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남 제일명산 금산
- 위 치 : 경남 남해군 이동면, 상주면, 삼동면 일원
- 높 이 : 705m
<단체기념사진>
Ⅰ. 개황(槪況)
1. 일 시 : 2014. 6. 26. 00:00
2. 장 소 : 금산
3. 참석인원 : 24명(새내기 1명)
4. 등산코스 : 금산탐방지원센터주차당 - 도선바위 - 사선대 - 장군암 - 쌍홍문 -
음성굴 - 일월암 - 제석봉 - 흔들바위 - 정상갈림길 - 화엄봉 - 보리암 - 정상갈림길 - 상사암 - 단군성전 - 금산정상(망대) - 금산각 - 제2차장 - 복곡탐방지원센터제1주차장
<소요제원>
금산탐방지원센터 ⇨ 2,2km ⇦ 정상(망대) ⇨ 4,2km ⇦ 복곡탐방지원센터 제2중차장
(제1주차장에서 제2주차장까지 3,2km 농어춘도로 구간은 마을버스운행 됨)
5. 교통정보
- 빠른 길 찾기 정보
▶ 검 색 지 : KBS춘천방송총국 ⇨ 금산탐방지원센터
▶ 거 리 : 459,3KM
▶ 소요시간 : 5시간41분
- 다녀온길 : 중앙고속 - 영동고속 - 중부고속 - 경부고속 - 대전통영고속 -
남해고속 사천IC - 대방교차로 - 지족삼거리 - 무림로. 남해대로 -
금산탐방지원센터주차장(하차), 복곡탐방지원센터제1주차장(승차)
- 동원차량 : 강원 70바 1713 권 희 성
6. 날씨예보상황
- 2014년 06월 23일 (월)요일 06:00 발표 경상남. 북도 일원 주간날씨예보는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가끔 구름많겠고, 기온은 평년(최저기온 : 17~21도, 최고기온 : 24~29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겠으며 강수량은 평년(강수량 : 4~20mm)보다 적겠다고 예보하였다. 장마 권에 접어들면서 오락가락하는 비 소식을 접하면서 은근히 걱정이 앞서기도 하였지만 예보 상으로는 이상무이었기 때문에 삼남 제일 명산 금산에 거는 기대를 부풀게 하였다.
- 오늘의 날씨
7. 활동상황
○ 00:00 --- KBS춘천방송총국 앞 출발(오창휴게소 경유)
○ 04:57 --- 금산탐방지원센터주차장 도착
○ 05:10 --- 아침식사
○ 05:55 --- 단체기념사진촬영 및 일정안내
○ 06:00 --- 들머리진입
○ 06:55 --- 도선바위
○ 07:00 --- 사선대, 쌍홍문 안내판
○ 07:05 --- 장군암
○ 07:06 --- 쌍홍문
○ 07:13 --- 음성굴
○ 07:50 --- 일월봉
○ 07:52 --- 제석봉
○ 08:16 --- 흔들바위
○ 08:19 --- 정상갈림길
○ 08:22 --- 화엄봉
○ 08:29 --- 보리암
○ 08:44 --- 정상갈림길 원점회귀
○ 08:45 --- 헬기장, 영산금산산신제단
○ 09:00 --- 상사암
○ 09:23 --- 헬기장, 영산금산산신제단 원점회귀
○ 09:25 --- 단군성전
○ 09:37 --- 금산정상(망대)
○ 09:59 --- 금산각
○ 10:14 --- 복곡탐방지원센터 제2주차장
○ 10:50 --- 복곡탐방지원센터 제1주차장
○ 11:40 --- 후미도착
○ 13:44 --- 사천시 산청횟집 하산행사
○ 14:05 --- 수산시장
○ 14:25 --- 백천사
○ 15:10 --- 백천사주차장 출발
○ 16:20 --- 음성휴게소 저녁식사
○ 20:50 --- KBS춘천방송총국 앞 도착(함양, 음성, 홍천강휴게소 경유)
Ⅱ. 지역특성
<남해전경>
1. 지역유래
- 남해군이 사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687년(신라 신문왕 7)이다. 삼국사기에 신라는 남해도를 전야산군(轉也山郡)이라 칭하고 청주(靑州 : 현 진주) 관할에 두어 태수를 지방장관으로 하여 2개현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남해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나온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남해군으로 개칭되었고 강주(康州 : 청주의 개칭)에 속하였다. 여러 차례의 행정개편으로 이름이 바뀌다가 확고히 정착된 것은 1437년(세종 19)의 일이었다. 화전ㆍ해양ㆍ윤산ㆍ전산은 남해의 다른 이름이다. 1906년 창선면이 진주목에서 남해군으로 이속되고, 1973년 이동면 상주리의 갈도를 통영시 욕지면에 귀속시켜 오늘에 이른다.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남해군 본문 중에서]
- 군의 동쪽은 통영시, 서쪽은 한려수도를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 광양시·여수시, 북쪽은 사천시·하동군과 접하고, 남쪽은 남해에 면한다. 1읍 9면으로 이루어졌으며 군청소재지는 남해읍 서변리이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남해군은 68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내 섬 가운데 가장 산이 많다. 주민의 대부분이 큰 섬인 남해도와 창선도에 거주하고 있다. 유인도는 조도·호도·노도이고 나머지 65개의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빼어난 절경을 갖추고 있다. 1973년 6월 길이 660m의 남해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 직접 연결되었고, 1980년 창선교가 놓이면서 남해도와 창선도가 연결되었다. 소백산맥 줄기가 남해안까지 뻗어져서 이루어진 남해도에는 망운산(786m)· 금산(701m)· 송등산(617m), 창선도에는 대방산(468m) 등 험준한 산들이 솟아 군의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다. 관광지는 한려해상국립공원, 남해대교, 금산·상주 해수욕장, 임진성(壬辰城), 대국산성 등이 있다. 또한 금산·망대·보리암·문장암·대장봉·삼불암·쌍홍문 등의 명승지가 있다.
