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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미세 먼지가 희미하게 창밖으로 보이지만
날씨가 참 좋다.
희뿌연 하늘과 푸른 하늘의 경계.
그 어디 쯤에 좋은 소식 하나 물고 올 봄의 전령사가
슬쩍 찾아 올 듯 하다.
지난 밤에 덮고 잔 이부자리를 빨래통에 넣고
대충 방 정리를 한 후 바깥으로 채비를 한다.
작은 베낭에 물과 두유 한팩, 그리고 약간의 간식꺼리와 함께.
집을 나온 후 약 7~8분 거리에 있는 경사형 엘리베이트를 타고
천마산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갈 곳은 이미 정했다.
천마산 숲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아미동 비석마을과 감천 문화마을을
돌아 보기로 했다.
집을 나오면 걸어서 가장 가기에 좋고 발걸음도 편한 몇 곳 중의 하나다.
구덕산 편백 산림욕장과 흰여울 문화마을과 함께.
경사형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라간 후
조금만 걸으면 영화 '국제시장'의 마지막 장면을 형상화 한 조형물이 나온다.
북한에서 한국전쟁 때 피란을 온 주인공인 파독 광부와 그의 아내 파독 간호사가
남부민동 산비탈 마을에서 다정하게 손을 포개고 앉아 평화롭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 장면.
내가 오랫동안 바래 왔던 풍경.
그러나 이루지 못하고 있는 모습.
그래서 더욱 부럽게 다가 오는 노부부의 삶이다.
둘 다 머리와 눈썹에 흰서리가 하얗게 내려 앉았고
이마뿐 아니라 온 얼굴에 주름이 한 가득 이지만
서로의 손을 포개 얹고 앉은 모습은 세상의 온갖 풍파를 다 겪고 난 후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비록 젊음이란 봄은다시 찾아 오지 않겠지만
자연의 봄은 어김없이 그들을 다시 찾아 올 것이다.
그 곳에서 조금만 더 걸어 가면 비석 마을이 보이고
구름이 쉬어 가는 전망대가 나온다.
심술퉁이와 장난꾸러기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도께비 자매들이 길손을 맞아 준다.
그리고 비석마을과 바로 이웃해 있는 감천 문화마을.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제 새로운 카페나 가게가 더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대신 벽그림은 군데 군데 생기고 있다.
그 중 묘한 벽그림 하나.
꽃일까
사람일까.
꽃의 형상을 한 사람일까
사람의 형상을 한 꽃일까.
문득 한강의 작품을 떠오르게 한다.
'채식주의자' 혹은 '내 여자의 열매'
문화마을을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곳곳에 봄이
깊이 들어 와 앉아 있다.
천천히 두 마을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다 보니
어느새 때가 훌쩍 지나 가고 허기가 슬슬 밀려 온다.
그러나 허기와 달리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 온 재첩국 집.
오랜만에 재첩 비빔밥을 주문 했다.
허름한 외관에 비해 맛은 무척 좋다.
이런 때는 기분도 좋고 왠지 조그만 횡재를 한 느낌도 드는
그런 날이다.
산책 후
집에 와서 바라 다 보이는 작은 방 창밖 풍경.
살짝 붉은 빛을 띄며 익어 가는 저녁 시간이 보기 좋다.
영도대교를 품에 안은 고향 섬이 성큼 내 가슴으로 파고 든다.
여인의 품속처럼 따뜻하고 아늑한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