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불신시대"에 대하여
1957년 박경리의 "불신시대"의 출현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가 개인의 재능을 명시해 준 의미도 있지만, 한국 소설계의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새롭게 대두된 서사문학의 중요한 변모를 이 작품이 처음 집약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서사문학이 더 이상 영웅주의적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보통 사람이 사회와 자기를 정밀하게 저울질하여 그에 대한 성실한 성찰을 기반으로 하는 내용을 담는, 즉 영웅의 이야기를 벗어나 새로운 일상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큰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 중 9.28 서울 수복 전야에 남편을 폭사하고 과부가 된 진영은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외아들 문수마저 잃는다. 문수의 죽음은 의사의 잘못이었다. X레이도 찍지 않고 마취도 제대로 안 한 뇌에 칼을 대고 잘못 빠개서 아이를 죽인 것이다.
도수장의 망아지처럼 허무하게 죽어 간 아이의 울음소리를 잊기 위해 진영은 종교에 매달려 본다. 생계 유지도 막연한 경제 상태에서 푼돈을 쪼개어 미사도 올리고 절에 가 재도 올려 본다. 그러나 그녀가 종교의 세계에서 발견한 것은 시주 받은 쌀을 착복하는 중과 도둑 맞을까 봐 신발을 싸들고 예배드리는 신도들뿐이었다.
그들의 추악한 계산이 아이의 영혼까지 모독하는 것을 본 진영은 인간에 대한 그런 처사에 대한 그런 처사에 대해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 부당함에 항거하고 그 악을 고발하는 것, 그것만이 살아 남은 자기 생명의 의무라고 진영은 생각하며 죽은 아이의 사진을 절에서 빼 와 불사르고 산을 내려온다.
박경리의 소설 중에서, 여자 주인공이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었다는 내용과 아들이 사망하고 홀어머니, 외동딸과 살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는 "불신시대"말고는 "암흑시대", "흑흑백백", "영주와 고양이" 등이 있다.
50년대 박경리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은 인물 성격화의 단일성이다. 작품 속의 대개의 주인공들이 일관화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삶의 어떠한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는, 지식 저변에서 샘솟는 자존심과 미모를 지닌, 젊은 과부의 삶이 그것이다. 그 자존심이 때에 따라서는 결벽증으로 나타날 정도이다. 각 작품마다 주변 환경도 비슷하게 설정된다. 가족 관계에 있어서도 친정어머니와 어린 딸과 아들이 젊은 과부에 딸려 있는데, 대개 어린 자식이 죽었거나 죽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언뜻 보아 당대의 일련의 작품들이 연작물로 착각할 정도이다.
작가의 "세월"이라는 수필 형식의 글을 보면 "불신시대'의 진영이가 바로 작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작가의 직접적인 생활 체험과 그 제재가 유사하여 사소설(私小說)이라 불리고, 작가가 전쟁 이후의 삶의 고통을 객관화시키지 못한 채 자신의 사사로운 삶의 형태 안에 머물렀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박경리는 '일찍이 자기를 떠난 작가가 있었던가? 작가는 자기를 통해 인간을 보지 않는가? 라는 반론을 제기하면서, 삶과 소설을 동일선상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그 통합의 근거를 생명 문제에서 찾는다. 문학을 인간 삶의 단순한 잉여물이나 기능 수단이 아니라, 삶의 진정한 근원, 즉 생명을 확인해 가는 기쁨으로 보았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과 소외의 문제를 중시했던 작가의 초기 작품들, 즉 1955년에서 1959년까지 씌어진 소설들을 '전후 소설'로 온당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불신시대'는 전후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부조리의 상황 속에서, 정신적 . 경제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한 과부가 아들의 죽음을 통해 겪는 사회악과 종교인의 위선을 치열하게 고발하면서, 너무나 슬픈 나머지 발동되는 공격 충동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문수의 사진과 위패를 놓고 물끄러미 한동안 쳐다본다.
한참 만에 그는 호주머니 속에서 성냥을 꺼내어 사진에다 불을 그어댄다. 위패는 이내 사르어졌다. 그러나 사진은 타다 말고 불꽃이 잦아진다. 진영은 호주머니 속에서 휴지를 꺼내어 타다 마는 사진 위에 찢어서 놓는다.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사진이 말끔히 타 버렸다. 노르스름한 연기가 차차 가늘어진다.
진영은 연기가 바람에 날려 없어지는 것을 언제까지나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무자비하게 처참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외적 상황에 대해 일종의 '자학(自虐)'을 통한 해소책에 불과한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의지나 소망과는 달리 전개되는 당대의 부조리한 시대적 상황을 보여 줌으로써 작품 효과를 드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