 농부들은 일상적으로 송아지를 비롯해 온갖 새끼들을 어미에게서 떼어내 고립 상태에서 사육한다.8
오늘날 농장에서 기계화된 조립 라인의 일부로 키워지는 가축의 숫자는 모두 수십억 마리에 이르며, 해마다 이 중 약 50억 마리가 도축된다. 이 같은 산업적 사육방법은 농업 생산량과 인류의 식재료 양을 급증시켰다. 기계화된 농작물 재배법과 산업적 가축사육법은 현대의 사회경제 질서의 기반이다. 농업이 산업화되기 전에 들판과 농장에서 생산된 식량의 대부분은 농부와 가축을 먹이느라 '낭비'되었고, 생산량 중 아주 낮은 비율만이 장인과 교사, 사제와 관료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사회에서 농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90퍼센트를 넘었다. 농업이 산업화되자, 적은 수의 농부로도 많은 사무원과 공장 노동자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하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농업으로 먹고사는 인구는 2퍼센트에 불과하다.9 하지만 이 2퍼센트가 미국 인구 전체를 먹이고 남은 것은 수출할 만큼 생산하고 있다. 농업의 산업화가 없었더라면 도시의 산업혁명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장과 사무실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과 사무실은 농업에서 풀려난 수십억 명의 손과 두뇌를 흡수해서 전대미문의 생산물을 봇물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의 철강과 의류를 만들고 구조물을 세운다. 더불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무수한 제품을 만들어낸다. 전구, 휴대전화,카메라,식기세척기,.....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으 문제가 생겼다. 누가 이 모든 물건을 구매할 것인가?
첫댓글 무심코 먹는 우유도 많은 시련이 깃들어서 좀 그렇긴 합니다...
공급이 수요를 넘는 세상... 그 풍요 속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