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과 예술>
혁명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완전한 변화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 그것은 시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일수도 있지만 인간의 욕망과 권력과 관련해서는 인간에 의해 조성되고 만들어진 불만에서 시작된다.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특히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말처럼 권력을 장악한 계층은 그들이 가졌던 원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권력’이라는 힘에서 파장되는 부정적인 요소에 의해 점차 누군가의 권리와 재산 그리고 생명을 빼앗은 일상의 사악함을 저지르게 된다. 이익을 누리는 자는 적어지고 고통의 피해자가 늘어날 때 변혁의 기운이 꿈틀거린다. 때론 권력의 무능 때문에 공동체가 파괴되고 공동체원들의 고통이 심화될 때도 변혁의 요구는 거세진다. 현재의 세계는 바뀌어야 하는 당위성에 빠지는 것이다.
변혁의 움직임은 특정 엘리트 집단에서 시작되거나 민중들의 집단적 의식에서 출발한다. 특정 엘리트들의 변혁은 일종의 권력투쟁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현재의 권력을 지닌 계층의 무능을 전복시킬 필요를 자극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선동적으로 이끌어내어 혁명을 시도한다. 때론 이러한 시도는 실제 공동체의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집단적 이기심으로 무장하여 권력을 장악하려는 추악한 의도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20세기 러시아 전역을 뒤흔든 사회주의 혁명이나 수많은 유럽의 국가를 장악한 파시스트 혁명이 바로 이러한 변혁의 정치적 결과였다. 권력은 무능했고 공동체는 위기에 취약했다. 현재의 상태로는 공동체의 위상은 불안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변혁을 요구했고, 그러한 변화를 이용하여 특정 정치세력들은 권력을 장악했다. 권력을 장악한 세력은 본격적으로 위로부터의 혁명을 시도하였다.
반대로 수많은 민중들의 분노에서 시작된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중산층과의 협력을 통해 프랑스 혁명과 같이 기존의 정치 세력을 제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민중 혁명은 철저하게 괴멸되고 파괴되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성공 이후 19세기 내내 이어진 프랑스의 민중 혁명도 더 이상 과거의 성공을 이어가지 못했고 특히 1871년 ‘파리코뮨’의 혁명적 시도는 엄청난 살육과 파괴를 통하여 진압되기도 하였다. 특정 집단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위로부터의 혁명’과 민중들의 분노로부터 시작되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혁명의 결집과 기획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고 실제 성공여부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만들어진 민중의 의식이 결집되고 표현된 ‘예술’이라는 영역을 세부적으로 보았을 때 예술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일어날 때 진정한 민중의 의지와 욕망 그리고 꿈과 희망이 자연스럽게 축적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혁명과 변혁의 욕구는 자연스럽게 예술의 형태를 통해 분출되지만 예술에 스며든 것이 무언인가에 따라 예술의 성격은 전혀 상반된 모습을 띠게 된다.
‘위로부터의 혁명’은 권력을 장악한 자들의 의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진행된다. 혁명은 정치사회 전분야 걸쳐 진행되지만 이러한 변화를 시도할 때 ‘예술’은 매우 중요한 선전선동 수단으로 활용된다. 권력을 장악한 자들에게 예술은 ‘민중의 의지와 꿈’과는 전혀 상관없다. 다만 그들의 정치사회적 계획을 완성하기 위한 청사진의 보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폐쇄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특정한 성격의 ‘예술’만을 강조한다. 즉 자신의 필터를 통과한 예술만을 허용하고 나머지는 철저하게 탄압하는 것이다. 나치 시대 히틀러를 비롯한 지도층은 현대적이고 전위적인 예술을 증오했고 제거하려 했다. 그들은 ‘퇴폐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적 전위예술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맞는 예술만을 찬양했다. 스탈린 시대의 예술 또한 동일했다. 사회주의적 이상과 괴리된 인간의 자유와 다양한 감정적 측면은 부르주아적 거짓이라는 이름으로 배척되었다. 한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군부독재 시절 통치 세력은 권력을 비판하고 인간의 자유와 보편적인 사랑을 강조하면서 계급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탄압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대마초 파동’이나 전두환 정부 ‘국풍81’과 같은 사건들은 ‘위로부터의 혁명’ 속에서 등장하는 예술의 성격을 보여준다.
