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78)
《악뮤(AKMU), '소문의 낙원(Paradise of Rumors)' 차가운 시대의 그늘을 품는 정직한 숨결》
언제부터인가 거리마다, 사람들의 손끝마다 '소문의 낙원'이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다. SNS의 짧은 숏폼 영상 속에서도, 청년들의 일상의 현장
에서도 이 노래에 맞춰 춤추고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다. 이 곡을 혹자는
'어른들의 동요'라고도 말한다.
젊은 사람들이 달관의 세계를 맛보고 왔는지, 아니면 종교적 초월세계를 만나고 왔는지 가사가 참으로 신박하다.
"잠깐 앉아요/
따뜻한 스프와 고기가 있어요
지친 나그네여/
도시에선 절대 알 수 없는 게 있죠/
TV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게 있죠//
소문의 낙원/
누군가 비웃으면 난 더 힘내요/
소문의 낙원/
물집을 터뜨리고 붕대를 감았죠/
떠나야지만 알 수 있는 게 있죠//
지치고 병든 나그네여/
우 외톨이 나그네여/
당신의 불치병은 그곳에/
존재할 수 없어요//
잠깐 앉아요/
따뜻한 스프와 고기가 있어요/
소문의 낙원/
우린 모두 그곳을 찾아 떠나왔죠/
겁쟁이는 절대 모를 세상이 있죠//
지치고 병든 나그네여/
우 외톨이 나그네여/
당신의 불치병은 그곳에/
존재할 수 없어요/
느리게 오래 걸어가요/
우 소문의 낙원으로/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
도시를 떠나왔어요"
악뮤(AKMU)의 이 노래는 사랑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끝내 지쳐버린 한 나그네의 뒷모습에서 시작된다. 그에게 거창한 구원 대신 따뜻한 수프와 고기 한 접시를 내어주고, 다시 길을 떠날 수 있도록 조용히 등을 밀어준다. 거창한 서사도, 과장된 감정도 없다.
'지치고 병든 이들은 누구나 다 내게로 오라'던, 환대로 가득했던 그 분의 식탁이 떠오른다.
반복되는 멜로디와 담담한 가사, 그리고 남매가 어린 시절을 보낸 몽골의 드넓은 초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뮤직비디오는 마치 오래된 동화책의 한 장면처럼 흘러간다.
이 곡은 소리가 크지 않다.
몽환적인 사운드로 지친 나그네를 위한 위로의 메세지를 전하는 수현의 목소리는 크지도 않고, 치솟지도 않는다.
바로 그냥 옆에 앉아있는 위로,
말없이 따뜻함을 내밀고,
충분히 쉬었으면 다시 걸어보자고
조용히 등을 밀어주는 것,
'소문의 낙원'은 그런 곡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 잔잔함을 유지한다. 터지는 구간 없이,
극단적으로 치솟는 멜로디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누군가 비웃어도 더 힘을 내고,
물집이 잡혀도 붕대를 감고
나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걸어가는 사람.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곡 전체를 관통하는 '위로'
그러나 악뮤의 위로는 거창하지 않다.
대단한 말 대신
따뜻한 스프와 고기 한 접시.
그걸로 충분함을 전하는 곡이다.
그러기에 그 단순한 위로가
오히려 더 깊게 와닿는다.
'소문의 낙원' 이 제목 또한
흥미롭게 느껴진다.
낙원이 아니라, '소문의 낙원'.
즉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다.
가봤다는 사람도 없는,
그냥 어딘가에 있다는 소문만 떠도는.
하지만 바로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걷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믿는다는 게 증명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걸, 그 선택이 결국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걸.
이 노래는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정말 우리가 찾는 것은 어딘가에 있는 낙원일까,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일까.
인생은 늘 힘들고 어려웠다. 먼 선사시대에도 어려웠고, 오늘날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마음은 늘 공허하고 채우기 힘들다. 그래서 인간들은 낙원을 더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곡이 더 깊게 다가오는 이유는
악뮤 남매의 실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악뮤 이수현은
오랜 시간 심각한 슬럼프를 겪으며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닫아버렸었고,
그 긴 겨울을 함께 버텨낸 건
오빠 이찬혁이었다.
