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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호 목사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읽기와 예언의 신 올바로 읽기
저는 오늘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읽기와 예언의 신 올바로 읽기라는 제목으로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잘 이해하고 배워야 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야 또 저희가 올바로 증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장진호 전투라고 하는 전투가 6.25 전쟁 때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뭐 아주 끔찍한 전투들이 많이 벌어졌지만 그중에 하나가 이 장진호 전투인데 11월 27일 1950년부터 12월 13일 약 17일 동안 있었던 전쟁인데 연합군 만 5천 명이 12만 명의 중공군과 싸운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가 왜 중요했는가 하면 이 전투의 실패와 성공에 따라서 흥남에서 14후퇴 때 철수하는 그 작전이 성공하는 데 대단히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고지의 주인이 바뀌어요. 그러다가 무기가 다 떨어집니다.
이 아군이 그래서 특별히 이 박격포탄이 떨어져가지고 지원 부대에 60mm 박격포탄을 요청합니다.
근데 그 당시에는 이제 이 도청이 되어 있어 사람들이 적군과 아군이 이
도청을 해가지고 정보를 알아내기 때문에 모든 무전을 할 때는 무전으로 송수신을 할 때는 암호명을 썼습니다.
그래서 60ml 바격 포탄의 암호명이 뭐였는가 하면 투시롤이라고 하는 초콜릿 캔디였어요.
그래서 이제 이 무전병이 연락을 합니다. 보급부대에다가 투시롤이 떨어졌다 보내달라 그렇게 이 무전병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 무전병이 초짜였는지 진짜 투시로를 보냅니다.
초콜릿 캔디를 보내요. 왜냐하면 미군이 1차 세계대전 이후에 파병을 나가는 군인들,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의 복원 물자의 이 투시롤이 있었습니다.
초콜릿이 음식 중에 하나로 그러니까 이 통신병이 순간 생각하니까 실제로 이 투시롤이 필요한가 보다.
그래서 여러분 헬기가 뜨고 보급 비행기가 뜨면서 막 투하를 합니다.
낙하산으로 그 사람들이 뚜껑을 열어보니까 뭐예요?
초콜릿이에요 뭘 요구했는데 밖에 포탄을 요구했는데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어떻게 근근히 전투를 해요?
그런데 나중에 이 투시롤이 그들을 살리게 될 줄은 그들은 잘 몰랐습니다.
이 장진호 전투가 벌어진 곳이 엄청나게 높은 고지였거든요.
밤중에는 영하 36도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전투 식량으로 보급된 모든 물품들이 다 얼어버린 거예요.
먹을 수가 없는 거죠. 그때 식량이 이거였습니다.
이거 녹여가지고 먹고 이거 녹여가지고 뭐 땜빵하고 그러면서 무사히 이 작전을 성공합니다.
그러면서 이 투시롤은 엄청나게 유명해져 버렸습니다.
여러분 때때로 우리가 잘못된 해석이 유익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잘못된 해석이나 오해가 때로는 예상치 못한 유익을 주지만 올바른 해석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여러분 많은 경우 왜 오해가 생겨요?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제대로 해석을 못하니까 말이나 행동이나 글이나 오해가 생기잖아요.
뭐 다른 오해 사소한 오해이면 괜찮을지 모르지만 영원한 생명이 달려 있는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오해가 있으면 안 됩니다.
정확한 해석이 중요하지요. 저는 오늘 세 섹션에 의해가지고 좀 강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경 읽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본문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본문의 중심 사상을 찾는 방법을 좀 살펴보겠고요.
두 번째는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읽는다는 게 뭔 의미고 왜 그렇게 해야 되고 방법은 어떻는지 설명하고 세 번째는 예언의 신을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를 좀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본문 중심 사상 찾기입니다. 여기에 중심 사상 이렇게 하면 중심 주제 핵심 주제 같은 의미입니다.
왜 중심 사상이 꼭 필요하고 중요한가 여기 누가복음 10장 25절에서 2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 영생을 얻으리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내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내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내 이웃을 내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내용 잘 아시죠?
그죠?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뭐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때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이 도로 질문을 합니다.
율법에 뭐라 기록되었느냐 1차적으로 율법은 토라고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내가 어떻게 읽느냐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뭐라고 대답을 해요. 그죠? 대답을 하고 나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는가 하면 내 대답이 옳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여기 내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하는 이 예수님의 질문에 근거하여서 내 대답이 옳다라고 하는 의미를 살펴보면 무슨 뜻인가 하면 너가 잘 제대로 율법을
읽었다라는 뜻입니다. 내 대답이 옳도다는 말이 뭐예요?
니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물었잖아요. 그리고 뭐라고 대답을 했어요 그랬더니 니 대답이 옳다 이 말은 뭐예요?
니가 성경 율법을 잘 읽었다 이 말입니다. 근데 만약에 뭐라고 대답을 했는데 예수님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으면 내 대답이 틀렸다 내 대답이 좀 부족하다 그랬으면 뭐예요?
좀 잘못 읽었다 이런 뜻이겠죠. 뭐라고 이야기했는가 하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니까 뭐야 잘 읽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여러분 우리가 율법을 읽고도 잘못 읽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적어도 하나님이 성경을 주시고 율법을 주시면서 그분이 말씀하신 의도가 있다는 거예요.
왜 이걸 주셨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기에서 무엇을 읽어내고 무엇을 찾아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가 있다는 거예요.
율법에 성경에
그러니까 그거를 읽어내는 게 뭐예요? 그걸 찾아내는 게 우리 신자들의 1차 목표예요.
성경을 읽는 사람들 그러니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받는 쪽에 초점을 맞춥니다.
필요해요. 힘든 세상에 성경을 읽으면서 위로받고 은혜받고 용기를 얻는 게 필요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뭐냐 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해요.
제 말 이해하죠 그러니까 거기에서 은혜를 받고 거기에서 교훈을 받고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어야지 내가 혼자 뭔가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딱 꽂혀가지고 이 말씀은 이 뜻이지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집에 형광등이나 요즘 led 같은 전등이 많잖아요.
여러분 집에서 어느 장소가 가장 조명이 밝아요? 보통 거실이겠죠 그죠?
거실이나 뭐 화장실 조명이 그렇게 밝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여러분 성경을 읽다 보면
여기 지금 전구는 뭐냐 하면 하나의 사상이에요. 혹은 주제 근데 어떤 하나의 본문에 텍스트 안에 가장 밝게 빛나는 빛이 있어요.
그리고 어떤 부분에는 조금 빛나요? 그러니까 이것들이 다 뭐냐 하면 연관이 돼요.
이게 다 따로따로따로 놓으면 안 되고 하나의 큰 중심 사상이 있는데 이거를 발견해야지 뭐예요?
하나님이 이 본문을 통해서 그때 그 사건 그 사람을 통해서 이것을 말씀하시는 거구나라고 우리가 캐치해내야 뭐예요?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 이 말이에요. 그렇게 아니고 읽는다는 말을 좀 신학적인 용어로 좀 붙이면 이게 해석이에요.
근데 여러분 우리가 성경만 해석하는 게 아니에요.
코로나가 일어난 요즘 사건 상황을 우리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거든요.
그죠? 요즘 뭐 이 힘든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지 뭐 이걸 다 해석이에요.
그림을 봐도 해석이고 음악을 들어도 해석이고
심지어 드라마를 봐도 뭐예요? 내 나름대로 해석하는 거예요.
근데 그게 올바를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어요. 그거 누구한테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심 사상은 이런 거예요. 이 아이가 이제 엄마가 차려준 아침 식사를 놓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달걀을 주셔서 감사하고요. 샐러드를 주셔서 감사하고 물을 주셔서 감사하고 다 각각각각 기도할 수 있지만 이걸 한 단어로 한 문장으로 할 수 있어요.
그게 뭐예요? 아침 식사를 주셔서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음식이라는 단어 속에 이게 다 들어가 있잖아요.
그게 중심 사상이에요. 그러니까 하나의 본문에 이야기 막 하는데 거기에서 딱 중심 사상을 찾아내어야 나머지는 다 관련이 돼요.
근데 그걸 놓쳐버리면 뭐예요? 주변을 보고 그러니까 이게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교훈이나 주제일 수도 있거든요.
근데 하나의 본문에서 내가 여기 부분만 딱 은혜 받고 나가지고 이렇게 해버리면 이 전체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를 놓쳐버리면 잘못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중심 사상을 찾는 데 있어서는 제일 중요한 방법이 뭐냐?
제일 많이 읽어야 돼. 한 번 읽었다. 잘 이해가 안 돼.
그럼 뭐 하면 돼 또 읽어야 돼 또 읽어도 이해가 안 돼.
또 읽어야 돼 자꾸 읽어야 돼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근데 잘 안 하잖아 우리가 한두 번 쭉 읽고 나가지고 뭐해 단어나 뭐가 딱 들어오는 게 이게 이 뜻인가 보다.
이게 감동이네. 그럼 이제 저는 이 시간에 그럼 어떻게 좀 중심 사상을 찾는가를 방법적으로 좀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이렇게 성경을 안 읽어보셨을 거예요.
제가 목사님들한테 설교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연수원에서 강의를 하는데 이 부분을 목사님한테 설명을 합니다.
왜냐하면 제일 중요한 게 1차적으로 성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그게 안 되면 설교가 안 되거든요. 중심 사상을 효과적으로 찾는 방법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뭐냐 하면 한 본문에 기록되어 있거나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본문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 핵심 동사를 찾습니다.
뭘 찾는다고요? 동사를 찾습니다. 그러면서 그 핵심 동사를 6하 원칙에 따라서 하나씩 질문을 만들어 봅니다.
여러분이 오늘부터 이제 제일 잘 생각하셔야 될 것은 여러분 모든 사건이나 말이나 글은 다 6하 원칙이 있어요.
여러분 기자가 뭘 보도한다고 딱 생각해 보십시오.
기자가 지금 언제 몇 월 며칠 어디에 누가 무엇을 어떻게 그것 그죠?
그러니까 여러분 어떤 본문에도 6화 원칙이 있어요.
6화 원칙 그 본문이 전부 6화 원칙을 다 말하는 건 아닐 수 있어요.
근데 우리가 이제 성경 본문을 읽으면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요거를 생각하고 본문을 읽으셔야 돼 그래야 그 본문이 정확하게 캐치가 돼요.
이거 제가 이론을 설명드린 다음에 실습을 할 겁니다.
제가 시간이 되면 여러분이 다 발표도 하고 하면 좋지만 그건 할 수 없고 제가 여러 본문을 가지고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혼자 읽으실 때도 도움을 받도록 세 번째는 그 6개의 질문들 6하 원칙의 질문들 중에서 가장 중심 되는 그 질문이 모든 본문에 다 있지는 않아요.
생략된 것도 있습니다. 안 나와 있는 것도 있기 때문에 가장 중심되는 질문을 찾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본문에서 찾아야 돼.
딴 데서 찾으면 안 되고 답이 거기 있어요. 그다음에 만들어진 질문하고 해답을 한 문장으로 합치면 중심 사상이 되는데 지금부터 기억하실 것은 중심사상은 단어가 아니고
중심사상은 구가 아니고 반드시 중심사상은 주어와 동사가 이렇게 다 있는 한 문장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중심사상은 한 문장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성경에서 가장 짧은 시편이 117편이에요. 1절 2절입니다.
두 구절로 되어 있는데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손녀한테 손자한테 혹은 자녀한테 이걸 읽어줬어.
두 구절을 손자 손녀는 여러분의 자녀가 듣고 있다가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그게 뭔 말이에요?
그럼 여러분들이 그게 뭔 말인가를 뭐 해야 돼? 설명을 해줘야 돼 길게 설명할 수 없어요.
한 문장으로 설명해 줄 수 있어야 돼. 그게 뭐예요?
중심 사상이요. 예를 들어서요. 여러분 영화를 봤어요.
근데 영화 안 본 사람이 물어요.
그게 뭔 내용이에요? 영화가 그러면 여러분이 한 문장을 쭉 이야기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근데 그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어떻게 알아요? 내가 한 문장을 만들었어.
그게 맞는지 안 맞는지 그게 중심 내용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그 중심인 사상이 내가 말한 한 문장이 중심 내용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누구 이야기를 들어봐야 되느냐면 감독 이야기를 들어봐야 돼.
감독이 내가 그런 의도로 왜냐하면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그냥 만들지 않거든요.
배우 섭외하고 스텝하고 해가지고 여러 세트장 만들어서 그 영화를 통해서 의도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반드시 이유가 있거든요.
목적이 그거 하고 뭐 해야 돼? 맞아야지 뭐예요? 제대로 읽은 거예요.
제대로 본 거예요. 그죠? 맞죠 책도 마찬가지고 그럼 여기에서 지금 동사를 한번 찾아보십시오.
동사가 몇 개 나옵니까? 여호와를 찬양한다 그랬죠 또 찬송하라 그랬죠.
그다음에 또 있어요. 두 개밖에 없어요.
이 크다라는 단어가 보통 형용사라고 이해하는데 여기 이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이게 동사예요.
가바르라고 하는 동사입니다. 그리고 여기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이거든요.
