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제목 : 기도하는 집
성경 본문 : 요한복음 2장 13절-22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4년 5월 22일 수요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날마다 평안. 평안… 날마다 축복. 축복…
날마다 형통. 형통… 그러면 사람이 게을러지고 교만해져서
결국은 하나님 앞에 범죄를 하고 말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때로는 정신이 바짝 나도록 채찍이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으로 채찍을 맞기도 하고 실제로 생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도 하는데. 그것을 달게 받는 사람에게는
약이 될 것이고요. 그것을 저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저주가 되고 말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어버리셨고요.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시기를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마가복음> 11장 17절 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마가복음>의 기록이나 <요한복음>의
기록들을 보면 서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유월절>을 맞이하신 기록이 세 번 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 기간을 3년으로 보는 겁니다.
본문의 기록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중
첫 번째 <유월절>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이런 일을 하신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과 같은
다른 <공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얼마 전에 하신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사건을 제 1차 성전 청결 사건이라고 말하고요,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사건을 제 2차 성전 청결 사건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예수님의 성전 청결 기사는 당시로서나 오늘날 우리들에게나
대단한 충격을 주는 말씀인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성전 뜰에서 소나 양의
울음소리를 쉽게 들을 수가 있었다고 그럽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차피 일 년에 세 번씩은 누구든지 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야 했거든요.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그런데 제사를 드리려면 제물이 필요한데 전국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이 소나 양을 <예루살렘>까지 어떻게 끌고 오겠어요?
심지어는 근동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까지
다 몰려오는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다 소나 양을 끌고 오겠어요?
그 중에는 소나 양을 제물로 끌고 오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제사장들이 제물을 받지를 않는 겁니다.
원래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이라는 것은 흠이 없고 깨끗해야 하는 것인데.
제사장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서 끌고 온 제물은 불합격 판정을 내려서
돌려보내고 굳이 성전 뜰에서 파는 제물을 가져 오라고 하는 겁니다.
장사꾼들과 제사장들과 다 한 통속이었거든요.
성전에서 사용되는 돈도 따로 있어서 세상 돈. 그 당시에 <로마>에서는
<드라크마>라는 화폐가 유통이 되었었는데 성전에서 받는 성전 세는
<세겔>로만 받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쓰던 <드라크마>를 <세겔>로
바꿀 때에는 또 수수료를 챙깁니다.
이렇게 저렇게 성전 안에서의 제사와 관련된 부정은
날이 갈수록 심각한 수준에 까지 가게 된 겁니다.
<헤롯왕>은 <로마>나라에 아첨을 하고 거액의 돈을 가져다 바쳐서
왕위를 샀고요.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직분을 이용해서 장사를 해서
이익을 챙기고 말이죠. 심지어 제사장 직분을 팔고 사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어요?
성전은 주님의 몸인데 성전에 주님을 예배하는 모습은 안 보이고
온통 장사치들만 판을 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화가 나신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소와 양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뒤 엎어 버리신 겁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이 예수님 때에만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교회에 오셨다고 가정을 해 보시자고요.
누구 말마따나 한국 교회에는 예수님이 안 계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예수님께서 보시는
한국 교회도 대단한 정화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한국교회를 주름잡고 있는 대단한 물량주의는
한국 교회의 기적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큰 교회에서는 자기네 교인들의 숫자를 자랑하면서
우리 교회는 저 제주도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온다.
저 부산에서도 KTX(고속철도)를 타고 온다.
하면서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게 자랑거리인지 모르겠어요.
큰 교회에서 자기네 교회의 세를 불리는 동안
시골 교회들은 서서히 다 죽어가고 있는데.
그걸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으로 삼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 동네에도 강남에서 이사 온 사람이 있는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가워서 심방을 갔더니.
자기들은 저기 어디 다른 큰 교회에 나갈 거라는 거예요.
우리 교회에서 50미터 60미터밖에 안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데.
동네 교회를 놔두고 차를 타고서 다른 동네에 있는 교회를 나간다고
하기에 그럼 열심히 신앙생활 잘 하시라고 하고 그냥 왔습니다.
