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필 이삼만 (1)이야기꾼들
눈 내리고 북풍 몰아치는 한겨울 허물어진 흙담에 초개이엉 두른 뉘 사랑채 아랫목에 가면 으레 거기 한 마을을 아우르는 이야기꾼이 있게 마련이고, 또 한 여름 옛 마을 초입 수백 년을 자라온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짙게 드리워진 기왓장에 푸른 이끼 돋아난 유선각(遊仙閣)에 가면 거기 구수한 입담을 풀어내는 초로의 이야기꾼들이 있게 마련이니 이 더위 뜨거운 한여름에도 이야기꾼의 소리는 활활 타는 대지의 열기를 식히고 또 거기 우스갯소리에 진한 농까지 더하여 때론 세상을 살아가는 누더기 쓴 인생의 오밀조밀한 저 깊은 내력까지 얼핏 들춰내 더듬기도 하는 것이었으니 지금은 그 자리를 텔레비전이다 컴퓨터다 휴대폰이다 하는 것들이 다 차지해 들어앉아 버려서 죄다 오래 전에 잊어져 버린 것들이겠으나 그 옛날 풍경은 그래도 시장 할 때 된장버무린 소담한 한 바구니 싱싱하고 단아한 맛깔 나는 나무새 반찬이었으리라.
주름투성이 얼굴에 하얀 수염 흩날리는 가난한 농투성이의 비루한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피어나는 구수한 입담이 마치 열반한 노승의 불 달은 뼈마디에서 쏟아지는 빛나는 사리처럼 진기한 것이기도 하였으니 또 한 겨울 혹한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매화꽃망울처럼 코끝 시리게 톡 쏘고 들어와 가슴을 시큼하게 적시는 싱싱한 향기이기도 하였거니 세상의 요긴한 잔꾀란 것들이 모두 고단하고 서러운 인생살이에서 오는 사고(思考)의 틈바구니에 낀 반짝이는 보석이고 보면 그 어찌 나무랄 데가 있겠는가!
이 삼복더위 염천 하늘아래서도 오늘 시름 다 던져두고 이마에 땀 씻어내며 저 오래 된 느티나무 아래로 가서 벌렁 드러누워 건너 먼 산을 질러오는 바람 한 조각에 더운 숨결 던져보자. 이렇게 별 볼일 없이 도연명처럼 피비린내 나는 악다구니 아귀다툼 세상 속 돈 보따리 부귀영화에 저 흔하디흔한 온갖 지위와 복락에 공명 따위 단박에 초개처럼 시궁창에 콱! 내팽개쳐 버리고 한달음에 도망해 달아나와 밤마다 귀신 나온다는 세상 끝 바깥 산모롱이 연못가 밭 자락 귀퉁이 초막 한 칸에 자신을 내던져 비루하게 숨어 살아오면서 사라져 가는 인생이 주는 마지막 객담(客談)과 그 두엄 속 같은 객담 속을 헤집으며 오늘의 쓸쓸한 객담을 쌓아가는 것이 이놈 세월이거늘, 그놈의 모진 세월 죽기 전엔 누구에게는 참 서럽고 고약한 것이렷다.
그렇다면 또 이 끝없는 길가는 떠돌이 나그네 같은 누더기 덕지덕지 기워 쓴 이놈 인생도 그 옛날 어느 그늘 짙은 유선각가에 불청객하나 떡하니 걸터앉아 천근같은 발길 산더미 같은 지친 사연 거기 쉬어두고 잠시 귀동냥이나 하렷다.
왕후장상에 권문세가, 청렴결백한 박사학자에 도둑놈 강도에 귀부인에 기생, 곰보째보에 절름발이, 무당에 중, 기생에 갈보창녀이야기 그 무엇인들 누구 눈치 살핀다고 가릴 것 있으랴! 다 똑같이 한번 왔다 가는 인생아! 째진 입 있으면 다 토해 내 보거라! 어디 이 동네 저 늙수그레한 저 양반의 입담이 그래도 오늘 이 쓸쓸하고 고단한 객의 고독한 마음을 휘어잡아 주려나? 아따! 마침 시원한 바람 불어온다.
“에 어흠! 에헤헤헤헤! 드디어 저 곰방대 핀 할아버지 허연 수염 오물오물 구수한 입담이 나온다. 에헤! 좋다! 거! 옛날 간 날에 백여시에 호랭이 담배 즐겨 퍼 묵던 시절에 말이여.......”
어느 고을에 도둑질을 아주 잘하는 적동이라는 사내가 살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 등에 작은 새알 크기의 붉은 점이 있어 제 할아버지가 붉을 적(赤)자에 아이 동(童)이라 짓고 적동이라 불렀는데, 나이 서른에 마을에서는 도둑 적(賊)자에 적동으로 멀리까지 이르게 되었고 집안에서는 도둑질로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으니 쌓을 적(積)자에 적동으로 통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때 적동의 아버지는 그 적동이라는 이름이 싫어 글 잘하는 아이가 되라고 글 서(書)자를 써서 서동(書童)이라 부르자고 했다는데 그랬다가는 영락없이 쥐서(鼠)자 서동이가 되어 정말로 ‘쥐새끼’로 온 고을에 그 이름을 떨쳤지 않았을까 싶다.
고을에 진기한 무엇을 도둑맞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으레 그 적동을 의심했는데 그 재주가 어떻게나 신출귀몰했던지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그 옛 속담이 무색하게도 흔적과 물증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긴 그 생김새도 마치 생쥐를 닮아 타고난 쥐 얼굴이었는데 쥐란 동물이 평생 동안 밤에 은밀히 어두운 곳으로 다니며 남의 먹을 것을 몰래 훔쳐 먹고 사는 것이 아닌가!
쥐도 새도 모르게 도둑질을 잘한다는 그 적동의 행태를 미리부터 들어 알고 있었던 그 고을의 권력을 틀어쥐고 사는 수염이 허연 이진사는 오래전부터 그 적동을 붙잡아 크게 혼을 내주려고 마음을 먹고 여러 계책을 궁리하고 있었다.
명필 이삼만 (2)목숨을 건 도둑질내기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그 적동을 붙잡을 묘안을 이진사는 찾지 못했다. 수많은 서책을 탐독하고 숱한 이야기며 역사를 공부하면서 고을의 고명한 선비로 살아가는 이진사는 도둑질을 잘한다는 저 적동을 붙잡아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고 싶은 그 선비의 의기라는 것을 갖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 적동이의 재주가 얼마나 신통한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아마도 저 적동이 전쟁 같은 시대를 만났다면 적진에 들어가 중요한 정보를 훔쳐오는 자가 되었거나 적국에 들어가서 중요한 기밀을 몰래 가져오는 일에 종사했더라면 적격이었으리라는 생각을 나름 해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이진사는 그 적동을 자신의 집에서 우연히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적동이 이진사 댁에 전할 물건을 지게에 짊어지고 와서 창고에 부렸던 것이다.
적동을 보아하니 영락없는 쥐 얼굴이었다. 반짝이는 눈망울에 날카로운 턱, 가늘게 뻗어 내린 수염, 비록 쥐가 남의 것을 훔쳐 먹고 살아간다고는 하나 새끼를 많이 낳고, 쥐 굴을 파보기라도 할라치면 굴마다 벼이삭이며 곡식들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으니 그 또한 만물에게 하늘이 공평하게 내려준 저만의 생존의 복이 아니겠는가! 하고 이진사는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허 허흠! 적동이 자네, 이리 좀 와보게,”
말없이 적동을 바라보고 있던 이진사가 마당가에 서있는 적동을 대뜸 불러 세웠다.
“아이구! 나리! 무슨 일이십니까?”
한달음에 달려온 적동이 이진사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어 어흠! 사실은 자네가 남이 갖지 못한 신기한 기술을 가졌다고 내 일찍이 들었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지금 우리 집 하인들이 일 잘하는 저 황소를 대문 앞에 매어 놓았네.”
