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02. 01
"대학은 뭐하러 가? 어차피 야구로 밥 먹고 살 건데. "
그래, 목표는 프로야구 선수다. 대학에 가 봐야 더 배울 것도 없다. 지금 오라는 프로팀도 있다. 그렇다면 선택은 하나다. 프로에 가는 거다. 거기서 승부를 거는 거다.
열 중 아홉의 고교야구 유망주들이 이런 생각으로 프로에 진출한다. 지난해 고교야구 톱 클래스 김명제.서동환(이상 두산), 이왕기.조정훈(이상 롯데), 박병호.정의윤(이상 LG), 최정(SK)…. 2005년 고졸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에 지명된 50명 가운데 44명이 프로와 계약했다. 나머지 6명 가운데 5명은 유급생이고, 딱 한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삼성에 2차 지명 6순위로 지명받은 부산고 박성호다. 그는 프로 유니폼 대신 고려대 진학을 택했다.
고교야구 대어들의 프로 직행은 유행이 아니라 대세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그런 선수들에게 '고졸신인'이란 딱지가 붙었다. 그만큼 적었다. 한데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신인이 더 적다. 앞서 말한 대로 '어차피 야구할 건데, 하루라도 빨리'가 가장 큰 이유다.
이 대세는 바람직한가. 한 시즌에 44명의 신인선수가 성공하는 프로야구는 없다. 잘해야 10명 안팎이다. 좌절을 맛본 나머지 선수들의 장래는 짧은 순간에 퇴색해 버린다. 운명이 결정되는 기간이 너무 짧고, 빠르다. 프로는 모든 유망주에게 '다음 기회'를 주고 잘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프로는 정글이고 새 얼굴은 매년 등장한다.
열여덟, 열아홉의 나이는 인생에서 실패를 맛보기에 너무 어리다. 또 어린 나이의 성공은 자기관리에 엄격하지 못해 롱런하지 못할 빈틈을 만든다. 반면 대학(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은 자신을 한 계단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시간과 기회다.
우완투수 손승락. 그는 4년 전 대구고 졸업을 앞두고 2차 지명 3순위로 현대의 지명을 받았다. 그때 그는 대학을 택했다. 영남대에서 그는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그는 3억5000만원의 계약금을 받았고 올해부터 프로에서 뛴다. 돈도 돈이지만 4년 전 그리 눈에 띄지 않던 선수가 이제는 신인왕 후보 1순위다. 옳은 선택이었다.
모두 대학을 거쳐야 옳다는 말은 아니다. 준비가 됐다면 프로도 옳다. 44대1이란 일방적인 추세가 옳지 않다는 거다. 미국 얘기지만 일찌감치 아마추어에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없었던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과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도 대학을 3년 다닌 뒤 프로에 진출했다. 왜 그랬을까.
시간은 분명 인간을 '성숙'시킨다. 마흔까지 야구하는 요즘 추세에 10대 후반~20대 초반의 4년 투자는 낭비가 아니다. 분명한 소신을 갖고 진지하게 보낸다면 대학에서 야구도 발전시키고 인생의 시야도 넓힐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떤가. "어차피 야구만 쭉 할 건데, 대학은 왜 안 가나?"
이태일 /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