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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은 정답이 있다. 모든 문제에 확실한 정답을 내놓는다. 문제는 사람들이 정답의 존재를 싫어한다는 점이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크게 화를 낸다. 정답이 있으면 안된다는 식이다. 정답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양차 세계대전과 공산주의 소동을 일으켰다는 식이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당연히 정답이 있다.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정답이 없을 수 있겠는가?
물론 떠먹여주는 정답은 없다. 다이어트의 정답은 있다. 운동을 하지 않고 살을 빼는 방법은 없냐? 이런 개소리를 하면 피곤해진다. 공부 안하고 서울대 가는 방법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서울대를 갈텐데 지방대는 문을 닫아야 하냐?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거봐! 정답이 없다니깐.’ 이러면 피곤하다. 중요한건 관점이다. 세계관의 문제다. 긍정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정답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 경우는 문제가 틀린 것이다. 영원히 사는 방법을 알려달라거나 로또당첨 비법을 알려달라는 식으로 나오면 피곤하다. 이런 식으로 억지를 부리는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다. 대화는 대화할 자격을 갖춘 사람과 하는 것이다. 정답이 있을 뿐 아니라 정답이 있다는 긍정주의 세계관으로 관점을 갈아타야 한다. 부정주의자와는 대화가 불성립이다.
정답이 있다는 말은 정도가 있다는 말이다. 어디를 가나 왕도가 있다. 왕도물도 있다. 정도가 있으므로 사도가 있는 것이다. 정파는 없고 사파만 있다는 설정은 성립될 수 없다. 사파를 긍정하려면 먼저 정파를 긍정해야 한다. 정답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는 반칙을 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 그런 자와는 대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자들만 모여 있으면 사회가 해체된다.
두 가지 길이 있다. 생산자의 길과 소비자의 길이다. 정파가 생산자라면 사파는 소비자다. 생태계에 소비자가 없이 생산자만 있을 수는 있다. 최초에는 지구에 생산자만 있었을 것이다. 소비자는 나중에 등장한다. 정답이 있다는 말은 생산자가 우선이라는 말이다. 생산자가 없는데 약탈자만으로 생태계가 돌아가고 시장이 작동한다고 믿는 자들과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모든 학생이 다른 학생의 답을 어깨너머로 보고 베끼는 컨닝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불성립이다. 적어도 한 사람은 정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모든 학생이 컨닝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컨닝주의 세계관으로 뭉쳐 있으니 한국에 노벨상이 나올 리 없다. 모방은 하는데 창의를 못한다. 세계관이 비뚤어져서 창의하는 의미조차 모른다. 정답이 없는데 어떻게 창의하지?
창의는 복제의 원본을 만든다. 원본이 정답이다. 원본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어떻게 원본을 만들어? 한국인들은 크게 비뚤어져 있다. 세계 AI 인재 순위를 조사했는데 조사대상 15개국 중에 일본이 14위, 한국이 15위라고 한다. 세계관이 비뚤어져 있으므로 안 되는 것이다. 컨닝할 생각만 하고 있으므로 안 되는 것이다.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정답을 찾지 못한다.
활이 있다. 활쏘기의 정답은? 활과 과녁 사이에 밸런스가 있고 조절장치가 있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답은 극단주의다. ‘이것만 있으면 돼.’ ‘다 필요없고 요것 하나만 해.’ ‘서울대만 붙으면 돼.’ ‘여친 사귀려고 노력할 필요없어. 네가 가만 있어도 여자들이 줄을 설거야.’ ‘강남에만 입성하면 돼.’ ‘8번 떨어져도 고시 구수 해서 사법고시 붙으면 게임 끝이야.’
결론은 도구다. 생산자는 도구가 필요하지만 소비자는 도구가 필요없다. 정답이 없다는 말은 도구가 없다는 말이다. 노예는 도구가 없다. 자신이 주인의 도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노예의 삶은 정답이 없다. 열심히 일해도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반면 운만 좋으면 주인의 돈을 삥땅해서 잘 살 수도 있다. 정답이 없다는 생각은 예속된 삶을 사는 노예의 사고다.
도구는 정답이 있다. 조절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활이 있으면 겨냥해야 하므로 정답이 있다. 핸들이 있으면 돌려야 하므로 정답이 있다. 배가 있다면 선장이 키를 조절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답은 조절개념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을 을의 포지션에 둔다. 남이 시키는대로 하면 당한다. 본인이 당해놓고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종속되면 정답이 없다.