- 2001년 현재 국가지정문화재는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사적 232), 남해 충렬사(사적 233) 등 사적 2점과 물건리 방조어부림(천연기념물 150), 남해 산닥나무자생지(천연기념물 152) 등 천연기념물 5점이 있다. 도지정문화재로는 다정리 3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3) 등 유형문화재 7점, 남해 상주리 석각(경남기념물 6) 등 기념물 10점, 민속자료 1점, 문화재자료 10점이 있다. 가천과 대지포 해안관광도로,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와 앵강만, 물건방조림과 물미해안, 지족해협의 원시어업 죽방렴 등도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특히 지족해협의 자연조건을 활용한 죽방렴 어업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문화축제로는 남해일출제를 비롯해 화전문화제·전복축제·멍게축제·달맞이축제·단풍축제·충무공노량해전승첩제 등이 있다. 화전문화제는 군민의 날을 맞아 격년제로 열리는 행사로, 줄다리기·널뛰기 등의 민속놀이와 다양한 예술행사 및 체육대회가 펼쳐진다. 일출명소로는 금산, 망운산, 설흘산, 대방산, 가천 바다 등이 있다.
- 금산과 상주은모래Beach라는 천혜의 관광자원을 소유한 상주는 전국적 휴양지로서 명성이 높다. 상주은모래Beach는 해수욕장이 갖추어야 할 깨끗한 바닷물과 결 고운 모래, 수백그루의 울창한 송림을 갖춘 완벽한 해수욕장이다. 한려해상 청정해역에서 밀려오는 한점 티없이 푸른 바닷물은 물 속 모래까지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포구를 가로막고 선 나무섬과 돌섬은 세존도 쪽에서 밀려오는 성난 파도를 잠재워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상주해수욕장에서 개최하는 축제로는 썸머페스티벌, 정월대보름 달맞이 축제, 연말 물메기 축제에 이어 새해 아침 해맞이 축제가 있다. 그리고 상주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금산은 전국 3대 기도 도량의 하나로 이름난 보리암, 쌍홍문, 상사바위 등 38가지 절경을 품고 있다.
2. 금산 살펴보기
<금산등산안내도>
- 경남 남해 금산은 한려해상 국립공원 중에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기암괴석의 절경과 남해를 한눈에 굽어보고 있어 전망도 장쾌하다. 한겨울에도 포근하여 겨울 등산 코스로도 좋다.
금산은 삼남 제일의 명산으로 온갖 전설을 담은 38경의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 하여 소금강 혹은 남해금강이라 불린다. 주봉인 망대(701m)를 중심으로 왼편에 문장봉, 대장봉, 형사암, 오른편에 삼불암, 천구암등 암봉이 솟아 있다. 탑대(고제암)를 중심으로 가사굴, 쌍호문등 명소가 많다. 금산의 절경 38경 중에서 쌍홍문, 사선대, 상사암, 암불암 등이 대표적인 명소다. 쌍홍문은 여인의 눈동자 같기도 하고 커다란 해골에 두 눈이 뻥 뚫린 듯하기도 한 쌍굴로서 높이는 7~8m쯤이다. 굴이 둥근 모양이어서 ‘한 쌍의 무지개’라는 이름을 얻었다. 굴 속에 들어 뒤로 돌면 다도해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상주해수욕장의 쪽빛 바닷물이 반짝이고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다. 굴속에서 내려다보는 산과 바다의 조화도 절경이다. 금산에서 가장 웅장한 높이 80m의 상사암에는 양반집 규수를 짝사랑하던 머슴의 전설이 얽혀 있는데 이 바위에 올라 기원하면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보광사였고 산 이름도 보광산이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약 200m 떨어진 큰 바위 아래에서 기도를 올리고 세상을 얻었다.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 만큼 큰 비단을 구할 수가 없자 비단이란 이름으로 산을 덮어주었다. 이후 현종은 보광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자 보리암으로 개칭했다.
인기명산 100 중 54위
- 삼남 제일의 명산이라 일컽는 금산은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에 펼쳐지는 일출명소의 하나이기도 하다. 남녘에 위치하여 봄맞이 산행지로 3월에 가장 많이 찾는다. 인근에 상주해수욕장이 있어 여름 바캉스를 겸한 바다산행으로도 인기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경관이 수려하고, 바다와 섬, 일출을 조망할 수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1974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본래 보광산이라고 불리다가 조선 태조와 관련된 전설에 따라 금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함. 조선 태조가 기도했다는 이씨기단을 비롯하여, 사자암, 촉대봉, 향로봉 등 38경이 유명하며, 정상에는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다
펴보기
<금산등산지도>
- 금산에는 2개의 등산로가 있다. 상주리 금산관리사무소에서 쌍홍문과 보리암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길과 금산 북쪽의 복곡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보리암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길이 그것이다. 상주리 코스의 들머리는 상주리 해수욕장 북방 3킬로미터 지점인 여관촌 앞 매표소로 여기서부터 쌍홍문 까지는 길이 갈리지는 곳이 없으나, 쌍홍문 부터는 등산로가 여러 개로 갈라지는데 모두 정상 부근의 명소와 명소를 연결하는 길이므로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보리암 까지 곧장 올라가서 보리암 앞 삼층석탑에 서면 금산의 각 명소들이 한눈에 들어오므로 거기서 진로를 잡아 산행에 나서면 좋다. 상사바위와 부소암 등은 정상인 망월대의 서쪽으로 펼쳐져 있다. 보리암으로 펼쳐진 상주해수욕장과 남해의 섬들도 아름답지만 상사바위에서의 경관도 이에 못지않다. 하산은 대부분 상주리 쪽으로 한다. 금산에서 상주리 까지는 50여분 정도 걸린다.
Ⅲ. 산길여정
<금산에서 본 38경 전경>
- 남해 금산은 섬 기행 테마여행 일환으로 기획한 여정이었다. 매년 섬 기행을 테마여행으로 운영하면서 이름난 여러 섬들을 골라 매년 1 ~ 2회씩 다녀온바 있다. 금년 5 ~ 6월 정기산행일정을 짤 당시 가장 물망에 올랐던 섬들은 흑산도. 홍도, 사량도지리산, 거문도.백도, 보길도, 남해 금산 등이었다. 이중 가장 마음을 끄는 섬이 남해 금산(보리암)이었다. 산림청선정 100대 명산, 한국의 산하 선정 인기명산 100 중 54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39호, 제주도, 거제도, 완도 다음으로 네 번째 큰 섬,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있는 유일한 산악공원, 남해12경 중 제1경이라는 금산에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촉매로 기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 다녀온 산 명부에 금산이란 이름을 올려놓겠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욕심이 작용하였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매번 장거리여정을 기획하면서 “고객으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면 어쩌지”? “고객 없는 빈털터리 버스운행이란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란 의문점을 남기면서 노심초사하였었는데 이를 어찌하랴. 기우에 그친 것이 아니라 결국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명산기행에 걸었던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감 또한 컸다.