이진사가 대문 앞에 매어놓은 커다란 황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적동은 대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이진사가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 마루에 앉아서 지키고 있을 것인즉 내일 동이 터 오르는 아침 안으로 저 황소를 나 모르게 훔쳐 간다면 저 황소를 자네에게 주겠네. 그러나 만약 훔쳐가지 못한다면 자네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약조를 걸고 내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네. 과연 자네 나하고 그 내기를 할 수 있겠는가?”
이진사는 머릿속을 찰나에 스쳐가는 생각을 주저 없이 말하며 적동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저 적동이 과연 큰 도적의 당찬 기백이 있을 것인가?’ 큰 도적이라면, 정말로 간 큰 대도(大盜)라면 자신이 불리한 어느 상황에서라도 자신만의 특별한 대책이 있을 것이기에 목숨을 아깝지 않게 내놓고 덤빌 것이고, 만약 작은 도적이라면 슬슬 눈치를 살피고는 꼬리를 사릴 것이 빤했다.
“예! 나리,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분명 저 소를 하룻밤 안에 진사나리 모르게 훔쳐만 가면 저에게 주신다는 말씀이지요?”
잠시 동안의 긴장을 깨고 적동이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말했다. 이진사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누가 보던 너무도 빤한 내기였기에 적동이 꼬리를 사리고 대번 작은 강아지처럼 땅에 배를 납작하게 깔고 낑낑대며 움츠러지려니 했는데 의외의 당찬 대답에 이진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적동을 바라보았다.
명필 이삼만 (3)어리석은 바보
오히려 저렇게 호기 있게 덤비는 적동의 태도에 저의기 기대가 바짝 되어 긴장이 되는 것은 이진사였다. 아니, 혹여 용케 걸려든 저 맛난 고기감이 뒤늦게 눈치를 채고 재빨리 빠져 나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쳐 이진사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좋다! 그러면 그 약조를 지금 당장 문서로 쓰겠으니 거기 서명하렷다. 정말 약속한 시간 안에 소를 훔쳐가지 못한다면 그 목숨을 내어놓는 거다!”
그래도 글줄이나 읽은 인품 있는 선비인 이진사는 그 약조 내용을 다시 환기 시키며 적동에게 재차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예! 나리, 그렇게 하겠습니다.”
적동이 다시 서슴없이 말했다. 이진사는 적동의 기백에 놀라면서도 ‘이제 저놈을 아주 혼 구멍을 내줄 좋은 기회가 왔구나!’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지필묵을 꺼내 그 내용을 그 자리에서 써서 적동의 서명을 떡하니 받았다.
반상의 차이가 분명한 세상에서 이 약조를 감히 적동이 절대로 기만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이제 꼼짝없이 저 도둑질 잘한다는 적동은 이진사의 손에 명줄이 단단히 잡힌 꼴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대문 앞에 붙들어 매어놓은 황소는 이진사가 앉아있는 툇마루에서 멀리 잡아도 서른 발짝 앞이라 바로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었기에 정신만 바짝 차리고 있다면 절대로 도둑질을 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소풍경이 덜러덩! 하고 울기만하면 그 즉시 발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해가 기울도록 이진사 집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 적동은 잠시 후 눈에 환하게 잘 띄는 위아래 눈부신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왔다. 더구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를 이 밤에 새하얀 옷이라니!
그것을 본 이진사는 ‘이제 보니 저 녀석은 참으로 소문 같지 않게 기실은 몹시 어리석은 녀석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어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이 내기는 해보나마나구나 하고 흡족한 미소를 만면에 머금었다.
더구나 적동이 다음하는 행동은 참으로 우스웠다. 대문 앞을 빙 두른 돌담 앞으로 줄줄이 늘어선 커다란 감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었는데 그것도 기와집 처마가 돌아가는 먼 감나무를 골라 그 위로 척 올라갔던 것이다. 툇마루에 앉아서 보면 그 감나무 위에 올라가서 흰옷을 입고 가지위에 걸터앉아있는 적동의 모습이 달 없는 칠흑 어두운 밤이라도 환히 내다보일 것이었다.
‘하하하하하! 천하에 어리석은 바보 녀석! 밤에 새하얀 옷이라니! 더구나 대문과 멀리 떨어진 저 감나무 위에 높이 올라가 어떻게 저 대문 앞 황소를 저 눈에 잘 띄는 흰옷을 입고 나 몰래 도둑질을 한단 말인가? 내 이 툇마루에 벌렁 누워 저 흰옷 입은 녀석을 잘 감시만 하면 그만일 것을...,
세상에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않고 얕은 제 기술만 믿고 바보처럼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종들이 많다더니 바로 저놈을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무식한 일개 하찮은 도적놈에 불과한 녀석을 붙잡고 목숨을 잡을 내기를 하다니...’
이진사는 스스로 실없는 짓을 했다며 만면에 실소를 가득 머금는 것이었다.
명필 이삼만 (4)귀신이 곡할 노릇
‘허허! 소문의 실상이라는 것이 늘 그러한 것이거늘... 혹여 저 적동이 도둑질을 실패하더라도 내 어찌 귀한 인명을 살상할까 보냐? 다시는 가난한 백성을 상대로 도적질을 하지 못하게 크게 혼을 내 가르침을 주고 그 못된 버릇이나 고쳐주는 것이 인생을 수양하며 살아가는 선비유생(儒生)이 해야 할 일이거늘... 어! 어흠!’
이진사는 감나무 위에 새하얀 옷을 입고 걸터앉아있는 적동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까지 해보는 것이었다.
밤이 오고 하늘에 둥근 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대문 앞에 매어놓은 황소는 풍경을 시끄럽게 달랑거리며 쇠파리에 모기가 자꾸 엉기는지 주변을 돌며 꼬리를 휘돌리더니 이제는 생풀을 되새김질하며 길게 누워있었다.
이진사는 집안의 하인들이 저녁을 내오는 것을 먹고는 술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는 집안 사람들에게 사랑채와 대문 앞으로는 오늘밤 그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엄하게 지시를 내렸다. 만의 하나 다른 사람을 잘못 식별해 보고 도둑을 놓치는 실수를 해서는 절대로 아니 되어서이기도 했고 또 저 적동에게 이진사 자신을 집안사람 그 누구도 오늘밤 이 내기에 원조하지 않는다는 한 치 기울어짐 없는 공정함을 스스로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달밤에 흰옷을 입고 먼 감나무 가지위에 걸터앉아있는 적동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노라니 헛웃음이 자꾸 돋고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내기라 생각한 이진사는 무료하여 한잔 술로 먼저 자축을 하자는 것이기도 하였거니와 실상은 어리석은 무지렁이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커다랗게 난 소문과 다른 실상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씁쓸했던 것이다.
늦여름 밤이 드리워지면 한낮 시끄럽게 울던 매미 울음소리가 뚝 그치고 철 이른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그새 풀잎 사이에서 도란도란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커다란 합죽선을 휘휘 휘둘러대며 간간이 엉기는 모기를 쫓아가며 서너 잔 알싸하게 술을 마시고는 감나무 사이의 흰옷을 주시하다가 가끔씩 대문 앞에 매어놓은 황소를 흘깃거리는 것이었다. 누워있던 황소가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주위를 돌며 자꾸 엉기는 모기를 쫓는지 풍경을 덜그렁덜그렁 울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꼬리를 사납게 휘둘러댔다.
그러나 이진사는 저 황소보다도 감나무 위의 흰옷에 더욱 눈길이 갔다. 저 흰옷이 그대로만 있으면 적동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니 말이다. 서산으로 달이 기울어가고 그렇게 술시말(戌時末)이나 되었을까? 감나무 위의 흰옷만을 긴 하품을 해대며 따분하게 예의 주시하고 있던 이진사가 무심코 대문 앞의 황소를 살피려는데 그 황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헉! 이럴 수가?’
