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 선정 작.
책날개에 정리된 저자 '이순자'(1953.9.29 - 2021.8.30) 소개는 이렇다.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으며, 20여년 넘게 호스피스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황혼 이혼 후 평생 하고 싶던 문학을 공부하고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고단한 삶에도 자기 존엄을 지키며 글쓰기에 정진한 그는 《솟대문학》에 시를 발표하고, 〈순분할매 바람났네〉로 제16회 전국 장애인문학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창작의 결실을 맺었다.
62세에 취업 전선에 나선 경험을 담은 수필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2021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당선되었으나 얼마 뒤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독자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퍼져 뒤늦게나마 주목을 받았다. 일흔을 이른 나이로 여기며 치열히 살아오면서도 연민과 사랑, 희망과 위트를 잃지 않은 작가의 이야기는 독자의 영혼에 큰 울림을 주었다. 자신과 가족, 이웃의 고통과 상처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은 그의 삶은 혐오와 차별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방향키가 되어주었다.
그가 작가의 꿈을 안고 마지막 순간까지 써 내려간 유고 산문집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와 유고 시집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가 동시 출간되었다.
2022년 연말을 뜨겁게 달군 화제의 책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비추어 이 책은 <어머니의 해방일지>라 할만하다. 두 책 모두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해방의 끝에는 죽음이 놓여졌다는 삶의 서러움과 슬픔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마음이 짠하다. 책의 마지막 부분, 에필로그에서 그는 드디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글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며 감사한 일이라고 쓰고 있다. 기초생활이 해결되었으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고...그리하여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죽는 날까지 정진하리라며 기뻐하던 그는 그러나 <실버 취준생 분투기>로 꽤 이름난 작가가 되려던 순간에 세상을 떠났다. 영광은 뒤에 남겨놓고서....
우리는 이제서야 그의 죽음 뒤에 비로소 그가 남긴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아 읽게 되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해방은 몹시 서러운 일이다.
폭력을 일삼고 바람을 피던 남편과 간신히 황혼 이혼을 하고 쉰 넷의 나이에 새 인생을 찾기 시작한 저자. 열심히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오래 해왔던 봉사활동까지 하면서 노년을 준비했다. 60대에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그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전공이 문예창작이라 도서관에서 독서지도나 글쓰기 수업도 할 수 있고 옛날에 놀이방을 운영해서 아이 돌보미를 할 수도 있고 미술이랑 문학, 음악, 상담치료 쪽으로 1급 자격증이 다 있어서 상담치료도 가능할 만큼 그는 넘치게 실버 스펙을 쌓았다.
그러나 일자리센터의 직원은 그에게 새 이력서 용지를 주었다. 이력이나 경력이 화려하면 채용이 어려우니 다시 작성하라는 말과 함께. 그는 숨은 말뜻을 얼른 알아듣고 '중학교 졸업' 한 줄로 마감한 이력서를 다시 건넸다. 그제야 직원은 만족한 미소를 띄며 일자리들을 알선했다.
학력과 경력을 없애고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니 취업은 쉬웠다
백화점 청소일을 하다 온몸에 파스만 붙인 채 그만두었다. 빌딩 청소일을 하다 역시 그만두었다. 같은 동네 어린이집 급식 담당으로 취업했더니 오래돼 냄새 나는 쌀과 부식으로 만든 음식들을 아이들에게 먹이라고 해서 또 그만두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일하고, 장애인활동지원센터에서도 일하고, 남자 환자의 요양보호사로 일하다 성희롱을 당하기도 하고....62세부터 65세까지 취업을 위해 전전긍긍하며 뛰어다녔던 그의 분투기는 사람들 마음을 건드렸다.
언젠가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아이러니가 어렵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의 삶이 아이러니다. 예순을 넘기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나의 직업 분투기는 치열했다.
나 자신을 찾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해 50대 나이에 돈 한 푼 없이 대학생 남매를 데리고 집을 나온 저자는 평생 하고 싶었던 문학 공부를 할 수 있었으나 그걸로 일자리를 가질 수는 없었다. 글쓰기보다 호구지책이 먼저였던 그는 결국 위에 열거했듯 긴 이력서를 찢어버리고 취업에 분투하는 날들을 살아야 했다.
왠지 이 할머니는 저세상에서도 여전히 이력서를 들고 자신이 필요한 곳을 찾아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 밤이면 그에게 허락된 한 뼘 책상 앞에 노트북을 놓고 앉아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해 긴 글을 쓰고 있을지도....너무 늦게 알아서 생전에 희망의 말 한 마디 건네보지 못한 고인에게 뒤늦은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