- 오늘 일정은 5 ~ 6월 정기산행 일정이 공지되면서부터 2개월여에 걸쳐 공을 들였던 명산기행이었다. 그야말로 수 천리를 왕복해야하는 무박2일이라기 보다는 차박3일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장거리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작금의 현실에서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일정을 포기하는 사안에 대해 추호도 나무람은 없다. 그러나 구도계약도 엄연한 계약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신짝 내팽개치듯 계약을 임의 파기하는 행위에 대해서 야속한마음 생기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수양이 부족한 탓일 것으로 본다.
- 오늘은 오랜만의 무박2일 일정으로 장거리여정 길에 올랐다. 무박이란 표현 보다는 차박이란 표현이 오히려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말이 좋아 차박이지 아무리 잠을 청해 봐도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주변 분들에게 수면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용히 눈만 감고 있을 뿐이었다. 이동 중인 차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오늘도 깨지 못한 채 날이 밝고 말았다.
- 중앙고속 - 영동고속 - 중부고속 - 경부고속 - 대전통영고속 - 남해고속을 숨 가쁘게 갈아타며 사천IC를 빠져나오면서 먼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날이 채 밝기 전 금산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05:00을 넘기기 직전이었다. 도착예상시간을 무려 40여분 상당 앞당긴 셈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노련한 운행솜씨를 발휘해 주신 권 희 성기사님 덕분에 일정운영에 여유를 얻었다.
- 금산 정상일원에 햇살이 비칠 무렵에 주차장 한편에 밥상을 차리고 아침식사를 했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안락한 잡자리간 된 듯 싶다. 4인용 간이식탁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강원 70바 1713호 버스가 배정된다면 하산행사장이 더욱 빛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많은 분들의 현안이 해결되는 순간을 금산에서 맞이하였던 것이다. 일순간 장족의 발전을 한 현장의 상황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매주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보았다.
- 오늘 금산 38경을 하루 일정으로 두루두루 돌아보는 데에는 시간상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금산탐방지원센터에서 진입하여 도선바위 - 쌍홍문 - 보리암 - 금산정상 - 복곡탐방지원센터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기본코스로 보고 나머지 구간은 일정 시간을 주고 자유 투어 형식으로 융통성 있게 운영할 요량이었다. 각자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부담 없이 소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금산안내도를 접하면서 아하 이건 아니구나 싶었다. 정상에서 상사암 일원으로 뻗은 능선 구간이 의외로 짧았던 것이다. 정상에서 상사암까지 0,8km 불과하였다. 그 정도라면 쌍홍문에서 상사암구간을 기본코스로 연장운영해도 전혀 무리함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회장님의 동의에 따라 현장에서 일정을 조정하여 운영하였다.
- 오늘은 산행소요시간을 4시간으로 잡고 10:00까지 복곡탐방지원센터제2주차장 하산을 예고하였다. 점심식사 역시 하산 후 하산행사를 겸하여 주차장을 염두에 뒀었다. 금산탐방지원센터 들머리에서 생태탐방로 갈림길 구간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설치한 공지사항 안내판 등이 좌우로 즐비하였다.
<쌍홍문>
- 들머리에서 쌍홍문입구까지 1,6km/1시간 남짓 걸렸다. 이 지점까지 선두에서 진로를 선도하였다. 진로선도라기 보다는 나 홀로 산행이 되고 말았다. 쉬엄쉬엄 올라왔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일정상 여유가 있어서인지 뒤에 따라 붙는 일행 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탐방로는 흙길과 돌계단길의 연속이었지만 부담 없는 산책로로 제격이었다. 일정구간마다 테마공원이 설치되어 쉼터로 기능하기 때문에 전 구간이 공원화되었다. 도선바위를 지나면서 급사면길에 나무계단이 설치되어있다. 나무계단에서 5분 남짓 올라가면 사선대와 쌍홍문 안내판이 나온다. 이 지점에서 진행방향 왼쪽 사면대가 눈길을 끌었지만 나무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한 눈에 제대로 보려면 목책을 넘어야 가능하다. 또한 진행방향 정면으로 쌍홍문이 원경으로 눈에 들어온다. 뻥 뚫린 동굴을 멀리서 원경을 감상하고 가까이서 근경을 만끽해야한다. 쌍홍문과 장군봉은 인접해 있다. 인접해 있다고 하기 보다는 붙어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 싶다. 쌍홍문입구에서 진행방향 왼쪽에 장군봉이 자리하고 있다. 장군봉 앞 안부에는 나무의자가 있어 한숨 돌리면서 장군봉의 위용을 감상하기에 제격이었다.
- 장군봉에서 잠시 머문 후 쌍홍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쌍홍문은 신비 그 자체이었다. 사방으로 시원하게 뚫린 구멍사이로 보이는 세상이 별천지이었다. 수석으로 치면 영락없는 관통석이었다. 이쯤 되면 만사형통이란 수석명이 붙을 법도 하였다. 상주 쪽에서 금산 상봉에 이르는 암벽에 두 개의 둥글고 큰 구멍이 문 모양으로 나란히 있는 돌문을 쌍홍문이라고 한다. 이 속에 들어가 보면 속이 비어 있고, 천장 벽에도 구멍이 뚫어져 있어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옛날 세존이 돌배를 만들어 타고 쌍홍문으로 나가면서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세존도에 해상동굴이 생겼다고 전해온다.
- 선발팀은 회장님과 함께 먼저 출발하고 여기서부터 후미일행 분들과 합류하여 동행하였다. 자연스럽게 두 팀으로 제대가 나뉜 것이다. 쌍홍문을 빠져나가자마자 갈림길이 나온다. 진행방향 오른쪽 길은 음성굴을 오른쪽에 두고 보리암으로 곧바로 올라가는 길이고, 왼쪽은 제석봉을 거쳐 상사암 방향으로 올라가는 분기점이다. 이 지점에 상사암 0,5km, 보리암 0,2km, 금산입구 1,7km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다.