순간 제 눈을 의심한 이진사는 재빨리 감나무 위로 눈을 돌렸다. 거기에 흰옷은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대문 앞의 황소가 보이지 않다니? 아마 누워 있겠지?‘ 휘영청 밝은 달빛에 비추는 곳을 재차 꼼꼼히 확인해보는 이진사의 눈에 황소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 이런!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닌가!’
이진사는 아뿔싸! 하고 짧게 비명을 내지르며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붙잡고 설마 하는 마음에 맨발로 대문 앞의 황소를 확인하러 쏜살같이 달려갔다.
명필 이삼만 (5)만천과해(瞞天過海)
한달음에 대문 앞에 당도한 이진사는 기가 콱! 막혔다. 거기 묶여 있어야할 황소는 없고 막 싸놓은 소똥 내음에 생풀들만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잠시 넋을 잃고 서있던 이진사는 적동이 흰옷을 입고 걸터앉아 있는 감나무를 바라보았다. 거기 아직 흰옷은 그대로였다.
‘그 그렇다면!...’
이진사는 순간 전광석화처럼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이 있어 감나무 아래로 미친 듯이 뛰어가면서 집안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이놈들아! 어서 횃불을 들고 나오너라!”
이진사가 감나무 아래에 당도하고 뒤이어 턱수염이 새까맣게 자란 젊은 하인이 횃불을 들고 두서너 명 늙은 하인이 줄줄이 뒤따라 왔다. 횃불을 비춰 감나무의 흰옷을 확인해 보니 역시 생각했던 대로 빈 옷가지만 거기 덜렁 걸려 있던 것이다.
“졌도다! 내가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고도 몰라 보았구나! 으으하하하하하하!”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적동의 계략에 말려든 이진사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미친놈처럼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사위가 무너져 내리도록 호방하게 너털웃음을 쏟아냈다.
적동은 밤에 흰옷을 부러 입고 나와 지식인 이진사의 오만하고도 치밀하고도 예리한 예봉을 제 어리석음을 가장하여 온통 무디게 흩어버렸던 것이다. ‘무식한 도둑놈에 불과한 적동!’이라는 섣부른 판단 바로 그것을 노렸던 것이고, 적동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공략의 틈이 있다는 것을 문자속량의 빛나는 허울을 쓰고 거창한 공명의식과 정의감에만 충만해 있던 요샛말로 하면 부유한 집안의 잘생기고 총명한 저 먹물 지식인 이진사는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것은 상대의 치열한 경계를 풀어 놓게 하는 최고의 효과로 작용했다. 이른바 적동의 명약처방이었다. 만약 적동이 밤에 검은 옷을 입고 감나무 가지 위에 올라가 있었다면 그 감잎에 가려 살피기가 곤란하였던 이진사는 목표물인 황소를 더욱 철저히 감시하는 역효과를 낳았겠으나, 하필 삼척동자도 비웃을 밤에 흰옷을 입고 올라가 있었으니 얼마나 감시가 수월한가!
그 수월함이 느슨함을 낳았고, 백수의 왕이라는 호랑이도 연약한 사슴을 사냥할 때 사력을 다하는 법인데 이진사는 상대를 한껏 얕잡아보고 비웃으며 ‘귀중한 누구 목숨이 달린 엄정한 내기’에 술까지 마시는 거드름을 피웠고, 그 느슨함이 방심이 되었고, 그 방심이 결국 자업자득 목표물을 감쪽같이 공략 당하는 천금 같은 여유를 주고만 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적동은 어둠을 틈타 훌렁 옷을 벗어 감나무 가지에 그대로 걸어놓고 발가벗은 몸으로 감나무를 조심스럽게 기어 내려와 담장 밖으로 나가 풍경이 울리지 않게 풍경 안에 풀을 잔뜩 집어넣고는 소고삐를 풀어 쥐고 삽시간에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허허! 설인귀가 황제 이세민을 속이고 몰래 배에 태워 바다를 건넜다더니 참으로 만천과해(瞞天過海)로다! 저 적동의 백의기망혼돈계(白衣欺妄混沌計)에 내가 그만 말려들어 당했구나! 그래! 그래! 저 삼국지 조조의 공성계(空城計)에 못지않구나!
이리하여 옛 말씀에 큰 인물은 하늘이 내고, 큰 도적도 하늘이 낸다고 했단 말인가! 내 수양이 참으로 얕고도 얕도다!... 으음! 그렇다! 저 도둑질도 하늘이 준 재주라고 한다면, 길가의 개똥이나 잡초가 약이 되듯 저 재주를 시절을 잘 만나 좋은 곳에만 쓴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을 으으음!....’
이진사는 길게 탄식을 하며 자신의 치밀하지 못함을 스스로 원망했다. 땅을 치고 후회해도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명필 이삼만 (6회)소경 점쟁이
이진사는 헛웃음을 삼켜 물며 스스로의 잘못을 뒤돌아 반성해 보면서 내기에서 패배한 것을 깨끗이 승복하고는 약속대로 황소를 적동에게 주고 비록 도둑질 재주지만 적동의 비상함에 감탄해하며 말했다.
“자네의 그 재주는 참으로 신통함에 이르렀네. 내 비록 내기에는 졌지만 한마디 이르겠네. 자네가 가진 재주는 남에게 내세울 좋은 재주가 절대로 아니네. 가족들이 배를 곯지만 않는다면 탐욕을 절제하고 그 재주를 깊숙이 숨기고 살기 바라네. 자칫 잘못하면 정말로 목숨을 잃게 될 것일세. 하늘이 준 재주는 자신의 사익(私益)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천하를 위해 써야하기 때문이라네. 그리고 가난한 백성의 것은 절대로 탐내서는 아니 될 것이야! 내 말 깊이 명심하게!”
“예 나리, 잘 알겠습니다.”
적동은 이진사의 말에 깊이 고개를 조아리고는 그 자리를 물러났다. 이진사를 도둑질 내기에서 이긴 적동의 이야기가 일대에 파다하게 퍼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던 것이다.
“아따! 재밌네! 그놈 적동이 정말 기가 막힌 도둑놈이구만!”
“어허! 그러네. 밤에 흰옷을 입고 감나무에 올라가 그리 관심을 쏠려놓고는 저는 깨댕이 홀랑 벗고 내려가서 눈 번하게 뜬 그 앞에서 소를 귀신같이 도둑질해가다니 참말로 산 눈깔 빼먹을 비상한 놈이네 그려! 그런데 말이여! 인자 봉깨로 참으로 저 양반 이야기 구성지게 참 잘허네!”
이렇게 한 소절 도둑놈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또 누가 바람 따라 꼬리이어 불어오는 바람처럼 이야기를 해대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말이여? 누가 또 진기한 이야기 한 소절 보태볼 것이냐?’ 때마침 유선각 마루 뒤쪽에 걸터앉은 검은 수염 덥수룩한 중년의 사내가 불쑥 나선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말이여! 고려 개경에 살 땐디 말이여!”
참! 그 목소리 걸걸하니 좋다. 도둑놈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왕 이야기가 나온단다. 그것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말이다.
이성계가 고려 장군으로 승승장구 명성을 날릴 때 하루는 개경 남문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남문 앞 구석에 남루한 소경 점쟁이가 하나 앉아 지나가는 사람의 점을 치고 있었다. 이성계는 그 점쟁이가 궁금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옆에 비켜서서 그 점쟁이가 어떻게 점을 치는가하고 가만히 눈여겨보는 것이었다.
