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류준열
바람 불고 비가 내려도 사철 빈 의자 옆에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
단발머리 뜯겨진 머리칼, 가느린 어깨에 앉은 작은 새, 꼭 쥔 곱다란 주먹, 신도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 소녀의 뒤에 어른거리는 그림자 속 나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굴곡진 역사에 채여 뒹굴다 이제야 않은 자리, 가슴 속 맺힌 한 뚝뚝 떨어져 내리는 서러움의 자리
고국 하늘로 날아오고 싶어도 못 오는 현해탄과 남지나해 너머 떠도는 영혼의 나비들, 고향 하늘 아래 머물지만 자유롭고 평화롭게 훨훨 날아다녀야 하는데 날지 못하는 소녀들, 한과 서러움의 무게로 날아오를 수 없는 절망적 상황
낯선 이국의 구천에서 떠도는 나비와 현세에서 어렵게 연명하고 있는 소녀들 앞으로 날아든 청천벽력과 같은 한일양국정부의 위안부 문제합의 타결소식
피해당사자의 의사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들어보지 않고, 한일양국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하고 피해당사자에게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정부의 몰염치한 태도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남의 일이라고 해서, 수십 년 지난 과거의 일이라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란 말을 함부로 사용한 한일 위안부 타결합의문
잔혹한 위안부 범죄를 더 이상 묻지 않고 합의했다는 말을 피해자 국가의 관료 입에서 흘러나오다니
강제연행을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가 따른 일본정부의 피해배상금이 아니라, 재단출연기금이란 이름의 돈 100억으로 위안부에 가한 범죄를 덮겠다는 굴욕적이고 수치스런 합의 선언
당사자는 합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다는데도, 억지로 용서하고 이해하라고 종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일본 국가 차원의 사죄를 받아내야 할 정부가 일본 대리인처럼 행동하고, 사과와 보상이 턱없이 모자라는데도, 불가역적이란 듣도 보도 못한 말로 백성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양국 정부의 비정하고 통탄스러운 합의
굴욕적이고 수치스런 우리의 현실
-해설
*윤병세 외교부장관의 발표 전문
1.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정부가 앞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정부와 함께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한다.
2.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과 위험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가능한 대응방안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
3. 한국정부는 이번에 일본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이행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정부와 함께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번 문제에 대해 상호 비판을 자제한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타결 선언에 대하여
*2016. 01. 08.
산청 사매(四梅)
류준열
민족의 영산 지리산 기슭 마을에 추상같은 선비의 기개 빼닮은 산청 삼매, 오랜 세월 고고한 향기 그윽하게 풍기며 세상의 빛이 되었다.
시천면 사리마을 조식선생의 남명매(南冥梅), 단성면 운리마을 강회백선생의 정당매(政堂梅), 단성면 남사마을 하즙선생의 원정매(元正梅)
삼매에 가려져 이름 드러내지 못하고 산야에 웅크리고 앉아 묵묵하게 세상 밝히는 단성면 운리마을 산청 야매(野梅), 후세에 이르도록 이름표 하나 세우지 못해도 한세상 떠받치며 올곧게 살았던 산청 백성의 표상
지리산 기슭 산청에는 선비의 표상 삼매가 있고 이름 없이 살다 간 백성의 표상 야매가 있다.
-해설
*조식(曺植, 1501-1572) :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로 경의사상으로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며 비판정신이 투철한 학풍을 수립하여 수많은 의병장을 배출함
*강회백(姜淮伯 1357-1402).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보(伯父), 호는 통정(通亭).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제주(成均祭酒)가 되었으며, 밀직사의 제학·부사·첨서사사(簽書司事)를 역임
*하즙(河楫 ?-?) : 본관은 진주. 자는 득제(得濟). 호는 송헌(松軒), 시호는 원정(元正).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좌리공신(佐理功臣)에 녹훈되었으며, 관직은 찬성(贊成)까지 올랐고, 진천부원군(晉川府院君)에 봉해짐
*야매(野梅) ; 단속사지 뒤편 정당매에서 멀지 않은 밭둑에 있는 매화
*2015. 05. 21.
약력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감사, 한국펜클럽. 한국문학작가연합. 한국시사랑문인협회. 천상병문학제추진위원장
작품집 ; 무명그림자(2003, 2007. 2012)
현재 경남 단성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