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학당, 상동병원을 설립하고 상동교회, 아현교회, 동대문교회 등 감리교회의 뿌리가 되는 교회를 개척하며 민초를 섬겼던 윌리엄 스크랜턴목사의 한국선교사를 반추하는 유의미한 작업이 진행돼 화제다. 내년 한국선교 130주년을 앞두고, 이덕주교수(감신대)를 주필로 발간한 <스크랜턴-어머니와 아들의 조선선교 이야기>는 미국에서의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이 땅에 들어와 의료, 교육, 선교 등으로 섬긴 스크랜턴 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흔히 한국감리교회의 뿌리를 아펜젤러선교사의 사역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펜젤러선교사는 부활절 무렵 입국했다가 가족문제로 일본에 간 뒤 그 해 여름에서야 한국에 들어와 본격적인 선교를 시작했다. 5월에 입국해 바로 현장에 뛰어든 스크랜턴선교사보다 오히려 몇 달이 늦다.
누가 먼저 선교를 시작했느냐, 어디 교회가 최초의 교회냐, 혹 누가 한국인 최초의 안수자이냐 등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런 연고나 기약 없이 이 땅에 들어와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의 피땀어린 헌신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정신을 실천으로 담아내는 온고지신의 자세에 있다 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날 여기저기서 그 족적을 찾아볼 수 있는 스크랜턴 모자의 사역은 감리교회를 넘어 한국교회가 깊이 돌아봐야 할 발자취라 할 만하다.
“집회에 스크랜턴 후손 찾아 모실 것”
공옥출판사(대표=백석기장로)가 주최하고 스크랜턴기념사업회(이사장=안희선목사), 상동교회(담임=서 철목사)가 후원한 <스크랜턴-어머니와 아들의 조선선교 이야기> 출판기념회가 지난 5일 창립 126주년을 맞은 서울 남대문 소재 상동교회에서 있었다. 이번 출판은 이덕주교수(감신대)가 10여년동안 미국, 일본 등을 현장답사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3여년의 집필을 거쳐 완성한 역작이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출판기념회는 1부 감사예배와 2부 출판기념회의 순서로 진행됐다. 감사예배는 서 철목사(상동교회)의 사회로 유영설목사(여주중앙교회)의 기도, 임광진장로(상동교회)의 성경봉독, 전용재감독회장의 설교, 강환호 전 감독(충청연회)의 축도 등의 순서로 드렸다. 이어 출판기념회는 안희선목사(수원종로교회)의 사회로 백석기원로장로(상동교회·공옥출판사 대표)의 인사말, 이경숙명예교수(이화여대)의 서평, 김영헌감독(서울연회), 강순자교장(이화여고), 이동학원로목사(상동교회), 조경열목사(아현교회)의 축사, 이덕주교수(감신대)의 저자인사, 임덕순장로(상동교회)의 광고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상동교회 전덕기목사 등을 키워낸 스크랜턴선교사의 지난 사역을 돌아보는 책이 출판돼 이목을 끌고 있다.
(사진은 기념행사 장면)
이번 출판에 가장 큰 공을 들여 헌신한 공옥출판사 대표 백석기원로장로는 “스크랜턴선교사의 사역이 다소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그가 보여준 헌신과 실천은 지금의 한국 감리교회를 있게 한 가장 중요한 뿌리였다”면서, “그는 숱한 견제와 고난 속에서도 ‘선교’란 미명 아래 헌신한 그리스도인이다. 이번 출판이 감리교회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초대 선교사들의 헌신정신, 그리고 이에 근거한 신앙활동을 이어나가는 데에 훌륭한 단초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전했다.
전용재감독회장은 「빚진 자」란 제하의 설교를 통해 “기독교인은 결코 자신만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빚진 자들이다. 스크랜턴은 ‘빚진 자’의 마음으로 부유한 삶을 뒤로하고 복음의 씨앗을 들고 험난한 이 땅에 왔다. 연고가 있는 것도, 이해관계도 아니고,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빚진 자라’란 말씀을 묵상하고 온 것이다”면서, “스크랜턴이 뿌린 씨앗이 지금의 한국감리교회를 있게 했다. 이제는 한국감리교회가 그 빚을 갚을 때다. 하나님께로 진 빚과 선교사들로부터 진 빚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출판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스크랜턴의 헌신어린 사역을 돌아보며 우리들이 나가야 할 방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깊이 묵상할 때다”고 전했다.