이순이 넘은 듯 백발에 하얀 수염을 주름 가득한 얼굴 에 늘어뜨리고 눈알에 하얀 창이 들여다보였는데 초점 잃은 눈동자는 온통 검은색이라서 한눈에도 그가 소경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손때 묻은 낡은 지팡이에 의지해 앞을 분간해가는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소경이 어떻게 남의 운명을 알아보는 점을 칠 수 있단 말인가? 마른 명태처럼 핏기 없는 깡마른 몸매에 볼 품 없는 저 눈먼 소경에게 ‘하늘은 만인에게 고루 공평하다’더니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남의 앞일은 귀신처럼 알아보는 신기한 재주를 주어 밥을 벌어먹고 생명을 연장하며 살 기회를 주었단 말인가?
이성계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소경점쟁이 하는 꼴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길을 가던 누더기차림의 비렁뱅이 거지하나가 그 앞에 풀썩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었다.
명필 이삼만 (7회)문중유구(門中有口)
‘허허! 저 비렁뱅이 거지가 자신의 운명의 길흉을 점치려 하는 것인가?’
이성계는 호기 어린 눈빛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바라보았다.
“맹인 도사님, 이놈 팔자가 어떻겠는가? 운명을 좀 봐주시오”
비렁뱅이가 말했다.
“아! 좋지요.”
그 말을 들은 소경점쟁이가 손님이 와서 앞에 앉은 것을 알고는 반질반질 기름때 묻고 닳아빠진 나무판에 여러 한자가 검은 글씨로 조각되어진 것을 비렁뱅이 앞으로 쓱 내밀었다.
“자! 여기 판에 새겨진 글자 중 맘에 드는 글자를 하나 골라보시오?”
소경점쟁이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아암! 좋지요. 맹인 도사님, 잘 맞추면 복채를 많이 주고, 틀리면 콧물도 없소!”
비렁뱅이가 글자를 고르려다 말고 속으로 감춘 무슨 수작이라도 있는 듯 슬그머니 말을 비틀었다.
“점을 보지도 않고 무슨 엄포가 먼저요. 세상사 점괘는 나오는 대로 말하는 법, 맞고 틀림은 하늘이 정하는 법, 보기 싫으면 가시오.”
소경점쟁이가 점잖게 말했다.
“에 에흠! 좋소이다!”
구멍 숭숭 뚫리고 덕지덕지 기운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비렁뱅이가 아마도 복채가 없어서 시비를 걸고 점도 보지 않고 그냥 일어서서 가려나 했더니 글자를 고를 양으로 글자판을 한동안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글자를 고를 것인가? 이성계가 보아하니 어림잡아 백여 개의 한자들이 콩알처럼 오밀조밀 새겨진 나무판이었다.
“자! 맹인 도사님, 내 이 글자를 고르겠소!”
그 말을 들은 이성계는 비렁뱅이가 손가락을 짚어 고른 글자로 재빨리 눈을 돌렸다. 비렁뱅이가 고른 글자는 물을 문(問)자였다. 소경점쟁이가 비렁뱅이가 고른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어 어루만져보고는 대뜸 입을 열었다.
“으음!... 문중유구(門中有口) 하니 분명 걸인지상(乞人之相)이라! 배고픈 객은 해 떨어지기 전에 어서 갈길 가시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새 옷에 고깃국 먹을 돈냥이라도 얻을 것이야!
그 뜻인 즉 남의 집 문 앞에 와서 입을 벌리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니 분명 비렁뱅이 거지상이라는 것이었다. 말을 마친 소경점쟁이는 그 자가 거지임을 알아보고 도무지 복채를 받을 수 없을 것을 알았던지 어서 가라며 고개를 가로로 휘저으며 외로 틀어 버렸다.
“에구! 재수 없어! 하나도 안 맞네! 하나도 안 맞어! 에이! 퉤!”
그 말을 들은 비렁뱅이는 복채를 줄 수 없는 제 처지를 변명하듯 상을 온통 찌푸리며 한마디 하고는 벌떡 일어나 침을 뱉고는 생쥐 쥐구멍 찾아 도망가듯 슬그머니 줄행랑을 놓는 것이었다. 앞을 못 보는 소경점쟁이가 복채를 안준다고 비렁뱅이를 쫓아가 잡을 수는 없었겠지만 아무래도 보는 눈도 있고 양심에 찔려 비렁뱅이는 황급히 그곳을 뜨는 것이었다.
‘으음! 저 소경점쟁이의 글 풀이가 제법 용하구나!’
그 것을 유심히 지켜본 이성계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는 도망가는 비렁뱅이 뒤를 슬그머니 쫓기 시작했다.
명필 이삼만 (8)누더기 옷
남문 앞을 가로질러 저자거리를 향해가는 비렁뱅이를 뒤따라 쫓아 잡은 이성계는 걸음을 늦추었다. 비렁뱅이가 기와집이 많은 인적이 드문 개경의 으슥한 골목길로 접어들어 돌아가는 곳까지 이른 이성계는 비렁뱅이 앞을 잽싸게 가로 막아섰다.
“네 이놈! 너는 어찌하여 눈먼 소경을 우롱한단 말이냐!”
“아이고! 나리 죽을죄를 졌습니다. 밥 빌어먹는 형편이라 복채를 줄 능력이 없었습니다요. 한번만 봐주십시오.”
이성계의 호령에 비렁뱅이는 길바닥에 납작 엎드려 두 손을 싹싹 빌어대는 것이었다.
“좋다! 그렇다면 내 딱한 처지를 봐서 너를 용서해 주겠다.”
“아이고! 나리! 감사합니다.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비렁뱅이가 고개를 들고 이성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다! 그런데 너에게 부탁이 있다.”
“아이고! 나리, 무슨 부탁입깝쇼?”
비렁뱅이가 이성계의 의외의 말에 놀라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너의 그 누더기 옷을 좀 빌리자구나! 내 너에게 엽전 열 냥을 주겠으니 그 누더기 옷을 내게 주고 너는 새 옷을 사 입고 따끈한 국밥이라도 사 먹거라!”
이성계가 비렁뱅이를 내려다보며 엽전 열 냥을 땅 바닥에 던지면서 말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나리! 당장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렁뱅이가 벌떡 일어나 누더기 옷을 그 자리에서 벗어 이성계에게 주고는 가운데 중요 부위만 가린 헝겊 한 조각 걸친 맨몸뚱이로 바닥을 기면서 엽전을 얼른 손으로 쓸어 담았다.
“아이고! 용하구나! 그 맹인 도사! 오늘 새 옷 입고 고깃국 먹는 특별한 날이라더니! 아이구! 나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비렁뱅이는 이성계를 향해 넙죽 절을 하고는 신이 나서 저자거리를 향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이성계는 자신이 입은 옷을 벗어 버리고는 누가 볼세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그 비렁뱅이가 벗어 준 누더기 옷을 재빨리 걸쳐 입었다.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이성계는 이제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거지 비렁뱅이 꼴이었다.
거지 비렁뱅이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이성계는 발길을 돌려 남문으로 향했다. 아직 소경점쟁이는 남문 앞에 그대로 앉아서 점을 치고 있을 것이었다. 과연 자신의 점괘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이성계는 들뜬 마음이 되어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자신을 혹여 누가 알아볼세라 고개를 깊숙이 수그리고 재게 발을 놓았다.
남문 앞에 당도한 이성계가 그곳을 보니 소경점쟁이는 그대로 있었다. 이성계는 비렁뱅이 걸인 흉내를 내면서 그 소경점쟁이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병자에 바보나 되는 양 가느다랗게 하고 말했다.
“맹인 도사님이 앞날을 잘 맞춘다고 소문이 자자해 제 운명을 점치러 왔습니다.”
소경점쟁이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요리조리 흔들면서 앞에 앉아있는 이성계를 보려는 듯 자꾸 눈알을 굴리면서 말했다.
“그러시다면 여기 나무판에 새겨진 글자를 하나 골라보시오.”
이성계는 그 나무판을 보고는 비렁뱅이가 전에 골랐던 그 물을 문(問)자를 서슴없이 짚었다.