그 일은 자신이 결정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요리사라면? 정답이 있다. 남이 해준 요리를 먹는다면? 자신의 입맛과 맞는다는 보장이 없다. 좋은 요리라 해도 식어버려서 맛이 없을 수 있다. 복불복인 것이다. 직결되지 않고 중간에 한다리 건넜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외부환경의 영향이 끼어들어 왜곡했기 때문이다. 조절장치를 내가 장악하면 외부변수가 없다.
닫힌계가 설정되기 때문이다. 망치와 모루 사이에 외부의 환경적 요인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자신이 관리하는 주방에는 불안요소가 없다. 정답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애초에 요리사가 아닌 것이다. 자격미달이다. 그들은 작가가 아니다. 그들은 예술가가 아니다. 그들은 생산자가 아니다. 요리할줄 모르는 자가 음식은 복불복이라고 떠든다. 그들은 발언할 자격이 없다.
정답이 없다고 믿는 자는 애초에 도구를 손에 쥐지 않았으며, 요리사가 아니고 무자격자이며, 발언권이 없는 외부자다. 대화에 끼워주면 안 된다. 바둑에 정답이 없다는 사람은 프로가 아니다. “승부수니 기세니 하는 애매모호한 말은 가소로운 것이다. 신의 눈에는 오로지 정수와 악수가 있을 뿐이다." 서봉수의 말이다. 바둑은 실수만 줄이면 된다. 알파고가 증명했다.
정답은 도구 사용의 정답이다. 소프트웨어를 말하기 전에 하드웨어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도구의 장악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자들과의 대화는 겉돌 수 밖에 없다. 도구를 손에 쥐지 못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정답이 없다. 차가 없는데 운전기술이 있겠는가? 총이 없는데 사격술이 있겠는가? 칼이 없는데 검술이 있겠는가? 무자격 돌팔이 입장은 당연히 정답이 없다.
동양에는 원근법이 없다고 말하니까 동양에도 고원법, 심원법, 평원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게 물타기다. 말장난이다. 왜 고원, 심원, 평원이 사용될까? 소실점이 안 맞아서 어색하기 때문이다. 어색함을 물타기하려니 그림이 점차 지도가 된다. 인물이든 건물이든 작게 그리면 원근법의 어색함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그게 무자격자의 꼼수이고 요령이다.
뽕짝은 음악이 아니고, 이발소그림은 그림이 아니고, 한의학과 중의학은 의학이 아니고, 주술은 과학이 아니고, 지하철 시는 시가 아니다. 아닌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물론 주술에도 약간의 과학성은 있다. 풍수지리도 써먹을 일이 있다. 민간요법도 병을 치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얄궂은 것으로 물타기 하려는 자세는 철학가의 자세가 아니다. 위험한 행동이다.
철학은 집단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첫단추를 꿰는 것이다. 처음에 약간 잘못된 것이 나중에 커다란 병폐를 일으킨다. 어른이 컨닝하는 것과 초딩이 컨닝하는 것은 다르다. 어른의 컨닝을 피치못할 사정을 감안하여 눈감아줄 수는 있어도 초딩의 컨닝을 봐주면 안 된다. 놔두면 교도소 행으로 진화한다. 고무호스로 자식을 때린 윤석열 아버지의 고민을 짐작할 수 있다.
1. 정답은 있다.
2. 정답은 도구 사용의 정답이다.
3. 도구는 어떤 둘 사이를 연결한다.
4. 정답은 닫힌계 안에서 A와 B를 연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5. 정답이 없다고 떠드는 자는 도구개념이 없이 막연한 소리를 한다.
서울과 뉴욕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길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가는 길이다. 우리는 정답을 정확히 알고 있다. 비행기가 있기 때문에 정답이 있다. 비행기도 없고, 배도 없고, 지도도 없고, 뉴욕이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른다면 당연히 정답이 없다. 그것은 정답이 없는게 아니고 길을 모르는 것이다. 길을 모르는 자는 논쟁에 끼어주면 안 된다. 대화에 끼워주면 안 된다.
아닌 것을 배제하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우리는 공격적으로 오답을 배제해야 한다. 점차 정답으로 압축된다. 오답과 투쟁해야 한다. 우리는 자발적 노예들과 싸우고 반칙하는 자들과 싸워야 한다.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하면 실패한다. 오징어가 미녀한테 추근대다 뺨 맞는다. 아닌 것을 배제하면 그 과정에 자신이 변하고 자신이 변하고 난 다음에는 미녀도 살갑게 대한다.
