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87
트럼프의 귀환과 정보의 왜곡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제47대 미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필자는 선거 전인 지난 칼럼에서 트럼프의 귀환을 기정사실로 하여 반성할 줄 모르는 한국 언론이라고 썼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간의 선거에서 우리 언론의 편파성과 왜곡 보도를 예로 들었다. 그때도 국내 언론들이 하나 같이 힐러리의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당시 교수들의 식사 자리에서 트럼프의 당선이 더 유력하다고 말했다가 TV도 보지 않느냐는 핀잔에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에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비호감이 두드러진다. 많은 사람이 트럼프를 매우 비이성적이며 막말이나 일삼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트럼프와 골프를 치거나 밥을 같이 먹었다는 사람은 없다. 그와 진솔한 대화를 나눠봤다는 사람도 없다. 단지 국내 언론을 통해 얻은 정보에 의해 트럼프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필자 또한 트럼프의 귀환이 달갑지만은 않다. 이유는 하나다. 그가 지구본 위에 올려놓을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지능을 지수로 표현할 때, 일반적으로 85에서 115 사이를 평균 범위로 간주한다. 대부분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세계인의 평균 IQ도 100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IQ 테스트의 표준화 과정에서 전 세계적인 평균값으로 조정된 지수다. 미국인의 평균 IQ는 100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 평균과 같다. 물론 인간의 인지력은 IQ로 특정되지 않는다. 사회구성원으로 생각하는 갈대가 되려면 지능만으로는 부족하다.
요즘 주목받는 지능은 감성지능(EQ, Emotional Quotient)이다. 공동체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관리하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사리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 또한 중요하다. 정보의 정확성을 검토하고, 논리적으로 결론을 도출하려면 편견 없이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도덕성과 윤리성을 기반으로 타인의 동기를 이해하고, 집단 내에서 바르게 행동하는 능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선택했다. 트럼프가 망나니 춤이나 추는 사람이라면 미국인들은 대체로 비이성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지력이 세계 평균 이하라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어쩌면 세계 최고의 지성이 결집 된 나라가 미국일 것이다.
미국은 인종 용해로다. 세계 모든 문화가 뒤섞이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다.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곳이고 현대 문명을 주도하는 과학기술의 메카이며 자유와 창의의 강이 범람하여 문제가 되는 나라다. 손에 꼽는 대학들이 즐비하고 부자들의 자선이 어느 나라보다 충만한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의 집단 지성이 수준 이하이며 비이성적이라는 논리는 성립이 어렵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백인 노동자들과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합리성을 추구하는 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했고 그들의 신 앞에 겸손하며 타자에 대한 배려가 천국 문 열쇠로 아는 사람들이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주머니가 두둑해졌느냐고 물었다. 빌 클린턴이 1992년 대선에서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고 했던 말을 되치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재임 동안 미국 소비자물가는 약 20%나 뛰어올랐다. 저울추는 이미 트럼프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은 대통령 당락의 열쇠를 쥔 곳들이다. 강철, 자동차, 석유화학 산업의 중심지였으나,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다. 디트로이트시의 경우, 한때 180만 명에 이르던 인구가 63만 명으로 줄었다. 중국에 대해 6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에게 인색할 수 없는 산업환경이다.
트럼프의 PC(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선전포고는 보수층 유권자들에게 청량음료다. 메시지는 단순 명료했고 화법은 체증이 내려가도록 시원했다. 보통의 정치인이라면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들도 트럼프의 입에서는 거침이 없었다.
해리스는 태생부터 불리했다. 그녀는 급조된 항공모함에 낡은 엔진을 돌려야 하는 함장이었고 전투경험이 없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부통령으로서 독립적인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할 수 없는 그에게 미국이란 거함을 이끌만한 리더십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선거기간 내내 지도자의 자질에 대한 의문부호만 회색 재킷에 그려 넣었다. 해리스는 애당초 시민의 주머니를 채워 줄 밑천이 없었다. 필자가 선거 전에 무슨 배짱으로 트럼프의 승리를 확정하였느냐의 답은 이것 말고도 많다.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당시 프랑스의 유력지였던 《모니퇴르(Moniteur)》는 언론 타락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유배되었다가 탈출하여 파리에 돌아오는 과정에 보인 모니퇴르 신문 기사가 개그 수준이다.
「3월 9일: 식인귀가 소굴에서 탈출. 3월 10일: 코르시카(나폴레옹 출생지)의 괴물 쥬앙 만(灣)에 상륙. 3월 18일: 약탈자 수도 100km 지점에 출현. 3월 19일: 나폴레옹 북으로 진격 중! 파리 입성은 절대 불가. 3월 21일: 나폴레옹 황제 퐁텐블로 궁에 도착하시다. 3월 22일: 어제 황제 폐하께옵서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대동하시고 튀일리궁전에 납시었다.」 식인 마귀, 괴물, 약탈자가 열흘 남짓에 황제 폐하로 등극한다.
언론의 으뜸가는 기능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언론사들이 보도 내용을 두고 다툼이 생길 때마다 내세우는 것도 시민의 알 권리 충족이다. 문제는 정보의 첫째 조건이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복이 두려운 모니퇴르의 아부가 애처로울 지경이지만 냉정히 보면 사실을 왜곡하진 않았다.
트럼프는 괴물이고 약탈자이며 막말 제조기다. 이것이 우리 인식이다. 하지만 그와 직접 접해본 인사들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트럼프는 매우 이성적이며 정제된 언어를 구사한다는 증언이 많다. 그가 2017년 11월 우리나라 국회를 방문했을 때 쓴 연설문은 한 점 흠잡을 데 없는 명문이었다. 상대를 제대로 알아야 옳은 대응을 할 수 있다. 멀쩡한 동맹국의 대통령을 악마화해서 국익에 도움 될 일은 없다. 왜 한국에서 유독 트럼프에 대한 편견과 언론의 왜곡이 심한지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