명필 이삼만 (9)군왕지상(君王之相)
왜 이성계는 비렁뱅이 거지 옷을 부러 걸쳐 입고 가서 하필 그 비렁뱅이 거지가 골라 짚은 물을 문(問)자를 고른 것일까? 그것에는 이성계 나름의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일까?
이성계가 손가락으로 짚어 고른 물을 문자를 자신의 손가락으로 매만져 보던 소경점쟁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누더기 옷을 걸쳐 입고 앉은 이성계를 향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며 말했다.
“좌군우군(佐君右君)하니 분명 군왕지상(君王之相)이라!”
그 뜻인 즉 물을 문(問)자를 뜯어보니 왼쪽을 보아도 군왕의 형상이요, 오른쪽을 보아도 군왕의 형상이니 당신은 분명 군왕이라는 것이었다.
“에이! 이 양반아! 오늘 낼 하는 비렁뱅이 거지더러 군왕이라니! 크악 퉤!...”
이성계는 깜짝 놀라 병자인척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면서 비렁뱅이 거지와 똑같이 침을 뱉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좌우의 구경꾼들을 살피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약 그 자리에 혹여 자신을 알아보는 자가 있어 고려 왕실에 이 사실을 발고라도 하는 날에는 역적의 죄를 뒤집어쓰고 잡혀가 정말로 큰일을 치를 것이었다.
“허허! 내 오늘 두 번 공탕을 치겠다했더니 여지없네 그려!”
복채도 주지 않고 피해 달아나는 이성계의 귓전에 소경점쟁이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흐흠! 과연 저 소경점쟁이가 신인의 경지에 이른 천하의 실력을 갖추었단 말인가!’
이성계는 속으로 그 소경점쟁이의 신통함을 경탄해 하며 혀를 내둘렀다. 이성계는 당시 고려왕조를 들어 엎어버릴 엄청난 계획을 가슴에 품고 있던 터라 ‘그 일이 실패할 것인가? 성공할 것인가?’를 노심초사 걱정하며 거사를 단행할 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소경점쟁이가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자신의 점괘를 보고 ‘군왕지상’이라니 이는 곧 성공을 예견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과연 소경점쟁이는 무슨 연유로 비렁뱅이 누더기 옷을 걸쳐 입고 온 거지와 이성계가 물을 문(問)자를 똑같이 골랐는데도 그 점괘를 정반대로 다르게 판단하여 풀이했단 말인가? 바로 그 소경점쟁이는 겉모습과 실상의 다름을 깊이 깨달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소경점쟁이는 눈이 멀어 사물의 외관(外觀)은 절대로 볼 수 없었는데,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일반 사람들은 사람들의 돈과 권력과 지위와 미추(美醜)와 먹을거리의 외관에만 치중한 나머지 그 내면의 깊은 실상은 절대로 알아보지 못하는데, 그 소경점쟁이는 같은 글자를 고른 자라도 그 내밀한 실상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각기 정반대로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것은 돈과 지위와 권력을 가진 겉모습만 기름지고 화려한 그 누구라도 그 내밀한 실상은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말함이다. 연줄이나 아부아첨, 거짓에 갖은 뇌물로 얻은 자리에 버젓이 올라앉아 터무니없이 많은 대가를 챙겨가면서 그것도 부족해 뇌물이다 뭐다 하여 눈치껏 백성의 고혈(膏血)이나 맛나게 빨아먹으며 나 잘났다고 우쭐거리면서 온갖 협잡과 악행 그리고 남모르는 부정부패에 절어 치부나 하는 자라고 한다면 그가 곧 칼 안든 강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한 외관과 실상의 다름의 경지를 소경점쟁이는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계는 어떠한가? 이성계 또한 그 소경점쟁이 못지않다. 무장(武將) 이성계는 조선의 기틀을 세운 문인(文人) 혁명가 삼봉 정도전을 알아본 혜안을 가진 자가 아닌가! 그것은 마치 문왕이 강태공을, 유방이 장량을, 유비가 제갈량을, 조조가 순욱을, 이세민이 위징을, 칭기즈칸이 야율초재를, 주원장이 유기를 알아본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세상의 빛나는 온갖 허울을 뒤집어쓰고 허명에나 잔뜩 도취해 살아가는 자들로서는 어찌 가당키나 하랴!
명필 이삼만 (10)이삼만과 독사
“그러니까 태조 이성계가 고려왕실을 멸망시키고 그 소경점쟁이를 수소문해서 찾아가 크게 후사(厚謝)를 하고 일이 있을 때마다 불러와서 점사(占辭)를 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는구만요.”
검은 수염 덥수룩한 중년의 사내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 봉사여도 그 점쟁이 성한 사람보다도 더 뛰어나네. 왕 될 사람도 알아보고 그랴!”
늙은 사람 하나가 혀를 내두르며 말한다.
“어흠! 본래 그것이 세상이치라네! 도둑이야기에 왕 이야기를 들었으니 좋다! 나는 선비 학자 글씨로 이름 날린 명필 이삼만 선생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지”
유선각 가운데 앉아 산수화에 뉘 시구가 한자로 써진 커다란 합죽선을 살랑거리며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책깨나 읽어 문자속량깨나 머릿속에 들었을 그 마을의 양반네 같은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떡하니 나선다. 이쯤 되면 이야기는 너나 할 것 없이 자동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 명필 이삼만 이야기라! 그가 누굴까? 어디 한번 들어보자.
“으음!... 명필로 이름을 떨친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은 조선 순조 때 전라북도 정읍현 동면 부무곡에 살았던 사람인데...”
이름자의 삼만은 세 가지가 늦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집이 가난하여 공부를 늦게 시작했다는 뜻이고, 그리하여 세상에 나가는 것이 늦었다는 것을 말함이고, 또 장가를 늦게 들어 자손을 보는 것이 늦었음을 말함이다.
가진 것 없는데다가 그를 끌어줄 사람 하나 없었으니 이삼만의 인생도 제 아비처럼 비루하게 흙이나 뒤집어 먹으면서 살아야할 운명이었다. 근근이 농사일을 해서 목숨 줄이나 겨우 이어가는 처지였으니 이삼만의 아버지 이지철은 가끔 산에 올라 약초를 캐 말려 팔기도 했다.
인생살이란 게 아무 일없이 그냥 그렇게 먹고 마시고 즐기다 운명대로 살다 가버리면 그대로 말일이었지만 이삼만이 사는 정읍 땅 부무곡에는 유독 독사가 득실대는 곳이었다.
이삼만이 19세 되던 해 초가을 아버지 이지철은 약초를 캐러 산에 올랐다가 불행히도 독사에 물리고 말았다. 한약방에 가서 독사의 독을 처방할 약을 지어와 달여 먹는데도 효험이 없었고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 그것도 독사에 물려 죽은 아버지, 이 일은 온통 이삼만의 가슴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이었다. 효성이 지극했던 이삼만은 독사를 원수로 생각했고 그 후로 독사만 보면 닥치는 대로 잡아서 껍질을 홀랑 벗겨 그 자리에서 통째로 질겅질겅 씹어 먹어버렸다.
이삼만이 독사만 보면 뭐에 홀린 듯 모조리 잡아 먹어버리자 독사들은 이삼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 지역에서는 정월 첫 뱀날 새벽에 쑥불 피워놓고 사(巳)자 써서 집 기둥에 거꾸로 붙이는 뱀뱅이 옆에 이삼만이란 이름을 함께 써 붙여 집안에 들어오는 뱀을 예방하려고 했다하니 이삼만의 독사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독사에게 물려죽은 아버지를 생각하고 독사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은 이삼만은 그것이 아버지의 원수 갚음의 행위였을 뿐인데 그로 인한 결과는 참으로 예상 밖이었다. 이삼만이 늦도록 정력이 좋았고 또 그가 서예가로서 이름을 세상에 떨쳤던 그의 초서(草書)필체인 류수체(流水體-창암체라고도 함)가 누가보아도 마치 뱀이 꿈틀거리는 형상 같았던 것이다.
