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외부 강연...숲속지기는 괴산과 멀지 않은 곳, 진천여중으로 청소년 친구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저는 사실 청소년들이 젤 어렵습니다. 어린이나 성인 대상 강연은 자주 해서 익숙한데 청소년은 만날 기회가 적어서 그런지 강연 요청이 오면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데요. 오늘은 진천여중 여학생들과 만났습니다. 학교에서 책 쫌 읽는다는 친구들 30명만 모아서 사서 교사가 도서관 특강을 요청한 건데요.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에게 한 권씩 선물로 줄 책을 골라와달라고 하네요.
저는 곰곰 생각하다가 블라인드 북을 만들어가기로 했어요. 여중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골라 표지가 안보이게 포장하고 책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글을 엽서에 써서 붙였습니다. 이왕이면 글만 빽빽한 무거운 책들보다는 글과 그림이 적절히 어울린 책, 내용은 물론 좋아야 하지만 디자인이나 장정이 고급스러워서 내 책꽂이에 소장하고 싶은 책들을 많이 고르려 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강연을 하고 학생들은 마음이 끌리는대로 블라인드 북을 골랐습니다.
어떤 책과의 만남은 운명적이어서 마치 연인처럼 우리 삶을 바꾸기도 하죠. 혹시 지금 고른 책이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첫인상 만으로 쉽게 포기하지 말고 왜 이 책을 골라주었을까 생각하는 맘으로 한 번쯤 살펴 봐주길 바란다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정말 이 책 말고 다른 책을 갖고 싶은 친구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교환 찬스를 쓸 수 있도록 여분의 책 20권을 더 주문했지요. 6-7명 가량 친구들이 이 교환 찬스를 사용하더군요.
일부러 둥글게 둘러앉아 책 이야기를 주거니받거니 했습니다. 걱정과 달리 학생들은 내 말도 잘 들어줬고 자기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도 한 장씩 선물로 주고 왔어요.
내가 고른 책이 어떤 건지 옆 친구들도 알면 좋겠지요. 그중에 관심 가는 책이 있으면 서로 빌려보면 더 좋고요. 그래서 어떤 친구가 어떤 책을 가져갔는지 알 수 있게 모두들 들어서 보여주었습니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이 책들에 대해 한 권 한 권 설명을 덧붙여서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호기심을 유도하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까지는 없었네요.
몇 몇 친구들은 자신이 소장한 책 중에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을 가져오기도 했어요. 그 친구들은 왜 이책을 재미있게 읽었는지 설명하고 친구들에게 소개했는데요. 자기 표현을 멋지게 해서 감탄했습니다. 와...책 읽는 중학생들은 참 똑똑하구나..ㅎㅎ....
학교에는 좋은 도서관이 있어야 하고 학생들의 자발적인 독서의욕을 추동할 수 있는 사서교사가 꼭 필요합니다. 오늘 수업은 영어교실에서 했는데요...학교들을 다녀보면 가끔 학교에서 젤 멋진 공간은 영어교실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천여중은 역사가 오래 된 학교라서 학생 수도 많고, 대신 시설은 좀 낡아있었어요. 도서관도 학생 수에 비해 좀 작은 듯하고 낡아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곳엔 사서 교사가 계시니까요. 사서교사가 있는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는 독서교육에 차이가 큽니다. 그걸 안다면 사서교사 없이 학교 도서관을 운영하는 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일인지 깨달을텐데....안타깝게도 교육 예산을 배정하지 못하는 걸 보면 그리 중요하다 생각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걸 보고 있노라면,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이 독서를 안해서 큰일이라고 걱정하는 소리는 다 가짜처럼 들립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어린이 청소년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하고 책 읽고 생각하는 인간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공공도서관과 학교 도서관에 교육예산을 투자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도서관을 만들고, 그곳엔 반드시 적정한 규모의 사서들을 채용해 독서교육을 시행해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이 그런 예산으로 쓰이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이곳이, 학교가, 도서관이, 어린 학생들에게 꿈을 꾸게하고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곳이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보람된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