이게 할랄이라는 당사가 여기 아까 여호와를 찬양하면 이게 할랄이에요.
같이 있으면 이 4개가 있어요. 동사가. 근데 여기에 여러분 동사 찾기 어렵지 않죠?
여기 뭐가 제일 중요한 단어 같아요? 찬양하다라는 거야 그럼 핵심 동사를 찾았어요.
그럼 6화 원칙으로 질문을 만들어본다 그랬죠 이렇게 만드는 겁니다.
누가 찬양하나 혹은 누구를 찬양하나 이게 다 후잖아요.
그게 누가 해야 되는 거예요 언제 찬양하는가 어디서 찬양하는가 무엇을 찬양하는가 무엇을 할 때는 꼭 무엇무엇 한 결과는 무엇인가 이것도 좀 한번 물어보셔야 돼요.
그다음에 어떻게 찬양하는가 왜 찬양하는 거 여러분 이게 질문이에요.
맞죠? 동사 찾았으면 질문 만들기는 쉬워요.
누가 동사하는가 언제 동사하는가 뭐 이렇게 붙이면 돼요.
그러면서 여기 답을 여기서 찾아보는 거예요. 본문 속에 누가 찬양해요?
모든 나라더라 그랬어요. 모든 백성들이라 그랬어요.
그 모든 나라고 모든 백성이 누구예요? 누구를 찬양하라 그래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랬어요.
여기 나와 있죠 그죠? 그다음에 왜 찬양하라 그랬어요?
우리에게 향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그분의 진실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에 이게 이유예요.
여기는 언제 찬양하라는 말이 있어요? 언제 언제 찬양하라는 말 언젠가 때잖아요.
기쁠 때 아니면 마음이 울적할 때 그런 말이 있어요.
없잖아요. 어디서 찬양하라는 말이 있어요? 없어요.
성서에서 하라든지 뭐 초년교에서 하라든지 그런 건 없어요.
그러니까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거는 뭐예요? 왜요?
왜 왜 찬양해야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본문이에요.
맞죠? 그럼 문장을 만들어볼게요. 본문의 중심 사상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들을 향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그분의 진실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에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혹은 찬양할 수 있다.
여러분 이게 중심 사상이에요. 이렇게 한 문장으로 뭐 할 수 있어야 된다 만들어낼 수 있어야 된대 말로도 할 수 있어야 되고 글로도 쓸 수 있어야 돼요.
글로 정확하게 쓰여지지 않으면 내가 잘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중심 사상은 대부분 과거의 형이에요. 근데 이거는 이제 모든 나라들 모든 백성들하고 이제 현재형으로 쓰여진 본문 시편이기 때문에 이게 과거형은 아닌데 이제 이걸 어떻게 이제 우리가 그럼 현대적으로 적용을 시켜요.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의 인자를 알수록 그분의 사랑을 알수록 그분의 은혜를 알수록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게 된다.
이게 이 본문에 적용하는 거예요. 그럼 내를 돌아보는 거야 나는 찬양을 잘 하나?
나는 왜 유행가는 좋아하는데 왜 찬미는 잘 안 하지 나는 왜 교회에서 예배드리기 전에 찬양할 때 메가리가 없지 그거 왜 그래?
여러분 정말 내 마음속에 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은혜가 풍성하게 경험되고 한 주간 속에서 그렇게 만났으면 우리 그렇게 찬양 매가리 없이 안 하거든요.
그러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거예요. 짧은 본문이지만 이 본문에서 시편 기자가 이걸 왜 썼는지, 하나님이 여기에 왜 이걸 기록해 놓아서 우리에게 뭘 말씀하고 있는지 정확한 의도가 있다는 거예요.
그걸 찾아내는 게 뭐예요? 중심 사상이라는 거예요.
그걸 찾아내지 않으면 이 본문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 이 말이에요.
이해되시죠?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 주로 짧은 거 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3장 17절 18절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심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그러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께서 인도에 오셔서 가장 빠른 길은 지름길은 지중해를 따라가는 길이에요.
그들이 출발한 곳이 수꽃이었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블레셋 사람의 가장 가까운 지방 남부 도시인 가사로 가기까지 약 한 260kg예요.
제 쇼컷입니다. 대물이였으니까 하루에 한 10km를 간다.
그러면 한 달이면 가는 곳이에요. 근데 하나님 그렇게 안 했어요.
광야길로 돌려서 인도를 합니다. 왜 블레셋 사람들은 호전적이거든 내 영토에 침입했다 전쟁을 할 상황이어서 아무런 준비가 안 된 그들이 전쟁을 보면 도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할까 봐 하나님은 돌려서 인도합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길에서 지름길이 항상 좋은 건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는 길이는 길은 가장 안전한 길이 가장 좋은 길
그게 더딜지라도 그 본문이에요. 그죠? 그럼 여기 이 본문에서 동사가 몇 개 안 나와요?
여기 본문의 중심 동사는 뭘 것 같아요? 그렇죠 이건 별로 어렵지 않아요.
인도하셨다 그죠? 과거형입니다. 인도하셨다는 게 그러면 또 질문 만들어 봅시다.
6하 원칙 누가 인도하셨나 이렇게 그죠? 누구를 인도하셨나 일단 질문부터 만들어 봅시다.
답은 뒤에 찾고 그다음에 뭐예요? 언제 인도하셨나 육하 원칙 얘기잖아요.
그렇죠 어디서 인도하셨나 무엇을 인도하셨나 인도하신 결과는 무엇인가 항상 무엇을 할 때는 결과까지도 포함시키라고 그랬죠.
어떻게 인도하셨나 왜 인도하셨나 여기 질문되죠.
이 질문을 만들어놓고 답을 여기서 찾아보는 거예요.
본문 안에서 그럼 제일 중심 되는 게 나와요. 그럼 보니까 뭐예요?
누가 인도하셨나 하나님이지 누구를 인도하셨어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지 언제 인도하셨어요?
애굽에서 나올 때 어떻게 인도하셨어요? 지름길이 아닌 광야 먼 길로 인도하셨어 이게 핵심이에요.
여기에 이 본문은 어떻게라고 하는 게 핵심이에요.
아까 시편 117편 1편 1절 2절은 뭐가 핵심이냐 하면 왜가 핵심이에요 얘도 나와요.
왜 그렇게 지름길이 아닌 광야길로 인도하셔요 전쟁을 보게 되면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할까 봐 이제 그 문장으로 한번 만들어 봅시다.
이런 거예요. 본문 중심 사상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실 때 그들이 전쟁을 보게 되면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할까 봐 지름길이 아닌 광야 먼 길로 돌려서 인도하셨다.
좀 길죠 길어도 괜찮아요. 그리고 과거형이잖아.
하나님이 그때 했던 사건을 설명한 거니까 이게 한 문장이에요.
만약 여러분이 자녀한테 이 본문을 밤에 잘 때 읽어주는 건 짧은 구절이지만 쭉 읽었어.
할머니 엄마 아빠 도대체 뭔 말이에요? 그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입국시키실 때 그들이 전쟁을 보면 무서워가지고 도로 애굽으로 가자.
그럴까 봐 지름길이 아닌 광야의 먼 길로 돌려서 인도하셨대.
그게 뭐예요? 그렇게 다시 한 번 짧게 요약해서 한 문장으로 설명해 주는 게 중심 사상이에요.
이걸 만약 내가 설명을 못하면 나는 이 본문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만든 다음에 그럼 이게 오늘 우리하고 이 본문을 읽는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 이 말이야.
이걸 현대적으로 적용을 시킬 수 있어야 돼. 이 현대적으로 적용은 더 짧아야 됩니다.
더 현대적인 용어를 써서 그럼 어떻게 돼요? 제가 만드는 거야.
지름길이 가장 좋은 길이 아닐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도 돼요.
여기에서 나온 거니까 본문에서 또 다른 걸 하면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언제나 제일 좋은 길이다.
그게 이 본문에서 현대적으로 찾아낸 적용이에요.
근데 적용은 반드시 뭐가 되어야 하는가 하면 올바른 해석이 먼저 나와야지 적용이 돼요.
올바른 해석이 안 나온 상태에서 적용을 하면 그건 잘못된 적용이 돼요.
그래서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첫 번째 원칙은 하나님이 이 본문을 그때 그 사람들한테 왜 주셔서 왜 기록하게 하셨는지를 찾아내는 거예요.
그다음에 해야 될 게 뭐냐 하면 그게 오늘을 사는 나한테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걸 찾아야 돼.
이해되시나요?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안 봐 그냥 쭉 읽고 나서 뭐예요?
눈에 들어오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꽂히면 뭐예요?
그게 그 본문인 줄 알아 물론 그럴 수 아까 사진 봤잖아요.
전구 여기도 빛이 나고 저기도 빛이 나는 게 있어요.
근데 그 빛이 이 전체에서 빛나는 제일 큰 빛은 아니라는 거예요.
제일 큰 빛을 찾아내야 돼요. 그리고 그건 다 관련이 돼요.
하나 더 해볼거예요. 해볼게요. 주로 짧은 거 합니다.
이제 나중에 긴 거 할 겁니다. 디모데전서 5장 1절 2절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구원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이게 본문이에요. 길지 않아요 어렵지도 않고 동사가 뭘까요?
핵심 동사 하드 타라 중인 공사는 고하다요. 권하다는 말은 뭐 그냥 권하라는 말이 영어로 보면 조금 더 쉬워요.
격려하다는 뜻이 인커리지 격려하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가능하면요. 개혁 성경을 여러분이 주 성경으로 보면서 쉬운 성경을 하나쯤 옆에 같이 놓고 보면 좋아요.
그래서 새 번역 성경 같은 거 혹시 영어를 좀 하실 수 있는 분이면 영어 성경하고 같이 봐도 괜찮아요.
근데 주는 가장 많은 사람이 보는 성경 지금으로는 개혁 개정 성경이죠.
그게 주가 되면 좋습니다. 보면 권하다 권면하다는 뜻은 아니고 격려하다는 뜻이에요.
핵심 동사는 동사가 이게 몇 개 없어요? 두 개밖에 없어요.
꾸짖다 권하다 그것밖에 없어요. 여기 이거 뭐 하라는 이 동사 아니에요 뭐 에즈 뭐 이렇게 하라는 거지 그럼 6화 원칙 질문을 찾아볼게요.
누가
격려하는가 그죠? 누구를 격려하는가 그다음에 뭐 언제 격려하는가 어디서 격려하는가 무엇을 격려하는가 격려 무엇 할 때는 또 항상 해보라고 그랬죠.
격려한 결과는 무엇인가 어떻게 격려하는가 왜 격려하는가 별로 안 어렵죠.
그럼 본문 속 해답은 뭐예요? 누가 격려해야 돼? 이건 지금 바울이 디모데한테 쓴 편지잖아요.
그러니까 누가 1차적으로는 디모데한테 한 말이니까 디모데가 격려해야 되었어요.
그죠? 그럼 누가는 디모데 누구를 나이 든 사람 남자를 젊은 남자를 나이 든 여자를 젊은 여자를 그렇죠 여기다 내 부류가 나오잖아요.
다 적어야 돼 어떻게 격려하라 그래요? 아버지와 형제와 어머니와 자매에게 하듯이 이게 핵심이에요.
여기도 이 본문의 핵심은 어떻게 해요? 하우 그럼 뭐예요?
본문 중심 사상은 뭐예요? 뭐 바울은 이렇게 해도 돼요?
아니면 디모데 나이 든 남자를 아버지에게 하듯 젊은 남자를 형제에게 하듯
나이 든 여자를 어머니에게 하듯 젊은 여자를 자매에게 하듯 격려해야 하였다.
아니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나이 든 남자를 아버지에게 하듯 젊은 남자를 형제에게 하듯 이렇게 하면서 디모데를 그렇게 하라고 격려하라고 말했다.
그게 중심 사상이 그러니까 과거형이잖아 항상 이걸 현대적으로 어떻게 바꿀까요?
지금 나한테 이웃을 아주 중요한 키가 나왔어 뭐처럼 우리는 모든 사람을 가족을 대하듯이 격려해야 된다 혹은 대해야 한다.
이게 중심 소송이 그럼 날 돌아보는 거죠. 내가 아무개 집사님 혹은 이웃 대할 때 내가 우리 아들한테 대하듯이 가족에게 대하듯이 내가 그렇게 대하고 있는가 이거 이제 적용이에요.
그러니까 이 본문을 두 구절밖에 안 읽었지만 여기에는 이 중심 사상이 나타나야 되고 깨달아야 되고 이 중심 사상이 나한테 어떻게 말씀하여서 적용하고 있는지를 봐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내 삶을 돌아보는 거죠. 짧은 문장이지만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서 디모데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있다는 거예요.
핵심 메시지가 그걸 찾아내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나한테 적용을 시켜야 된다는 이해되시나요?
지금은 짧은 거 하기 때문에 좀 쉬워요. 근데 이게 본문이 길어지면 그냥 막 헷갈리는 거야.
그래도 해보셔야 돼. 그러니까 여러분 저는 큐티 괜찮습니다.
근데 큐티가 이런 중심 사상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있어요.
왜냐면 내가 이 끄트머리에 있는 사상 그것도 성경에 없는 거 아니에요.