명필 이삼만 (11)개천의 용
독사에 물려 죽은 아버지의 원한을 갚기 위해 독사를 잡아먹은 그 내력과 강한 정력, 그리고 늙도록 필력이 좋아 꿈틀거리는 뱀과 같은 생동하는 필을 휘갈겨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우연한 죽음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뭇 사람들의 추측을 유발하게 하였고, 그 추측이 참으로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기에 인생살이의 행불행(幸不幸)에서 오는 오묘한 이치를 어리석은 속인은 도무지 무슨 수로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예측불허의 인생사, 희비애환(喜悲哀歡)의 깊은 질곡에 그저 닫힌 입이 떡 벌어질 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삼만이 서예가로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일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는 것일 게다. 당시야 사서삼경을 읽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다 보니 의당 글씨를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꿈틀거리는 독사를 손에 쥐어 보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되다보니 그 생동하는 동작이 몸에 익었을 게고 은연 중 휘갈겨 쓰는 필치에 그 역동하는 힘이 배어나왔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독사는 정력제라는 속설이 있듯이 독사를 생식으로 복용한 이삼만은 팔목의 기력이 넘쳐나 필치에 힘이 더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공부를 하는 이삼만도 과거에 등과하는 방법 외에는 출세할 별다른 묘책이 없었다. 그 정도 공부야 양반 자제들에게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을 것이다. 학문에 달통했다는 이름난 스승 찾아가 배우며 논어 맹자 중용 대학하는 경전을 밥만 먹으면 붙들어 안고 암송하고 베껴 써야하는 그들에게 이삼만의 학문이 어찌 감히 능가할 수 있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재력과 권력을 모조리 쥐고 있는 그들이 우선인 세상 아닌가! 당시 그들 양반 자제들을 공부시켜 권력과 재력을 세습시키려 학문을 연마하게 하는데 혈안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뒷받침이 좋은 뛰어난 그들을 이겨낸다는 것은 그중 특이한 몇몇에 불과했을 것이고 또 대부분은 그들 권력 가진 양반들의 차지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이삼만 같은 경우야 학문을 연마한다고 한들 그저 한 마을에서 겨우 문자속량이나 배워 깨친 이름자 정도나 쓸 줄 아는 부류의 식자층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런 이삼만 같은 부류를 운 좋게도 용케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무언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여 그 특별한 것을 알아보는 눈을 만나면 특별한 사람으로 대접 받을 수도 있었다. 이른바 특별한 사건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도무지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었을 때 이러한 표현이 가능하다.
앉아 밥 먹으며 글을 읽고 또 꿈속에서 글을 읽고 쓰는 권력층인 양반자제들이야 항상 용이 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다반사로 용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별로 알아주는 용들이 아니다. 그들 출신이 용이었기에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이삼만은 ‘개천의 용’이 되었는가? 그야말로 시골에서 농사일이나 하며 근근이 글자를 익혀온 이삼만이 어떻게 하여 한 지역, 한 시대의 명필로 대접받게 되었는가? 그것은 특별한 혜안을 가진 뛰어나고 사려 깊은 위대한 위인으로부터 가능하다.
여기 옥구슬이 서 말이나 있다고 하자. 그러나 아무도 그것이 옥구슬인줄 몰라본다면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옥구슬일 뿐이다. 돈이 되는 일, 권력이 되는 일, 이익이 되는 일에만 눈이 팔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도무지 그 이상의 것은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세상이 한심하고 쓸쓸하고 죽은 것 같은 것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을 알아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말함이다.
봄날 매화에 여름날 장미, 가을날 단풍에 겨울날 백설은 모든 눈이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모든 눈들에게 보이는 것들은 그저 그럴 뿐이었다. 세속의 온갖 이해타산(利害打算)에만 젖어 살아가는 속인들의 타성(惰性)에 젖은 눈에는 일상 속에 묻혀있는 특별한 것이 절대로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명필 이삼만 (12)중국인 방문객
그런 눈으로 이삼만을 보면 그저 하잘것없는 가난한 농사꾼일 뿐이었다. 매화 같은 선비의 기품도 없었고, 장미 같은 화려한 재력도 없었고, 단풍 같은 배경도 없었으며, 백설 같은 권력도 없었다.
세상에 찌들어 살아가거나 취해 살아가는 모든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일 리가 없었다. 도무지 알아보는 이가 없으니 그저 진흙 속 옥구슬처럼 개흙 속 깊이 쳐 박혀 초라히 세월 속으로 초연히 사라져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기이하게도 그런 이삼만의 숨은 재주를 알아보는 특별한 눈이 있었으니 천재일우(千載一遇)가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인재는 하늘이 낸다는 말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니다. 하루에 일천자를 쓰고, 벼루 열 개를 먹을 갈아 맞구멍 내고, 붓 천 자루가 뭉개졌다는 이삼만의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삼만이 낮에는 논밭 일에 나무를 해다 나르고 밤에는 글씨를 쓰면서 학문에 열중하던 어느 날이었다. 정읍에 사는 머리가 허연 나이든 사람 하나가 술 한 병을 들고 이삼만을 찾아왔다.
“삼만이 집에 있는가?”
이삼만이 보아하니 전에 아버지가 약초를 캐와 말려 팔던 약초 상인이었다.
“예! 어르신,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이삼만이 공손이 인사를 하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내 자네에게 부탁이 있어 왔네.”
이삼만이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약초 상인이 말을 이었다.
“사실은 내가 글씨를 모르는 까막눈이 아닌가! 그래서 말일세... 당재(唐材)를 구할 물목기(物目記)를 좀 써주시게나.”
드넓은 중국 땅 온갖 약재가 많아 그곳에서 들여오는 당재(唐材)는 아주 귀하게 여겼다. 대구 약령시에서 중국산 약재 무역을 하는 한자를 모르는 그 약초 상인은 중국인 약초 상인에게 보일 약초를 구입할 물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삼만은 먹을 갈아 종이에 별 생각 없이 약초 상인이 부르는 대로 물목기를 써주었다.
그리고 몇 달 뒤였다. 정읍고을에 평소 볼 수 없었던 중국인들이 나타났다. 그 중국인들은 뜻밖에도 이삼만을 찾아왔다며 이삼만의 집을 묻는 것이었다.
도대체 중국인들이 무슨 연유로 논밭이나 일궈먹는 평범한 시골 사람에 불과한 이삼만을 찾아왔단 말인가?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이삼만은 중국인들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동네사람들에게 듣고는 마지못해 몸단장을 하고 중국인들의 처소로 향해 갔다.
‘중국인들과는 일면식도 없는데다가 찾아올 아무런 까닭이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중국인들이 자신을 찾아올 까닭이 없었던 이삼만은 참 이상도 하다고 생각하며 허탕 칠 마음으로 가볍게 발길을 옮겼다. 한참 후 중국인들이 묵고 있는 정읍의 어느 주막집에 당도하니 낯선 중국인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함께 온 세 명의 중국인들은 사나흘이나 그 주막집에 머물면서 이삼만을 수소문해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중 새하얀 머리칼의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이삼만에게 말했다.
“이삼만 선생, 내 당신의 글씨를 받으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글씨를 받으러 중국인이 이곳까지 왔다니? 순간 이삼만은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더구나 이순이 넘은 듯 보이는 중국인이 나이어린 이삼만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존경하는 웃어른을 대하듯 공손했다. 전라도 깊은 산골에 묻혀 사는 이름 없는 하찮은 무명 필객인 자신의 글씨를 어떻게 알아보고 글씨를 받으러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명필 이삼만 (13)300냥
“저는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한 그저 깊은 산골에 박혀 사는 농사짓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의 글씨를 받고자 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초지종을 알길 없는 이삼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말하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변변하게 어디다 자신의 글씨를 내보인 적도 없고 또 내놓을만한 학문에 변변한 경력도 없기에 한편으로 몹시 당황했던 것이다. 더구나 중국인들이 자신의 글씨를 보았을 까닭이 도무지 없지 않은가?