정답이 있지만 정답을 찍으려고 하면 안 된다. 선택하려고 하는 그 자체로 이미 을의 신세이기 때문이다. 오답을 하나씩 배제하면 그 과정에 내가 변한다. 내가 변해야 점차 정답과 연결된다. 먼저 자신이 변하지 않고 정답을 찍으려고 하므로 실패하는 것이다. 오답을 배제하면서 범위를 압축하면 정답에 이른다. 구조론은 도구다. 도구는 정답이 있다. 빠른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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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냐 둔재냐 하는 단어에 낚이면 곤란하다. 단어는 단어일 뿐, 천재가 아니라도 한 분야의 달인들은 도구를 사용하므로 도구 중심의 사고를 한다. 일상적인 생활은 멍청하게 해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는 천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많다. 타이슨이 권투 하나는 천재적으로 하듯이 말이다.
무사가 칼을 뽑는 것은 칼이 잘 드느냐, 들지 않느냐가 기준이다. 쇠붙이를 향해 칼을 뽑지는 않는다. 양아치가 사고를 칠 때도 먹히느냐가 기준이다. 명분, 논리, 도덕, 선악, 이념, 동기, 목적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상대가 만만해 보이면 해꼬지를 하고 상대가 만만치 않으면 그냥 가던 길 간다.
보통생각 - 옳다 그르다 판단 혹은 의도와 목적, 동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구조진실 – 익숙한 수법이 먹힐 것 같으면 하고 먹히지 않을 것 같으면 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 하고 말을 거는 사이비 아저씨를 만나면 불쾌해진다. 이 자는 나를 만만한 호구로 본 것이다.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 중에 특별히 나를 찍었다는 것은? 나한테 수작이 먹힌다고 봤다는 거다. 그 사람의 판단엔 내가 이 거리에서 제일 호구로 보였던 것이다.
사이비 아저씨는 그들의 생각이나, 동기나, 목적이나, 이념에 따라 행동하는게 아니라 선배가 준 매뉴얼대로 행동한다. 매뉴얼에는 어리쑥해 보이는 인간의 옷차림과 행동거지가 적혀 있다. 이런 복장을 하고 있는 얼빵한 친구를 공략하라. 다단계를 팔아도 지잡대 하숙집 주변을 노리면 먹힌다.
살다 보면 이런 것을 터득하게 된다. 대화상대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로봇이다. 친한 척 말을 걸어오지만 실제로는 외판원이 한 건 올리려고 호구를 물색한 것이다. 뇌가 없다. 인격이라는게 없다. 광고전화는 빨리 끊는게 예의다. 예의 지키느라 끝까지 들은 나의 잘못이다.
보험팔이 전화를 듣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전화가 끊긴 줄 알고.. 와! 이 아저씨 질기다. 끝까지 듣고 있어.’ 지들끼리 이러고 비웃는 것을 수화기 너머로 들었다. 저의를 가지고, 의도를 숨기고 접근하는 자들에 몇 번 당하다 보면 깨닫는다. 나 같은 인간을 좋아할 리 없잖아. 근데 말을 걸어준다?
게이였다. 인생이 다 그런 거지. 쓴맛을 보게 된다. 오징어가 미녀에게 수작을 걸면 핀잔을 듣는데 추녀에게 수작을 걸어도 핀잔을 듣는다. 미녀 입장.. 그 멘트 하루에 열 번씩 듣는 말이야. 뭐 좀 신선한거 없어? 매번 똑같은 말에 귀가 아프다고. 추녀 입장.. 내가 이 거리에서 젤 만만했다고?
오징어 입장.. 미녀한테 말을 걸어도 깨지고 추녀한테 말을 걸어도 깨지네. 어차피 깨질 바에 미녀한테 깨지자. 그래야 자존심이 덜 상하지. 세상은 반듯하지 않다.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게 정상이다. 오징어들 분발하라고 그렇게 세상을 세팅해 놓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 그런게 있을 리 없다. 의도? 목적? 동기? 이념? 없다. 뇌 자체가 없다니깐. 로봇 주제에, 외판원 주제에, 다단계 주제에. 그들은 앵무새처럼 지저귄다. 뇌를 사용하여 생각하는 자를 나는 본 적이 없다. 토라진 남자를 달래는 방법은? ‘내 가슴 만져.’ 95퍼센트 남자들은 이 수법에 넘어온다.
나머지 5퍼센트는 게이다. 문제는 ‘오늘은 가슴 없어’.로 압박하는 방법이 유튜브에 뜬 거다. 삐진 척하면 '가슴 만져' 할 줄 알았지? 턱도 없다. 이유 없이 화난 여친에게는 ‘사탕을 주면 된다.’는 말도 있다. ‘뽀뽀를 해야 된다.’는 말도 있다. 우스개지만 어쨌든 인간의 행동은 호르몬에 넘어간다.
