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있도다 애통하는 자여 / 마 5 : 1- 5
세상은 슬피 우는 사람을 복되다고 말하지 않고 불쌍하다고 하는데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실수하신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참된 복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들이 알고 추구하는 복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땅의 복으로 잘 먹고 잘 살고, 건강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진짜 복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있을 때 잠깐 필요한 것으로
없으면 좀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뿐이지 진짜 복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들이 내 영혼을 살리고 내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이 세상 복만 알고 이 후에 있는 천국의 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잠간 있다가 없어질 것,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더 누리려고 밤낮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자기를 학대하고,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 얻는 것도 아니고, 가졌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님에도
이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고 이곳저곳을 뛰어 다니면서 발버둥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며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2번째로 말하는 복을 받으려면 먼저 자기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그런데 죄를 가진 모든 인생들은 심령이 가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만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과 세속적 욕망과 탐욕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죄를 가진 인간들은 누구나 이런 것들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기 전에는 절대로 버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문제와 주변 환경을 통해서, 탄식하게 하십니다.
어떤 것도 의지 할 대상이 아님을 알게 하시고, 죽을 죄인임을 알게 하시며
높아진 마음을 낮추시고 세상 헛됨을 깨닫게 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합니다.
그래서 부자도, 가난한 자도, 배운 사람도, 배우지 못한 사람도, 귀한 자도 천한 자도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하셔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게 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입은 자가 거듭난 사람이요 성령님을 마음에 모신 성도입니다.
성령님이 마음속에 오심으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도 그 마음속에 계시심으로
심령 천국이 되었고 이 땅에 임한 하나님나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심령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처럼 가난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심령의 가난함을 위해서 늘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구걸하는 거지와 같이 영적으로 파탄자임을 늘 인식하는 것입니다.
거지는 가진 것이 전혀 없고 힘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를 전적으로 찾고 의지합니다.
이처럼 구원 받은 성도들도 구원자이시고 왕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늘 의지하면서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버리고 하늘의 것으로 채워지도록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되지 않고 진전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가슴을 치며 애통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며<펜도스> 울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애통을 살펴보겠습니다.
1,사랑하는 가족들이 죽었을 때 애통합니다.
창37:34절에 보면 야곱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애통하며 웁니다.
삼하12:16절에 보면 다윗이 밧세바에게서 난 아이가 죽게 되었을 때 금식하며 울었습니다.
삼하18:33절에 보면 다윗이 반역한 아들이 죽은 것을 알고 내 아들 압살롬아 하면서 웁니다
출12:30절에 보면 유월절 날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자 모든 가정에서 큰소리로 웁니다.
사38:14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들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
2,가족들 간에 문제로 인하여 애통합니다.
창27:34절에 보면 장자의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에서가 소리 내어 웁니다.
창45:2절에 보면 형제들을 시험하던 요셉이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웁니다.
삼상1:10절에 보면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을 합니다.
삼하15:30절에 보면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한 다윗이 울면서 맨발로 감람산을 올라갑니다.
3,소중한 재물을 잃어버렸을 때 애통합니다.
계18:9,11절에 보면 바벨론이 불타서 망하자 그들과 음행하던 왕들과 상인들이 울며 애통.
4,예수님의 애통입니다.
눅19:41절에 보면 예수님도 자기를 죽임으로 멸망할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울었습니다.
요1135절에 보면 나사로를 통해 인간을 지배하는 죄와 사망에 대해 분노하시고 우셨습니다.
히5:7절에 보면 예수님도 감람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5,교회 공동체와 성도들이 한 애통입니다.
*자신이 죄를 깨닫고 애통합니다.
시6:6절에 보면 다윗이 죄로 인하여 탄식하며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신다고 고백합니다.
눅7;38절에 보면 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와 울며 눈물로 발을 적시며 향유를 붓습니다.
눅18:13절에 보면 세리가 자기 가슴을 치며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책망을 듣고 애통합니다.
느8;8절에 보면 수문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슬퍼하며 웁니다
삿2:4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소리를 높여 웁니다.
눅22:62절에 보면 베드로가 닭소리를 듣고 3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함.
*예수님 때문에 애통합니다.<눅23:27>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때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9:15) 너희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기억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펜쎄오>하였습니다.
(막 16: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펜세오>울고 있는 중에 이일을 알리매”
*하나나라 공동체 때문에 애통합니다.
(겔 9: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고전 5:1-2)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음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 내지 아니하였느냐.
(눅 23:28)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그러면 우리는 어떤 일로 애통해야 합니까?
1,자기 죄로 인해 애통해야 합니다.
자기 죄로 인한 애통은 성령을 통하여 자기영혼의 바라볼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상태를 보여주시고, 죄를 책망하시고, 회개할 마음을 주시는데
우리는 육신의 소욕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편한대로 살려고 합니다.
우리가 처음 신앙생활 할 때는 죄에 민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우리의 신앙이 점점 자라게 되면 나의 상태를 알게 됩니다.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숨겨진 죄를 지적받으면 마음의 찔림을 받음으로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금식도 하고 애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영적 상태를 보아야 애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에도 신앙이 성장하지 못한 자기 모습을 보아야 애통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애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바르게 헌신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애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가 해야 할 일은 헌신하는 것인데
헌신을 하되 바르게 해야 하나님이 받으시고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헌신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지만 보답할 수는 있습니다.
그 보답은 이렇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외식행위, 종교행위가 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야 억지로 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과 기쁨을 가지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헌신은 사랑하는 마음이요, 감사하는 마음이요 자발적으로 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예배하는 것이며
기쁨으로 봉사를 하고 전도를 하고 선한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헌신하면서 아무것도 바라거나,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아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바른 헌신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모습으로 헌신하지 않았다면 애통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3, 교회를 위해서 애통해야 합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거룩하지만 교회마다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일 때문에 선지자들이, 사도들이, 교회의 일꾼들이 애통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그것을 안고 우는 것입니다.
4,가족과 친척과 이웃들의 구원을 위해 애통해야 합니다.
거듭난 성도는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권능을 힘입어 전도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니 울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우리의 눈물의 기도가 필요하고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애통하며 기도하면 성령님이 저들의 마음을 두두리고 믿는 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래서 나가서 전도하면 누군가가 기도한 영혼들을 만남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애통하는 자에게 어떤 복을 주십니까?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위로는 "곁에"라는 말과 "부른다"는 말이 결합되었기 때문에
위로는 곁으로 부른다, 하나님의 도움을 부른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애통하는 자를 곁으로 부르시고 도와 주셔서 위로해 주십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남으로 관계가 친밀해집니다.
*죄를 용서받음으로 마음이 평안합니다. 시51:17
*새 힘을 얻고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