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기 / 경비반장 되던 날!
글 / 이상현
며칠간 계속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 아파트 출근길은 모처럼 하늘도 개이고 도로 표면도 건조하여 마음이 무척 상쾌하다.
오랜만에 좋은 날씨여서 그런지 내 근무하는 아파트 뒤켠, 나무숲 산책길에는 몸이 불편한 노인분을 비롯하여 모처럼 평시보다 많은 주민들이 자신에게 맞는 가벼운 운동과 조깅으로 새벽 공기를 마신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서로가 마주치면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인사를 나누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그들 모습이 나처럼 무척 행복해 보이며 맑고 밝게만 느껴진다.
엊그제 ‘경비반장’이 된다는 관리소장님의 언질을 받은 후부터 마음은 벌써 콩밭에 가있는 듯 흰구름에 두둥실 실려가다가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천둥 번개도 치고 이제 예전에 누렸던 경비원의 조용한 자유로움에서 책임감만이 무겁게 어깨를 짓 누르며 긴장감을 더해준다. 이제 제2의 정년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의 새 출발이 나에게 또다시 주어진다.
아파트 경비원으로서의 첫 출근하던 날! 왜 그 날은 날씨까지 매섭게 추웠던지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은 터에 나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힘겹고 생소한 일들 뿐이었는데 그 힘든 일들을 지금까지 어떻게 이겨냈는지 꿈만 같아 그 동안 잘 참고 견뎌낸 자신이 무척 대견스럽기도 하다. 새벽 다섯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와 점심, 저녁 도시락까지 맛깔나게 준비한 집사람의 따듯한 정성, 어릴 때 학창 시절을 제외하곤 처음으로 도시락을 대하는 순간,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아내의 깊은 사랑에 왈칵 쏱아지는 그 뜨거운 눈물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직장생활 30여 년 동안 여러차례 승진의 기쁨도 누려봤지만 정년 퇴직 후의 이번 승진은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한다. 경비직 1년 8개월만의 일이다. 경비원이 총 소집된 자리에서 반장 임명장을 주고 또 인사말 까지 하란다. 기분은 둘째치고 우선 어떻게 인사말을 할까 가닥잡기에 고심했다. 사실 글쓰기보다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 글은 쓰면서 수정이 가능하지만 말은 수정이 불가능하여 잘못 말을 연결하다보면 결국은 말이 막혀 당황하게 되는데 다행스럽게도 어젯밤 잠자리에서 대략 정리한 내용이 머리에 남아있었다.
“우리 경비원은 제복을 입었기에 어떤 행동도 자유스러울 수가 없다, 잘 하는 모습도 눈에 뜨일 것이고 못하는 모습도 눈에 뜨일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잘하는 모습이 눈에 잘 뜨이도록 최선을 다 하자! 그리고 항상 봉사하는 마음으로 주민에게 친절히 대하고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히 보고한 후 처리할 것이며 등등”...사실 인사말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창피는 당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결과가 너무 좋아 다행이다. 아파트 경비원 총33명 중, 고령순으로 따지면 29번째이고, 입사 고참 순으로는 25위에 불과하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 하다보니... 서열도 무시된 것 같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경비원이라는 직업을 경시하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아 그동안 참기어려운 모욕도 당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들도 수없이 많았던게 사실이다. 특히 요즘 일부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행동은 우리 아파트도 예외는 아니다. 세상이 무서워졌고 사람도 무서워졌다.
언젠가 아파트 경내에서 마주친 어떤 안면있는 아주머니의 인사가 “난 아저씨가 경비일을 하실분이 아니어서 벌써 그만 둔지 알았는데 아직도 경비일을 하시네. 무척 어려우신가봐"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말 같지만, 당시에는 어깨에 힘이 쭉 빠져 끌고가던 리어카를 내 팽개치고 보따리를 싸고 싶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아직 갈 길은 멀고 먼데, 하잘 것 없는 그런 말까지 못 이겨내면 나는 결국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앞으로 수많은 난관에 부닥칠 텐데...
그 길을 헤쳐 나가기 위해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고 긍정적인 사고만이 내가 살길임을 다짐하며 입술을 꼭 깨문다.
여기 저기에서 분가한 자식들로부터 축하 전화가 걸려온다. 역시 우리 아빠가 최고란다. 모두가 한결같이 “아버지 경비반장 승진을 축하합니다.” 라는 전화가 빗발치고 화환까지 준비했단다.
“이거, 너무 과한 것 아니야?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 경비반장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나 자기들에겐 너무도 자랑스런 아빠라고 서로가 한턱 쓰겠다고 야단들이다. 늘 새벽잠을 설치면서 도시락 반찬을 걱정하던 마누라의 잔잔한 미소와 눈가에 촉촉이 젖은 눈물을 보니 안쓰러움과 고마운 생각에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여보 사랑해요. 그동안 너무 고생이 많았소!”
그리고 애비의 마음을 이해하여 주는 너희들 정말 고맙다.
우리 서로 이렇게 정겹게 열심히 살아 가자구나!
문득, 조동화’님의 시가 생각난다.
나하나 꽃피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라고,
ps 가는 세월 누가 막으랴!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이야기속의 아파트에서 10년간을
경비반장을 하며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 간의 세월을 돌이켜 볼 때
즐거웠던 일
후회되던 일
아쉬웠던 일
부끄럽던 일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일 뿐입니다.
첫댓글 이선생님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경비원 경력 2년도 안돼서 경비반장 승진을 하시다니요.
경비원이 33명이나 된다니 세대수가 어마어마 한곳인가 봅니다. 큰규모의 아파트라서 월급도 많으시겠네요. 저의 욕심 같아선 이선생님께서 반장으로 계시는 아파트에서 근무를 하고 싶습니다. ㅎㅎㅎ
저의 일 하는 아파트에는 월급이 넘 적습니다. 시급 6030원 주니 말입니다. 저도 현재 아파트경비원을 하고 있으므로 동병상련의 맘입니다. 저가 요즘 연재하고 있는 마당쇠에도 변함없는 관심 주시기를 바랍니다.
강선생님! 고맙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1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저는
지금도 그때 그 시절 그 자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단, 근무처에 변함이 있다면 당시
33명이던 인원이 주민의 경비비
절감 일환으로 22명으로 줄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추세이고요.
강선생께서 농담으로 하시는 말씀
이겠지만 전국 어딜가도 경비원의
보수체계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절대 돈따라 다니지 마십시요.
이 나이에 솔직히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이라도 황송하지요. 우선 건강이
보장되니까 일을할 수 있는게
아닙니까? 그 것만도 복이지요.
건강 잘 챙기시고 오늘도
좋은일만 있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인님!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만족하시며
건강 챙기시는 형님이 대단하십니다.
항상 투명하며 활달하신 모습!
동산문단 원고는 보내셨는지요?
다음 만날날을 기대하면서
경비반장 되신것을 축하 드립니다.ㅎㅎ
회장님! 10년전에 일기형태로 썼던 글을
한번 올려봤습니다.
좋게 보아 주시니 고맙구요.
문단 원고는 시 6편을 일찌감치
제출했습니다. 졸작이지만 신인으로서
원로님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영광입니다.
언제 또 한번 만납시다.
대단하십니다 이상현님
매사에 충실한 결과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복도 많으십니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의 얼굴을 익힐만 하면 바뀌던데 어떻게 했기에 10년 동안이나 근무할 수 있었을까?
아울러 겅비반장이 되신 것 다시 축하합니다.
고병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