반대로 ‘아래로부터의 혁명(변혁)’은 구체적인 정치적 성공과는 관계없이 민중의 분노와 욕망을 함축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이 등장하고 발전하게 된다. 조선후기 민중들이 가졌던 기존 윤리의 취약성에 대한 불만, 계급적 질서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에 대한 연민 등을 비롯하여 현재의 공동체애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변혁의 필요성을 다양한 예술적 루트를 통해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민중들의 투박하고 거친 언어와 표현방식을 통해 나타나던 가면극, 판소리, 기타 예능적 성격이 민중계급과 협력하기 시작한 중인들과 몰락한 양반들과의 협력을 통하여 예술적 성격을 갖게되었고 투박함을 극복하고 세련된 모습을 띠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원래의 민중적 성격은 약화된 측면은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약화되었다기보다는 세련된 형태로 변모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정치적 혁명은 실패했지만 예술은 그들이 지녔던 분노와 의식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킴으로서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생명을 획득하였던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예술이 직접적으로 결합된 형태는 1970-80년대 마당극과 마당굿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때의 예술은 본격적으로 ‘민중예술’이라는 이름을 통해 명확한 혁명적 의도를 가지고 혁명의 정신을 표현하고 사람들의 의식을 확충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특히 마당극은 조선 후기 가면극의 비판정신을 계승하여 과거의 마당극의 형식과 현대의 연극적 특징을 종합하여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방식으로 공연되었고 공연자와 관람자와의 연대를 통하여 혁명적 실천을 이끌어내는 전위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때의 예술은 마르크스의 예술관인 “예술작품은 개별적 모든 사회계급의 이해관계와 세계관을 면밀한 방식으로 표현한다.”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공연되었고 구체적인 인물묘사라기보다는 특정 집단을 형상화하고 상징화하여 비판적으로 전개하였다.
혁명과 변혁의 시대, 예술은 구체적인 실천을 이끌어내는 정신적 영역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예술은 사회적 계급이 갖고 있는 이해관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변화를 위한 강력한 이데올로기 도구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강조하거나 도식적인 혁명의 선전 도구로 활용된다면 예술의 가치는 상실된다. ‘위로부터의 혁명’과 예술이 철저하게 실패한 이유 또한 예술이 갖는 자율적이고 독창적인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변혁의 시대,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변혁의 욕망을 드러내지만 욕망의 표현이 거칠고 지극히 수단적일 때 예술로서 형상화는 무너지고 결국 예술이 지향하는 원래의 가치까지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민중예술이었던 무속, 가면극, 판소리는 초반 민중적이고 저항적인 성격에서 많은 변화를 갖게 되는 데 이러한 변화는 변혁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을 넘어 예술 그 자체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예술이 갖는 독창적인 역할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예술은 자신이 지닌 초역사적, 보편적 진리의 힘에 의해 어떤 특정한 계급의 의식에 뿐만 아니라, 생을 고양시키는 능력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종적존재로서의 인간의 의식에도 호소한다. 그것의 힘은 낡은 제도적 사고를 점점 분해시키고 허물어 새로운 도덕과 새로운 감성을 불러 일으켜 새로운 패러다임, 뜻밖의 에피스테메를 형성하거나 사회적 분위기를 주도하는 데 기여한다.” 다음과 같은 마르쿠제의 예술의 역할에 대한 설명처럼 한국의 민중예술 또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독창적인 성격을 발견하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었다고 할 수 있다.
첫댓글 -"고통이 심화될 때도 변혁의 요구는 거세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