<금산안내도>
- 금산 38경을 하루일정으로 두루 섭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어차피 주 탐방로 상에 있는 명소를 즐기는 선에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도 기본코스를 현장에서 조정하여 운영한 덕분에 모든 분들이 제석봉, 일월봉, 흔들바위, 상사암 등 몇몇 명소를 더 경유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오늘 경유한 곳만 소개하는 것 보다는 금산38경 전체를 일괄하여 간추려 소개하고 나머지 몇 곳을 선정하여 상세히 살펴보고자한다. 한 번의 기회에 모든 명소를 두루 섭렵하기에는 현장의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음에 양해를 구해마지않는다. 금산38경은 아래와 같다. 위 안내도를 보면서 가늠해 보시기 바란다.
- 금산 38경 : 1. 망대 2. 문장암 3. 대장봉 4.형리암 5.탑대 6.천구암 7.이태조기단 8.가사굴 9.삼불암 10.천계암 11.천마암 12.만장대 13.음성굴 14.용굴 15.쌍홍문 16.사선대 17. 백명굴 18.천구봉 19.제석봉 20.좌선대 21.삼사기단 22.저두암 23.상사바위 24.향로봉 25.사자암 26.팔선대 27.촉대봉 28.구정암 29.감로수 30.농주암 31.화엄봉 32.일월봉 33.흔들바위 34.부소암 35.상주리 석각 36.세존도 37.노인성 38.일출경이다.
▶망대
- 금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며 이곳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 금산과 남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와 그 광활한 경치가 황홀하다. 장엄한 남해의 일출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 오르면 일망지하(一望之下)에 금산 삼십팔경과 금산을 에워싼 만경창파를 한 눈으로 굽어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고려시대부터 사용했던 봉수대(熢燧臺)가 그대로 남아 있다. 사방조망(四方眺望)이 비길 데 없이 넓고 아름답다.
▶천마암
- 망대 아래 동쪽에 있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 이성계가 기도하고 있을 무렵에는 회두암(回頭岩) 이라 불렀다고 한다.
▶삼사기단
- 화엄봉 좌선대 아래쪽에 있다. 유명한 세분의 큰 스님,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가 기단을 쌓고 기도를 올렸다고 해서 삼사기단이다. 삼사(三師)가 앉았던 자리가 바위 위에 뚜렷이 남아 있다.
▶화엄봉
-대장봉과 농주암의 왼쪽에 있는데 바위 모양이 "(華嚴)" 두 글자 모양이라고 해서 화엄봉이라 하고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고 전하나, 화엄종은 의상대사가 포교한 것으로 의상대사일 것으로 추측한다.
▶문장암
- 망대를 오르는 계단을 마주하고 있는 정상 길목을 지키는 바위다. 명필바위라고도 한다. 문장암은 남해금산의 정상에 있다.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주세붕선생이 전국을 다니며 풍류를 즐기다가 남해에 있는 금산이 명산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금산의 쌍홍문을 통하여 이곳 정상까지 올라와 보니 과연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신비로운 전설이 가득함으로 감탄하여 자연암 자연암에다 '유홍문 상금산 由虹門 上錦山' 이라는 글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주세붕(1495-1554)은 조선전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상주(尙州)이고 자는 경유(景游)이며 호는 신재(愼齋). 1522년(중종17)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해 별시문과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했다. 1541년에 풍기군수가 되어 풍기지방의 교화를 위하여 향교를 이전하고 사림 및 그들의 자제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1543년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 소수서원)을 건립했다. 이 서원이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이다. 홍문관, 성균관 등 학문기관에서 관직을 맡았고 지방관으로 나가서는 교학진흥을 통한 교화에 힘썼다.
▶ 만장대
탑대 서남쪽 깎아 세운 듯 천인 단애를 이루고 있는 절벽. 높이가 만장이나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쌍홍문의 오른쪽에 있다.
▶저두암
- 금산 산장 바로 뒤에 있는 바위로서 어미돼지가 새끼돼지를 업고 있는 모양의 바위. 바로 오른쪽 코끼리 바위가 있다.
▶일월봉
- 화엄봉 왼쪽에는 세 개의 바위가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제석봉 가는 길에서 가깝게 보면 맨 위의 바위가 보이지 않아 일(日)자형이고 탑대에 올라 전체를 멀리서 보면 월(月)자형으로 보여 일월봉이라 한다.
▶대장봉
금산 보리암 바로 뒤에 우뚝 솟은 큰 바위로서 웅장하고도 위엄있게 창공을 찌르고 서 있는 모습이 대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대장봉 왼쪽에 용호농주형(龍虎弄珠形)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있으면 반드시 대장(大將)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음성굴
- 만장대 바로 북쪽, 높이 2m, 길이 5m 정도 되는 조그만 바위굴. 굴 속에 들어가 굴 바닥을 두드리면 장구소리와 같은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음성굴이라 했다.
▶촉대봉
- 향로봉 옆에 있는 촛대 모양의 작은 바위. 원효, 의상, 윤필 세 대사가 기도를 올릴 때 촛대로 사용했다는 전설이 있다.
▶흔들바위
- 일월봉 왼쪽 제석봉 뒤쪽 맞은편에 있는 흔들바위로 거북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구암(龜岩)이라 하였으나 한 사람의 힘으로도 움직인다 하여 흔들바위라고도 부른다. 바위의 무게는 35톤 가량 된다.
거북 모양의 목부분을 위로 추켜 세우듯 밀면 가장 잘 흔들린다.
▶형리암
- 금산 보리암 바로 뒤에 있으며 대장봉을 향해 마치 허리 굽혀 절하는 모양으로 생겨 형리(刑吏)바위라고 한다. 보리암(菩리岩)에서 처음 보는 사람은 바위가 곧 떨어질 위험을 느낄 정도로 허리 굽힌 모습으로 보인다.
▶용굴
- 음성굴 오른편에 50m의 길고 넓은 굴이 있는데 옛날 용이 살다가 하늘에 올라갔다는 전설이 숨어 있는 굴이다.
▶향로봉
- 삼사기단 왼편에 있으며 마치 향로와 같다고 해서 향로봉이라 부르며 원효, 의상, 윤필 세 대사가 촉대와 함께 향로로 썼다는 전설이 있다.
