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세우고 지키며 기다리면서
Text Jd 1,20-25
(20)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24)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 배드민턴 경기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의 이야기가 뉴스의 초점이 되어 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해도 먹히지 않았지만 금메달리스트가 되니까 그녀의 이야기에 세상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거꾸로 얘기하면 안세영 선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올림픽 금메달이 필요했고 금메달을 획득하기 위해 그간의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뎌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메달리스트가 되기 위해 그녀가 그동안 겪은 고초들은 한둘이 아녔지만, 마침내 그녀는 해냈고 배드민턴 협회의 여러 부조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모았다는 보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훗날 하나님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될 사람입니다.(24절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그것은 운동선수가 온갖 힘든 훈련을 견디어 내고 마침내 메달리스트가 되어 시상대에 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선수는 메달리스트가 되기 위해 훈련의 시간을 견디어 냈지만, 성도는 올림픽 시상대에 서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영광,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입성식에 서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 영광의 자리에 흠 없는 모습으로 서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를 오늘 성경 본문은 가르쳐줍니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이 그 영광의 자리에 흠 없는 모습으로 서는 성도가 되는 은혜가 임하길 기대하면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2. 먼저, 20절을 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입니다. 거룩한 믿음 위헤 자신을 세우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라는 것은 이미 기초가 놓여진 건축물의 구조를 완성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이것을 영적인 것에 적용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식과 삶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결국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세우라는 말씀은 성도의 신앙 성장은 참된 믿음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믿음은 무엇입니까? 참된 믿음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참된 믿음은 열매가 있는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은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믿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은 인격이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격의 변화는 곧 삶의 변화로 이어지게 되어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열매가 있는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이 두려워 떨며 거짓된 가르침 앞에서 굴복하여서 방탕한 삶을 청산하지 못한다면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끄집어낸 나무토막같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혀 땔감이 되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하셨습니다.(마7,16-20 “(16)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또한 눅317에서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건전한 믿음 위에 신앙의 기초를 닦아 그 위에 세우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거룩한 믿음 위에 서서 나아가는 것에 대하여 바울 사도께서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을 짓는 것과 나무나 풀 또는 짚으로 집을 짓으로 비교하여 말하셨습니다.(고전3,12-15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바른 믿음의 원칙을 지키는 행실은 맹렬한 시련 중에도 순도 100%의 시금석과 같게 되지만, 만일 저질의 금속과 같은 불신앙적인 행실이 섞인다면, 아무런 공로도 인정받지 못하여 구원을 받되 부끄러움 가득한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초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시시때때로 선을 행하고 기적을 행한다 할지라도 올바른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러한 행위들은 끝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믿는 거룩한 믿음을 기초로 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유일하고 완전한 구주로 믿는 굳건한 믿음 위에 신앙의 모든 행위들을 세운다면 거짓 선지자의 어떤 달콤한 유혹과 핍박도 굳건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순수하고도 정결한 믿음 위에 그 모든 것이 세워지고 있습니까?
거룩한 믿음 위에 신앙을 세워 세상을 분별하고 이기는 성도가 되라는 권면이 사도 유다께서 본문을 통하여 성도에게 하는 권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굳건히 세워진 성도들이 되시길 기도합시다.
3. 다음, 20b-21절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며 (21)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1절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는 것과 영생의 날이 도래할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령으로 기도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요15,9에서 말씀하신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더 이상 포도나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는 것 같이 반드시 그리스도에게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은 가지가 나무의 진액을 공급받아야 하듯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양식을 얻는 일에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도께서는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틀림없이 그리스도도 믿는 자 안에 거하리니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자들 사이의 관계는 결코 파손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엡1,4에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근원이라고 하였고 엡4,15에서는 믿음으로 사는 참된 생활의 범위 또한 오직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 하였으며, 엡4,16에서는 주님의 교회(제도적 교회가 아닌 영적 교회)도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 거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이라 강조합니다. 기도는 믿음의 젖줄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에 우리의 믿음은 가장 큰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의 기도라 함은 성령님의 인도와 지도 아래 그의 말씀을 따라 믿음과 열심과 계속적인 인내로 간청함을 뜻합니다다. 이러한 기도가 성령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고 있는 성도는 믿음의 집이 다 세워질 때까지 끊임없이 기도를 계속하여야 하는 것입니다.(롬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또한 성도가 도래할 영생의 날까지 믿음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근거도 오직 주님의 긍휼이 있기 때문이며 긍휼이란 말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믿음의 기초도 하나님의 사랑이고 믿음 생활이 가능한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니 언제나 하나님께서 인생을 불쌍하게 여기시는 그 마음은 성도에게 성도로서의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하는 원천적 근거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당신 안에 생기가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원하거든 계속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유지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 당신과 당신이 즐기며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 몰두하지 않도록 주의하셔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훼방받지 않게 해야 합니다. 혹 환난이나 위험이나 칼이라 하더라도, 혹 하늘의 천사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어떤 때,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사랑의 울타리 안에 거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어 있음을 신뢰하셔야 합니다.(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한 목자가 있었습니다. 이 목자는 100마리의 양을 기르고 있었고 그 양들을 매일 정성껏 돌보았는데, 어느 날 양들을 점검하니, 100마리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목자는 99마리가 있었지만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험한 산길과 숲속을 헤매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그가 찾는 양의 흔적도 보이지 않으며, 자신도 지치고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양을 찾았습니다. 긴 시간 동안 찾아 헤맨 끝에 결국 그 양이 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목자는 그 양을 품에 안고, 깊은 사랑과 걱정으로 그 양을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는 기쁨에 가득 차서 이웃들을 초청하여 잔치까지 열었습니다. 양 한 마리의 가치, 그리스도 안에 세워져 있는 성도의 소중한 가치가 그렇습니다. 눅15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가치와 자아 존중감을 높이고, 스스로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은 삶의 목적을 찾는 데 도움을 줍니다. 성도가 존재하는 이유와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찾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삶의 의미와 목표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4. 마지막으로 22-23절을 봅니다. “(22)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여러 가지 이유로 믿음 위에 서 있으면서도 사랑 안에 있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흔들리는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질책이나 벌이 아니라 긍휼, 불쌍히 여기는 것, 혹은 측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영생은 오직 긍휼로 인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공로가 아니라 긍휼을 근거로 합니다. 만일 공로로 인한다면 그 공로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요청할 수도 없었고, 바랄 수도 없었던 것을 우리로 받을 수 있도록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한 것입니다. 이는 타락한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공로요, 십자가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의 공로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위에 세워지고 그의 사랑 안에 자기를 지키는 성도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의심하여 영혼과 육체를 더럽힌 사람에 대하여 그가 입고 있는 옷까지도 미워하여야 하고 손끝에라도 그 죄의 조각이 묻을까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하지만, 그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불구덩이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그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거룩한 의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는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유지하는 자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형제들을 위한 보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인처럼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4,9)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자들은 긍휼히 여기며 친절히 대하여 “온유한 심령으로 되돌아오게 하며”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의 엄위하심을 말해 주면서 그들로 하여금 죄로부터 뛰쳐나오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을 위해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랑의 기쁨을 맛볼 수 있고,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영원토록 찬미하고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 위에 서고,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범죄한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신앙이 단순히 자신의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에 의지하여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가지 포함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하고, 세상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며, 사랑과 섬김의 삶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와 복이 오늘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