문제가 있을 경우 안아주면 된다. 동성간이라도 부둥켜 안으면 진정된다. 이건 내가 실험해봤다. 동물의 행동은 본능에 지배된다. 인간의 행동 역시 본능에 지배된다. 다만 인간은 본능의 작동 메커니즘을 모른다. 본능은 호르몬과 흥분을 거쳐 나온다. 흥분을 거치므로 그게 본능인걸 모른다.
네 살 때 형의 목에 매달려 목말을 타고 물놀이를 했을 때 느낀 공포를 기억한다. 왜 물이 무서웠을까? 네 살 꼬마가 죽음의 의미를 이해했을까? 물에 빠지면 죽는다고? 죽으면 안 된다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꼬맹이가 이런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 높은 장소에서 내려다보면 발끝이 찌릿하다.
기계적인 반응이다. 뱀을 보면 깜짝 놀란다. 밤길을 가는데 누가 뒤에서 목덜미를 잡으면? 담력훈련 코스에 있다. 깜깜한 밤에 그물이 길을 막고 있어서 손으로 더듬어 출구를 찾는데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조교가 목덜미를 잡는다. 조교를 때리지 말라고 그렇게 훈시를 들었는데도 이미 때렸다.
나도 모르게 팔을 휘두른 것은 기계적인 반응이다.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호르몬의 작용에 의한 흥분 때문이다. 반대로 우울증은 마음이 가라앉은게 문제다. 말로 대화해서는 풀리지 않고 허그를 해주거나 흥분을 진정시키는 물리적 행동에 의해 해결되며 말로 해결되어도 논리보다는 말투다.
말로 잘 설득하는 사람은 말에 색깔을 넣는다. 교언영색의 달인이다.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고 사람을 진정시켜야 한다. 흥분해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인지시켜야 한다. 대개 자신이 흥분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논리적인 대화보다는 사람을 잘 흥분시키거나 진정시키는 기술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천재는 아는데 둔재를 모른다. 천재의 대화법 일곱 가지 어쩌고 이런 게시물은 있는데 둔재의 멍청법 일곱 가지 이딴 것은 없다. 천재는 둔재를 알아본다. 쟤는 아니잖아. 견적이 나온다. 간파된다. 간파당하지 말아야 한다. 천재의 대화법 일곱 가지를 도구사용법 하나로 환원할 수 있다.
천재는 도구를 사용한다. 도구는 내부에 조절장치가 있다. 도구 내부의 논리를 따른다. 천재가 아니라도 어느 한 분야의 고수나 전문가는 도구를 사용한다. 조폭이나 양아치도 그 바닥에서만 통하는 도구가 있다. 문제는 도구가 없는 바보들이다. 도구가 없으면 어떻게든 도구를 만들어야 한다.
자신이 집단의 도구로 붙잡혀 있는게 문제다. 바보가 바보짓을 하는 이유는 집단의 도구로 잡혔기 때문이다. 길들여진 노예가 되어 있다. 호르몬과 무의식이 인간을 낚는다. 그냥은 불안하다. 집단에 소속되어 안심하려고 한다.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쳐들어가려고 한다. 집단에 낚이고 만다.
윤석열과, 김건희와, 검찰은 자신을 개혁의 도구로 희생시켰다.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이다. 국민 모두가 원하는 행동을 하고 만다. 사람이 많다. 사람이 많으면 사고 난다. 불안하다. 불안감이 퍼진다. 스트레스 받는 사람이 관종 짓을 한다. 기어코 윤서인 짓을 해서 집단의 다구리를 맞고 죽는다.
그 사건을 계기로 집단이 결속한다. 이후 집단이 유기적으로 잘 돌아간다. 윤석열과, 윤서인과, 검찰은 자신이 무의식의 명령에 의해 집단의 희생양이 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두 가지 인간이 있다. 긍정적 인간과 부정적 인간이다. 긍정형은 집단에 소속되려고 한다. 집단의 규칙을 잘 지킨다.
회사를 다니거나 군대를 가면 찍혀서 관심사병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걸 안다. 군대도 안 가고 회사도 안 다니면? 혹은 집단의 밖에서 겉도는 존재라면? 집단을 발견하려고 한다. 관종 짓을 하는 이유다. 집단을 자극해서 집단이 들썩들썩하면 소속감을 느끼고 감격한다. 그래 난 한국인이었어.
그래 난 이 무리에 소속되어 있었어. 그들은 매를 벌어 두목한테 두들겨 맞아야 안심한다. 그래 우리에겐 강력한 두목이 있었어. 두목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은 깝치다가 한 대 맞는 것이다. 경찰에 한 대 맞고 그래 사회에는 경찰이 있었어. 경찰이라면 믿을 만하지. 이런다. 매 맞고 만족한다.
