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수 장현의 노래를 듣노라면, 인생을 다 내려놓은 듯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의 절제된 창법과 특유의 다 내려놓은 듯한 중저음의 중후한 음색은 예술藝術의 경지다.
모든 앙금이 가라앉은 뒤 정한수를 길어 올리 듯, 체념한 듯 담아내는 정답고 편안한 그의 음색은 세월 저편에 두고 온 아련한 기억들을 회자하는 독특한 매력과 힘을 갖고 있다.
197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던 그의 노래 <미련>이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있다.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갈 수 없는 먼 곳이기에 그리움만 더하는 사람/ 코스모스 길을 따라서 끝이 없이 생각할 때에/ 보고 싶어 가고 싶어서 슬퍼지는 내 마음이여/ 미련 없이 잊으려 해도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가을 하늘 드높은 곳에 내 사연을 전해 볼까나. < 작사.곡 신중현. 노래 장현>
가사 중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첫 소절이 가사 전체를 함축하고 있다. 비워야 할 것들 비워내려 하지만 비워내지 못하는 그리움. 그것이 ‘미련’이다. 이 가사를 보면 “지극히 사랑했던 이”와의 이별 후, 내면의 상처 받은 슬픈 감정들을 완연히 삭힌 뒤, 그리움의 감정을 마알갛게 승화시킨 작품이다.
한세상 살아오면서 미련없이 길을 걸어 온 자 어디 있으랴만, 우리 삶을 회자하면 회오와 후회다. 그 뒤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쉬움과 함께 미련이 남는다. 이것이 이 땅에 온 자들의 필연이요, 숙명일 터. 이런 측면에서 본 노래는 더욱더 대중의 가슴 깊이 젖어들며 그 빛을 발한다.
그의 히트곡으론 ‘마른 잎’ ‘나는 너를’ ‘석양’ 등이 공전의 히트를 거듭하였으며, 모두 한국 록 음악의 전설 신중현의 손끝에서 탄생되었다. 한국 중저음 음색 최고의 가수 중 한 사람으로 1970년대 격변의 한 시대를 풍미한 그는 우리 가요계의 별이었다.
그러던 그는 1976 한 때 가수의 길을 접고 사업의 길을 걸었다. 직원만 300여명을 거느린 규모의 연간 1,500만불 매출을 달성하여 대통령 표창까지 받으며 사업에도 특출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부인은 경기여고를 거쳐 프랑스 유학을 한 인텔리 계층이었다. 장현의 노래를 좋아하던 그녀는 장현이 노래하는 카페에서 처음 만나게 되어 결국 결혼했다, 전한다.
본명 장준기(張俊起). 1945.4월 경북 울진 출생. 하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63세의 아까운 나이에 폐렴으로 이 세상과 영원한 이별의 길을 떠났다.
가을의 길목에서 인생을 회자하며 만나고 싶은 가요요. 그런 사람 중의 한 분이다. 하얀 치마를 두르고 먼 길을 떠나는 보헤미안의 정서가 깊게 느껴지는 그의 노래가 이리도 빨리 끝난 건 아무래도 미련未練이 남는다.
영상 촬영- 12월 산수유 & 마가목. 석등._
가요 단상 4, 장현
대중가수 장현의 노래를 듣노라면, 인생을 다 내려놓은 듯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의 절제된 창법과 특유의 다 내려놓은 듯한 중저음의 중후한 음색은 예술藝術의 경지다. 모든 앙금이 가라앉은 후 정한수를 길어 올리 듯, 체념하듯 담아내는 정답고 편안한 그의 음색은 세월 저편에 두고 온 아련한 기억들을 회자하는 독특한 매력과 힘을 갖고 있다.
197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던 그의 노래 <미련>이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있다.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갈 수 없는 먼 곳이기에 그리움만 더하는 사람/ 코스모스 길을 따라서 끝이 없이 생각할 때에/ 보고 싶어 가고 싶어서 슬퍼지는 내 마음이여/ 미련 없이 잊으려 해도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가을 하늘 드높은 곳에 내 사연을 전해 볼까나. <작사.곡 신중현. 노래 장현>
가사 중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첫 소절이 가사 전체를 함축하고 있다. 비워야 할 것들 비워내려 하지만 비워내지 못하는 그리움. 그것이 ‘미련’이다. 이 가사를 보면 “지극히 사랑했던 이”와의 통속적 이별 후, 내면의 상처 받은 슬픈 감정들을 완연히 삭힌 뒤, 그리움의 감정을 마알갛게 승화시킨 작품이다.
한세상 살아오면서 미련없이 길을 걸어 온 자 어디 있으랴만, 우리 삶을 회자하면 회오와 후회다. 그 뒤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쉬움과 함께 미련이 남는다. 이것이 이 땅에 온 자들의 필연이요, 숙명일 터. 이런 측면에서 본 노래는 더욱더 대중의 가슴 깊이 젖어들며 그 빛을 발한다.
그의 히트곡으론 ‘마른 잎’ ‘나는 너를’ ‘석양’ 등이 공전의 히트를 거듭하였으며, 모두 한국 록 음악의 전설 신중현의 손끝에서 탄생되었다. 한국 중저음 음색 최고의 가수 중 한 사람으로 1970년대 격변의 한 시대를 풍미한 그는 우리 가요계의 별이었다.
그런던 그는 1976 한 때 가수의 길을 접고 사업의 길을 걸었다. 직원만 300여명을 거느린 규모의 연간1,500만불 매출을 달성하여 대통령 표창까지 받으며 사업에도 특출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부인은 경기여고를 거쳐 프랑스 유학을 한 인텔리 계층이었다. 장현의 노래를 좋아하던 그녀는 장현이 노래하는 카페에서 처음 만나게 되어 결국 결혼했다, 전한다.
본명 장준기(張俊起). 1945.4월 경북 울진 출생. 하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63세의 아까운 나이에 폐렴으로 이 세상과 영원한 이별의 길을 떠났다.
가을의 길목에서 인생을 회자하며 만나고 싶은 가요요. 그런 사람 중의 한 분이다. 하얀 치마를 두르고 먼 길을 떠나는 보헤미안의 정서가 깊게 느껴지는 그의 노래가 이리도 빨리 끝난 건 아무래도 미련未練이 남는다.
글쓴이 석등 정용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