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명복, 미망인' 이라는 말은?
⊙ 지난 주간 우리 교회 권사님의 장례 예식에서 집례 목사님이 "이
제 침묵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드립시다." 라고 했습니
다. 문제가 없는지요?
⊙ '명복' 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데 한국 교회에서는 흔히
사용합니다. 그 뜻과 유래를 알고 싶습니다.
⊙ 우리 교회에서는 남편이 사망한 부인을 '미망인' 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말도 성경에서 보이지 않는 단어입니다. 그 뜻과 유래를 찾아 주세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웃 교회의 어느 장로님이 문상객으로 조문을 가서 그 교회 목사의 안내를 받고 다음과 같이 위문을 하였습니다.
목 사 : 이분이 미망인 되신 분입니다.
문상객 : 얼마나 슬프십니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러한 소개와 인사는 우리 한국 교회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깊은 생각을 기울이지 아니한 경우 매우 자연스럽고 정중한 소개요 인사로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범하는 중요한 실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명복(冥福)이라는 말과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나라 언어는 이 땅에 수천년 동안 자리잡아 온 무속과 불교와 유교와 같은 종교로부터 유래한 언어가 대부분입니다. 그러하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타당하지 않은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경우가 발생됩니다.
먼저 '명복' 이란 말은 전혀 기독교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앞에서 고인을 위하여 사용한 '명복' 이라는 말은 우리 언어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린 단어이지만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표현입니다. 이 말은 불교의 교리와 연관된 단어입니다. 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후 가게 되는 곳을 '저승' 이라 일컫고 그곳을 명부(冥府)라 합니다. 거기는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는 곳이기에 복된 심판을 받기를 바란다는 뜻을 가진 말이 '명복' 이란 단어입니다. 생각하면 우리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생각 없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가정에 가서 불교의 진리를 확인해 주는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장례를 치르고 있는 그리스도인 가정에 가서는, 그 진리를 수용하고 거기에 동참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 때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는 말을 대신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적당한 인사말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여기에 대하여 목회의 원로들은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슬프십니까?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는 "참으로 뜻밖의 일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때 상주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로 답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둘째, 미망인(未亡人) 이라는 호칭의 문제입니다. 이 말은 흔히 사용하는 말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 말의 배경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이 표현이 사용되는 것을 몹시 꺼리고 있습니다. 이유는 이 말의 뜻이 "남편이 죽고 홀로 사는 여인"인 동시에 "아직 죽지 못한 사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미망인이라는 말은 순장(殉葬) 제도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순장이란 어떤 죽음을 뒤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강제로 죽여서 죽은 시체와 함께 묻는 장례 풍속을 말합니다. 이러한 풍속은 고대 중국의 은나라와 이집트에서 있었던 풍습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신라의 22대 지증왕(智證王)3년(주후502년)에 이르기까지 존속했던 기록이 있습니다.이러한 역사와 문화의 배경을 이해한다면 교회에서 미망인이라는 호칭은 매우 부적절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순장 제도는 하나님이 생명을 개체로 창조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기독교 진리를 거역하는 제도입니다. 그리고 현대인의 감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입니다. 만일 이 말을 풀어서 "남편이 죽었기에 마땅히 죽어야 할 몸인데 아직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 사람" 이라고 한다면 위로보다는 분노를 자아내게 될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제는 한 마디의 언어에서도 기독교와 대치된 표현을 버리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