그러나 중심 사상인지는 정확하게 물어야 돼요. 이 본문에서 하나의 본문이 크기가 있잖아요.
몇 구절 왜냐하면 그 본문이 이렇게 연결되기도 하지만 짧은 그게 있거든요.
목사님 설교할 때도 본문을 정하잖아요. 그것처럼 거기에서 핵심을 찾아내는 게 제일 중요해요.
하나님이 그때 그 청중에게 그 독자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왜 말씀하셨는가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언제 그러니까 여러분 이렇게 본문을 읽다 보면 아까 6하 원칙이 있잖아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제가 여러 본문을 저는 보면 이렇게 읽거든요.
그럼 제일 많이 걸리는 게 주로 y가 많이 나와요. 왜가 많이 나오고 어떻게든 많이 나와요.
어떻게 그리고 누가 후도 많이 나와요. 여러분 시편 24편 같은 경우에 보면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인가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어떻고 여러분 그거 뭐예요?
그건 6가 원칙 중에 뭐예요? 그거는 그럼 누가 해요?
그거는 어떤 사람이 여호와의 산에 이르는지 그걸 설명한 거예요.
그 본문이 그러니까 본문에서 말하는 육화 원칙을 딱 가지고 본문을 읽어보면 정확하게 이해가 돼요.
그렇게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된다는 거예요. 아까 예수님 말씀하셨잖아요.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습니까?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었고 니가 어떻게 읽느냐 그랬어요.
그러니까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영생이 왔다 갔다 합니다.
여러분 신천지 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왜 신천지의 성경 해석 방법이 틀렸는가 전혀 본문이 말하는 문맥을 무시해요.
제가 나중에 예언의 신을 여러분 이제 좀 예언의 신 할 때 이야기하겠습니다.
여기서 뚝뚝뚝뚝 갖고 와가지고 뭐예요? 딱 짜집으면 아무리 성경을 갖고 이야기해서 나온 사상이라고 해도 그건 성경적이지 않아요.
여러분 우리가 누구 뭐 말하고 글을 어떻게 썼는데 여기저기서 집어와가지고 편집해가지고 딱 하나 만들어가지고 이 사람이 이 생각이고 이게 말이다라고 드러내보면 어떻게 돼 환장하는 거지 내가 그 말한 건 분명히 맞아.
근데 그게 그렇게 갖다 끼워 넣어서 할게 아니죠. 그러면 그게 글이든 말이든 심지어 성경에서 갖고 왔든지 문제가 생겨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거는 뭐냐 하면 문맥 속에서 봐야 돼.
많은 사람들이 엘렌화에서의 글을 보면서 실수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그게 왜 기록됐는지 앞뒤를 안 봐 내가 원하는 거 딱 하나 딱 와가지고 뭐예요?
내 논리를 설명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봐요.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보지 않고 그게 가장 문제 좀 긴 거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2장 1절에서 12절 여러분 잘 아시는 내용이에요.
중풍병자 친구 4명에 의해가지고 들끝에 실려온 거예요.
예수님이 내 죄 용서를 받아 죄사함을 받았다. 사람들이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길래 죄를 사한다 그러는가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일어나 걸어가라고 그럽니다.
이 본문이 많이 보셨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 이거 시간도 좀 드리고 여러분이 직접 성경을 읽으면서 동사 찾고 질문 만들고 이걸 해야 되는데 할 수가 없어서 일단 제가 할 테니까 여러분 제가 하는 게 정답은 아니에요.
제가 읽으면서 찾아낸 중심 사상이에요. 그래서 저는 동서를 여러 개 해봅니다.
이것도 해보고 이것도 해보고 그러면서 이 본문이 하나님께서 그 당시 그 사람들에게 그 현장에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비교를 해보면서 더 이게 핵심인 것 같다.
저는 그렇게 찾아냅니다. 그래서 저는 혹시 이제 여러분 나중에 이제 마치고 나면 제가 연락처 자리를 알려드릴 테니까 여러분이 성경 본문을 읽으시다가 이게 중심 사상이 찾은 게 맞는지 제가 정답은 없지만 제 견해를 알려드릴 테니까 저한테 연락하시면 제가 좀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 본문을 보면서 제일 많이 나오고 여러분 제일 많이 나온다고 해서 중심 사상일 수도 있고 중심 동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근데 여기에 계속 나오는 단어는 죄사함을 받았다 그러는 거 이런 말하면 용서하다 용서했다 한번 찾아볼게요.
핵심 동사를 일단 용서하셨다라는 말도 찾아보고 다음에는 치료하셨다는 말도 한번 해볼 겁니다.
용서하셨다.
용서하다가 아니고 이 동서가 용서하셨다는 거잖아요.
그지 항상 과거니까 성경은 대부분 과거 이야기니까 6하 원칙의 질문을 한번 만들어보죠.
누가 용서하셨나 누구를 용서하셨나 언제 용서하셨나 어디서 용서하셨나 무엇을 용서하셨나 용서하신 결과는 무엇인가 어떻게 용서하셨나 왜 용서하셨나 96번지 질문 되죠.
그럼 동작 만들면 질문하는 건 쉬워요. 그냥 갖다 붙이면 됩니다.
그러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본문에서 찾는 것입니다.
본분석 해답을 한번 찾아보죠. 누가 용서하셨어요?
예수님이 용서하셨지 누구를 용서하셨어요? 중풍병자를 용서하셨어요?
언제 용서하셨어요?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가 상에 누워 내려왔을 때 그렇죠 어디서 용서하셨어요?
이 본문에는 가보나의 한 집이라고 나와요. 시대의 소망을 읽어보면 이게 베드로 집이에요.
그날 베드로 집수리 해야 될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가옥 구조는 지금하고 달라요.
이렇게 이렇게 한 거기 때문에 무엇을 용서하셨어요?
당연히 죄를 용서하겠죠. 그의 죄를 용서하셨죠?
그의 죄를 용서한 결과가 뭐예요? 병고시까지는 안 가요.
그의 죄를 용서하신 했다. 그러니까 뭐예요? 사람들의 반응이 나와요.
옆에 있던 바리새인들이 도대체 지가 뭔데 죄를 용서했다고 말을 하지 이렇게 나오는 거잖아요.
그것도 말로 한 거예요. 속으로 한 거예요. 속으로 한 걸 예수님이 요즘 속으로 다 보시니까 중심을 보시니까.
그래서 여러분 죄를 용서한 그 결과는 사람들이 의심합니다.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음을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지 이게 결과예요.
왜냐하면 죄를 사했다고 한 것에 대해서 아무런 사람들의 의심이나 문제가 없었으면 예수님 이거 안 하셨었는지도 몰라요.
근데 의심이 생기니까 뭐예요? 사람들한테 물어요.
죄를 사하는 게 쉽냐 병 고치는 게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는 게 쉽냐?
예수님이 물어요. 한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예수님이 중풍 중풍병을 고치는 게 쉬워요.
죄를 사하는 게 쉬워요.
다 쉽지 않죠 다 어려워요. 그런데 여러분 중풍병자의 병을 고쳤다라고 말한다면 결과가 나타나야 돼.
계속 누워 있는데 병을 고쳤다라고 할 수가 없잖아요.
근데 여러분 죄를 사했다. 이거는 뭐예요? 결과가 나타나요?
안 나타나요? 어떻게 나타나요? 그게 겉으로 보면 중풍병을 고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근데 죄를 사하는 거는 그건 신의 영역이거든 하나님의 영역이거든요.
병을 고치는 건 의사도 할 수 있잖아요. 물론 못할 수도 있지만 더 심각하고 중요한 건 죄를 사하는 건데 그거는 확인이 안 된다 이 말이지.
이게 확인을 시켜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뭐 한 거예요?
중풍병자의 병을 고친 거예요. 이 본문의 핵심은 이거예요.
어떻게 말씀을 통해서 하셨죠? 왜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이렇게 나와요.
그럼 본문 중심사상 만들어볼게요. 예수님이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시자 사람들이 의심했고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음을 사람들이 알게 하시려고 그의 병을 고치셨다.
이게 이 본문의 중심 사상이 좀 길지만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본문이 하나님이 주신 의도가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거는 뭐예요?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는지 사람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병자를 고치면서 뭐예요? 이걸 할 수 있어 이분이 그러면 죄를 사한다는 그 권세도 있는가 봐.
그걸 그러면 이렇게 중심 사상을 찾아내었으면 나한테 어떻게 적용을 시킬까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적용은 근데 반드시 이 중심 사상에 근거한 적용을 해야 돼요.
딴 데로 가면 안 되고 저는 이렇게 찾았습니다. 본문의 현대적인 적용 예수님이 우리의 현실적 필요를 채우시는 것은 우리의 궁극적 피로를 해결하시기 위함이다.
여기 현실적 피로가 뭐예요? 아프고 치료한 거야 궁극적인 피로가 뭐예요?
죄사함 마음의 치료죠. 마음의 피로 여러분 왜 예수님이 마음에 왜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셨을까요?
여러분 왜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 하고 물고기 두 마리를 5천 명을 먹였을까요?
그 사람들 한 끼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 그런 의미도 있어요.
이 사람들 하루 종일 말씀 듣는다고 배가 한 끼도 못 먹었는데 얼마나 배고플까 그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이 거기에 나타났어요.
근데 그게 전부 다는 아니에요. 그건 표면적인 이유예요.
근본 이유는 뭐냐 하면 예수님이 자기가 생명의 빵인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예요.
이해되시나요? 생명의 빵이다. 너무 추상적이잖아요.
육신의 빵, 배고픔의 빵도 해결해 주시니까 뭐야 저분이 생명의 빵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렵다고 이게 도대체 뭔 말이지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이 영이고 생명이다.
내가 생명의 빵이라는 말은 나를 먹으라는 말이잖아.
예수님은 어떻게 먹어요?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을 먹는다는 뜻이죠.
그게 그걸 알려주기 위해서
빵을 만든 거죠. 여러분 예수님이 왜 병자를 고치셨는가 물론 아프니까 저 사람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도와주죠.
현실적인 필요죠. 근데 예수님은 그들의 영원한 문제 죄 문제 마음의 문제 그걸 고쳐주기 위해서 해결해 주실 수 있는데 그걸 모르니까 한 단계 중간 단계를 둔 거죠.
그게 병자를 고치는 거예요. 여러분 모든 예수님의 이적은 이 전단계입니다.
더 궁극적인 목적이 있어요. 모든 성경이 그래요.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면서 왜 반석을 깨뜨려서 물을 만들어내요.
왜 그런 기적을 베푸셨어요? 1차적인 목적은 뭐예요?
마실 물이 없었어요 갈등이 있었어요. 광야에서 그거 맞아요.
근데 그것만이 다가 아니에요. 2차적인 목적이 뭐예요?
예수님이 누구라는 걸 영원한 생명수라는 걸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수라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란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빵 만들고 뭐예요?
자기가 생명의 빵이라는 것도 알려주길 원했는데 계속 빵 안 만들어주니까 뭐예요?
가버린 거예요. 예수님이 빵 만드니까 우와 이런 분이 없다.
저 임금 저분이 임금 삼으면 최소한 배는 안 걸겠다.
그렇게 쫓아왔다가 내가 생명이 빵이다 그러니까 뭐예요 하는 말이 너무 어려운데요.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이 생명이고 영이다. 그러니까 뭐예요?
엄청 많은 사람이 다 가버려요. 왜 그들은 뭘 바라고 왔는데 계속 빵 바라고 왔는데 빵 해결 안 해주니까 뭐예요?
가버린 거지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현실적인 피로를 채우시기도 해요.
해요. 때때로 먹는 거 때때로 우리의 경제적인 거 우리의 고민 기도 해결해요.
근데 그게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건 아니에요.
그죠? 마음의 문제 죄의 문제, 영원한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일시적인 어떤 피로가 채워지는 걸 보면서 뭐예요?
예수님은 이것보다 더 해결하시는 더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신 그분을 봐야 되지 그거 계속 해결 안 해주면 뭐예요?
예수님 나 사랑 안 하시나 봐 그러면서 가면 어떻게 돼요?
그 예수님을 모른다 이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 여기에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병을 고친 것은 1차적인 목적이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근데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을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 알려주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르니까 병을 고친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현실적인 피로를 채워주시면 감사합니다.
안 채워주시면 어떻게 괜찮아요? 예수님은 뭐를 해결해 주시니까 궁극적인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 주시니까.
그래서 오늘 이 적용은 예수님이 우리의 현실적인 피로를 채우시는 것은 우리의 궁극적인 피로를 해결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거예요.
이 본문은 그걸 말하는 거예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읽으면서도 이 중심 사상을 생각 이 만약에 중심 사상이 찾아지면요.
이 본문은 아주 깊은 의미로 내 삶에 적용이 돼요. 예수님이 그때 지붕 뚫고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고 죄를 사하고 했던 그게 오늘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 이 말이야.
이게 본문의 중심 사상이 찾아졌을 때 올바른 적용이 가능하다.
이 말이 저는 목사님들한테 설교를 가르치면서 설명을 해요.
이 본문에서 목사님들이 이 설교를 하실 수 하고 있는지 그러면 동사를 다른 걸로 해볼게요.