저들은 도대체 이삼만의 글씨를 어떻게 알아보고 먼 중국에서 벽지 산골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정읍 고을의 이름 없는 이삼만을 물어물어 여기까지 찾아왔단 말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정읍에 사는 약초 상인에게 몇 달 전 써준 물목기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대구 약령시에서 중국산 약 재료를 가지고 온 하얀 머리칼의 중국 상인은 정읍에서 온 상인이 내민 물목기를 보고는 흠칫 제 눈을 의심하며 깜짝 놀랐다. 한 글자 한 글자 휘갈겨 쓴 글씨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꿈틀 기운차게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흐흠! 글씨의 필획에 기품과 기운이 넘치는구나!’
한동안 그 물목기를 바라보며 글씨를 감상하고 있던 기품 있는 얼굴의 중국 상인은 마침 약재 값으로 300냥을 치르려는 정읍의 상인을 보고 말했다.
“이 물목기는 누가 쓴 글씨인가요?”
정읍의 상인은 그 말을 듣고 별 이상스런 것을 묻는 중국인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우리 고향 정읍 산골에서 근근이 농사지어 먹고 사는 장가도 못간 노총각이 써준 것이라오.”
“흐음, 그래요. 그가 누군가요?”
중국인은 그 말을 듣고는 다시 유심히 물목기의 글씨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이삼만이라는 자요.”
약초 상인은 별 생각 없이 말했다.
“으음! 정읍에 사는 이삼만이라!... 좋습니다. 내 오늘 당신이 약재를 산 약재 값 300냥을 받지 않을 테니 이 물목기를 내게 주고 갈수 있겠소?”
“뭐 뭐라고요? 그 그게 정말이나요!”
정읍의 약초 상인은 중국 상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귀를 의심하며 말했다. 대체 300냥이 얼마나 큰돈인데 그것을 저 하잘 것 없는 물목기와 바꾸겠다니 머리에 몽둥이라도 얻어맞은 듯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다.
“정말이오. 이 물목기를 내게 주시면 약재 값 300냥을 받지 않겠소이다.”
중국인은 다시 또릿또릿하게 말했다.
“아!”
정읍의 약초 상인은 벌린 입을 닫지 못했다. ‘도대체 이삼만이 쓴 저 물목기 글씨가 300냥이란 말인가!’ 본시 물목기는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렇게 글씨를 보고 약재 값을 받지 않고 물목기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중국인은 그 자리에서 정읍에 가면 이삼만을 만날 수 있는가를 물었고, 이렇게 하여 정읍의 먼 산골까지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이삼만을 찾았던 것이다.
명필 이삼만 (14)순수한 예술혼
글씨를 써줄 것을 정중히 간청하는 중국인에게 자신의 글씨가 별것 아니라고 겸손하게 거절하는 이삼만을 한동안 바라보던 중국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어찌 글씨에 산골이 있고, 농사꾼이 따로 있을 수 있겠소. 사양하지마시고 비단에 글씨 한 점만 써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중국인은 준비 해온 필묵에 새하얀 비단을 이삼만 앞에 펼치는 것이었다. 같은 조선인도 아니고 바다 건너 중국인이 자신의 글씨를 알아보고 글씨를 받고자 한다니 이삼만은 한편으로 당황했고 또 기쁘기도 했던 것이다.
더구나 예의를 갖춰 말하는 그 중국인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이삼만은 이윽고 아름다운 중국 비단에 글씨를 쓱쓱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글씨가 완성되자 한참동안 유심히 그 글씨를 들여다보던 중국인이 말했다.
“으음! 참으로 글씨는 명필이나 자획 속에 사기(邪氣)가 끼었으니 애석하도다!”
글씨는 명필이나 글씨에 사기가 끼었다니? 그 중국인의 한마디가 이삼만의 머리를 사납게 내리쳤다. 중국인은 글씨를 써준 이삼만에게 많은 돈을 주고 감사하다며 후히 사례하고 돌아갔다.
뜻밖의 일을 당한 이삼만은 어안이 벙벙했다.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진 것에 대한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비단에 쓴 자신의 글씨를 보고 평(評)을 하던 그 중국인의 말이 묵직한 뼈다귀처럼 가슴에 박혀 얹힌 듯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 글씨에 사기(邪氣)가 끼었다니 그 무슨 말인가?’
이삼만은 처음으로 자신의 글씨를 알아봐준 중국인의 그 말을 음미하고 또 음미하면서 결국 자신이 중국인의 뜻하지 않는 부탁을 받고 화려한 비단에 처음으로 글씨를 쓰면서 달뜬 마음에 기교와 잔꾀를 잔뜩 부려 운필(運筆)을 했던 것을 생각 했다.
‘으음..., 글씨는 곧 내 마음이었구나!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중국인은 내 글씨를 보고 내 마음의 허와 실을 모조리 꿰뚫어 보았던 것이야!’
이삼만은 순간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그 후로 이삼만은 정신 수양에 더욱 힘을 썼고 필을 쥐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으면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글씨를 쓰지 않았던 것이다.
논두렁 풀이나 베고 흙이나 파먹고 사는 농투성이 이삼만이 일약 필객으로 이름을 세상에 날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이 낯선 중국인의 방문 때문이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온 약재 상인은 서예가로서 일평생 서예에 몰두 해온 예인(藝人)이었고 우연히 조선에 와서 이삼만의 필체를 물목기로 접하게 되어 그 필체의 어떤 경지를 발견해 세상에 들어내 놓게 했던 것이다. 이삼만에게는 그 중국인이 최고의 은인이자 최초의 스승이 된 셈이었다.
더구나 글씨에 사기가 끼어 애석하다는 그 한마디는 이삼만이 자기 멋대로 공부를 하며 글씨를 그냥 써온 그에게 글씨라는 것이 무엇인지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던 커다란 울림으로 가슴을 때렸던 것이다.
아마도 그 순간부터 이삼만은 필객으로서 갖추어야할 모든 조건과 정신적 수양과 고뇌가 한꺼번에 물밀듯 몰아닥쳤을 것이고 또 자신의 글씨를 비로소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었다. 벼루 열개를 구멍 내 버리고 붓 천 자루를 닳아 버렸다고 하니 이삼만의 피나는 노력이 얼마 만큼이었는가를 쉽게 짐작하게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에게 하잘 것 없는 그 글씨의 아름다움과 그 글씨 속에 배인 정신까지 발견하여 그의 앞길을 밝혀 준 그 중국인은 참으로 사특함이 없는 순수한 예술혼의 경지를 더듬는 소유자였음이 분명하였다.
명필 이삼만 (15)추사와의 만남
이국의 땅에 장사꾼으로 와서 그냥 버려질 물목기의 필체를 눈여겨 볼 줄 아는 마음, 그리고 그 쓰레기 종잇장과 같은 물목기의 글씨에 반해 300냥이라는 거금을 던질 줄 아는 마음, 정읍 산골까지 먼 길을 달려와 그 글씨 쓴 사람을 찾아 만나서 글씨 값을 지불하고 글씨를 받아 갈 줄 아는 그 중국인의 순정한 마음이 곧 한 시대의 필객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글씨를 볼 줄 알고, 그 글씨를 쓴 사람을 볼 줄 알고, 수고롭게 그 사람을 찾을 줄 알고, 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아닌 것은 아니다’ 말 할 줄 알았던 그 중국인은 참으로 내심 어떤 탁월한 경지를 더듬는 부러운 마음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수만의 눈이 있으나 보는 것은 돈이요, 칼이요, 권력이요, 탐욕이요, 출세요, 쾌락밖에 볼 줄 모르는 썩은 동태 눈깔들만 줄줄이 모여 사는 좁고 추저분한 그런 곳에서는 빛나는 보석이 길가에 깔려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개새끼에게 금목걸이를 걸어준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개새끼에게는 먹다버린 뼈다귀가 제격이요. 굶주린 늑대에게는 죽은 병아리가 제격이겠다. 사람으로 태어나 겨우 형체나 사람일뿐이고 또 재주 좋아 높은 자리에 올라 고상한 것 같으나 실상은 한손에 칼을 쥐고 한손에는 기름진 배창자를 두들기며 가난한 백성의 피비린내 나는 생육이나 도려 삼키는 데나 골몰하는 그런 한심한 인사들에게는 예인(藝人)은 사치요, 예술품은 허세며 종국에는 유치한 자기기만이자 천박하고 교만한 쾌락일 것이며 투기품목일 뿐일 게다.