▶부소암
- 부소암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 곳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갔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법왕대라고도 한다. 박진욱의 [역사 속의 유배지 답사기]중에서 문득 엄청나게 큰 바위가 하늘로 해처럼 솟았다. 그럴 듯한 이름 하나 주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으니, 이름하여 "부소암"이다. "부소"는 중국 진시 진시황의 태자 이름이다. 남해 외딴섬 바위에 어이 하여 진나라 시황의 큰아들 이름 부소가 붙었을까? 누가 붙인 이름일까? 유배객이 붙인 것은 아닐까? 이 금산에 올랐던 류의양이 붙였을지도 모르고, 남구만이 붙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간신배의 참소로 억울하게 이 고독한 외딴섬에 귀양 온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임금이 콩과 보리를 가리듯이 충신과 간신을 가리지 못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말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진나라 시황의 태자 부소이다. 진시황의 두 아들이 있었다. 똑똑하고 착한 부소와 흐리멍덩한 호해가 그 두 아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인은 자신보다 똑똑하고 착한 사람을 싫어하는 법이다. 간신배 이사와 환관 조고는 장차 부소가 임금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진시황에게 참소를 넣었다. "부소가 폐하를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부소를 만리장성 쌓는 곳으로 보내라. "진시황은 호해를 가까이하고 부소를 멀리 변방으로 내쳤다. 올빼미의 무리 이사와 조고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부소가 폐하를 원망합니다. "진시황은 부소에게 칼을 내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어라는 말이다. 부소는 그것이 간신배가 꾸민 간괴인 줄 알고 불로초를 찾아 삼신산으로 떠나는 서불의 배를 타고 도망을 쳤다. 서불이 동으로 동으로 배를 몰다가 남해 금산에 도착하였다. '서불이 이곳을 지나다가' 서불은 양아리 골짜기의 바위에 왔다는 흔적만 남기고 다시 떠났다. 그러나 부소는 떠나지 않았다. 신령스런 바위 아래에 움막을 짓고 살다가 주어진 수명을 누리고 죽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소암이라 불렀다. 역사에서 부소는 진시황이 보낸 사약을 받고 변방에서 죽고, 둘째 아들 호해가 임금 자리를 계승하였다. 호해가 임금이 된 지 3년 만에 진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움막이 지금도 있다. 부소가 살았던 그 움막일까? 절벽에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속세 사람의 집이 아니다. 도 닦는 사람일까, 부소처럼 쫓겨와서 숨어사는 사람일까? 예나 지금이나 속세를 떠나 숨어사는 이는 끊이지를 않는구나.
▶탑대
- 천인단애 위에 보리암전 삼층석탑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탑이 서 있어 이 절벽을 탑대라 한다. 보리암 바로 밑에 있으며 전망이 좋아 봄철의 푸른 나뭇잎과 가을 단풍 경치는 천하절경이라 할 만하다. 가장 탐방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자리다. 보리암전 삼층석탑은 지방유형문화재(地方有形文化財)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쌍홍문
- 상주 쪽에서 금산 상봉에 이르는 암벽에 두 개의 둥글고 큰 구멍이 문 모양으로 나란히 있는 돌문이다. 이 속에 들어가 보면 속이 비어 있고, 천장 벽에도 구멍이 뚫어져 있어 파란 하늘이 잡힐 듯이 보인다. 옛날 세존이 돌배를 만들어 타고 쌍홍문으로 나가면서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세존도에 해상동굴이 생겼다고 전해온다.
▶사자암
- 좌선대에서 상사암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사자 모양의 큰 바위.
▶양아리 석각
- 양아리 두모에서 부소암으로 오르는 골짜기 큰 바위에 새겨진 고문자. 양아리 석각,"서불 과차"라고 하는 이 고문자는 진시황의 사신 서불이 선남선녀 500명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캐려고 이곳에 와서 새겨놓고 간 글자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또 거란 글자라는 이도 있고, "이곳은 그 어른의 사냥터"표시라는 설도 있으나 판독이 어려워 아직껏 베일에 싸여 있다.
▶천구암
- 탑대 바로 북쪽에 있는 바위다. 바위 모양이 비둘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선대
- 쌍홍문에서 바로 아래 오른쪽에 서 있는 네 사람 모습으로 생긴 바위. 옛날 삼신산의 네 선녀가 놀다가 갔다는 전설에 따라 사선대라고 한다.
▶팔선대
- 상사바위 입구 오른쪽에 있는 여덟 개의 바위. 서 있는 모습이 여덟 신선들이 춤추는 모양이라고 한다.
▶세존도
- 세존이 금산 쌍홍문에서 돌배를 타고 이 섬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이 있다. 상주 은모래 Beach에서 40km나 떨어져 있지만, 날씨가 좋으면 아득히 세존도를 볼 수 있다. 이 섬에는 한복판에 원형으로 된 해상 동굴이 있다. 섬 전체가 바위이며 나무도 식수도 전혀 없는 무인도(無人島)이다. 남해에서는 오래 가물고 한발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을 본다고 하는 이야기가 민간에 전해오고 있다. 남해의 섬 중에서 낚시가 가장 잘 되기로 유명하여 낚시철이 되면 수많은 꾼들이 모여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조선태조기단
- 이성계가 백일기도 후에 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유적으로 탑대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삼불암 아래에 있다. 천하를 잡으려는 이성계는 전국 명산을 찾아 기도를 드렸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던 중 금산에서의 백일기도로 등극하게 되자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보광산을 금산으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백명굴
- 사선대 북쪽에는 입구는 그다지 넓지 않으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져 100명은 넉넉히 앉을 수 있는 굴이 있다. 정유재란 때 100명 내외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피난한 곳이라 백명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에 방을 놓았던 아궁이 흔적이 남아있고 굴의 드나드는 문은 적으나 들어가면 놀랄만큼 넓은 굴이다. 이 굴은 찾기가 어려워 사람의 발길이 끊인 지 오래되었다.
▶상삼
- 장한 바위도 볼거리지만 바위 위에서 보는 남해 다도해의 풍광은 천하일품이다. 주인 딸을 사랑하다 죽은 슬픈 사랑이야기, 과수댁이 총각의 상사를 풀어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들려오는 곳이다.