내가 이거 보니까 여기 중풍자를 치료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
나는 그럼 동사를 치료하다는 거 치료하셨다는 것으로 한번 해보십시다.
질문 누구를 치료하셨나 언제 치료하셨냐 어디서 치료하셨나 무엇을 치료하셨나 치료하신 결과는 무엇인가 어떻게 치료하셨나 왜 치료하셨나 되죠 여러분이 다른 동사 찾아도 괜찮아요.
해보셔요. 자꾸 해보셔요.
본문 속 해답 누가 치료하신 예수님이 누구를 중풍병자를 언제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신 것을 사람들이 의심했을 때 이거 의심 안 했으면 안 했을지도 몰라요.
어디서 까보나무 집에서 무엇을 그의 중풍병을 어떻게 말씀을 통해 왜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사람들이 알게 하시려고 그럼 만들어봐요.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시자 사람들이 의심했고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음을 사람들이 알게 하시려고 그의 병을 고치셨대.
현대적인 주문은 비슷해요. 똑같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여러분 동사가 혹시 달라도 정확하게 그 본문을 이해하고 질문을 만들고 답을 찾으면 중이 사장은 거기 같이 가요.
물론 이상한 농사를 찾아버리면 좀 딴 길로 가 근데 거의 핵심 동사에 접근을 하면 독사가 약간은 달라도 여기는 뭐 치료하다 용서하다가 이 두 개가 이 본문에서는 아주 중심된 동사니까 머리 아파라 목사님 본문을 이렇게 읽어야 돼요.
이렇게 안 읽어도 괜찮아요.
근데요. 아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이 방법을 갖다 붙이지 않으려고 하면 본문을 어떻게 해야 된다 자꾸 읽어야 돼 또 읽고 그래서 우리 우리 옛날에 조상들이 성인들이 하는 말 중에 독서 100편 의자현 들어보셨습니까?
책을 100번을 읽으면 뭐예요? 의자연 뜻이 뭐예요?
스스로 깨달아진다. 아무것도 몰라도 뭐예요? 그거 한 100번쯤 읽으면 이게 무슨 뜻이구나 이게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건 많이 읽어야 돼요. 난 이런 방법 귀찮아서 모르겠다.
머리 아프다. 동사 찾고 뭐 질문하고 답 찾고 그러시는 분은 많이 읽으셔요.
10번 20번 30번 40번 계속 읽으셔. 그리고 이 본문이 뭘 말씀하고 있지 그러면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기서 육아 원칙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이요.
예수님이 십계명을 왜 줬는지를 잘 모를 때가 있어요.
이 본문을 쭉 읽고 저는 뭐 동사를 찾았냐 하면 말씀하다라고 하는 걸 찾았습니다.
한나 만들어볼게요. 핵심 동사 말씀하다 스피커입니다.
말씀하셨다고 했죠. 누가 말씀하셨나 언제 말씀하셨나 어디서 말씀하셨나 무엇을 말씀하셨나 말씀하신 결과는 무엇인가 어떻게 말씀하셨나 왜 말씀하셨나 이제 이거는 나오겠죠.
그럼 찾아볼게요. 누가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예수님이 하셔도 괜찮습니다.
누구에게 말씀하셨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어요?
십계명을 말씀하셨어요 어떻게 말씀하셨어요? 이 방법도 나와요.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 속에서 말씀하셔요.
여러분 이게 왜 시각 효과 청각 효과 요즘 젊은 친구들 만나 3d 4d 5d 뭐예요?
냄새 맡고 길어 듣고 눈으로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왜 그러셨어요? 여러분이 여행을 가거나 아니면 삶에서 어떤 사건이나 너무나 어떤 강렬한 인상의 눈으로 귀에 막 오감에 확실한 것이 팍 들어오면 그게 어떻게 돼 그다음에는
잊혀지지 않아요. 막 생각이 나요. 왜 이분 다니엘서 2장 뭐 뭐 이렇게 짐승 이거 한 번 보고 나면 뭐 해 이게 잘 안 잊혀져요.
워낙 특이하고 강렬하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 십계명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방법까지가 뭐예요?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어마어마한 장관을 통하여서 말씀하신 거예요.
방법도 나와요. 어떻게 왜 말씀하셨어요? 이게 중요해요.
뒷부분에 나옵니다. 사람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범죄하지 않게 하시려고요.
이게 십계명 주신 세 가지 이유예요. 율법의 세 가지 목적이에요.
거울의 기능, 나침반의 기능, 울타리 기능이 그럼 답을 찾아볼게요.
본문 중심 사상 하나님이 창 엄한 영광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범죄하지 않게 하시려고 십계명을 말씀하셨다 하고 십계명을 주셨다.
어떻게 적용할까요? 본문의 현대적인 적용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마음에 새길 때 혹은 마음을 받아들일 때
그 계명은 우리를 시험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범죄하지 않게 한다는 여러분이 이 베드 타임 스토리 밤에 잘 때 이제 아이들한테 읽어줬습니다.
좀 본문을 길지만 쭉 읽어서 출애굽기 20장 1절부터 21절까지 아이가 듣고 있다가 엄마 그게 뭔 말이야 반드시 여러분 이게 그게 모르는 사람이 뭔 말이야 하고 묻는 거를 염두에 두고 생각하셔요.
그럼 답을 해주셔야 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혜산에서 십계명을 주셨는데 우뢰와 번개 장엄한 광경 속에서 그들을 시험하고 그들이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십계명을 주셨다는 거야.
이게 뭐예요? 중립성상이요. 그러면 아이들이 그냥 듣고 있다가 뭐예요?
그렇구나 이렇게 이해하는 거죠. 그럼 그다음에 한마디 더 해주는 거는 뭐예요?
적용이에요. 우리가 십계명을 그렇게 마음에 새기면 그 계명이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를 범죄하지 않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해
이게 뭐예요? 그렇게 조금 더 줄여가지고 나한테 더 가깝게 설명해 주는 건 적용이에요.
여러분 이 시험한다는 말이 어렵지 않아요. 예수님이 한 번은 빌립하고 이야기하는데 이 오병이요 하기 전에 빌립에게 물어요.
베레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데 이 사람들 다 이거 어떻게 해서 먹이지?
빌립한테 물어요. 그죠? 근데 그 성경에 보면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하여 가로되 이렇게 나와요.
본문에 테스트해요. 왜 테스트를 해요? 그때 베드로 빌립이 뭐라고 대답을 했어야 돼요.
예수님 그거 저한테 왜 물으십니까? 하나님이 여기 계신데 미입니다.
하나님이 극렬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그래야 되지 그죠? 빌립이 뭐라 그래 200데나리온의 떡도 부족하겠습니다.
데나리온은 하루 일당이잖아요. 그러니까 200명의 노동자 일동 하루에 10만 원 잡아도 뭐예요?
200만 원 200만 원어치 200만 원 맞나요?
2천만 원이죠. 2천만 원어치 빵 사와도 뭐예요?
모자라겠습니다.
그러니까 뭐예요? 믿음이 부족한 게 드러난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이 시험하는 건 딱 하나의 이유예요.
본인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깨닫게 하는 거예요.
그게 율법의 거울의 계명이에요. 거울 앞에 딱 서면 뭐예요?
옷에 뭐가 어떻게 입었는지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다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계명 앞에 딱 서면 뭐예요?
내가 보이는 거예요. 그게 시험한다는 뜻이에요.
이게 나쁜 의미가 아니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는 거예요.
그게 율법의 우리를 시험한다는 뜻이고 이게 율법의 거울의 기능이에요.
그래서 이 본문을 탁 읽었을 때는 뭐예요? 하나님이 그런 장엄함 가운데 그런 이유를 통해서 십계명을 주셨구나.
그렇게 이 본문을 이해를 해야지 이걸 읽고 나서 뭐예요?
도대체 이게 뭔 말인지 이걸 왜 주셨는지 이렇게 하면 오리무중이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재미있으시나요? 머리 아프시나요? 재미있어요.
그래서 혹시 동사를 찾기가
좀 어렵다 그러면 이 본문을 그냥 6하 원칙으로 그냥 한번 읽어보셔요.
그러면서 언제 이제 이게 출애굽기 1장 21절에서 1절에서 21절을 동사를 말씀하다라는 동사를 찾지 말고 동사는 뭔지 모르겠고 한번 6하 원칙을 꼭 물어보는 거예요.
언제 어디서 이 뒤에는 다 뭐냐 하면 동사예요. 여러분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이 본문은 뒤에 뭔가 항상 따라 나와야 되는 거예요.
그게 동사예요. 그죠? 그러니까 이게 언제 뒤에 뭐가 붙고 어디서 뒤에 누가 붙고 누가 뭐 뭐가 붙는지 이 본문을 읽으면서 한 6가지 질문을 하면 여기는 무슨 동사가 와야 될 것 같은 느낌이 와요.
그걸 한번 해보라는 거죠. 이거 그 방법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그럼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나올 거 아니에요?
그럼 무엇을 이렇게 되면 뭐해 십계명을 이렇게 나오다 보니까 뒷말은 뭐가 나올 것 같아
주셨다거나 뭐예요? 반포하셨다거나 아니면은 말씀하셨다거나 뭔가 이렇게 동사가 나와야 될 것 같잖아요.
제 말 이해돼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중심 동사가 뭔지를 찾아서 6하 원칙을 만들어도 되고 그건 난 너무 어렵다.
이게 동사 만들기가 그래서 6하 원칙으로 그냥 질문을 해보는 거예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이렇게 하다 보면 뭐예요?
그 뒤에 나오는 게 다 동사입니다. 동사가 나와야지 이게 본문이 설명이 돼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뭐야 이게 말씀하다 말씀하셨다라는 게 나와야 될 것 같아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뭐예요? 어떻게 왜 말씀하신 결과는 뭔가 하는 그러면 본문의 중립 사상이나 현대적 적용은 비슷하게 돼요.
이 시간 첫 번째 제가 첫 번째 강의 시간에 말씀드린 것은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 본문을 주셔서 말씀하신 의도가 있기 때문에
그거를 찾아내는 것이 성경을 읽는 우리 그게 꼭 신학생이 아니고 목사님이 아니어도 모든 신자의 뭐예요?
첫 번째 해야 될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영원한 생명이 달렸기 때문에 그럼 이제 두 번째 이어서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읽기로 좀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다가 광야에서 이제 불뱀에게 물려가지고 많이 죽어가잖아요.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시킨 말씀이 뭐예요? 돛뱀을 만들어 가지고 달아라.
이걸 쳐다보면 살겠다. 모세가 순종하잖아요. 그걸 따라갔던 사람들은 순종했던 사람들은 낳았고 저게 뭐 그런 사람은 죽었어요.
한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달았을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한다는 것을 모세가 알았을까요?
몰랐을 거예요. 근데 이게 어디에 나오는가 하면 요한복음에 가면 이제 나와요.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오잖아요. 선생님
그렇게 다 아시잖아요. 그죠? 어떻게 거듭나야 됩니까?
인자가 높이 들려야 되겠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요한복음 3장 14절에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성경에 특별히 구약이나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이 자기가 계시를 보았고 기록을 했지만 다니엘이 자기가 본 계시를 다 이해한 게 아니에요.
요한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성경 기자가 받아적었지만 계시를 보았지만 다 안 거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본문에는 훨씬 더 깊은 구속사적인 의미가 그러니까 구속사적인 의미라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깊은 그 스토리가 포함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필리펜이라고 하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성경 기자의 글을 통해 그가 완전히 이해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내실 수 있대.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쓴 게 아니고 바울이 쓴 게 아니고 요한이 쓴 게 아니고 하나님이 주셔서 쓴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더 깊은 구속사적인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까 제가 첫 시간에 말한 것은 본문이 1차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찾았어요.
그걸 우리로 말하면 이제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역사적인 해석이에요.
시대 장소 환경 그 당시 청중 그 당시 사건 근데 거기에서도 충분히 본문의 중심 사상을 찾아서 현대 적용을 하면서 적용을 할 수 있어요.
근데 거기에서만 머무르면 안 되고 한 단계 더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 것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사역을 어떻게 진행하고 계시는가 심지어 구약의 본문 속에서도 찾아야 된다는 것이죠.
그게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읽는 이유예요.
여기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여러분 에마말라 가는 제자들 이야기 알잖아요.
막 시무룩하게 있으니까 예수님이 뭘 구약 성명을 해주면서 여기 빨간 글자 보시면 27절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또 24장 44절에 보면 모세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 이게 구약 성경이거든요.
세 가지가 구약 성경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의 모든 성경 구절 단어 하나가 예수님을 설명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적어도 뭐예요? 그 본문 속에 깊은 구속사적인 흐름이 흘러가고 있어서 그게 계시거든요.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게 계시데 그 계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에게 보여주신 계시하고 신약의 바울이나 요한에게 보여주신 계시하고는 약간 좀 양이 달라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조금 희미한 거죠. 분명히 구속에 계시지만 마치 여러분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이렇게 태양이 뜨면 눈으로 볼 수 있잖아요.
빛이 그렇게 강렬하지 않으니까. 근데 점점점점 밝아져서 머리 중천에 떠 있을 때는 못 보잖아요.
