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은
공자에서 부터 시작하지만, 주자학은 맹자의 사상부터 시작된다.
정이학은 정이가 만든 학문이고 정주학은 주돈이가 만든 학문이다.
정이학, 정주학은 노자의 도교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학문이다.
주자학은 주희(주자)가 만든 학문이다.
주자학은 맹자의 사상부터 시작된다.
맹자의 심성론에서 천성설로 이어지며 성선설을 기반으로 시작되는 학문이다.
주자학은 맹자의 천성설과 성선설 안에 있는 인격완성을 위해서 이성을 어떻게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또 정립된 그 이성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학문이다.
주자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회)이성철학과 종교 이성철학이다.
훈고학, 주자학, 양명학, 고증학으로 이어지는 성리학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성철학을 확립시킨 학문이 주자학에서 나왔다.
고대에는 이성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맹자는 "심(마음)"이라고 하였고,
"천성"이라고도 하였으며 심[마음]은 육신이 태어날 때 같이 태어난다고 하였다.
이고(李翺774~836)는 최초로 인간의 이성을 찾아낸 사람이다.
주돈이는 최초로 그 이성풀이에 대해 도학에 치우쳐서 인간의 이성을
무극론과 음양오행론(정이학), 태극론(정주학/주돈이)으로 설명하였고 이성의 형성과정을
도교적인 철학방식으로 풀어내려 하였다.
주돈이는 주역적이고 역술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태극론으로 설명하다 보니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해석에 치우쳐서 그 뜻이 너무 어렵고 난해하게 설명해 놓았다.
엄연히 성리학에서 노장철학은 인정되지 않았으나 주리학파는 정이학, 정주학을 포함시키려 하였다.
정이학(무극론/음양오행론), 정주학(태극론)은 도교적인 철학으로 무극론, 음양오행론, 태극론을 이용하여
이성을 해석하려 하였다.
주기학파 서경덕이 최초로 주자의 주리론을 뒤집어버리고 주기설을 주창하게 되고,
이일로 정치적 보복을 피하기 위해 개성에서 후학들만을 가르치게 된다.
기대승은 주기론을 바탕으로 주정설로 이론을 체계화시킨다.
이황과의 사단칠정 논쟁을 벌일 때 칠정을 하나의 정(情)으로 정립하면서 이성의 상호 통제론을 확립시킨다.
상호통제론이 나오면서 사회 이성철학이 완성된다.
이이는 기대승의 상호 통제론을 바탕으로 이기 이원론적 일원론을 내놓으며 종교 이성철학을 완성시킨다.
그 어려웠던 도학적인 설명을 모두 걷어내고, 근대 이성철학적으로 아주 쉽게 풀어내 버린 것이다.
기대승은 사회 이성철학적으로 이황과 사단칠정 논쟁으로 이성의 통제방식을 확립시켰고,
이이는 종교 이성철학적으로 이황과 이기논쟁을 벌여 이성의 역활을 정립시켰다.
이성을 사용할 때 리(사단/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종교))쪽에 치우치지 않고,
기(칠정/정신, 넋, 혼백, 에테르, 영혼)쪽에 약간더 치우쳐서 사고하는 체계를 갖춰
상호 통제해야 한다는 이론적 확립을 통해 널리 국민들에게 가르치려 하였던 것이
기대승, 이이의 주기 성리학이었다.
주기학파의 이성철학 확립으로 이성주의, 경험주의, 현실주의, 합리주의가 완성되었다.
주기철학은 근대 이성철학으로 이어진다.
루소가 성선설을 기반으로 근대 이성철학의 효시를 이루었듯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주기학파가 이성철학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더군다나 주기학파는 이성을 정확히 어떻게 움직이고 사용해야 하는지까지 학문적으로 확립시켜 놓았다.
성리학은
첫째 우주삼라만상의 이치를 깨우치는 일.
둘째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를 깨우치는 일.
셋째 인격완성을 위해 인간의 뇌속의 이성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깨우치고,
또 그 이성을 어떻게 움직이고 사용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일 이 세가지로 요약된다.
인간의 이성을 상호 통제하면서 주기론 쪽에 약간더 치우쳐 사고하면서 그 이성을 제대로 움직이고
사용하면 확고한 이성이 정립된다.
이성적인 판단과 합리주의적인 사고체계가 갖춰지는 것이다.
확고한 이성을 가진 자는 그 이성 안의 이성을 또다시 들여다 볼 수가 있다.
이는 냉철한 이성을 확립한 자들만이 느끼는 이성적 사고체계이다.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배워 성리학 안에 넣은 최악의 학문이 "예학"이다.
예학은 성리학 틀안에 들어와서는 안되는 학문이었다.
지나친"예"는 독이다.
주자학안에 도교적인 정이학, 정주학이 남으면서 주기학파와 주리학파가 끊임없이 대립하였다.
주기학파는 주자학 안에 있는 정이학, 정주학, 예학 등이 지나치게 도교적인 철학이 많아서
끊임없이 주자학 밖으로 파내서 없애려고 하였고, 주리학파는 포함시켜야 한다며 맞서 싸워왔다.
도교적인 색채가 너무 강한 정이학, 정주학, 예학 등 도학을 파내려는 주기학파와
포함시키려는 주리학파 간에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며 탄생한 것이 이성의 상호 통제론과
이기 이원론적 일원론이었다.