▶노인성
- 노인성은 춘분, 추분절의 전후 3일, 7일 동안 남해에서 가장 잘 보이는 별이다. 이 별은 사람의 목숨을 맡고 있는 별이라고 한다. 당연히 이 별을 자주 보면 장수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어 일년 중 춘분, 추분절만 되면 금산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
▶가사굴
- 천구봉 탑대 동쪽에 있는 바위굴. 옛날 낙서대사 때 천동천녀(天童天女)가 가사를 입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물을 길어 갔다는 전설이 남아 있어 가사굴이라고 한다. 길이 약간 험하기 때문에 대개 못보고 가는 사람이 많다. 이 가사굴에는 많은 샘물이 흘러내리고 있어서 수양이나 기도를 하는 분들이 토굴을 짓고 몇 달씩 지내는 일도 있다.사굴은 백명굴, 삼사기단과 함께 금산 38경 중 가장 조용한 선경(仙境)으로 이름이 높다.
▶천구봉
- 일월봉 아래 쪽에 있는 바위로 마치 개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천구봉이라 하며 일월봉을 마주 보고 있다.
▶구정암
- 상사암에 구정암이 있다. 상사암에 이어진 바위에 아홉 개의 확(홈)이 있어 빗물이 고이면 마치 아홉 개의 샘처럼 보인다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세어보면 실제 동글동글한 구멍이 아홉 개도 더 되는 듯 싶다. 구정암의 물은 바로 상사풀이할 때 썼던 물이라고 한다. 이 물로 세수를 하면 그 날 재수가 좋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숙종 때 남해로 귀양왔던 약천 남구만 선생은 이 구정암을 보고 몇 해 동안 이 아홉 개 샘을 팠으랴"하고 감탄했다.
▶일출경
- 금산 38경 중 가장 첫 손에 꼽는 것은 정상과 보리암에서 보는 일출. 상사바위에서 보는 일출도 그에 못지않다. 수평선과 구름사이를 뚫고 물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듯한 일출은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도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수면위로 침묵을 지키며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을 깨우면서 붉은 빛으로 피어오르는 금산 일출. 전국 어느 곳의 일출 보다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황홀한 금산 절경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삼불암
- 조선태조기단 왼쪽 깎아지른 높은 곳에 바위 세 개가 있는데 한 개는 누워 있고 두 개는 서있는데, 세 개의 바위가 부처님의 좌상 같다고 해서 삼불암이라고 한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기 전에는 이 바위들이 모두 누워있었는데 기도가 끝나자 두 개의 바위가 모두 일어나 앉았다. 만약 세 개 모두 일어났더라면 이성계는 중국 땅까지 다스리는 천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제석봉
- 천구암 왼쪽에 있는 바위로 무당의 신인 제석님이 내려와서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바위로 금산의 절경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감로수
- 상사암에서 조금 남쪽에 있는데 바위 밑에서 실오라기처럼 새어 나와 고이는 물을 말한다. 조선 숙종 대왕이 병중에 이 물을 마시고 나았다고 하여 구군천(求君泉)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이후 사람들은 임금을 구한 이 물을 만병통치의 감로수라 한 것이다.
▶천계암
- 조선태조기단 뒷 편에 있으며 이성계가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 뜻밖에 맑고 고운 닭 울음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그 자리에 닭 모양의 이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좌선대
- 좌선대는 원효대사 등 고승들이 수도좌선(修道坐禪)했다는 장소. 실제로 바위 윗부분은 가부좌한 자세로 앉은 사람이 쏙 들어 갈 만큼 파여 있다. 바위꼭대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산과 하늘과 내가 하나 되는 기분을 느낄수 있어 시도해볼 만하다.
▶농주암
- 대장봉 왼편에 있는데, 세개의 바위가 두 바위의 한복판 위에 한 개의 구슬처럼 서 있는 것이다. 왼편에 용, 오른편에 호가 있어 용호가 농주하는 모양이어서 용호농주형이라고 한다.
<보리암(菩提庵)>
- 08:29 보리암 경유
- 보리암은 우리나라 불교 3대 기도처의 하나이다. 양양 낙산사 홍련암(강원문화재자료 36), 강화군 보문사와 함께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히는 곳이기 때문에 오늘 일정 중 관심이 집중된 곳이기도 하였다. 능선안부 정상. 보리암 갈림길에서 선발팀과 잠시 합류했던 것이 오늘 마지막 조우이었다. 여기서 이미 보리암을 다녀오신 선발팀은 상사암으로 향했고, 본인을 포함한 후미일행 분들은 보리암으로 향했다. 진로가 바뀌는 교차지점이 된 셈이었다. 해수관음상 직전 암벽 난간계단공사가 한창이었다. 현장의 소음이 금산을 삼킬 듯 요란하였다. 보리암 경내를 눈 팅하는 동안 봉정암을 떠올리면서 비교해 보기도 하였다.
-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에 위치한 보리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683년(신문왕 3) 원효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라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1660년(현종 1) 왕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이라고 바꾸었다. 1901년과 1954년에 중수하였고, 1969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전국의 3대 기도처의 하나이며 양양 낙산사 홍련암(강원문화재자료 36), 강화군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힌다. 현존하는 건물로 보광전, 간성각, 산신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보리암전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4)이 있다. 이외에 큰 대나무 조각을 배경으로 좌정하고 있는 향나무 관세음보살상이 있으며 그 왼쪽에는 남순동자, 오른쪽에는 해상용왕이 있다. 일설에 따르면 이 관세음보살상은 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전국의 3대 기도처의 하나이며 양양 낙산사 홍련암(강원문화재자료 36), 강화군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힌다.
<금산 정상석>
- 09:37 정상(망대)도착
- 회장님을 선두로 한 선발팀은 이미 다녀간 이후 이었지만 총무님께서 홀로 정상을 지키면서 후미일행 분들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총무님께서 정상에 남아 주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이유가 따로 있었다. 정상주로 준비해 오신 얼린 캔 맥주가 녹지 않아 일월봉 쉼터에 머무는 동안 시음을 못했었는데 정상에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그럴 즈음 총무님을 상봉하였으니 오죽이나 좋았을까? 손뼉을 치면서 가장 좋아했던 분이 계셨으니 그 이름은 바로 ㅇㄱㅎ여사이었을까요? 아니옵니다. 바로 본인이었습니다. 정상에서 시원한 보리차 한 잔의 참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 정상의 모습은 상상을 넘어섰다. 금산탐방지원센터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정상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걸출한 조각 작품으로 여겨지는 암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그 안부에 명승제39호 해남금산이 음각된 정상석이 있다. 금산 정상의 자리는 정상석이 아닌 망대가 선점하고 있다. 금산 38경 중 가장 첫 손에 꼽는 것은 정상과 보리암에서 보는 일출과 상사바위에서 보는 일출이라고 하였다. 일출은 차치하더라도 68개의 섬과 바다가 조화를 이룬 남해군일원 시원한 조망을 염두에 뒀었는데 짙은 안개 때문에 뜻을 접어야만 했다.