그렇게처럼 더 강렬하게 빛이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그의 사람들에게 점점점점 더 점진적으로 주어졌습니다.
근데 모세에게 주어진 거하고 바울에게 주어진 게 다르지 않아요 연결이 되죠.
그게 다 구속적인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예수님의 스토리고 그 하나님의 계시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나는 거죠.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분의 품성 그분의 인격, 그분의 사역 이게 절정이에요.
그러니까 다시 이렇게 되돌아가 보면 계시가 이렇게 쭉 와가지고 여기 여기 예수님에게서 절정을 이루는데 그러면 여기 여기 여기도 보면 뭐예요?
다시 돌아가 보면 그 본문을 딱 잘라보면 뭐예요? 뭔가 여기에는 구속사적인 것이 남아 있다는 거죠.
이게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왔으니까 제 말 이해되나요?
그 구약을 다시 돌아가 보면 뭐예요? 어떤 본문이든지 희미하게나마 예수님을 보여주는
어떤 사건이나 그분의 모습이나 구속적인 특징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아까 말한 것처럼 노뱀 같은 기도는 뭐예요? 분명히 그냥 모세는 광야에서 어떤 놋뱀으로 이해했지만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그걸 십자가로 설명을 한 거거든 자기가 거기에 나타났다라고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여기 실물 교원 115쪽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경의 맨 페이지는 그리스도의 빛을 비춘다. 그리스도는 신약에 나타났는데 어떻게 구약에 구약도 포함되잖아요.
그죠? 성경의 모든 페이지가 그리스도의 빛을 비춘다.
그리스도가 나타난다는 거예요. 성경의 모든 페이지에 그래서 여러분에게 신학적인 배경을 많이 설명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실질적인 게 중요하니까 방법 한번 들어보셨을 겁니다.
표상악 들어보셨죠? 표상악이 뭐냐 하면 구약의 제도 인물 사건의 1차적인 의미를 넘어서 그리스도의 인격 품성 사역의 상징으로 연관시켜서 이해하는 학문이 표상하기.
여러분 요셉 요셉은 분명히 야곱의 아들이에요. 그 인물의 모습이 분명히 나타나지만 야곱 요셉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여요.
그죠? 사랑받는 아들 미움받는 형제 그게 예수님의 모습이거든요.
그렇게 보는 게 뭐예요? 표상학이에요. 여러분 성서 성서는 그 당시 하나님이 거하시겠다고 만든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죠.
그렇지만 뭐예요? 그 안에 첫째 칸에 초대 일곱 촛대는 뭐예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떡상은 뭐예요?
아까 말씀드린 요한복음 5장에 나는 생명의 떡이다 말씀도 됩니다.
그다음에 분향단 그게 다 하나하나하나가 뭐예요?
예수님의 구속사적인 사역을 표상하는 거예요. 그게 표상하기 출애굽 사건 이집트에서 나온 모세를 따라서 나온 사건은 이 죄의 세상에서 뭐예요?
모세가 상징하는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가 나온 거죠.
우리가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은 영원한 하늘 가난으로 가는 구속사적인 사건을 표상하는 거죠.
그게 표성학이 타이파로지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표성학이라는 단어를 모르셨지 그렇게 이해해요.
그다음에 상징 심버 아까 말한 그런 비슷한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약속 성취 예수님이 베들레에 태어나겠다 그러면 그게 미가서 예언이 돼 있잖아요.
그러면 그게 마태복음에 사복음서에 나오잖아요.
그게 약속되었던 것이 성취가 되는 거 딱 구절이 나오는 것을 이것도 뭐예요?
예수님이 보여주는 거예요. 그다음에 비교 이제 이게 좀 많이 그러니까 뭔가 사건과 사람의 모습인데 이게 예수님 모습하고 뭔가 이렇게 비교를 해볼 수 있다는 거죠.
아니면 정반대 많이 설명드리지 않고 예를 들겠습니다.
내가 이 20년 창세기 31장 내가 이 20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겠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 있는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되
하면서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그것을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여러분 이거 중심 사상 찾을 수 있어요. 아까까지 해보면 됩니다.
근데 거기서 한 단계 더 나가자는 거죠. 여러분 여기에 이게 지금 라반의 집에서 야곱이 20년 동안 하면서 고생 엄청 하고 그죠?
양 키울 때 목동 생활할 때 너무 힘들었다는 거거든.
여러분 여기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예수님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지킨 거 그게 어떻게 예수님하고 연관이 돼?
예수님이 양 도둑 안 맞고 잘 지키고 계신 거 여러분 너무 쉬운 단어가 연결되는 단어가 하나 있잖아요.
지금 모세 야곱의 직업이 뭐예요?
목자잖아 그럼 우리는 당연히 뭐가 떠올라야 돼? 소원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떠올라야지.
이 야곱의 모습만 보고 끝내는 게 아니고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이 이 본문 속에서 떠올라야 된다 이 말이에요.
그렇게 보는 게 뭐야? 이렇게 만약에 여기 야곱은 전혀 보지 않고 이 본문 속에서 무조건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만 보면 그것도 잘못이에요.
그거는 역사적인 해석을 무시하는 거예요. 그걸 여러분 이제 신학적인 용어로 알레고리라 그래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먼저 1차적으로 그 본문을 봐야 돼.
아까 그게 중심 사상을 찾아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서만 그치지 말고 뭐예요?
이게 성경이 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속사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거기에서도 인간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경 읽기예요. 또 나와요.
여기 한번 더 찾아봐. 다른 거 찾아보세요. 마지막 구절
40절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부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이 야곱의 이 고백을 통해서 어떤 예수님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지키시는 예수님 오케이 저는 이렇게 봤어요. 시편 121편 시편 122편은 뭐예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눈동자처럼 지키고 계신 하나님이잖아요.
야곱이 그랬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야 야곱 참 부지런했네.
농땡이 안 치고 참 성실했네. 이거 보는 것도 괜찮지만 그리고 보고 나서 뭐야 뭔가 우리가 일 책임을 맡고 뭘 하면 이 정도 해야지 이렇게만 보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모습 속에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고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고 양 대신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목자 되신 예수님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해돼요. 그럼 은혜가 있잖아 이 분명히 예수님이 이야기하는 본문이 아니에요.
야곱의 삶을 이야기하는 거지 라바한테 하는 이야기지
여러분 이게 제 이야기가 아니고 요 본문이 부조와 선지에 그대로 나와요.
두 번째 이야기는 안 나와. 이 야곱의 목자 대신 목자로서의 살았던 삶을 이야기하면서 화이부인의 글에 뭐가 나오냐 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로 이렇게 나와요.
그게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읽는 거예요. 그러니까 표상이죠.
이거는 그렇죠 목자인 야곱의 모습을 통해서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읽는 거죠.
보는 거죠. 하나 더 해보십시다. 이 저주하는 기도예요.
여러분 성경에 저주하는 기도가 나와요. 재밌습니다.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고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고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여러분 이런 기도 해도 돼요. 안 돼요. 재밌죠 여러분 이건 시예요.
이게 만약에 율법서나 역사서에 기록이 돼있으면 난리가 났어요.
여러분 신은 시신은 뭐가 제일 중요해요? 시는 감정이에요.
시인이 왜 그런 시를 쓰는지 감정이 제일 중요한 거거든.
정서 여러분 마치 시를 교리처럼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럼 이제 성경의 장르를 읽는 것에 어떤 또 해석이 필요한데 여러분 너무 가슴이 답답하거들랑 너무 그 사람이 밉거들랑 그 사람한테 가서 저주는 하지 마십시오.
그럼 전혀 덕이 안 되고 근데 하나님한테 와서는 이 기도하셔도 돼요.
우리 하나님한테는 안전 빵이에요. 이거 절대로 흘러나가지를 않아.
카타르시스 여러분 이 기도를 보면서 여기서 예수님 모습 한번 찾아봐요.
황당하죠. 이거 보여주고 여기서 예수님을 찾아보라고 그러니까 어렵지 않아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서 뭐해요?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강구하시던 예수님의 모습과 비교해 보는 거죠.
전혀 예수님의 모습은 없는데 예수님은 이런 기도 안 했다 이 말이죠.
아무리 원수일지라도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하셨지
그러니까 아까 비교 대조 비슷한 걸 찾아내든지 반대를 찾아내든지 뭐예요?
거기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이 말이에요.
먼저 이 본문을 1차적으로 역사적으로 보고 해석하고 읽고 그다음에 뭐예요?
여기서 어떻게 예수님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 봐야 된다는 거 그러면 신명기에 보면 6년 하고 나면 종으로 돌려보내야 되면 종을 이제 해방시켜줘야 돼요.
그런데 그중에 뭐야 안 가겠다 주인이 결혼을 시켜줘가지고 안 가겠다 처자식도 있고 그러면 뭐예요?
데리고 와가지고 문에다가 길을 뚫으라 그랬어요.
그럼 영원히 그 집이 종이 되겠다 그래요. 이 본문이 중심 사상이에요.
있어요. 그럼 여기서 여러분 예수님 모습 한번 찾아봐요.
복을 주시는 분 갑자기 뜬금없이 나오면 안 돼요. 왜냐하면 여기서 예수님의 모습을 찾아야 된다라고 말할 때는 개연성이 있어야 돼요.
논리적인 개연성이 없이 팍 떼어버리면 그게 이제 알레고리가 되는 거예요.
당신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잖아요.
이유가 있어야 돼. 여러분 지금 이제 성경을 그렇게 한 번도 안 보신 거야 왜냐하면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찾아내는 건 쉬워요.
예수님이 직접 나와 있으니까. 근데 구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찾는 건 쉽지 않아요.
여러분 제가 시간이 있으면 막 질문도 할 텐데 여기서 보면 억지로 된 종이 나와요.
그죠? 팔려간 거거든. 돈 때문에 빚 때문에 이 모습은 어떻게 보면 죄의 종이 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뭐 상징한다고 그럴까요? 여기 자원하게 된 종이 나오잖아요.
사랑 때문에 인류의 종이 되신 그리스도 여기 보면은 주인과 그의 처자식 때문에 내가 자유하지 않고 종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나와요.
처 자식 때문에 종 되겠다고 하는 사람 나 이해가 되는데, 자기를 6년 동안 데리고 있었던 주인이 너무 좋아가지고 나 이 집에 영원히 종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었을 거래요. 그 주인이 너무 좋아가지고
자원화에 된 종이잖아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자원화에서 오신 거잖아요.
종으로. 그래서 이 자원하여 된 이 종의 모습을 통해서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비교해 보는 거죠. 예수님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그 사람 뒤에 못 들었어요. 그 사람이 자원하여 종이 되겠다는 표가 뭐예요?
귀 뚫은 거예요. 귀에 구멍 넣은 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자원하여서 인류의 종이 되신 그 표가 뭐예요?
십자가지 이 종의 흔적은 십자가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 말이야. 무조건 뜬금없이 저 못 자국. 여기 기뚫은 건 십자가다.
그리 안 돼. 그럼 뭔 근거로 이렇게 나오는 거지? 근데 이 사람이 자원하게 된 종이다.
자원하여 된 종을 보여주는 그 흔적이다. 이렇게 되면 뭐예요?
예수님은 자원하여 오신 종이시다. 우리를 섬기셨고
그것을 영원히 드러내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이러면 뭐예요? 논리적인 개인성이 있는 거예요.
거기 끄끄뚝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이 말이죠. 이렇게 이 본문의 역사적인 의미를 첫 번째로 보고 중심 사상을 찾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는 모습도 찾아내는 것.
이게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경 읽기예요. 또 하나 해볼까요?
이 다윗이 왕 되기 전에 사울에게 늘 쫓겨다닐 때 한 번은 목이 너무 말랐는지 베드레이.
그때 내 목동 시절에 그때 그 우물에서 마신 물 참 맛있었는데 그 말을 해요.
옆에 있던 새 용서가 뭐예요? 그 말 듣고 물 뜨러 가요.
블레셋 사람하고 충돌을 하면서 물을 뜨러 와요. 다윗이 너무 놀랍니다.
그래서 물 드십시오. 장군님 이건 물이 아니고 피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어 바쳐요. 이 본문에 중심 사상이 있겠죠 그죠?
다윗이 이런 사람도 있었고
말 조심을 해야 되나 지나가는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되나 어떤 걸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중립 사상이 있어요. 그럼 여기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한번 찾아보시라는 거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아.
본문을 그 다윗의 사건으로만 보지. 여러분 아까 그 종이 자원해에 된 종이잖아요.
이 새 용사도 뭐예요? 누가 시켜서 간 거예요? 자발적으로 간 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건 뭐예요?
자발적으로 오신 거예요. 새 용서의 이 선택은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선택이죠.
못 들어봤어요. 못 데리고 왔잖아. 예수님 이 땅에 왜 오셨어요?
영원한 생명수를 마련하기 위해서 오셨잖아요. 그 사람들은 충돌하고 전투를 했을지 몰라도 죽지는 않았어요.
피는 안 흘렸잖아요. 근데 예수님은 그 생명수를 마련하기 위해서 자신이 피를 흘리셔야만 했다.
