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국시집 여자’를 인터넷으로 봤다. 혼자 볼 영화다. 야한 장면은 전혀 없지만 위선을 드러내 보여준다. 아직도 나는 남녀 관계가 어떤 것이 위선이고 무엇이 정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다. 남녀는 한계가 없지만 결혼에는 한계가 있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애인이 죽어서 혼자 된 여자를 결혼한 남자가 좋아한다. 솔직해야 불행하게 되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을 따라 결혼한 남자라는 사실을 슬쩍 말한다. 그때 여자의 태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영화 중간, 주인공은 그 여자가 자기 친구와 애정을 나누는 것으로 오해한다. 거기서 분개한 주인공은 자기 아내를 그녀가 일하는 식당으로 데려가서 애정을 과시한다. 그녀에게 상처를 받고 아내를 이용해서 복수한 것. 부인은 그것을 눈치 채고 비겁한 주인공과 이혼한다. 그 후 친구와 친구 애인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 자신의 생각이 오해였던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다시 국시집 여자를 만나 사과한다. 각각의 삶을 살다가 1년 뒤 우연하게 서울 한복판에서 마주친다. 그러나 둘은 의식하면서 스쳐간다. 그가 안동에 가서 국시집 여자를 만나 사귀게 된 것은 소설가 지망생인 선배가 죽었는데 그 유고를 정리해달라는 유족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갔던 것이 발단이다. 주인공은 주말마다 안동에 가 일하면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와 함께 돌아다니며 밥 먹고 술 마시고 구경한다. 술에 취했을 때는 흑심을 품는다. 그러나 선배 유고를 얘기할 때는 진지해진다. 주인공이 소설 얘기를 해주면 그녀는 일반적 시각으로 평하지 않고 개별적 입장으로 대답한다. 그것이 처음에 이상했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선배는 그녀의 얘기를 소설로 썼던 것. 또한 주인공도 오래전 작가를 포기했는데 그녀를 사귀면서 다시 소설을 쓰겠다는 의욕을 갖게 된다. 선배나 주인공이나 모두 그녀 때문에 소설을 쓰게 된 것. 영화의 마지막 기분은 어땠을까? 위선이 비참하지 않았다. 영화는 그런 인간을 감싸줬다. 2017년 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