- 금산(681m)은 제주도, 거제도, 완도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경남 남해군 상주면, 삼동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려한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있는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2008년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39호로 지정된 남쪽의 소금강으로 불렸을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기암 괴봉과 거기에 얽힌 전설들, 오밀조밀하면서도 빼어난 산세, 깎아지른 암벽과 암릉이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네 신선이 조그만 암봉에서 놀았다는 사선대, 웅장한 바위 만장대, 마치 해골의 두 눈구멍처럼 생긴 쌍홍문, 양반집 규수를 짝사랑하던 머슴의 전설이 얽혀 있는 상사암 등 금산38경은 둘러보노라면 산행은 뒷전이 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진 화공의 작품인들 자연의 솜씨를 흉내나 낼 수 있을까? 시간, 바람, 햇빛, 그리고 토양이 빚어낸 절경 앞에 그저 감탄사만 뱉어낼 뿐이다. 금산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普光山)이었다. 원효대사께서 신라 문무왕 때(서기 663년)에 보광사를 창건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보광산이 금산으로 바뀐 것은 ‘이씨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보광산에서 기도를 올린 후 자신의 의도대로 ‘조선’을 개국하고 그 기도에 대한 보답으로 산을 온통 비단으로 덮겠다고 기약한 데서 기인한다.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한 뒤 약속을 지킬 일을 생각하니 난감했으나 사려 깊은 신하(정도전 이라는 설이 있음)의 제안으로 비단 대신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이란 이름을 내려줌으로써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금산은 남해 최고의 일출전망대로 여름철에는 안개도 많아 일출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나 다도해와 어우러진 안개도 멋진 풍광 중의 하나다. 금산의 또 다른 볼거리는 상사바위, 장군암, 좌선대, 화엄봉, 비둘기를 닮은 봉우리, 개바위, 날일(日)과 달월(月)자를 닮았다는 일월암, 자라처럼 생긴 흔들바위, 닭바위 등의 바위들이 마치 수석전시장을 연상할 정도의 바위 기경이며 산 정상에서 감상하는 다도해의 풍광과 3대 참선도량의 하나인 "보리암"또한 금산의 볼거리요 명소다.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강원 양양의 낙산사 홍련암, 강화의 보문사)의 하나인 보리암(菩提菴)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원효대사께서 세우신 보광사의 부속 암자(신라 문무왕 3년/683년)로써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을 반려(伴侶)삼아 기암절벽에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비단 위에 꽃을 더함인가, 보리암이 고요히 도를 따르며 깨달음의 깊이를 더하여 1,400여년의 역사를 이루어온 수행의 성지로서, 이 땅의 대표적인 관음기도처로서 그 이름을 빛내고 있다. 보리암 앞에는 규모가 작은 해수관음상이 우뚝 서 있으며, 그 앞에 작은 삼층석탑이 서 있다. 이 탑은 김수로왕의 왕비 허태후가 인도 월지국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원효대사가 모셨다고 하나, 탑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는 보석처럼 눈부시게 아름답고, 보리암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는 이곳 산행의 마음을 달래준다. 금산 정상에는 조선시대 당시 왜구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축조한 망경대라 부르는 봉수대가 있으며 정상에서의 조망은 날씨가 좋으면 지리산 천왕봉이 보일 정도라고 한다. 남해의 푸른 바다, 점점이 떠있는 섬들, 그리고 한가로워 보이는 남해 섬의 전경, 이것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그대로 자연 속으로 녹아들고 싶을 정도로 조망이 좋다.
<금산각>
- 09:59 금산각 경유
- 정상에서 0,23km/10여분 내려오면 금산각주차장에 이른다. 이미 하산예정시간대가 임박하고 말았다. 여기서 보리암 0,2km/10여분 걸린다. 복곡탐방지원센터주차장에서 이 지점까지 차량운행이 가능하다. 승용차 10대 정도 주차공간이 확보되어있다. 여기서 산길은 끝나고 시멘트포장길로 이어졌다. 포장길을 따라 15분 남짓 내려오면서 복곡탐방지원센터 제1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제1주차장에서 제2주차장 구간(농어촌도로 215호)3,2km는 마을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며 30인승 이상 승합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이 구간에 별도 탐방로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3,2km/50여분 시멘트포장길과 아스팔트포장길로 도보로 내려오거나 마을버스를 이용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던 것이다. 현장에서 마을버스 이용을 검토해 보기도 하였지만 버스운행시간에 대한 정보를 확보할 수 없어 도보 체험시간을 갖는 방향으로 결정하였다. 시간대로 봐서 무난히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일부 몇 분께서 포장길 도보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기도 하였지만 각자 현명한 결정에 맡기고 발길을 서둘렀다. 제2주자장에 당도하면서 선발팀인 회장님 일행 분들과 합류하였다.
<하산행사>
- 13:44 하산행사
- 오늘 하산행사는 현장을 벗어나 사천시 소재 산청횟집에서 성대히 치러졌다. 복곡제2주차장 현장에서 점심식사와 병행하여 치를 것을 염두에 뒀었는데 현장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오랜만에 바닷가를 나왔는데 여기서 밥만 먹고 갈 수는 없다는 취지이었다. 각자 준비해온 점심은 귀로 만찬으로 돌리고 바닷가에 가서 신선한 생선회 맛을 보고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 바람에 남해바다 산해진미로 오찬을 겸한 하산행사를 거하게 치르면서 일상을 갈무리하였다.
Ⅳ. 주요(주변)볼거리
- 오늘은 금산 현장을 벗어난 하산행사 덕분에 당초 의도하지 않은 보너스 하나를 얻었다. 사천시내에서 20여분 남짓한 거리에 백천사라는 볼만한 절이 있다는 권 희 성기사님의 권고에 따라 탐방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또한 오전과 오후에 건넜던 창선. 삼천포대교에 대해 주요볼거리 편으로 선정하였다.
