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 맛에 취하다 : 빙떡 / 이정자
은빛 억새들이 들녘의 주인인 양 머리를
풀어헤치고, 온몸으로 반기며 가을을 노래한다.
봉긋봉긋 솟아나 형제처럼 마주보는
오름들.
감성을 자극하는 풍광이 청명한 하늘빛에 반사되어 찬란한 은물결이다.
오름 둔덕 너머 흑룡이 꿈틀대는 밭이랑에, 사위어 가는 메밀이
주인을 기다리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
메밀은 생육기간이 짧고 추위에 잘
견딘다.
환경에 대한 적응성이 강하고 한대지방이나 높은 산지에서도 잘 자란다.
고려시대 몽고인들이 삼별초의 마지막 항전지인 탐라에 씨앗을 가져와
재배하기 시작했다.
몽고인들은 소화가 잘 안 되는 메밀로 탐라인을 골탕 먹이고, 타락시킬 계략이었다.
하지만 제주사람들은 메밀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지혜로운 삶을 살아오고 있지 않은가?
메밀의 찬 성분을 무의 따뜻한 기운이
감싸주기 때문에 메밀과 무는 찰떡궁합이다.
제주에서는 오래전부터 메밀로 만든 메밀빙떡, 메밀수제비, 꿩메밀국수 등에 무를 넣어 먹었다.
토속적인
향토음식 중, ‘빙떡’은 메밀가루 반죽을 엷게 타서 국자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빙철’에 지진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소를 넣어 빙빙 돌려
만든다는 뜻에서 나왔다는 말이 전해진다.
요즘은 빙떡을 어른들은 전기떡이라고 한다.
이웃이나 친족에게 경조사가 생겼을 때,
부조음식으로 빙떡을 대바구니에 가지런히 담아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옛날 서당에서, 장원급제를 하면 선비의 어머니는 정성들여 빙떡을
만들고 혼고령에 가득 담아
훈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달한다.
요즘말로 크게 한 턱을 단단히 쏘았다는 뜻이리라.
지금도 잔칫집 음식상에, 도톰한 빙떡이 있으면 음식을 잘 차렸다 하여 입맛을 다시며
먼저 손이 간다.
어렸을 적, 빙떡에 대한 추억들이 눈앞에
선연하다.
어머니는 외조부님 제사가 다가오면 부엌 마루에 멍석을 펼친다.
탈곡한 메밀을 꺼내어, 돌고레 손잡이를 맞잡아 돌리면서 옛날이야기를
풀어내면 신이 나셨다.
애환과 웃음을 함께 넣어 갈아 낸 가루로
반죽을 정성스럽게 하여,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무쇠 솥뚜껑을 뒤집고 달구어, 참기름 바르며 곱게 지져낸다.
채 썬 무를 살짝 데쳐내고, 실파와
깨소금 훌훌 치면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노르스름한 메밀전에 소를 넣고 양쪽을 살짝 누르면 도톰하여 먹음직하다.
곱게 만들어진 빙떡은 제물로
준비하고,
식구들이 먹을 빙떡은 참기름이 귀하여 돼지고기의 기름을 녹이고 바르며 지져내도 군침이 돈다.
빙떡을
대차롱에 수북이 담아, 외가로 갈 때는
종종걸음으로 마냥 즐겁다.
친정엄마는 딸들이 결혼하여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면, 메밀가루와 미역을 마련하여 첫 번째 만들어 주는
음식이 말랑말랑한 메밀수제비이다.
소고기 육수에 익반죽한 재료를 조금씩 뜯어 넣고,
미역을 넣으면 영양만점 보양식이다.
따뜻한 음식은 산모의 자궁에 남아있는
나쁜 피를 삭혀주어 혈액순환이 잘되게 하고,
원기가 빠르게 회복되어 모유가 잘 나오게 하며 임신 기간에 나타난 기미도 차츰차츰 없게 하는 효능이
있다.
며느리 출산일을 앞두고, 메밀가루 마련을 하고보니 지나간 일들이 그립다.
늦가을부터 겨울까지의 별미 음식은 단연
꿩메밀국수이리라.
들녘 길을 걷다보면 푸드덕 푸드덕 날아다니는 꿩들.
콩을 재배하고 거둬들인 그루 터에서, 혹은 산속의 열매들을 부지런히 쪼아
먹고 포동포동 살이 오른 꿩을
아버지는 사냥꾼에게 부탁한다.
꿩털이 날리고 날갯죽지를 메달아 놓으면,
식구들은 둘러앉아 제 몫 챙기기에 그릇 싸움을 했다.
살점은 뜯어 먹고, 육수를 내어 칼국수 만들면 담백하다.
맛있게 먹은 음식들이 잔병을
예방하는 보약이 되었을까, 형제들이 모두 건강한 체질이다.
메밀은 열량이 낮고 소화가 잘되어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루틴이라는 성분도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다이어트 식품으로 손꼽힌다.
메밀 껍질 또한 베개 속으로 이용하면,
어른들은 건망증이나 치매를 예방하며 건강이 좋아진다.
메밀 껍질로 만든 베개에 아기를 눕히면 뒤통수가 예쁘장하다.
근처 동사무소에서는 공터에
메밀을 재배하여, 출생신고 하면 유아용 베개를 선물한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어쩌면 출산율을 높이는 계기가
되리라.
메밀의 연한 잎사귀는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어도 맛있다.
어느 한 부분 버릴 것이 없는 황금작물이다.
성인병을 예방하며 피로회복과 다이어트에 좋은 따끈한 메밀차를 마신다.
메밀이
제주 조상들에게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보답하고 있는 듯하다.
선조들이 지혜롭게 살아온 음식문화를 보존하며 전승하고
싶다.
1) ᄒᆞᆫ고령: 대오리나 차풀의 줄기로
엮어서 작게 만든 그릇. 제주어.
2) 돌ᄀᆞ레: 돌로 만든 맷돌.
제주어.
3) 대차롱: 대나 싸리를 쪼개어
네모나게 엮어, 뚜껑이 있게 만듦. 음식 등을 넣는 그릇. 제주어.
첫댓글 요작이도 빙떡먹어나신디 또다시먹고싶수다 조상님들의 지혜가엽보염수다
나도..나도..ㅋㅋ
태흥장 마은팬이 맛조케 핸 포는디 이십디다 언제혼번 갑쭈마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