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갖가지 범죄를 생각하면 흉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잔인하고 악랄 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흉악의 결박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악을 행할 수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하였기 때문이지요. 선악을 알 필요가 없는데 정욕의 욕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만 사탄의 거짓 미혹에 스스로 걸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 타락의 결과로 그 때로 부터 모든 사람은 선과 악을 골라서 행할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흉악의 결박에 자신을 묶어 두게 되었습니다. 그로말미암아 필요한 경우에 남에게 악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남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해롭게 합니다. 착취하기도 하고 속여 빼앗기도 합니다. 남의 행복을 파괴시키기도 합니다. 나아가 목숨을 잃게도 합니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삶의 터전을 파괴시키는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푸틴같이 그런 국제적인 죄악을 행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직접 살인을 하기도 하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죽게도 만듭니다. 그런 방식이 짐승 보다 더 잔혹하기도 합니다.
나의 흉악의 결박으로 남을 해롭게 하기도 하지만, 흉악의 결박에 매여서 그 결박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든지 스스로 자기 자신의 흉악의 결박에 묶여서 남에게 피해를 입힐 수가 있고, 아울러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들 자신의 흉악의 결박으로 인하여 범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흉악의 결박에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결박에 매이지 않을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 결박에 묶일 수 있는 사탄의 흉계와 계략을 알아차리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 권세는 바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권세로 마귀의 대적을 물리치고 더럽고 악한 귀신들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충만하신 능력으로 정욕과 욕심으로 부터 오는 죄악의 동기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선과 악의 끊임없는 싸움이지요. 선으로 악을 물리치기에 그래도 사람답게 행동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회에 범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응원하십니다.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12:21).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악을 악으로 되값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평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로마서12:17).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로마서12:18).
원수와 같은 상대에게도 악으로 그 원수를 갚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즉 성도는 그 신분에 걸맞게 생각과 행위가 거룩해야 합니다. 그 거룩함은 악을 멀리하는 것이지요. 원수 갚는 것도 결국 악을 행하는 것이므로 성도의 본분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악을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께서 그 우원수에 대하여 마땅한 징벌을 내리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로마서12:19).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이사야58:6). 내가 하나님께 금식한다고 하면서 정작 본인이 자신의 종업원을 부당하게 대우한다든지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든지 하면 그런 악을 행하면서 아무리 금식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금식을 인정하지도, 기뻐 받으시지도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내가 행하는 악을 그만 두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남을 편안하게 해주고 이롭게 해주는 선을 행하면서 하나님께 금식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금식하는 간구와 소원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이사야58:9).
그러므로 금식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우선 나에게 흉악의 결박이 없어야 합니다. 남에게 악을 행할만한 요소가 없어야 합니다. 성결의 능력, 즉 성령의 능력이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에 의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미움과 증오로 가득한 원수 갚으려는 생각 마저도 버려야 합니다. 미움과 증오는 흉악의 결박이기 때문입니다.
흉악의 결박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무방비 상태로 자신의 자아가 노출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흉악의 주인이 마귀이기 때문이지요. 마귀, 즉 사탄은 다른 말로 하면 악마입니다. 악의 주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벗어난 존재입니다. 그 말은 곧 마귀에게 종속되어 있는 마귀의 자식이자 종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흉악의 멍에를 지게되는 것이며 이 말은 곧 흉악의 결박에 매여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은 양심과 이성, 그리고 윤리와 도덕적인 양식에 의하여 악을 행하지 않으며 살려고 하지만 결정적인 동기가 주어지면 매여있던 흉악의 결박의 힘으로 말미암아 서슴치 않고 악랄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됩니다.
이사야58장 6절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흉악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대개의 영어 성경 번역본에서 '위키드네스'(wickedness)를 씁니다. 이 단어의 뜻은 '사악, 악의, 간악' 등이고, '부정, 짖궂음, 못된 짓'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즈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학폭', 즉 학교 폭력도 이 흉악의 범주에 드는 것입니다. 그 행위가 못된 짓이며 악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또래의 여성을 죽여서 그 시신을 훼손하여 유기한 여성 범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인하고 싶은 충동'에 의하여 그런 악랄한 범죄를 저짓렀다고 하니, 그 사악함이 곧 흉악의 결박인 것입니다. 그 결박을 자기 힘으로 풀지 못하여 결국 그렇게 끔찍한 짓을 한 것입니다. 마귀에 붙잡혀 있으므로 그 결박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흉악에 대하여 방어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흉악이 닥아올 때에 물리칠 수 있는 격퇴의 능력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흉악이라는 저주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저주의 원인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피흘려 죽게 하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죄값이 곧 저주인데 그 값을 지불해주심으로 저주가 떠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무 아래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저주의 상징이기도 한 나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저주가 청산된 것입니다. 죄와 전혀 상관이 없으시고, 그래서 죄가 전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 저주를 물리칠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저주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값을 대신 갚아주신 속죄의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저주는 곧 악이며 악은 곧 죄입니다. 예수님이 그 흘리신 피로 죄씻음 받게 하셨습니다. 구속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사도 바울조차 그가 성령의 사람, 즉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죄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흉악이라는 죄의 세력이 언제나 행사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그런 영적인 갈등, 즉 영적인 싸움에서 때로는 지친 그의 모습을 두고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그런 자신의 상태를 가리켜서 '사망의 몸'이라고도 표현 했습니다.(로마서7:24).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의 내면에 두 가지 법이 행사하고 있다고 했지요. 곧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로마서7:25).
사도 바울은 그런 치열한 내적인 영적 갈등 가운데서 해답을 찾아냈습니다. 자신의 내면에는 성령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능력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바울 자신을 지키고 계신다는 믿음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 영생케 하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정욕과 욕심으로 죄를 짓게 하려는 모든 죄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있는 힘을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유혹, 즉 흉악의 결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흉악의 세력을 언제나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방어하고 물리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정죄함으로 그리스도인을 넘어지게 하려고, 곧 흉악의 결박으로 묶으려고 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죄사함을 허락하셨으면 다시는 원죄에 묶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죄를 짓더라도 성령께서 회개케 하심으로 마귀의 정죄함에 포로가 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그 감격을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8:1,2).
사탄의 흉악의 결박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모든 교회가,. 모든 그리스인들이 합심하여 기도해야지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흉악한 범죄가 없어지게 해야 합니다. 법은 판결이 따릅니다. 사탄은 죄의 법으로 흉악을 행하도록 판결을 내립니다. 그리고 장차 영원한 형벌인 불못의 고통 가운데 떨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법은 해방과 자유의 판결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고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하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마음으로, 그리고 삶으로 말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5:22-24).
우리 사회에, 이 나라에 흉악한 일들이 줄어들고 사라지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 충만하여 기도해야지요. 그리고 가정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도록 성령의 열매 맺는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목표를 지향하며 금식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