이 말이지. 그래서 이런 구약의 어떤 사건과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끌어낼 수 있다는 말이
예수 그리스도 해석해낼 수 있었다. 있다. 이 말이 제 말 이해되시나요?
이 본문의 의미를 보고 1차적으로 이해한 다음에 이렇게 가야 돼요.
안 그러면 당신 왜 이 본문에서 그렇게 보냐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면 이 자원 같은 것도 한번 봐요. 제가 본문을 한번 읽어볼게요.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건 넷이 있다. 곧 힘이 없는 종류로 된 먹을 것을 여름에 준비하는 개미와 약한 종류로 된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임금이 없어도 다 떼를 지어 나가는 메뚜기와 손에 잡힐 만하여도 완공이 있는 도마비뉴를 이게 약의 아들 아구리 쓴 거예요.
이디아리가 우갈리인데 아마 아들인 것 같아요. 이렇게 이 땅에 이 민물을 보고 참 지혜로운 걸 설명한 거예요.
이 본문의 중심 사상은 지혜로운 곤충 뭐고 혹은 민물 넷이 있다.
이게 중심 사상인데 여러분 개미를 통해 뭔 지혜가 있어요?
여기 힘이 없는 종류인데 먹을 것을 뭐야? 여름에 준비한대 여름에
이거 뭐예요? 곧 뭐가 닥친다. 곧 겨울이 닥친다.
그 겨울을 위해서 음식이 많이 나지 않는 때를 위해서 여름에 뭐예요?
우리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알잖아요. 그 여름에 음식을 준비하는 거죠.
때를 위해서 지혜예요. 여러분 우리 인생에 늘 봄날만 있고 좋은 날만 있지 않아요.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도 몰라요.
그걸 알고서 미리 준비하는 사람은 지혜로워야 지혜롭죠.
요셉이 그랬잖아요. 흉년이 들 것을. 그래서 이 개미를 보면서 때를 아는 지혜를 배우는 거야.
사바는 너구리 뭐 토끼 종류 뭐 이런 거예요 여기 보니까 뭐예요?
약한 종류로 된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이게 무슨 지혜예요?
이게 진짜 어디가 안전한지를 아는 거야 바위 틈 개미가 때를 안다고 그러면 이 사반 너구리는 장소를 아는 거죠.
어디가 안전한지 안전한 데는 집 지어야 될 거 아니에요?
메뚜기 임금은 없는데 다 떼를 지어 나가는 메뚜기 이게 뭔 지혜를 배울까요?
여러분 메뚜기가 한 마리 두 마리 무서워요.
메뚜기가 한 마리 두 마리 무서워요. 근데 메뚜기가 무서운 이유가 뭐예요?
이게 어마어마하게 함께 몰려서 확 지나가버리면 가축이든지 식물이든지 나만 아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이 메뚜기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연합의 힘이죠.
공동체의 파워 함께 있을 때 얼마나 그게 파워가 크다는 것을 메뚜기를 통해서 배운 거예요.
손에 잡힐 만 하여도 완공에 있는 도마뱀 여러분 만약에 여기 교회 본당에 여기 교회 도마뱀이 있으면 어떻게 돼?
안 맞잖아요. 도마뱀은 바깥에 있고 풀 속에 있고 숲속에 있어야 되지 여기 이렇게 왕궁에 도마뱀이 왕궁은 깨끗하고 왕이 가는 곳인데 동화뱀이 있다.
너무 어색하잖아요. 이게 뭘 이야기하는가 하면 은혜죠.
안 맞는 존재에게 혜택이 주어진 거지 은혜가 뭔지를 아는 지혜를 배운 거지.
여러분 이것만 찾아내도 뭐예요? 이거 엄청난 지혜죠.
여기까지만 하지 말고 그러면 그럼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가보자는 거지.
예수 그리스도 때 하면 어떻게 나와요? 여러분 성경에 때는 예수님하고 엄청나게 관련이 있습니다.
때가 참해. 여자에게서 나시고 때가 차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때가 차서 예수님은 재림하실 겁니다.
그분 때에 맞추셨지 때를 아는 그분은 정말 지혜로우신 분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뭐예요? 여자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뭐예요?
포도즙이 떨어진 거야 그래서 마리아가 포도즙이 떨어졌다.
그러니까 뭐예요? 예수님이 뭐라 그래 여자야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는 아직 안 됐습니까? 그 때가 뭔 때예요? 십자가의 때를 말하는 거예요.
요한복음에 그때 그래서 그 마리아는 물리적인 포도즙을 이야기했지만 예수님은 그 물리적인 포도즙이 상징하는 뭐예요?
피를 이야기한 거야. 그 송만찬 예식 때 이거 먹어라 이거 마셔라.
이건 내가 흘릴 피곤 살이다. 그
그래서 내가 아직 그 포도즙이 상징하는 십자가의 피를 흘려야 될 때가 아직 안 됐습니다.
AD 31년 봄이 안 됐습니다. 유월절이 아닙니다라고 하는 사실을 설명한 거예요.
그 때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늘 때를 보며 사신 거죠.
내가 이제 올라가야 될 때가 됐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게 뭐예요?
다니엘서 9장에 예언된 십자가에 죽어야 될 때를 예수님은 알고 계셨어요.
그게 지혜예요. 그다음 뭐예요? 안식처 바위 틈이 어딘지 아는 지 이 너구리 보면서 뭐예요?
나반 사반 이 반석 바위가 뭐예요? 바위가 시편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고린도전서에 보면 여호와는 예수 그리스도는 반석이시라.
이 세상에 안전한 거처가 어디예요? 아파트예요 호텔이에요.
예수 그리스도 아니고 반석이신 그분 위라는 거죠.
그걸 아는 게 지혜고 그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걸 설명하는 거죠.
읽어내야 되는 거죠. 연합의 힘, 공동체의 힘을 아는 지혜
여러분 요한복음 17장에 보니까 예수님이 계속 기도해야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계속 예수님이 뭘 기도해요?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잖아.
그게 뭐 그게 교회 그게 연합의 힘을 예수님이 아시고 기도하신 거예요.
예수님은 은혜의 근원이 되시잖아요. 그죠 그분이 은혜를 베푸시오.
우리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고 무미 버섯 같은 게 뭐요?
사울의 아들이지만 사울의 아들입니까? 요나단의 아들이죠.
그를 이렇게 절개되었는데 장애인이 되었는데 다윗이 그의 상에 뭐예요?
초청하잖아 왕의 식탁에 그건 뭘로 설명할 수밖에 없어요.
그 은혜의 은혜 그 은혜의 근원이 예수님이라는 거지.
그래서 여러분 이런 자언을 읽어도 그 본문을 통해서 배우는 게 있고 깨닫는 게 있고 이걸 통해서도 뭐예요?
예수님을 한번 찾아내보자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여기 자문 13장 20절에 보면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그래서 여기 가장 지혜로운 분이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지 그래서 우리는 이 지혜 이야기하고 개미 곤충 이걸 통해서 지혜를 보지만 지혜의 근원이신 누구를 예수님을 이 본문 속에서 볼 수 있어야 된다니까 이 재밌어요.
이렇게 성경을 읽으면 그러면 성경 인물을 보자는 거죠.
무리가 모였을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
요나가 니노의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 것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심판 때에 난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 왔음이거니와 빨간 글자 뭐라고 적혀 있어요?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어디 있어요?
누구를 가리키는 거예요? 예수님 자기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지혜로웠던 그 솔로몬보다 뭐야 더 큰 니가 여기 있다.
요나보다 더 큰 니가 여기 있다. 그러니까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을 통해서 누구를 설명하는 거예요 예수님 본인이 자기를 설명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도 뭐예요? 성경을 보면서 그 사람도 볼 수 있어야 되지만 그 사람의 모습에 잘한 거나 잘못한 모습을 통해서 누구를 볼 수 있어야 돼요 예수님을 볼 수 있어 이게 표상학이에요.
아까 야곱 봤잖아요. 목자 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된다.
그럼 봐봐요. 여기서 보면 이 시드니 나우누스라고 하는 사람 쓴 책에 보면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거기에 포함된 것은 그들이 아주 경건했거나 사악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쏙 좋은 모범이거나 피해할 모범이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이유는 그들이 구속의 역사에서 특별한 임무, 특별한 사역을 갖고 있기 때문이래요.
물론 성경의 모범적인 의미가 있어요. 바울처럼 살아야 돼.
다윗처럼 뭐 해야 돼 있는데 그건 1차적인 의미가 아니에요.
1차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사울을 왜 세우셨고 다윗을 왜 두셨고 요나단을 왜 두셨고 바울을 왜 두셨는지 그걸 찾아내는 게 1차적인 의미예요.
그다음에 뭐예요? 저 사람이 저런 걸 잘못했고 이런 걸 잘했고, 그것은 저 구속사적인 역할을 잘 하도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충실했기 때문에 저렇게 할 수 있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실했기 때문에 저렇게 할 수 없었다라고 하는 그들의 행동 너머와 삶 너머에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도 그렇게 되고 잘못하면 저렇게 되겠구나.
그렇게 봐야지 그 모범 자체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게 성경을 주신 이유예요. 다 실수한 사람들은 그럼 봐봐요.
여러분 아브라함 창세기 12장에 갈대 우르 열떠나고 다 버리고 떠난 이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서 아브라함보다 더 나은 아브라함의 모습
한번 쳐다봐요. 아브라함이 뭐 하고 온 거예요? 지금 갈대 우려를 안락하고 편안한 환경을 뭐 한 거예요?
떠나온 거잖아요. 그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뭐예요?
하늘 보좌를 버리고 떠나온 거잖아요. 그래서 더 나은 아브라함의 모습이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인다.
이 말이 야광에서 씨름하던 야곱의 모습을 통해서 더 나은 야곱을 한번 찾아봐요.
예수님이 어디서 기도하는 개세마니의 모습 정말 붙들고 사투하는 그죠?
하나님을 붙들고 야곱의 모습만 야포공에서 야곱이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했구나.
오케이 찾아내야 되고, 이 야곱의 모습을 통해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또 볼 수 있어야 된대요.
더 나은 야곱 요 봐봐. 요보다 더 나은 요을 한번 찾아보세요.
이 요의 고난은 무슨 고난이에요? 자기가 잘못했어요.
까닭 없는 고난이잖아. 여러분 예수님의 고난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뭐예요?
그분이 그럴 만한 일을 한 게 죄를 이어서가 아니잖아요.
까닭 없는 핍박
요기를 보면서 요보다 더 나은 요을 찾아야 된다는 거지.
여러분 골리앗 다윗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 인생의 거인 같은 이거를 싸워야 됩니다.
믿음으로 그렇게 읽어도 괜찮은데 부담스러워 나는 그 믿음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될 수 있거든요.
여기서 다윗을 통해서 다윗보다 더 나은 다윗 찾아보셔요.
여러분 여기에서 다윗이 싸움 싸움은 대신해서 싸운 거예요 누구를 대신하여 나간 거예요?
지금 다윗이 전쟁터에 나갈 상황이 아니잖아요. 이건 누가 싸워야 되는 싸움이에요 이스라엘 군대가 싸워야 되는 거잖아요.
그 이스라엘 군대를 대신하여 아가 못 나가고 있으니까 뭐야 어떻게 저 사람이 저렇게 사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하는가 나가잖아요.
여러분 예수님이 시험 당하신 거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신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거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거예요.
영원한 형벌.
그러니까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그 승리를 얻어서 그가 다윗이 얻은 승리를 다윗이 얻은 승리 다윗으로만 끝나요.
백성들이 그 승리를 같이 누려요. 그래서 다윗이 이룬 승리가 백성들의 승리가 된 것처럼 그들은 함께 기뻐하잖아요.
여러분 예수님이 이루신 그 승리가 뭐예요? 오늘 우리의 승리로 전가시켜주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길 수 없어요. 여러분이 시험도 이길 수 없고 그래서 그분이 무슨 시험을 이기셨는지 그걸 보면서 저 승리가 누구 거다 내 거다 내 거 믿음으로 나가서 그것을 받아들일 때 뭐야 나도 먹는 거 경제적으로 혹은 사는 거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시험에 이길 수 있는 거죠.
이분이 이루시는 공로를 내가 감동적으로 내 것이라고 받아들일 때 이렇게 보면 이 다윗의 모습 속에서 더 나은 다윗 우리를 대신하여 세상 앞에서 사단 앞에서 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여진다 이 말이에요.
그렇죠 요나 더 나은 요나 아까 예수님 이야기했잖아 뭐 물고기 배 속에 사흘 있었던 것도 되지만 뭐예요?
이 풍랑이는 이 바닷 속에 요나가 던져지니까 뭐예요?
잠잠해지고 나머지 선원들이 다 살았어요. 예수님이 이 죄의 풍랑 속에 자신을 던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마련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 볼 때 어떤 인물을 보더라도 그 사람보다 더 나은 그 사람 예수님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여러분 성경 읽을 인물을 볼 때 우리가 오해하지 않는 방법이에요.
첫 번째 많은 사람들이 본문을 보면서 저 사람처럼 살아야 돼.
저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 돼. 그게 제일 빠른 방법이에요.
성경 인물을 보면서 그러나 그것은 조심해야 돼요.