<백천사>
- 백천사는 경상남도 사천시 백천동 와룡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팔만구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와룡산 기슭에 있다. 신라 문무왕(663년) 때 의선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僧軍)의 주둔지였다고 한다. 옛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의 모습은 현대에 와서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약사와 불전에 있는 길이 13m·높이 4m의 목조 와불로 유명한데, 와불의 몸속에 작은 법당이 있다. 대웅전·약사와불전·산령각·용왕각·요사 등으로 구성되며, 절의 외부에는 약사여래좌불이 있다. 납골당 시설인 극락전 추모관을 비롯해 오방여래불 소원기원탑·금종·포대화상·산신할미상 등 각종 조형물이 있다.
- 1300년 전 신라 문무대왕 시절 의선대사(의상대사의 속세 형제)가 백천사를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몸속법당 부처님을 모시게 된 백천사가 있는 와룡산에는 옛날의 절터가 많기로 유명하다. 구전(口傳)되는 전설로 와룡산에는 팔만구암자(八萬九菴子)가 있었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꽤 많은 사찰(寺刹)이 이 산 속에 들어 앉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양지(晋陽誌) 등에 나오는 백천사(白泉寺)의 기록에는 '백천사는 와룡산의 서편에 있었다. 도솔암에서 흘러내리는 동쪽계곡은 양구택, 조황담, 백련폭이 그 중 아름다운 곳이요. 선정암에서 흘러내리는 절의 서쪽 계곡은 세심정, 무금대 등의 좋은 경치가 있고 동서계곡의 상하에 물레방아 16개소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뒤에는 12개만 남았다. 묵계암도 백천사 북쪽 10리에 있었다.'하는 것으로 보아 대충 백천사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가 있을 뿐 아니라 백천계곡의 경관마저 짐작이 된다. 이 절터 부근에는 축을 쌓은 돌담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석기(石器) 등 기왓장이 부서진 채 널려있는 것을 새롭게 재건축하여 구국도량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창선. 삼천포대교>
- 오늘은 오전 이른 아침에 삼천포대교를 건넜고, 오후 귀로에 창선대교를 건넜다. 창선·삼천포대교는 사천시의 대방과 남해군의 창선을 연결하는 연륙교로써 사천시와 남해군 사이 3개의 섬(늑도, 초양도, 모개섬)을 잇는 창선대교, 초양대교, 삼천포대교, 단항교, 늑도대교 등 5개의 다리를 말한다. 1995년 2월 착공하여 2003년 4월에 완공하여 개통하였으며, 사천시내를 지나 삼천포로 들어서면 시원한 바다 냄새가 나를 반기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 만큼 푸르고 맑은 바다가 있다. 그 위에 아기자기한 섬들의 가교 역할을 하는 다리가 바로 창선·삼천포 대교이다. 새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봄이 오면 사천에도 자연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중에도 봄이 왔음을 우리에게 특별하게 알려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창선·삼천포 대교이다. 창선·삼천포대교는 늑도, 초양도, 모개섬을 연결해주고 있는데 봄이 되면 만개하는 유채꽃 밭이 유명한 관광명소로 수려한 장관의 한려수도와 더불어 그림 같은 다리, 유채꽃 밭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절경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4월 무렵이면 남해 곳곳에는 유채꽃이 만발한다. 그중에서도 창선·삼천포대교를 연결하는 섬들의 유채꽃밭은 유채 풍경 중 백미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도로에선 잘 보이진 않지만 도로 아래편으로 몇 걸음만 옮기면 오목한 산비탈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 만발한 유채꽃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화사하게 물들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각산 자락 끄트머리 산비탈에 올망졸망 피어난 노란 물결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여느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을 연출다.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단골명소임은 당연하고 창선·삼천포 대교의 주변 풍경은 가히 한 폭의 그림이라 해도 모자랄 만큼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인접한 또 다른 관광 명소인 각산에 올라 삼천포 인근 해상과 창선.삼천포 대교의 전경을 쉽게 감상 할 수도 있으며 최근에 조성된 대교공원에서도 시원한 바다 냄새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봄이 오면 아름다운 사천의 랜드마크초양도 유채꽃창선·삼천포대교사천의 랜드마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창선·삼천포대교 해가 없는 밤에도 그 뛰어난 자태를 숨길 수가 없는데 한 밤중에 바다 위를 아름답게 물들여 버리는 창선.삼천포 대교의 야경모습은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절경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형형색색의 조명을 몸에 두르고 사천의 한 부분을 밝혀주고 있는 창선.삼천포대교를 보고 있으면 주변의 다른 야경들마저 무색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어쩌면 밤이어서 차가워진 바다바람마저도 그 야경의 일부처럼 느껴질 만큼 창선·삼천포 대교는 주변 풍경과 환경에 잘 녹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창선·삼천포 대교는 그 길을 걷다 보면 왜 이 길이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었는가를 알게 된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그 위를 지나는 붉은색의 교량은 사진으로만 봐도 직접 가서 꼭 한번쯤은 걷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고 삼천포의 그림 같은 마을들과 계절마다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주변 자연 풍경은 그 길을 걷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성에 젖어 들게 만들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추억을 선물한다.<사천시 문화관광 편에서 ...>
Ⅴ. 특기사항
- 황 원 영(톰보이)님 : 맥주 협찬
Ⅵ. 산행을 마치고
- 금산에 붙어 다니는 수식어는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삼남 제일 명산, 산림청선정 100대 명산, 한국의 산하 선정 인기명산 100 중 54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39호, 제주도, 거제도, 완도 다음으로 네 번째 큰 섬,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있는 유일한 산악공원 등 화려하다. 이중 가장 마음에 와 닫는 글귀는 단연 100대 명산이다. 금산이 100대 명산 중 한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었는데 황 원 영(톰보이)님의 추천에 따라 6월 마지막 주 정기산행지로 선정하면서부터 기대에 부풀었었다. 그 결과 한 점 후회는 없다. 기대 이상의 결과에 만족한 일상이었다고 자신 있게 치부하고자 한다. 다만 농어촌도로 제215호 구간 3,2km를 소화하면서 부담스러움을 호소하셨던 몇몇 분들에게 죄송스런 마음 금할 수 없다. 오늘 6,4km/5시간 중 그 절반에 해당하는 3,2km/50여분 구간 포장길에서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면서 다리 통증을 호소하시는 분들의 불편스러운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안쓰러움이 채 가시지 아니하여 마음이 무거웠다. 장거리 무박2일 여정 안산, 즐산 해 주시고 일정운영에 도움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면서 금산에서의 일상정리를 여기서 마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