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처럼 장담하고 맹세하는 순간이 곧 실패하기 쉬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장코뱅은 12 사도 중 나다나엘에게 간사함이 없는 것을 보고 호감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학자들이 나다나엘을 평가한 것을 보면 꼭 읽어 봅니다. 이 박스 글 아래에 장신대 조직신학 명예교수인 윤철호 박사님이 나다나엘을 주로 평가하고 부가적으로 베드로까지 언급한 부분을 읽고 공감하는 부분(『영생의 복음』)이 있어서 포스팅합니다. (윤박사님 소개는 댓글로 달음)
구원받은 성도일지라도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입니다. “우리 안에는 언제나 순전한 마음과 간사한 마음이 함께 있다. 우리는 어느 정도는 순전하고 어느 정도는 계산적이다”는 윤박사님의 표현은 저의 무릎을 철썩 치게 만듭니다. 이 글을 읽고 공감하시면 “베드로처럼 장담하고 맹세하는 순간이 곧 실패하기 쉬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는 것을 배우고 깨달으며 겸손한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제자 중 바돌로매와 동일인물일 것으로 추측된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자기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빌립은 여러 말 않고 "와 보라."고 강권했다. 나다나엘은 빌립을 따라 예수님께 나아왔고, 그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 : 47)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속사람을 꿰뚫어 보시고, 그가 마음에 간사한 것이 없으며 순전한 것을 아셨다.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실 때, 간사함 없는 순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으신다. 간사한 마음이란 계산적인 마음이다. 간사한 사람은 이해득실을 따지고,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손해라고 판단되면 뒤로 물러난다. 이미 약속한 것이라도 손해가 되면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어 버린다. 그러니 예수님에게 걸었던 자신의 기대가 어긋났을 때 언제든지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날 사람인 것이다.
간사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다가 결국 배반한 제자가 가룟 유다이다. 유다는 예수님으로부터 회계의 직무를 부여받았다. 이 직무는 예수님과 제자 공동체의 살림을 책임지는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유다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왕으로 즉위하시면 자기도 한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했다. 회계를 맡았으니, 지금의 기획재정부 장관 정도는 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월절을 맞아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던 무렵, 그는 그런 기대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살아남을 길이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팔아넘기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이 진행되던 시간에 그는 소리 없이 빠져나와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순전한 마음은 계산적이지 않은 마음이며, 이해와 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순전한 사람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든 손해가 되든 한 번 한 약속을 뒤집지 않고 한결같이 지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이 기대를 저버린다고 해서 배반하거나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서 순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 안에는 언제나 순전한 마음과 간사한 마음이 함께 있다. 우리는 어느 정도는 순전하고 어느 정도는 계산적이다.
예수님이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칭찬하신 나다나엘, 즉 바돌로매조차 예수님이 잡혀 재판 받고 십자가를 지실 때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 예수님을 배반해도 자신은 결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하던 베드로는 어떤가? 그 역시 결코 계산적인 마음으로 맹세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순전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진정 사랑했으며, 끝까지 예수님 곁을 지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 재판을 받으시는 현장 주위에서 동정을 살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조그만 계집종 앞에서 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부끄러운 실패자가 되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속 중심을 꿰뚫어 보신다. 우리는 주님 앞에 순전한 마음으로 나아와야 한다. 그러나 과연 누가 그렇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가? 앞서 말했듯 우리 안에는 언제나 순전한 마음과 간사한 마음이 함께 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고, 이득이 되는 길을 택한다. 내 속에도 이처럼 이기적으로 계산하는 마음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설혹 우리 안에 순전한 마음이 있다 해도, 우리의 연약함은 언제든 우리를 실패자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지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명심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베드로처럼 실패할 가능성을 가진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베드로처럼 장담하고 맹세하는 순간이 곧 실패하기 쉬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그러한 순간은 자신의 연약함을 망각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하나님께 나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한다.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경고하며, 또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 : 12)고 권면했다. 우리는 바울의 경고와 권면을 기억하고, 넘어질까 조심하며,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윤철호, 『영생의 복음』(한국장로교출판사, 2021년).
첫댓글 저자 : 윤철호
장로회신학대학교(Th.B., M.Div.)와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Th.M.), Northwestern University(Ph.D.)에서 공부했다. 또한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현대신학과 현대개혁신학』(2003), 『세계와의 관계성 안에 계신 하나님』(2006), 『삼위일체 하나님과 세계』(2011),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2013), 『설교의 영광 설교의 부끄러움』(2013), 『기독교 신학 개론』(2015), 『인간』(2017), 『한국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적 신학』(2019), 『영생의 복음: 한 조직신학자의 요한복음 공부』(2021) 등이 있다.
역서로 『현대 기독교 조직신학』(Peter C. Hodgson, Robert H. King 편, 1999), 『해석학과 인문사회과학』(Paul Ricoeur, John B. Thompson 편, 영역, 2003), 『다원성과 모호성』(David Tracy, 공역, 2007), 『현대 신학자들의 설교』(편역, 2011) 등이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경력 등이 훌륭하신 분 같습니다.
구구절절 공감이 되네요. 베드로 맹세의 연약함을 깨닫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호언장담했다가 실없는 사람 되어본 경험이 있다보니 본문내용 너무나 공감이 되네요. ^^; 순전한 마음에 도취되어 연약함을 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정직하고 솔직한 라벤더님의 댓글에 공감합니다. 현재 한국은 발음하기도 어려운 태풍 힌남노 로 고생을 조금 하고 있습니다.
저도 많이 공감합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호언장담했으나 인간의 연약함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손바닥 뒤집듯 하게 된다는 저자의 통찰력에 탄복합니다. 인간은 순전함과 간사함이 내재되어 있다는 표현도 너무 좋아요.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이네요. 좋은 글을 통해 통찰력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인 윤박사님 얼굴을 검색해서 보면 젊어 보이는데 명예교수이시더라고요.
한국인이 쓴 신앙서적이라서 이해가 잘 됩니다.
네. 그 표현은 신의 한 수, 아니, 하나님이 주신 지혜 한 수 같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이면 어느 정도 양심이 있을 거에요. 그러면서도 불신자 못지 않은 죄악된 모습이 또한 있지요.
국내 신학자로 잘 모르는 분이지만 합당한 말씀을 하셔서 제가 많이 배우고 깨닫습니다.
위에 소개 글을 조촐히 적어 놓았으니 잘 보시고요. 조직신학 학자이지만 성경에도 능통하신 것 같습니다.
방문 및 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가룟 유다 같은 사람입니다..
이전에도 그러했는데 지금이라고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 주님께 감사하며, 그분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일은 정말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내 마음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새벽에 귀한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제님의 고민은 자신을 성찰하고 회개하는 정상적인 크리스천의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비 피해 주의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