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병 孝道
숙천 강 동 구
우리나라 군대의 사병계급은 이등병 일등병 상등병 병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가 카투사(KATUSA) 요원으로 군 복무를 한 곳은 미 8군 사령부 장교식당에서 헤드 카운트(Hendcount) 직책을 맡고 있었다. 식당을 이용하는 군인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서명을 받은 후 출입을 허락하는 막중한(?) 직책이다.
미군들은 대부분 규정을 잘 준수하지만,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때로는 이용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이 올 때가 있다. 그런 경우 상황에 따라서 재량으로 출입을 허락할 수, 있어 전우들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군인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내 계급은 일등병이다. 군에 입대한 지 10개월 정도 되었다. 말로만 듣던 미국인들의 명절 중 하나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맞이하는 날이다. 내가 근무하는 장교식당은 며칠 전부터 추수감사절 준비로 분주하였다. 통닭보다 서너 배는 더 큰 칠면조를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미국인들의 추수감사절은 우리의 추석 명절과 다를 바 없다. 다름이 있다면 우리는 한 해 동안 농사를 잘 지어 감사하다는 표시를 조상님께 하지만 미국인들은 하나님께 한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하늘이 모든 농사를 좌. 우 한다고 믿고 있지만, 농사가 잘되면 조상님의 은덕이라고 말한다.
한가지 또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송편을 빚어 먹지만 미국인들은 칠면조를 오븐에 구어 놓고 가족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하나님께 감사하고 추수감사절을 함께 즐긴다.
이날은 명절이기에 공휴일이다. 미군 부대는 공휴일과 휴일에는 식당을 온종일 운영한다. 아침 6시에서 저녁 6시까지 언제라도 원하는 시간에 식사를 할수 있다. 미군 부대의 모든 법과 제도는 사람 위주 군인 위주다. 휴일은 말 그대로 쉬는 날이기에 늦잠을 자고 편히 쉬다가 먹고 싶을 때 먹으라는 배려다. 우리의 관습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부터 오 십여 년 미국인들의 의식은 이처럼 합리적이고 현실적이었다.
미군 부대에 배속되어 날마다 생전에 구경도 못 해본 진귀한 음식이며 열대과일과 우유 쥬스 등을 매일 먹으면서 부모님과 형제들의 생각에 목이 멜 때도 있다. 이 맛있는 양식을 부모님과 형제들과 함께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양식을 맛있게 드시는 부모님을 상상해 보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밑져야 본전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심정으로 아놀드 토인비 교수의 “도전과 반응”이라는 말도 생각나 식당 책임자에게 엉터리 영어로 부모님과 형제들을 장교식당에 초대하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나이가 지긋한 미군 책임자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떠올리는지(?) 잠시 먼 산을 바라보는 듯 아무 말이 없다가 오케이, 하고 한마디로 허락해 주었다. 즉시 집에 연락을, 하여 부모님과 형제들을 부대로 초대하여 평생 잊을 수 없는 만찬을 즐기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잊을 만, 하면 그때 일을 떠올리시며 평생에 처음 잡수어 보신 양식 맛을 잊지 못하신다. 먹으면 또 가져오고 먹으면 또 가져오고 이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 하신다. 그때 그 미군 책임자는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은인이다.
작은아들 군에 보내놓고 어머니 걱정은 6· 25· 동란에 태어나 젖배를 곯아서 배고픔을 못 참는 작은아들이 오매불망 걱정이었으나 미군 부대에서 매일 양식을 배불리 먹고 부모 형제까지 초대하여 만찬까지 베풀었으니 일등병이 이런 효도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지금은 외국 담배가 수입 자유화가 되어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때는 양담배를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어쩌다 양담배를 구해다 드리면 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효도가 무엇인가?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도 효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도우신다. 부모는 자식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반포지효(反哺之孝)란 말이 있다. 이 말을 아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까마귀가 자라서 늙은 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성 지극한 새를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까마귀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군대 생활하는 일등병도 간절한 소원을 품으니 효도할 길이 열린다. 물론 미군 부대란 특수한 상황이, 주어졌기에 가능했지만, 마음이 없으면 어떤 상황 에서도 효도를 할 수 없다.
어느 날 내가 근무하는 식당을 수리하게 되어 당분간 다른 공간에서, 식당을 운영하였다. 공사장에 가보니 약간씩 구부러진 품질 좋은 미제 못이 바닥에 즐비하게 버려져 있어 곧게 펴서 철모에 주워 담아보니 한 가득이 되었다. 아버지는 서울 근교에서 양돈업을 하시면서 녹슨 못을 망치로 펴서 돼지우리를 고치시는 것을 보아왔기에 보잘것없는 못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외출하면서 집에 가져가 아버지를 드렸더니 엄청 대견해 하시면서 흡족해하시는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여섯이나 있어도 공부 많이 한 자식 출세한 자식보다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를 도와 함께 일해온 나를 가장 예뻐하시는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끝)
첫댓글 감동입니다. 가슴 항아리에 넣어두었던 부모님에 대한 추억을 꺼내봅니다. 예전에는 왜 그리도 가난했는지.
저는 아버지께서는 생선 대가리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자식들에게 삼많은 몸통 먹이려는 생각에 대가리만 드신 이유를 스므살이 넘어 알았으니 불효자지요..이제는 하늘에 별빛이 되신 부모님 에대한 그리움에 잠시 생각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동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어릴적 유치원에 다닐 때였지요. 유치원 아이들중 누구나 생일이되면 그 집에서 떡을 해왔고 전 유치원생에게 떡을 놔눠 주었습니다. 저는 그 떡을 먹지않고 옷자락에 달려있던 손수건에 꼭꼭 쌋지요. 엄마에게 갔다 드릴려고요. 어릴 땐 효녀라는 칭찬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여자는 시집가면 시집식구 챙기느라 친정어머닌 뒷전이 되더군요.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실 어머니께 효도하지 못한게 한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