모르겠어요. 그쪽 교회에서는 자기네 교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탁월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찾아온다고 자랑을 할 거예요.
그러나 집 앞에 있는 교회를 놔두고서 그 멀리까지 교회를
나간다는 것은 그리 썩 좋은 신앙지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옛날에는 이단들이 많이 있어서 교인들을 빼앗아 갔는데. 요즘은
멀쩡한 교회들이 서로 교인들을 채가면서 서로 경쟁을 합니다.
이 교회. 알파해요? 이 교회 성경강좌 있어요?
처음에 그런 거 시작한 사람들은 그러라고 한 것은 아닐 텐데.
서서히 자기 세력들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게 서글퍼지더라는 말입니다.
그러는 판에 우리 교단에서 하고 있는 300만 성도 운동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싶더라고요.
시골 교회에서는 그저 죽지 않고 오래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300만 성도 운동에 동참하는 거 아니겠어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으로
자연적으로 성장도 하고 부흥도 하고 그러는 것이지. 무슨 운동을 하고
프로그램을 돌려서 성장하고 부흥하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한국교회를 병들게 했던 물량주의의 한 단면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일고 있는 기복신앙은 또 어때요?
마땅히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것을 빙자해서 뭔가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이만큼 헌금을 했으니까.
하나님 내게 이런. 이런 복을 주십시오!
내가 주일성수를 이렇게. 이렇게 하고. 철야 기도를 이렇게.
이렇게 하고 했으니. 하나님 내 사업이 대박을 맞게 해 주십시오!
기복신앙을 넘어서 거의 하나님을
협박하는 수준까지 도달해 있단 말입니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워야 할
우리들의 신앙이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판을 치게 되면 우리 주님께서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 해당 되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는 정말 성실하시고 교회를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시는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그리고 집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혹시 대다수의 이런 성실하신 분들에게
누를 끼치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말 우리들이 신앙의 표상으로
본받아야 할 분들이 교회마다 계십니다.
그런데 게 중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교회마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 임직에
얼마나 많은 경비가 드는지 모릅니다.
목사 안수 받는 것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물론 손님들도 치르고 이것저것 부대비용도 부담해야 되고.
그리고 안수 받는 참에 교회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해야 하니까
여러 가지로 돈이 많이 들겠죠.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입니다.
내가 이렇게 돈을 많이 들여서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집사. 권사가 되었는데...
그러면서 그 다음부터는 충성. 봉사가 아니라
‘행세’를 하려고 하는 거예요.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입니다.
평신도 때는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 했는지 몰라요.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정직하고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잘 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장로가 되고 나니까 이젠 사람이 달라지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드려야 할 십일조도 속여먹습니다.
목사님을 내쫓는 건 일등입니다.
2년 3년이 멀다하고 담임 목사님을 내쫓아버려요.
그리고 정치는 맨 앞자리에 나서려고 합니다.
<노회장> 한번 하고 나면 아래위로 보이는 게 없어요.
어디 장로뿐이겠습니까?
정치에는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원래 정치판은 다 그렇고 그런 거잖아요?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탕 속에 뒤범벅이 되어서
뒹구르는 곳이 그 곳인데. 굳이 거기에 끼어들려고 합니다.
물론 교회에서 행정이나 정치는 없어서는 안 되는 건데요.
그러나 정직한 사람이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 뜻대로 정치를 해야지
자기가 예수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면 그거 되겠어요?
여러분 혹시 교회 안에서
중직을 맡게 되면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남들이 안 알아 줘도 괜찮아요.
우리 주님이 알아주시면 그만이지.
꼭 누구 앞에서 행세를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노끈 채찍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엄청난 이윤이 발생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 이권이 개입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같은 적은 교회야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없지만
큰 교회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목사님 그 사업 제가 하겠습니다.
돈 안 받고 그냥 자원해서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십시오!
그러나 이문 챙기고 이윤 따져서 교회를 상대로
장사하려거든 과감하게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혹 자원해서 자비량으로 주의 일을 감당했거든
쥐도 새도 모르게 슬쩍 빠지세요.