여기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나 이 그리스도가 이 사람에게 무슨 역할을 맡겼나 왜 실패했나 왜 성공했나 그걸 볼 수 있어야 되는 거 재밌습니다.
사사기 19장 여기가 무장한 남편 나옵니다.
자기가 위기에 처하니까 뭐야 처벌 내려줘가지고 토막 살인 사건 내가지고 뭐야 뿔뿔이 흩어져가지고 사사시대 때 비참한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
여러분 이 모습 속에서도 이 사사기 19장에 나타난 무장한 남편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여질까요?
찾을 수 있을까요? 제가 힌트를 하나 드릴게요. 대조해 보십시오.
비교해 보지 말고 반대 한 가지 팁을 더 드리면 남편 에베소서 5장 22절, 23절을 보면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뭐예요?
아내와 남편으로 비교하자. 여러분 이 무정한 남편을 보면서 우리가 믿는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은 이렇게 무정한 분이 아니다라는 거지 자기가 죽을지언정 사람을 내어줄 수 없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를 대신 내어준 거 아닌 이 무정한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뭐예요?
우리로 하는 이런 무정한 남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실한 남편을 뭐예요?
찾아낼 수 있어야 된다는 거야
대조되는 거죠. 비교가 아니고 똑같은 모습이 아니라 전혀 반대되는 모습이잖아.
아까 그 저주의 기도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기도를 하셨던 그분처럼 그러니까 어떤 본문이든지 뭐예요?
여기서 어떻게 예수님을 한번 찾아볼까? 표상화 비교 대조 설명 혹은 그분의 인격과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과 이런 것들을 되게 재미있습니다.
첫 번째 제가 강의했던 핵심 주제는 그 본문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에 대한 의도 목적, 그 중심 사상을 찾아내는 거 중심 사상을 찾아내는 거 두 번째는 그 중심 사상을 찾아내는 충실한 읽기와 해석을 한 단계 더 넘어서 그게 구속사적인 말씀이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스토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십자가의 절정에 이르는 그 예수님의 인격과 삶과 그분의 사역의 면면들이 녹아 있기 때문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그걸 찾아보는 거죠.
그리스도보다 더 나은 아 어떤 인물의 더 나은 그리스도의 모습들
표상이나 그런 것들 그게 이제 두 번째 주제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읽자.
여기까지 두 번째 강의입니다. 시간이 이제 거의 다 됐기 때문에 제가 이제 예내신 이 부분을 좀 읽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 재림교회 예언의 신에 있는 이 예언의 신이라고 하는 건 좀 표현이 틀렸어요.
여러분 예언의 신은 성령을 말하는 거예요. 예언을 하게 하시는 예언을 하게 하시는 신 성령이에요.
엘렌 와이스의 그런 예언의 신의 영감의 글이죠. 증언의 말씀 근데 우리가 통상적으로 예언의 신 의신 재림교회에서는 그렇게 쓰기 때문에 이제 저도 쓰겠습니다.
저는 재림교회 신자는 모태 신자는 재림교회 처음부터 재림교회 신자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장로교의 모태 신자였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장로교회를 다니셨고 저는 고등학교 3학년 시험을 치르고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침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전공이 신학이 아니고 저는 공대를 졸업했습니다.
공대
제 전공은 기계설계공학입니다. 이제 제가 이제 교회 생활을 이제 하는데 그때 교회 누나 이제 저랑 친했던 한 누나가 대쟁투 총서를 읽어야 된다고 저보고 대쟁투 총서가 뭡니까?
그런 게 아주 중요한 책이 꼭 읽어야 됩니까? 꼭 읽어야 되는데 그래서 제가 여름방학 때 과외를 해가지고 아르바이트를 해가지고 돈을 10만 원을 받아가지고 이 책을 샀어요.
그랬더니 세로로 된 거 죄가 용납된 이유 세로로 된 거 이렇게 밑줄을 읽는데 도대체 뭐 이런 책이 다 있나 처음 보는 내용이 밑줄을 치고 감동받은 건 노트에 적고 시대 소망 읽을 때는 거의 다 적었어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10권의 책을 읽으면서 10권을 탁 듣고 나니까 제 마음속에 머릿에 뚜렷한 생각이 두 가지가 탁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실까 첫 번째였고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있구나.
그리고 내가 여기 중간에 있는데 내가 하나님을 택할 수도 있고 사탄을 택할 수도 있고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과 이 세상 역사가 데 쟁투구나 이게 깨달아졌어요.
이 두 가지가 딱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 신앙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 책을 읽기 전과 읽기 후에 그리고 신학 공부는 제가 나중에 하게 되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이 데쟁투 총서 특별히 예언의 신의 말씀 중에 이 대쟁투 총서 10권은 제 신앙의 뿌리였습니다.
뿌리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저는 지금도 설교하거나 강의할 때 제일 많이 인용하는 말씀 책은 시대 소망이에요.
여러분 다 아시잖아요. 그죠? 근데 한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우리 재림교회가 이 화이부인의 증언의 말씀 이 선지자의 글을 갖고 있는 것이 디딤돌이 될까요?
걸림돌이 될까요? 그저 좋은 말씀하셨어. 양날의 칼이야.
잘 쓰면은 참 좋은 건데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많은 이설들이 주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근거는 화이프니 글이에요.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게 잘 써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컴퓨터 잘만 쓰면 뭐예요?
얼마나 좋은 일 해요? 근데 이게 잘못 쓰면 뭐예요?
그렇죠 휴대폰 이 엄청난 기능이 있는 거 잘 써야 돼.
그죠? 잘못 쓰면은 그것처럼 우리의 시간과 마음을 다 뺏어가 버리는 게 없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연신 증언의 말씀을 왜 주셨는가?
이게 중요해요. 여기 리벤 헤럴드에 보면 사람들이 성경에 거의 주목하지 않으므로 주님께서는 남녀들을 보다 큰 빛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작은 빛을 주셨다.
이 큰 빛이 뭐예요? 성경이에요 성경을 잘 안 보니까 뭐야?
성경을 좀 보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작은 빛을 주셨다는 거예요.
작은 빛이 화이프니 글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됩니다.
주가 뭐 해야 돼요? 성경이어야 돼요.
이 교회 증언 2번에 보면 기록된 증언들은 새로운 빛을 주고자 함이 아니라 이미 게시된 영감의 진리 이거 뭐예요?
성경의 진리예요. 성경을 마음에 생생하게 부각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광화문에 가면 세종대왕 동상이 있어요. 그 세종대왕 동상 혹시 밤에 보셨어요?
밤에는 그 세종대왕 동상이 잘 안 보이잖아. 그 밑에 뭐가 있냐면 조명이 있어요.
그 조명이 어디를 비추냐면 세종대왕을 비춰요. 그래서 저 멀리 있는 사람들이 보면 뭐예요?
조명이 보여요 세종대왕이 보여요. 세종대왕이 보여요.
그렇게 비추는 그 조명이 화이의 글이에요. 화이의 글이 보여주고자 하는 분이 누구냐 이 말이에요.
그리스도라는 거죠. 하나님이시고 성령이에요.
그분들이 하시는 일인 거죠. 그래서 자꾸 엘레이스 그러니까 여러분 엘레와이스의 글을 잘 자꾸 읽었을 때 예수님이 또렷해진다.
하나님 내가 몰랐던 하나님의 모습 성령의 사역이 분명해진다.
그럼 제대로 읽은 거예요.
근데 뭔가 딴 생각으로 갔다. 그거 잘 못 읽은 거예요.
연희 신을 올바로 읽기 전 두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만 하면 절대로 오류에 빠지지 않고 그분의 글을 통해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맥이에요. 두 번째는 뭐예? 역사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돼 문맥과 역사적인 상황을 고려하는 원칙들이 올바른 해석의 핵심이다.
이거는 엘레나잇의 글뿐 아니라 성경의 해석도 마찬가지고 어떤 사람의 말도 뭐 여러분 요즘 정치인들 싸우는 거 보면 뭐 한마디 한 거 갖고 뭐예요?
꼬투리 잡아갖고 말하잖아요. 그럼 사람 나와서 해명하잖아.
내가 그 말한 거는 그 뜻이 아니고 뭐예요? 이런 상황 속에서 한 거다 막 이러잖아요.
왜냐하면 큰 컨텍스트가 있거든요. 문맥이 그리고 역사적인 상황 그때 그게 무슨 상황이었고 그 말이나 혹은 그 정황이 뭐였는지 이 두 가지 첫 번째 역사적인 상황 한번 좀 이야기해 볼게요.
여러분 영혼 시조 여기 보면 안식일에 구두를 닦거나 면도를 하지 마라 그랬어.
요즘 사람들이 읽으면 이거 어떻게 돼? 만약 이 본문을 이거 읽고 와가지고 뭐야 안식일에 뭐 하면 안 돼 구두를 닦아나 면담하면 안 돼 이러면 곤란하다 이 말이야 이 말에 뭐가 이렇게 보겠습니다.
부주의하게 많은 이가 구두를 닦고 면도하는 걸 안식일이 시작한 후 때까지 후에까지 미룬다.
그래선 안 된다. 누구든지 평일에 할 그런 일을 게을리 했다면 안식일이 지나기까지 면도하지 않은 채로, 그리고 그들의 구두가 더러운 채로 내버려둘 만큼 하나님의 거룩한 시간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 그 당시에 면도하는 거는 지금하고 달라요.
지금 면도 어떻게 해요? 우리 남자분들 계시지만 비노 뭐 하거나 뭐 이렇게 거품 뿌려가지고 뭐해요 하면 돼요.
여러분 옛날에 우리 머리 미용실 미용실 말고 이발소에 가면은 사람들이 면도 뭐로 해요?
칼 있잖아요. 그렇죠 거기를 어디에 갈아 가죽이나 뭐야 여러분 그때보다 훨씬 더 했어.
그때는 그러니까 칼 하나를 뭐예요?
갈아야 돼 엄청나게 일이고 거품 하나 만드는 건 뭐예요?
요즘은 빙어가 쫙 누르면 나오지만 그때는 그게 아니에요.
일이 훨씬 번거로워 엄청난 일인 거예요. 매도하는 일이 그러니까 그게 뭐예요?
안식일에 자꾸 마음을 빼앗기고 너무 번거롭고 하는 일은 안식일 되기 전에 해라 그런 거예요.
화장품 쓰지 마라. 그래서 안식이래. 그러면 지금 여성들은 어때?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여러분 지금 화장품하고 그때 화장품은 달라요 그때 화장품은 에나멜을 발랐어요.
여러분 에나멜이 뭐냐 하면 여기 이빨에 충치 생겼을 때 때 없는 거 있잖아요.
시커먼 거 그런 것들이 화장품 성분에 있어서 그게 독이지 거의 지금은 그게 정제가 돼 있어서 하지만 그런 걸 발랐다니깐요.
그러니까 지금 화장품하고 그때 화장품하고 완전히 달라요.
그거 갖고 와가지고 뭐예요? 안식일 화장하면 안 돼.
안식일이 아니고 우리는 화장하면 안 돼. 그렇게 갖고 오기가 역사적인 정황에 무리가 있다 이 말이에요.
그 당시에 왜 그 말을 했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이 말이지 그걸 무시하고 딱 갖고 와가지고 뭐예요?
가발을 쓰지 말라 그랬어요. 요즘 가발 쓰고 다니시는 분들이 있죠.
우리 교인 중에서도 여기 보면 가발을 씀으로 많은 이들이 이성을 잃고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그랬어요.
여러분 이때 가발은 요즘 가발하고 달라요 그때 가발은요 곱슬곱슬한 목화솜, 머리털 해초 양틀 이기 그러니까 벌레가 등질등질했어요.
거기다 염색을 해갖고 덮어신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뭐 건강에 엄청난 문제가 생긴 거야 그거 하지 마라는 거야.
정당한 걸 알아야 되는 거지. 자전거 사는데 돈을 쓰지 말라.
그때 자전거는 돈보다 우리 자동차보다 비쌌습니다.
보험 생명보험에 가입하지 말라. 요즘 생명보험 가입하면 안 돼 해도 돼요.
과도하게 하는 건 안 좋지만 그 당시 생명보험은 전부 다 부실했습니다.
이게 거의 사기꾼들이었어요. 이런 문맥적인 문맥이 아니고 역사적인 정황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혹시 어떤 본문에서 이 파이프의 글을 읽다가 이게 조금 나하고 안 맞는 것 같은데 그러면 찾아보시거나 어디 물어보셔요?
이게 지금에도 적용이 되는 건지 이랬대 하이프이네 그래 이거 무조건 갖고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중요한 이게 더 중요합니다. 문맥꼬리하기 앞뒤 문맥을 고려하여서 전체적인 문맥 안에서 깊이를 읽어야 됩니다.
여기 화이프이 직접 얘기하죠. 카리부분 1 44쪽에 나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주신 증언들을 자기가 이제 계시록 본 거죠.
증언들을 제멋대로 취하여 저들의 상상을 따라 적당히 적용하며 연관성이 없는 문장들을 여기저기서 발췌하여 저의 뜻에 맞도록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리하여 불쌍한 영혼들이 갈피를 못 잡고 당황하게 되며 만약 저들이 받은 모든 기별을 순서를 따라 읽었다면 바르게 적용할 때를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며 혼돈되지 않았을 것이다.