슬럼프라는 긴 겨울을 지나 스스로 꽃을 피워낸 남매의 서사가 담겨있기에 이 위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얻어낸 평화는 듣는 이에게 강력한 전염성을 발휘한다.
그래서일까. “소문의 낙원”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낙원은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는 이미 비슷한 질문을 수도 없이 반복해왔다. 사랑과 우정, 관계와 신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대부분의 답은 회의론으로 기울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다른 방향을 택한다. 낙원은 찾아 나선다고 발견되는 곳이 아니라, 오직 믿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영토라고 말한다.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아닐지라도, 그 여정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오히려 그 길 위에 있는 시도와 용기가 이 차가운 세계의 온기를 데우고 세상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말하는 듯.
그냥 느리게, 오래, 걸어가면 된다고.
빠르게 도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쳐도 괜찮다고 무언설법을 하고 있다.
가혹한 경쟁과 기술의 차가움, 그리고 삶의 무게에 지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성공의 약속이 아니다. 그저 나를 이해해 주는 따뜻한 한마디와 "많이 힘들었지" 하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다정한 공감이다.
이 노래가 품은 서정성이 그 결핍된 체온을 채워주고 있다.
메테르링크의 '파랑새'에서 주인공들이 행복을 찾아 온 세상을 헤매다 결국 제 집 새장 속의 새를 발견했듯, 청년들이 디지털 영상을 통해 이 노래를 공유하고 어우러지는 모습 역시 '우리 곁의 소소한 낙원'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몸짓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자락의 잔디밭은 매끈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정작 다가가 보면 울퉁불퉁한 돌과 자갈밭이듯, 남들이 말하는 거창한 성공의 무대 또한 차가운 자갈밭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청년들이 이제는 서로의 체온을 다독이며 작지만 확실한 평온을 찾아 나선 것이다.
결국 현대적 매체 위에서 유행하는 '소문의 낙원'은, 차가운 시대를 견뎌내는 인간들의 가장 따뜻한 연대기이자 시대상이다. 거창한 기술이나 거대한 자본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온기'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진정한 낙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악뮤는 노래한다. '낙원은 멀리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주는 관계 속에서, 내면의 평화 속에 있다'고.
오직 자기 삶의 주체로 우뚝서서 걸을 때에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낙원에 대한 실존적인 삶의 자세를 말하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청년들이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고단한 숨을 내쉬며 새로운 내일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
이 노래가 그저 흘러가는 유행가로 잊히지 않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막연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헤매지 마라. 지친 서로를 토닥이며 따뜻한 숨을 나누는 바로 지금, 이 자리가 우리의 낙원이다"라는 묵직한 희망의 울림판이 되기를 기대한다.
여담이지만 어제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평소 예사로 보아왔던, 롯데리아 '리아두툼새우 햄버그' 광고에 이찬혁ㆍ이수현 남매가 모델로 나온 것을 보았다.
역시 관심을 가진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껴지고, 아는 만큼 들리나 보다.
우리는 각자, 자기를 향해 따뜻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나를 봐 달라고 세상을 항해 어떤 형태로든 목마르게, 애절하게,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게 아닐까.
'날봐 날봐 날봐 귀순'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말이다.
필자가 며칠을 끙끙거리며 이 글을 써서 이 카페나 SNS에 올리는 행위를 계속한다는 그 자체 역시.
끝으로 필자의 졸시 한편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사람들은 숨죽여 한 곳을 가리키네/
빛과 은혜가 가득한 숨겨진 세계를/
바람이 번지는 저 언덕 너머/
소문 속의 낙원, 순수하고 신성한 그곳을/ 어떤 지도도 그 비밀스러운 금빛 해변을/ 그려내지 못하지만/
심장과 영혼은 끊임없이 그곳을 찾고 있네 <소문의 낙원>"
|인문학칼럼니스트 최진태
*AKMU - '소문의 낙원 (Paradise of Rumors)' M/V
https://youtube.com/watch?v=D54StAZFUrc&si=tRaoYZHbdAdZzKnm
**설해하모니카여행 - https://m.cafe.daum.net/luluna0/eIgU/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