주기학파가 정국 주도권을 쥐고 갔을 경우
예학이 혁신적으로 개혁되어 허례허식이 타파되고 간소화되며 근대기로 바로 접어들고도 남았다.
도교적인 색체가 사라지면서 정이학, 정주학이 주자학 안에서 타파되고,
조선인들이 점, 굿, 무당 푸닥거리, 바람신, 구름신, 비신, 바다신, 정한수 띄워놓고 소원빌기 등의 샤머니즘과
곰, 호랑이 숭배사상의 토테미즘, 역술/주역, 풍수지리, 주술, 사술[사주,관상], 예언, 예언서,
토정비결, 저주, 저주의식 등의 도교적인 풍습이 사라지고 탑돌이, 돌탑쌓고 기도하기, 방생 등의
기복불교 신앙 등이 사라져
"인간이 신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의 주권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이성적이고 경험적이며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고체계가 확립되었을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개화되어 근대화를 이룰 수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풍신수길이 앞세운
고니시의 침공으로 무너진 것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결과는 국민들이 당한 피해도 피해이지만,
학문적으로 고대학문인 노자의 도교, 장자, 제자백가 철학 시대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광해군 때 집권한 대북정권은 노장철학, 제자백가 철학 신봉자들이었다.
성리학의 이단파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도학을 정치에 사용하여 피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이는 서인의 인조반정으로 성리학 정권을 되찾아온 것이었다.
남인 이괄의 난으로 정묘, 병자호란을 맞이하였고 이는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말았다.
주자학 원리주의 학파인 서인의 노론정권[송익필(정주학 신봉학파)을 시조로 하는 학파/ 정철,
윤두수, 김장생, 윤근수, 윤선거, 김집, 김류(인조반정 주도),이서, 신경진, 옥천의 송시열로 이어짐]은
남인 윤휴학파 허목 등에게 정권을 내주면서, 허목은 북벌을 현실화하려 하였던 효종을 독살시키며
유직 등이 주기설을 맹공격하여 주기철학 학문을 완전 몰락시키면서 더욱 폐쇠된 조선으로 이끌고 갔다.
도학에 물든 성리학의 이단파들이 정권을 잡은 결과였던 것이다.
다시 주자학 원리주의 학파인 노론의 세도정치를 거치며 조선은 일제 식민지배 치하로 들어가게 된다.
주리학파의 사상은 이상주의, 신비주의, 초현실주의, 서원주의, 인간성 회복주의,
도덕 원리주의 철학으로 큰 오점을 남긴 학문이었다.
노자의 도교철학, 장자철학, 제자백가(백이숙제)철학은 사이비 철학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노장철학, 제자백가 철학에 빠져 살아왔다.
언어의 유희가 심하고 궤변을 늘어놓는 말로 현혹되기 쉽다.
이성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 사고체계를 가진 자들이 질문을 하면 도교적인 형이상학적인 문제로 접근하여,
정이학의 무극론, 음양 오행론, 정주학의 태극론을 들이대며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대신한다.
공자의 예학은 노자로 부터 배운 학문이며 예학이 성리학의 틀 안에 들어오게 되면서
고난의 역사가 시작된다.
예학에 제자백가 철학이 융합하면 정말 대책없는 학문으로 치닫고 만다.
3년상이 아니라 10년상을 치뤄도 부족하다고 할 정도로 상고대 시대로 돌아가 버리게 된다.
제사상을 차리다가 3대가 몰락하기 쉽상이 된다.
결코 주자학과 노자의 도교가 융합해서는 안되는 학문이었다.
현대인으로서 이제는
신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이 이성의 주권을 가지고 이성주의, 경험주의, 현실주의, 합리주의적인 사고체계를
확립함으로써 건전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냉철한 이성과 확고한 이성은 삶을 늘려가는데 필수 요소이다.
확고한 이성의 정립 없이는 한치 앞도 발전하지 못한다.
이미 444~5여 년 전 주기학파는 사회 이성철학과 종교 이성철학을 학문적으로 간단하게 규명하여
현대 이성철학을 완성시켜 놓았다.
어렵게 설명하는 것은 도학에 빠져있기 때문에 어려운 설명을 하는 것이다.
정작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 속뜻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경덕, 기대승, 이이, 이항, 성혼, 박순(영의정), 김인후 등 40여 명의 주기학파와
충남 논산 노성의 윤증으로 이어지는 양명학파는 시대를 앞서 간 선각자들이었고,
이미 근대 이성철학을 깨우친 성리학자들이었다.
서인지역 정읍 현감을 지내면서 주기학파 이항의 영향을 받은 후 고사리, 만포, 해남,
여수 통제영에 근무하면서 남서인화 되었던 이순신이 승전만을 거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주기철학의 영향이었다.
선조들은 이 간단한 이성철학의 확립을 위해 그 오랜 세월동안 끊임없이 도전하고
학문적으로 규명해오면서 현재까지 쉬지않고 달려왔던 것이다.
주기학파의 철학은 루소의 근대 이성철학과 그 학맥을 같이 하고 현대 이성철학으로 이어진다.
주기철학은 철학은 물론 형이하학(과학,공학)적이고 기하학(수학)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주기학파를 비판하는 자들은 현대 이성철학을 부정하는 거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