뚝뚝 떼온 거예요. 여러분 이게 신천지가 하는 거예요.
여러분 비유풀이 여기 탁 떼오고 저기 탁 떼고 단어 하나 딱 맞추고 뭐야 완전히 새로운 사상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아무리 성경에서 갖고 왔다 하더라도 그건 성경적인 사상이 아니에요.
여러분 예언의 신은 큰 그림인 선과 악의 데이쟁투에서 저자가 참으로 말하려고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먼저 파악을 해야 돼.
제가 미국 유학 중에 샌프란시스코에 집회를 갔었어요.
비행기 시간이 이제 집회가 마치고 돌아올 때에 비행기 시간이 좀 남아 있어서 그 담임 목사님이 저를 스탠버드 대학에다가 이렇게 좀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여자 수가 참 많아요. 캠퍼스가 참 아름답습니다.
돈이 많은 대학이라서 예뻐요. 그러면서 이렇게 쭉 들어가는데
그 안에 가보면 이 로댕의 박물관이 있어요. 조각가잖아요.
딱 이 건물 안에 들어가 보면 이 로댕이 생각하는 사람이 딱 중앙에 있어요.
어릴 때 제가 이걸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보고 이렇게 할 때 도대체 저를 생각하는 사람이 뭐 생각할까?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아무것도 안 읽고 있거든요.
내 팬티 어디 갔을까 우리 어릴 때 막 그렇게 상상을 했거든요.
저는 여기 가고 나서 이걸 깨달아서 이 사람이 뭐 생각하는지 바깥에 나오면 이걸 안에 있고 이 바깥에 있는 게 이게 지옥의 문이라고 하는 로댕의 걸작품이에요.
거의 완성은 못 시켰는데 이게 한 4m가 조금 안 되고 이게 6m가 넘어요.
여러분 로딩을 생각하는 사람의 작품은 단독 작품이 아니에요.
여기서 여기 근데 이 중요한 것 중에서 하나씩 떼가지고 더 크게 만든 거야.
여러분 이 작품은 지옥의 문이에요. 약 190명의 사람이 지옥의 문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가까이 가보면 이 얼굴들이 다 일그러져 있어요.
지옥의 문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그걸 로뎅이 생각하는 사람이 턱을 딱 보고 밑을 물끄럼히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뭐 생각했을까요?
왜 이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이렇게 지옥의 문으로 떨어지고 있을까 뭐 어쨌든 간에 뭐와 관련된 것이었을까요?
구원 멸망 심판 뭐 이런 거예요. 이런 거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요놈을 딱 떼놓고 와서 보니까 뭐야 이제 우리 나름대로 상상하는 거야.
자기가 배고프니까 뭐야 점심은 뭐 먹을까? 자기가 옷에 관심이 많으면 뭐야 내 옷이 어디 갔을까 그러니까 우리가 관심 있는 쪽으로 이 사람을 보는 거죠.
이 작품을 근데 이게 이게 여러분 하나의 본문이라 그러면 이 지옥의 문은 문맥이에요.
이놈이 그 안에 딱 들어가 있으면 뭐예요? 우리가 상상의 나래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요 안에 딱 드러나지 요 안에서 요 로댕의 작품을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해야지 내 마음대로 생각할 수 없다는 거죠.
성경 말씀도 그렇고 화이부인도 그렇고 그렇다는 거예요.
이 안이 있는데 이거 딱 떼가지고 와가지고 뭐야 이게 무슨 뜻이다라고 내 마음대로 설명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재림교회에서 그렇게 봐요.
거기에서 이단이라고 해도 이설이 생기는 것입니다.
잘못된 가르침. 그래서 이 문장이 있으면 단락이 있고 페이지가 있고 장이 있고 뭐 딱 맞는데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 성경에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성경에 하나님이 없다라는 말 있어요. 그죠? 그죠?
시편 14편에 있어. 1절에 여러분 이걸 갖다 가면 뭐예요?
왜 성경에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 있어? 그럼 어떻게 돼요?
이게 왜 있는지를 설명을 해줘야 되잖아.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정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이런 문맥 속에 이게 들어가 있는 거지. 야 성경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말이 있어.
이러면 어떻게 돼요? 이런 거 많아요. 여러분 이건 넘어가겠습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잘 봐봐요. 여기 여기 중요한 것 좀 하나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온전한 것이 온전하라 그래요. 성경에
여러분 여기 내 이웃을 사랑하고 내 원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성경의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은 없어요.
이게 지금 창세기 레위기 19장 18절의 인용인데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구약에 있어요.
레위기 19장 18절에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은 없어요.
레위기 19장 18절에 보면 원수를 갚지 마라 동포를 원망하지 마라 이렇게 나와 있지.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널리 알려진 격언인 것 같아요.
또 내 이웃을 사랑하고 내 원수를 미워하라고 했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 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오 세리도 이같지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무난하면 남들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지 아니하느냐
같이 읽습니다. 48절 시작.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여러분 만약에 마태복음 5장 48절을 딱 떼가지고 와가지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영어로 퍼펙트예요. 이걸 떼오면 이 의미가 내 나름대로 상상을 하는 거예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근데 이게 마태복음 5장 적어도 43절 안에 보면 이건 그 말이 아니에요.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하는데 원수도 사랑하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이같이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될 거다. 딸이 될 거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원수를 사랑하거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비를 나쁜 놈, 좋은 놈 안 가리고 주거든, 원수 친절한 사람 다 주거든.
내가 그렇게 하는데 너희가 내 자녀가 되려면 너희도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냐 그러면서 뭐 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래요.
그러니까 이 온전하는 말은 이 문맥 속에서는 의미가 뭐 뭐예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이 말이에요.
왜 너희는 자랑해주는 사람한테는 사랑하지만 원수는 미워하잖아.
나는 원수도 사랑하거든. 그게 나야. 너희는 내 자녀잖아.
그럼 내가 사랑한 것처럼 너도 사랑해야지 그 말이에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마태가 그렇게 해줬으면 이게 안 헷갈릴 텐데 왜 사랑하라는 말을 안 쓰고 온전하라 완전하라 이렇게 썼을거라 이 말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이해하는 온전의 개념 완전의 개념 속에는 뭐가 포함돼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처럼 사랑한다는 개념이 포함돼 있다는 거예요.
맞죠 그걸 우리가 보라는 거죠. 우리가 생각하는 퍼펙트 퍼펙션 그 개념으로 생각하지 마라 이 말이에요.
여러분 이 말을 누가는 그렇게 써요?
똑같은 내용을 써요? 누가는 이방인한테 쓴 복음서거든요.
누가복음은 마태는 유대인한테 쓴 복음서고 그래서 여기 누가복음 6장 36절에 이렇게 말하죠.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과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그러잖아요.
조금 더 가깝잖아. 아까 사랑하고 그러니까 이걸 뭐에서 봐야 된다?
문맥 속에서 봐야 된다. 아까 그 생각하는 사람은 뭐예요?
지옥의 문에서 딱 떼서 보는 게 아니고 그 안에서 보는 것처럼 이 안에서 이 의미를 해석해야 된다는 거예요.
제가 이 예언의 신 하나만 이 물 더 읽고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완전론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오해하는 성경 구절 실물 교원 69페이지에 있는 말씀 들어보셨을 거예요.
열매가 익으면 곧 낯을 대는데 이는 주스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 안에 당신을 나타내 보이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분의 백성들 속에 완전하게 재현될 때에
그분은 당신의 것을 찾으시려고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말씀이죠.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분의 백성들 속에 완전하게 재현될 때 그분은 당신의 것을 찾으시려고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이다.
여러분 여기에 그리스도의 품성이 완전히 재현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 완전론을 주장하는 완전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걸 갖고 와가지고 이 의미가 뭐라고 하는 것을 나름대로 설명합니다.
근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본문이 이 말씀이 어디에 속해져 있는지를 안에서 찾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 실물 계원에 있는 이 말씀은 열매가 열매 씨가 싹이 되고 싹이 열매가 되고 그 내용에 나와 있는 거예요.
실목금 3장인가? 그렇게 나와요. 이 본문에 나와 있는 게 이 부분이에요.
앞부분에 있는 내용을 제가 읽어드릴게요. 좀 생략한 것도 있고 읽어드리겠습니다.
신경은 67페이지에서 69페이지.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당신 자신을 재현하고자 하신다.
아까 그렇게 재연하신다고 그랬죠. 곡식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싹을 내고 자라나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이 누구든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생애는 자라나는 일도 없고, 열매 맺는 일도 없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면 그대는 자신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해주고 그분의 인자하심을 이야기해주라.
그대가 그리스도의 정신, 곧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기심 없는 사랑의 정신과 그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정신을 받아들일 때 그대는 자라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그대의 품성에 물어 있게 될 것이다.
https://youtu.be/qKO0F7kihHY?si=E_IFcL41FMCJu7pp
열매가 익으면 곧 낯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으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 안에 당신을 나타내 보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분의 백성들 속에 완전하게 재현될 때에 그분은 당신의 것을 찾으시려고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이다.
앞에 읽어보니까 무슨 내용 같아요? 열매 이야기예요.
식물 이야기 여러분 식물을 심었을 때 그 열매가 맺힐 때 식물 지가 먹어요.
다른 사람 줘요. 지가 먹는 열매가 나무가 어디 있어요?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매를 맺히는 건 다른 사람 주기 위해서고, 그죠 배가 익는 거는 주기 위해서 모든 식물이 그렇게 한다.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면 그런 자기만을 위한 생애를 살지 않고 이타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신이 들어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이 말이
그게 이 노란 부분이 이거예요. 그리스도의 정신, 곧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기심 없는 사랑의 정신과 그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정신을 받아들일 때 그대는 자라나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게 그리스도의 품성이 재현되는 거예요. 그리스도 닮은 모습이죠.
이타적인 사랑 다 나누어주고 나누어주고 하는 그런 사랑의 정신, 그런 정신이 그분의 백성 속에서 재현될 때 이거 내 백성이다 이거지 그런 사람들을 데리러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이다.
여러분 여기에 사람들이 알고 있는 퍼펙트 퍼펙션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완전하다는 개념은 안 없어요.
여기에는 여기는 이타적인 사랑의 품성이 나타나는 거지 맞아요.
그래서 이 실물 69페이를 딱 따라와가지고 그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무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본문을 쓰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본문에서 그걸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증언의 말씀을 그렇게 인용해요.
그래서 여기 조지나이트가 한 이 그리스도인 성화와 원전이라는 책에 보면 우리는 수많은 엘렌 화이스의 진술들을 너무도 그럴싸하게 편집하여 바리새인 즉 그의 인물로 만들어 왔대 자기 생각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놓는 거예요.
그게 마치 뭐야? 증언의 말씀이고 그게 성경의 사상이다라는 식으로 그렇게 설명해 왔다.
이 말이 그러면서 세 번째 한 가지 겠습니다. 이제 여러분 명령적 권고를 볼 때 이렇게 살아야 된다.
그래서 그거 너무 부담스러워서 예언의 신 안 보는 사람도 있잖아요.
여러분 그렇게 할 때마다 보십시오. 사람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이 협력할 때 그것은 전능한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의 힘을 의지하여 뭐 할 수 있다.
그래서 시대의 소망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분의 명령은 뭐다?
약속일 때
그래서 여러분 이거 어떻게 이렇게 살아야 되지?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어?
이렇게 하지만 나가 자빠지지 마시고 그 성경을 읽어봐요.
성경의 표준은 그렇게 낫는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면 우리가 온 마음으로 그분을 다하여 마음을 드리고 믿음을 가지면 이렇게 살게 해 주시겠다 말씀이네요.
약속을 보라는 거죠. 기별에 대한 균형진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쌓인 곡선이 있는 것처럼 화이팬의 기별을 읽으면 이게 강한 기별이 있고 유한 기별이 있어요.
근데 이 강한 기분에 싹 모아갖고 책한권만 넣으면 어떻게 돼 그럼 내일 예수님 재림하셔요.
그냥 우리가 이렇게 살면 안 돼. 지금 다 버리고 시골 가야 돼.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야. 이걸 문맥 안에서 뭐야?
이걸 왜 이렇게 썼고 이게 뭔지를 다 확인하라는 거지.
성경을 어떻게 그 말씀이 의미하는 대로의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찾아서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성경의 중심 사상 찾기
그 단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어떻게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읽을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중요한 축복의 선물로 주시는 이 남은 교회 재림교회 예언의 신을 증언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될 것인가 다른 건 다 까먹어도 좋습니다.
두 가지 원칙 문맥 속에서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그래서 여러분이 그걸 잘 모르시거들랑 많이 아는 분이나 더 지혜가 있는 분에게 물으셔요.
그 딱 따가워지고 그 누군가 그렇게 딱 따가운 글을 보고 그대로 받지 마시고 사람 이 책의 앞뒤가 뭐라고 설명했는지 한번 보자.
그래서 그 책으로 가셔요. 그러면요. 절대로 성경하고 증언의 말씀은 어긋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큰 빛을 보여주는 작은 빛이기 때문에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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