당시 조선의 명필로 소문이 자자한 54세이던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향 가는 길에 전라감영에 들려 열여섯 살이나 더 많은 70세의 이삼만을 불러 글씨를 시험해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때 추사는 이삼만의 글씨를 보고 서슴없이 말했다.
“흐흠! 역시 내 생각대로 조필삼십년(操筆三十年)에 부지자획(不知字劃)이로구나!(삼십년 붓을 잡았다지만 획도 하나 못 긋는다) 내 보니 노인은 겨우 시골에서 글씨로 밥은 먹고 살만한 글씨로군!”
오만한 눈빛으로 이삼만의 글씨를 사정없이 하평(下評)해대는 추사를 쓱 바라보며 이삼만은 당당하게 큰소리로 일갈을 했다.
“저 자가 글씨는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조선 붓의 헤지는 맛과 조선종이의 스미는 맛은 분명 잘 모르는 자가 아닌가!”
당시 권력을 누리던 문벌 양반들은 고급스런 털이 짧은 중국 붓과 종이를 수입해 썼는데 가난하게 하층민으로 살아가는 이삼만은 그런 고급스런 수입 붓과 종이를 전연 쓰지 않고 오직 꾀꼬리 꽁지털이나 칡으로 만든 갈필(葛筆)에 앵무새 꽁지 털로 만든 부드러운 조선 붓과 종이를 사용했기에 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추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황급히 등을 돌려 길을 떠나갔다.
당대의 양반 문벌로 태어나 최고 교육을 받고 쉽게 이르지 못할 높은 벼슬에 오른 교만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추사의 눈에 어찌 삼전이나 파 뒤집어 먹고 흙 구렁 속에서 무지렁이처럼 살아가는 산골의 학벌 없고 문벌 없고 지위 없는 그런 하찮은 노인의 특이한 것이 눈에 보이기나 했겠는가!
자연 속에 살아오면서 하찮은 지위나 허명이나 권력 따위는 행여 꿈결에도 욕심내지 않고 하루하루 자신의 끝없는 정신 수양의 끝에서 조선 붓을 잡고 조선종이 위에 사리처럼 빚어가는 글씨의 멋과 오묘한 깊이를 권문세가의 알량한 지식 속에 과거 급제와 벼슬이라는 고관대작의 교만과 오만으로 치렁치렁 치장해 두르고 그 속에서 화려하게 뒹굴며 살아온 나이어린 추사가 감히 알아보고 문턱이나 넘었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따지고 보면 물목기의 글씨를 보고 이삼만의 글씨를 한눈에 알아본 그 옛날 중국인의 눈에도 형편없이 못 미치는 오만과 교만으로 가려진 눈을 추사는 가지고 살았던 것이 아닌가!
명필 이삼만 (16) 명필창암이공(名筆蒼巖李公)
최고의 명필 이삼만의 ‘산광수색’역동하는 독사의 형상이 돋보인다
그러기에 추사는 해남 대흥사에 가서 초의선사를 만난 자리에서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 글씨를 보고 크게 호통을 쳤다.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놓은 게 원교인데 저런 게 글씨라고 걸어 놓았단 말인가! 당장 떼어내라!”
대흥사 스님들이 형조참판을 지낸 추사의 추상(秋霜)같은 호령에 못 이겨 글씨를 떼어내 창고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대신 추사가 쓴 대웅전(大雄殿) 글씨가 걸렸다.
생각해 보건데 반도라는 좁은 땅덩어리에 살아가면서 명, 청 그리고 심지어 왜구의 눈치까지 살펴야 했던 조선왕조시대와 일제식민지시대, 미군정, 6·25 그리고 군사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가슴도 마음도 좁쌀만큼 작아져 버렸다.
아첨과 변절의 이력을 덕지덕지 달고 으름장을 놓고 앉아 ‘내가 최고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그 속물에 소인배 근성으로 제 측근만을 강아지처럼 배회하는 아첨꾼으로 작은 파당이나 지어 자기들만의 높은 성을 쌓고 교만하게 거들먹거린다.
결국에는 모든 개성 있는 다양한 생각과 사상, 문화를 말살하는 일에나 골몰하면서 모든 것을 독단적이고도 몰개성적인 획일화로 치장하기에 바쁜 인격 없고 실력 없는 지위와 허명과 권력만 가진 간사한 족속들이 예나 지금이나 도처에 허다한 실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 안에는 부정한 힘과 부패한 자본의 대결과 충돌 그리고 생명의 살해라는 극단의 비열하고 추악한 역사만이 존재한다.
훗날 추사 김정희가 8년 6개월이라는 제주도의 귀양살이가 풀려 64세가 되어 돌아오는 길에 해남 대흥사에 들려 자신이 쓴 글씨를 한참동안 올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전날에 원교의 글씨를 몰라보았구나! 내가 쓴 저 글씨를 떼어내고 원교의 글씨를 다시 달게!”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을 강조하며 가슴속에 5천권의 문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다던 추사는 고달픈 귀양살이의 과정에서 자신의 오만과 교만을 떨쳐낸 것일까?
추사는 한양으로 가는 그 길에 정읍의 이삼만의 집도 찾아보았다. 그러나 이삼만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추사는 이삼만의 제자를 만나 묘비에 ‘명필창암이공삼만지묘(名筆蒼巖李公三晩之墓)’라는 묘비명을 남겼다고 한다.
한겨울 추운날씨가 된 다음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던 추사가, 제주도 귀양살이의 혹독함을 겪고 나서야 ‘자기 잘난 줄만 알았지, 남이 잘난 줄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던’ 추사가 비로소 자신의 오만한 껍질을 깨고 밖으로 순한 눈이 되어 천하의 내밀한 경지를 어루만졌던 것이었을까?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쩌면 그 중국인의 특별한 혜안이 아니었던들 산골의 무명 필객 이삼만의 글씨와 이름은 영원히 이 땅에서 꽁꽁 묻혀버리고 말았지 않았겠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그때 그 바닥이나 지금 이 바닥이나 세상 살아가는 인간들의 작태는 하나 다를 것 없이 똑같거니 고요히 초야에 묻혀 살밖에 없는 버려진 사람의 쓸쓸한 마음 귀를 어찌 모르겠는가!
이렇게 한 소절 이야기가 보태졌다 사라지면 한 시절 폭염으로 달구어지던 대지도 식어나고 또 아름다운 단풍 물 드는 시절이 오는 것이었다.
거기 또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무명의 객들이 사랑방 구들장 아랫목에서 ‘제까짓 것이 다 뭐야!’ 저 추상같다는 임금님 눈치도 살피지 않고 도란도란 시절 여무는 야문 소리를 곧잘 시작 해댔으니 밤 새워 북풍은 점점 칼날을 세워 불어와도 오두막집 사립문 앞 개울물은 그칠 새 없이 도란거리거니 세월 가는 소리에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또한 그칠 새 없는 것이렷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