또한 전감독회장은 “내년 감리교회 선교 130주년을 기념해 대형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집회에는 아펜젤러선교사의 후손들을 초청할 계획이었는데, 스크랜턴선교사의 후손도 함께 모시려고 한다”면서, “그들이 ‘빚진 자’로 이 땅에 와 사랑으로 헌신한 것 같이, 앞으로 우리들이 ‘빚진 자’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깊이 숙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세계 감리교회의 지도자들을 초청해 한국감리교회가 세계적인 복음의 현장이 될 수 있었던 데에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웨슬리회심주간을 제정했듯, 초대 한국교회에서 헌신한 이들을 기억하는 ‘선교사기념주간’도 제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스크랜턴 모자의 사역 읽기 쉽게 엮어
◇윌리엄 스크랜턴 ◇메리 스크랜턴
<스크랜턴-어머니와 아들의 조선선교 이야기> 책의 서평을 전한 이경숙교수(이화여대)는 “책이 900페이지에 달해 참 무겁다. 그러나 그 두께가 무색하리만치 쉽게 읽힌다. 기독교학과에 재직하며 윌리엄 스크랜턴의 어머니인 메리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도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니 어머니와 아들의 사역 모두가 한 포인트로 엮여 잘 정리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구사료로서의 가치는 구지 말할 필요 없으며,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부담 없는 대중적인 책이다”고 평가했다.
스크랜턴 모자는 미국 최고의 엘리트 가문으로, 충분히 상위층의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선교’의 사명으로 이 땅에 발을 디뎠다. 이후 정확한 판단력을 발휘해 선교업무를 이끌어간 스크랜턴 모자지만 때때로 주변 선교사들의 견제를 받아 이를 소화해야만 하는 고독과 악화일로에 있었다. 게다가 친일파 감독인 해리스와의 갈등으로 선교사직을 사임하는 사태까지 거치며 많은 시련과 함께 회의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고난의 상황을 맞은 스크랜턴 모자의 깊은 내면적 갈등과 그럼에도 선교에 매진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소상히 서술하고 있다. 이경숙교수는 “이 책은 스크랜턴 모자의 헌신적인 선교정신을 상기시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나아가 현재 침체 상태에 빠져있는 감리교 성직자와 신도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교수는 스크랜턴 모자의 교육사역을 특히 높이 평가했다. 이교수는 “스크랜턴은 단순히 의료시설을 짓고 단편적 선교에 그치지 않고, 교육에 힘쓰며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상동교회 전덕기목사다”면서, “당대 최고의 설교가인 전덕기목사가 탄생하기까지 스크랜턴 모자와의 깊은 사귐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치하했다.
또한 “스크랜턴 모자는 민족운동의 선구자이자 한국근현대 평등사상의 아버지로 여성을 비롯해 장애인, 노숙인, 외국인, 천민 등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알렸다”면서, “아브라함이 아무런 연고 없이 하나님께서 지시한 대로 떠났듯, 스크랜턴 모자의 선교는 하나님에 이끌려 행한 ‘위대한 추향’이었다. 그의 정신은 우리가 되짚어야 할 자산이다”라고 말했다.
빈민에 초점 맞춘 선교이념 실천
윌리엄 스크랜턴은 미국 코네티컷 주 뉴하벤 출생으로 예일대학과 뉴욕 의과대학을 거친 엘리트다. 오하이오에서 2년동안 병원을 경영하다가 한국 의료선교사로 피임, 1885년 어머니를 포함한 일가족과 함께 인천에 입국했다. 그러나 당시의 조선 정국이 불안하여 일본으로 물러가 수신사 박영효에게서 한국말을 공부하고, 5월 마침내 서울에 들어와 다음 해 6월 비로소 병원 건물을 완성했다. 고종은 이를 시병원이라 이름을 지어주고 왕립 양호원처럼 인정했다. 그 뒤 감리교 선교부의 간부로 성서 한역 통일회 회장이 되어 성서 번역에 힘쓰고, 1907년 6월 선교부에서 나와 독자적인 의료 사업에 종사하다가 일본에 건너가 1922년 코베에서 생을 마감했다.
스크랜턴은 선교 초기에 안전한 정동을 포기하고 위험한 애오개, 상동, 동대문을 선교지로 선택했고, 토착교회 지도자 양성에도 주력했다. 당대 사회를 이끌었던 전덕기목사를 비롯해 김 구, 이승만, 이준 등을 키워냈다.
세계 선교사에서 모자가 같이 한 지역에서 선교를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스크랜턴은 ‘사마리아인, 치유, 구원, 사랑, 중립, 순회, 에큐메니칼, 토착’이란 선교이념을 가지고 그에 헌신한 실천가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인 이덕주교수(감신대)는 “스크랜턴의 사역은 빈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더럽고 고통 받는 자리에 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진정한 의미의 실천가였다”면서, “그의 발언이나 족적을 보면 그가 왜 섬김의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당시 조선의 전통을 이해하려 애쓰고, 여러 가지 정황을 깊이 살피며 다양한 일들을 직접 실천했다. 그의 사역은 교회론의 본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자료제공 기독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