그거 해 놓고 큰 소리치고 교회에서
실세 노릇하려거든 아예 그만두세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그리고 우리 주님께 마음에 상처가 되고
부담만 드리게 됩니다.
시대에 따라서 필요한 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성경과 찬송을 새로 바꾼 것도 보나마나 기독교
출판 업계에 엄청난 이권이 개입되어 있을 겁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셨던 그 당시 상황과
오늘날의 상황을 한번 가만히 비교해 보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예수님은
종교개혁의 원조이셨던 거예요.
꼭 기억하세요!
우리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를 좋아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에게 어떤 복이 있습니까?
<마태복음>5장 8절 말씀에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순수하고 깨끗하지 않으면
성전에서 내쫓으시는 거예요.
더러운 돈은 쏟아 버리십니다.
탐욕의 상은 엎어 버리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가만히 두고만 보고 계시지 않으세요.
예수님께는 성전을 사랑하시는 열심히 불타오르고 있으시거든요.
<시편> 69편 9절 말씀에
9절.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켰다는
<다윗>의 싯귀(詩句)가
예수님을 두고 한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마음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의 몸 된 주의 성전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계십니까?
주의 전을 위하는 열성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열성과 열심과 사모함 때문에
결국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는 고난을 겪으셔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69편 9절 말씀에
9절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이 말씀은 결국 정의로움과 열성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는 말씀이거든요.
가만 보면 이런 일은 우리에게도 있는 것 같아요.
주님의 교회를 사랑해서 몸 바쳐서 헌신하고 충성을 하면
우리의 심령은 복을 받아 평안을 누기기도 합니다마는
꼭 그런 열심을 훼방하고 핍박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잘 하는 사람을 격려하고 칭찬하기 보다는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아요.
심지어는 깎아 내리고 흠집을 내고. 결국에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사람들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하려면 이런 것쯤은 각오를 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12절 말씀에
10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절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런 기상천외한 행동을 하시니까
<유대인>들이 깜작 놀라서 예수님께 여쭙는 겁니다.
“당신이 누구시기에 이런 일을 행하시는 거요?
당신이 이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라는 표적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 하더니만
(참고 성경 <고린도 전서> 1장 22절) 영락없이 <유대인>들이 하는 말이.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니 우리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시오!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요.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치고
표적 보고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거든요.
<벧세다> 들녘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았잖아요?
그러면 뭐해요?
그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그 표적을 보고서도
믿는 사람이 없었다니까요.
그저 식사 한 끼 얻어먹은 것 밖에는 없는 거예요.
표적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기적이 일어나면 믿겠노라고 말을 하면서도 막상 기적이 일어나도
안 믿을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그런 걸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러시잖아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내가 너희에게 그 어떤 표적을 보여주어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는 사실을 너희는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보여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는 거죠.(참고 성경 <마태복음>12장 39절)
<요나>가 삼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나온 것처럼
나도 십자가에서 죽어서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도 어려워서 <유대인>들이 못 알아들었습니다.
‘이 성전(헤롯 성전)은 46년 동안 지은 건물인데
어떻게 사흘 만에 다시 짓겠느냐?’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몸을 말씀하신 거잖아요?
예수님의 몸이 바로 성전이잖아요?(믿습니까?)
성전 되신 예수님의 몸을 너희가 죽이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겠다는 말씀인데.
이들은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겁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또 성경을
믿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전 되신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의 몸 되신 성전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보존하실 것을 맹세하십니까?
행복한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여기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주시고 믿음으로 의의
길을 걸어가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도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몸도 깨끗이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집으로 우리 몸을
잘 보존하고 가꾸어가야 합니다.
날마다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온갖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자들로
가득 차게 해서는 됩니다.
돈과 권력이 판을 치는 교회는
예수님의 노끈 채찍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내 아버지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주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거룩한 집입니다.
우리 교회를 사랑하고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 앞에 드리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네 번째 <유월절>에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거룩한 교회로
주님 앞에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