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었습니다.
어느 날, 어린시절의 큰 아들이 제게
"난 이다음에 크면 아빠 같은 사람이 될 거야!" 라며
"아빠가 있어 이렇게 좋은데, 아빠의 아빠는?"
그렇습니다!
제게도 아버지가 계셔 얼마나 좋은지요
네 살 때까지 외가에 맡기셨다 다섯 살 때 찾으셨다죠
그때부터 저를 어깨 위 둘러메고 온 동네를 누비셨다 들었습니다
생각납니다.
4학년 때 음악시간 풍금을 쳐주시던 모습
5학년 겨울방학날 아침, 산을 넘는데, 오르고 미끄러지길 몇 차례...
울고 있던 그때, 어느새 다가오셔서 꽁꽁 언 손 만져주시던 그 따스한 체온!
재수하던 하숙방에 용돈과 함께 써놓고 가신 쪽지편지는 지금도 갖고 있어요
안티깝습니다.
대학졸업 후, 원하셨던 장교가 되어 훈련 중이던 4월 어느 날
전보 한통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아, 그때 각개전투 훈련장의 진달래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 그렇게 서둘러 가셨는지요?
지금 두 번째 서른 둘인 저보다 아홉 살이나 덜 사셨더군요
그립습니다!
삼십구 년이 지났어도 문득 문뜩 가슴 저리도록 보고 싶어요
자주 찾아뵙진 못하지만 마음은 늘 대전국립현충원으로 달려갑니다
이젠 엄마와 함께 계시니 덜 외로우신지요?
해마다 진달래를 보면, 때때로 꿈속이나 길을 걷다가도 왈칵...
무겁습니다.
아버지도 그러셨겠죠
두 아들의 아버지가 돼서야 더욱 무게감을 느낍니다
제가 다섯 살 때 어깨에 메고 덩실덩실 춤을 추셨듯
저도 이젠 손주를 업고 안고 메며 춤출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버·지..."
첫댓글 "재수하던 하숙방에 용돈과 함께 써놓고 가신 쪽지편지는 지금도 갖고 있어요" 이 구절에서 뭉클했습니다. 공부하는 아들 시간 방해하지 않으시려고, 부담 주지 않으시려고 직접 돈 쥐어주시기 보다는 조용히 두고 가신 그 헤아림... 저도 못 잊을 것 같습니다.
네, 문득 문뜩 영원히 잊을 수 없네요...
제가 늦둥이 첫째라 저희 부모님도 연세가 많으세요 47년생이셔서 올해 76세이세요. 그리고 주변에 친구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는 일이 있으면 부모님이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친구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사진이 있어서 얼굴은 볼 수 있는데 목소리가 너무 그립다고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상 통화를 하면 꼭 영상을 녹화를 해 놓고 전화 통화를 하면 꼭 부모님 전화는 자동으로 녹음이 되게 설정을 해놨어요. 부모님이랑 존재는 이름만 들어도 그리운 존재인 것 같아요
그렇죠...부모님은 영원한 안식처로
마음의 고향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