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 : 蕭望 (無題六韻)
蕭 蕭 風 雨 夜 (소소풍우야) 비바람 쓸쓸하게 불어대는 밤
耿 耿 不 寐 時 (경경불매시) 생각은 가물가물 잠못드는 때
懷 痛 如 摧 膽 (회통여최담) 쓸개가 찢어지는 듯한 괴로움
傷 心 似 割 肌 (상심사할기) 살을 베이는 듯한 쓰라린 마음
山 河 猶 帶 慘 (산하유대참) 강과 산은 아직도 처참하기만
魚 鳥 亦 吟 悲 (어조역음비) 새와 물고기도 구슬피 운다네
國 有 蒼 黃 勢 (국유창황세) 나라 일 뒤죽박죽 위태로운데
人 無 任 轉 危 (인무임전위) 이를 바로잡을 사람이 없구나
恢 復 思 諸 葛 (회복사제갈) 제갈공명 그리며 나라 회복을
長 驅 慕 子 儀 (장구모자의) 곽자의처럼 적들 몰아 내려고
經 年 防 備 策 (경년방비책) 준비하여 막을 계책 세웠거늘
今 作 聖 君 欺 (금작성군기) 이제껏 임금님을 속인 꼴이네
<감 상>
이 시를 지은 분은 이순신(李舜臣, 1545 ~ 1598) 장군으로, 字는 여해 (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본관은 덕수(德水)이시다. 1545년 (仁宗 元年)에 서울에서
태어났고, 후에 충남 아산으로 이거한 뒤에 尙州 方氏와 혼인하여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그 후에 무술을 익혀서, 157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나라 지키는
무장(武將)의 길을 걸었다.
초임으로는 북방 함경도의 동구비보 권관을 시작으로, 훈련원의 봉사(奉事)와
참군(參軍)을 지냈으며, 전라좌수영 산하의 발포만호, 함경도 북단의 조산보의
만호와 녹둔도 둔전관 등을 역임하고, 남과 북을 오가며 나라 지키는 일에 힘을
썼다. 후에 정읍현감으로 재임하던 중에, 마침내 정3품 전라좌수사로 발탁되어
조선의 바다를 지켜내는 첫 걸음을 걷게 되었다.
이듬 해인 1592년(임진년) 4월 15일에, 일본이 15만 대군을 거느리고 부산포에
상륙하여 이 땅에서 참혹하고도 끔찍한 7년 대란이 발발하였다. 이 일에 제대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조정과 각 지방은, 왜적들에게 짓밟히며 엄청난 국난으로
비화되었다. 그러나, 公만은 적의 침략을 내다보고 이를 철저히 준비하여 바다의
적들을 차례로 무찌르기 시작하였다.
1차로 옥포해전, 2차로 사천해전, 3차로 한산도 해전을 거쳐, 1592년 9월에 적의
수군 본거지인 부산을 공략하여 부산포 해전을 치루었다. 공이 이끈 조선 수군은
해전 때마다 승승장구하여 바다를 굳건하게 수호하였고, 공의 품계도 가선대부를
거쳐 자헌대부, 정헌대부에 이르렀고, 조선의 수군을 총괄하는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되어 나라의 위급을 구하고 전란을 승리로 이끄는데 심혈을 기울여 나갔다.
그러나 전란 속에서도 당쟁을 일삼던 조정에서는, 공에게 이런 저런 죄목을 더해
통제사에서 해임하고 한성 의금부에서 공을 문초하며 국문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언제나 당당하고 충성으로 일관했던 공은, 겨우 감옥에서 방면되어서 백의종군을
하기에 이르렀다. 후임 통제사 원균이 지휘하던 우리 수군은, 1597년 7월 거제도
칠천량 해전에서 왜 수군에 의해 궤멸되는 참변을 겪었다. 이러한 처참한 결과로
인해 바다의 수호마저 기약할 수 없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으나, 다시 통제사로
부임한 公의 지휘 하에, 조금씩 수군을 재건하면서 우리 조선 수군은 다시 제해권
(制海權)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전황이 소강상태로 일진일퇴 하던 중에 적들의 철군로를 차단하며 퇴각
하는 적들을 맞아, 노량해전에서 분전하다가 적의 유탄에 맞으면서, 公은 마침내
순국하였다. 이후로, 이순신 이름 석자는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 역사에 찬란한 그
이름을 남기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한민족(韓民族)이라 한다면
公의 이름과 그 빛나는 발자취에 고개 숙여 추모하지 않는 이가 있겠는가.
위에 5언 배율 형식으로 소개된 공의 한시는, 전란을 겪으며 느끼는 공의 심사가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하실 말씀도 많고, 가슴저미는 아픔도
많았기에 한 구절 한 구절이 탄식과 함께 결연한 각오가 묻어나는 시이다.
뛰어난 명장이면서도 시에도 일가견이 있던 장군의 한시 작품들은 이밖에도 여러
편이 전해 온다. 장군의 한시 작품들마다 장군의 시심(詩心)을 잘 드러내며,
공의 충심(忠心)과 성심(誠心)을 함께 엿볼 수 있도록 하는 주옥같은 작품들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