군대의 존재감을 느끼려면 전쟁이 나야 한다. 경찰이 사회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려면 누군가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 남이 안 하면 트럼프가 한다. 영화에 연쇄살인범이 나오면 범죄가 감소한다. 영화를 보고 모방범죄가 늘 것 같지만 반대다. 영화를 보니 빌런이 연쇄살인을 하더라고.
나쁜 놈이야. 그렇다면 나는 조용히 있어야지. 반대로 영화에 살인이 안 나오면? 야밤에 위험하게 여자가 길거리에 돌아다니다니. 저러다가 살인 나지. 새벽 한 시에 길거리에 돌아다니면 위험하다는 것을 누가 알려줘야 하는데. 아무도 안 하면 내가 총대를 멜 밖에. 결국 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범죄자는 자신이 집단에 마루따로 이용되는 사실을 모른다. 외국 여행을 가서 기어코 호텔에서 밥을 지어 먹고 김치찌개에 된장찌개를 끓여서 경찰 출동하게 하는 넘들은? 그들은 집단을 발견하려고 한다. 집단의 규칙에 복종하는게 아니라 반대로 모든 규칙을 어겨서 집단의 규칙을 알아낸다.
일이 터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마디씩 하면 쾌감을 느낀다. 그래! 이게 바로 집단이 돌아가는 현장의 모습이지. 사고를 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을 저질러 선생님이 한마디 하고 급우들이 쳐다보면 집단의 존재감을 느끼고 안심한다. 북한이 땅굴 파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 잠들지 못한다.
정신병자의 레파토리는 비슷하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는 신통한 정신병자는 없다. 대부분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는 식의 뻔한 이야기를 한다. 진보와 보수는 다르다. 규칙을 따르려는 자와 규칙을 어기려는 자는 다르다. 관점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다. 둘 다 세상에 기여하는 사실은 같다.
수색대 역할을 맡으면 진보, 대항군 역할을 맡으면 보수다. 그런데 누군가는 대항군 역할을 해줘야 한다. 진보만 있으면 소련 된다. 둔재는 자신을 을로 규정한다. 부화뇌동하는 행인 1로 규정한다. 집단 속에서 사건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흥분을 전달하고 증폭시킨다. 심하면 졸도한다.
한 명이 하품하면 다른 사람도 하품하고 한 명이 기절하면 전염되어 단체로 기절한다. 여러 사람이 기절해야 집단이 상황을 눈치채고 긴장한다. 중심과 변방이 있다. 진보가 중심인이라면 보수는 변방인이다. 촌놈들은 서울내기를 싫어한다. 비주류는 주류를 싫어한다. 대항하려고 하는 심리다.
한국의 환빠타령과 미국의 외계인타령은 전형적인 변방인의 심술이다. 뉴스에서 소외된 시골사람의 텃세다. 서울사람은 스스로 뉴스를 생산한다. 명동에 가봤더니 뭐가 유행이더라.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안다. 시골은 그게 없다. 서울사람을 괴롭혀서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 텃세로 괴롭히는 거다.
진보는 도구를 사용하여 정보를 생산하고 보수는 진보를 괴롭혀서 정보를 얻어낸다. 역할을 얻는다. 능동과 수동의 차이다. 다들 연극을 한다. 머리로 생각하는 인간 하나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집단의 부속품이 되어 기계적으로 복종하고 기계적으로 반항한다. 노벨상이 안 나오는건 당연하다.
진보 - 가지고 있는 도구를 사용한다. 집단 안에서 역할을 나누는 포메이션 메커니즘이 도구다.
보수 - 상대를 자극하여 반응을 얻어내는 방법으로 역할을 획득하려다가 집단의 도구로 희생된다.
인간은 도구의 동물이다. 도구를 쥐려고 하므로 도구로 이용당한다. 봉건시대에 화가로 성공하려면 기술이 필요할 뿐 아니라 고객명단을 손에 쥐어야 한다. 먹 갈기 3년, 밑그림 3년. 색칠하기 3년으로 대략 10년을 봉사해야 그게 내 손에 들어온다. 문하생이라는 이름의 노예로 이용당한다.
산초 판사는 돈 키호테한테 이용당한다. 도구의 주인은 팀이다. 개인은 집단에 이용당한다. 집단에서 역할을 얻으려고 하므로 집단에 필요한 악역을 맡게 된다. 집단은 성숙해지고 개인은 교도소에 갇힌다. 범죄 욕구는 이용당하고 싶은 욕구다. 도박의 욕구는 카지노에 이용당하고 싶은 욕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