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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 무당의 다른 얼굴
무당[강신무]의 발생 배경을 이해한다면
문명은 과학, 무당은 비과학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은 모순되지 않는다.
전혀 별개의 차원에 속하기 때문이다.
■ 동서정신문화(東西精神文化)의 원류
동서인의 뿌리 인식은 무속의 분석에서 출발
원시신앙의 한 형태로 간주되는 무속적 관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널리 인정되는 바와 같이 한반도다.
그러면 왜 무속을 들추어내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지 모른다. 다름이 아니라, 영적세계(Spiritual World)에 대한 비밀을 간직한 곳이 무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세계를 부분적이나마 해부한다면 이것은 곧 신(Creator)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음을 뜻한다.
종교인을 비롯해 비종교인들도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은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편이다. 때로는 행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의 광적(狂的)인 열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흐름은 물질물명이 파생시킨 대표적인 역기능 현상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하면, 물질 문화와 정신문화의 불균형에서 초래되는 자아상실감을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과 몰두로 해소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정신안정과 의지처를 희구하는 이같은 경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흐르는 하나의 사조(思潮)로 이해된다.
신(God)과 영혼(Psyche)을 전제하지 않은 종교는 없다. 그러나 신(God)과 영혼(Psychic being)의 해석이 제각각으로 나타나 있고, 저마다 자신들의 종교에 유리한 방향으로 자의적(恣意的) 해석을 하고 있따.
이같은 종교적 배타성은 종교의 추악한 내부의 사회문제화의 노출과 함께 정신세계에 대해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신(神)을 종교(宗敎)와 연관지어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다. 그런데 초경험적인 존재와 현상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중대한 부분에서 결정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는 비단 종교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누구나 쉽게 수용할 객관적이고도 보편적인 논리가 결여되고 있음은, 정신세계와 관련된 책자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공통된 경험이기도 하다.
사분오열된 정신세계의 이론은 정신세계에 대한 지적욕구를 상쇄시켜 버린다. 뿐만 아니라 오염된 종교에 대한 실망과 거부감은 종교를 외면케 한다. 이같은 주요 원인은 신(神)과 종교(宗敎) 사이에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에 관해서는 계속해서 세부적이고도 논리적인 설명이 뒤따를 것이다.
오해와 혼란을 일으키는 정신세계에 대해 좀 더 인내를 가지고 다가가야만 한다. 이를 위해 영적세계와 교류(交流)하는 영능자(靈能者)를 일차적인 분석 대상으로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신비의 영능자들에 의해 수많은 종교가 태어나 있고, 이들으 ㅣ주장에 의해 신자(信者)들의 가치관도 지배되고 있다.
결론에서 유도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초경험적 능력의 소유자들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무당(Shaman)이다. 즉 초현실 세계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속을 비롯한 각종 영능자들은 영적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는 블랙박스(Black box)인 셈이다. 이는 곧, 우리를 혼란의 미궁(迷宮)으로 빠뜨렸던 수많은 종교와 정신계 서적은, 무속의 세계를 분석함으로써, 신과 영혼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무속이 간직하고 있는 진실을 해보하려는 의도는 이런 이치에서 연유한다.
서구인들에 있어 무당은 그다지 낯익은 단어는 아닐 듯 싶다. 이로 인해 무(巫)를 연상시키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서구 중세에 있어 비극적 신분으로 굳혀진 마녀(魔女)를 연상시키면 무리가 없다. 지금도 소련을 비롯해 동구(東毆)에서는 마녀가 있는데, 이들이 때론 의사역할을 대행(代行)하기도 한다. 즉 의학적 치유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질병을 그들이 고쳐주는 것이다. 미래에 관한 예언 능력과 치병의 능력을 갖는 그들이다. 이보다 역사에서 찾는 것이 쉬울지도 모른다. 고대각국의 신전(神殿)에는 제천의식을 주관하던 신관(神官)이 있었는데, 이를 연상시키면 틀림없다. 이 역시 낯설다면 세계적으로 비교적 널리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 점쟁이(Diviner) 혹은 저명한 예언가를 떠올려도 관계없다. 그러나 서구보다는 동양이 무속적 관습을 남기고 있다. 현실을 보면 이같은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고대 일본에서는 무녀(巫女)가 상당한 활약을 했다. 그녀는 서양의 신관(神官)에 대비시켜 볼 수 있는데, 신관과 인간의 중개자(仲介者) 곧 무당이다. 무속의 영향을 남기고 있는 것이 신사(神社)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뒤에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이지만, 종교와 사상에 관계없이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영능자(靈能者)들은 무당(巫堂)으로 보아 큰 무리는 없다.
여기서 한반도의 무속에 집중시켜 규명하려는 것은, 무속적 역사가 장구(長久)할 뿐만 아니라 무속적 관습이 비교적 훌륭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민족우월주의 내지 선민사상의 암시와 전혀 상관없다.
■ 성령(聖靈)을 체험한 자도 무당이다
일반적으로 무당이라 할 때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당을 연상한다. 즉, 토속적 원시 신앙의 한 형태 내지 한 부류로 이해하고 있음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무신론자들이 무당을 비웃음과 경멸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신과 영혼 같은 초현실적 존재나 현상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고등 종교의 종교인임을 자부하는 성직자와 신자들, 바로 그들 자신이 그들의 종교적 가르침을 하나의 미신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 장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그 어떤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변형된 형태의 단순한 보통 무당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성령을 받아 치병의 능력 같은 신비한 능력을 갖게 된 성직자들이 오랫동안 경외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사실이다. 초능력의 실체에 대해 지식이 그동안 전무하였으므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일 도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전에 개략적이나마 살펴본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 자신들의 신비한 능력을 최고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종교의 명칭만 달리할 뿐, 무당의 범주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누차 강조한 바와 같이 이 같은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도 그 능력은 보통영으로부터 받은 능력일 뿐이다. 다시 말해 보통 기적이라고 불리는 초경험적 현상은 보통영의 능력이 인간의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이것은 강신무(降神巫), 즉「신내림」에 의해 무당이 되어 초현실적 능력자가 되는 메커니즘과 동일하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성령을 받아 신비한 능력을 갖는 그 어떤 종교인도, 형태를 달리하는 또 다른 무당일 뿐이다. 이는 영계에 대한 중대한 정보를 무당이 시사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므로 무당이 되는 배경은 영혼을 전제하지 않는 한 결코 이해될 수 없고, 영계의 단편적인 실상이나마 파악코자 한다면 무속에 관한 연구는 절대 필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무당을 무조건 미신으로 몰아 배척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영계에 대한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무당의 성립 메커니즘은 분석해야 할 가치가 있다. 물론 다시 지적될 것이지만 무속의 연구를 통한 영계의 완전한 이해에는 한계가 있다.
무당은 세습무(世襲巫)와 강신무(降神巫)로 나뉜다.
세습무(世襲巫)는 글자 그대로 무당의 일을 배워 무당의 길을 가는 무(巫)를 말한다. 따라서 영적인 체험 없이 무당이 되는 경우이므로, 예언이나 치병의 능력 같은 초경험적 능력은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가 수행하는 역할 범위는 제사를 주관하는 사제적(司祭的) 기능에 국한된다. 이에 반해 강신무(降神巫 : 이른바 「신내림」에 의해 되는 무당)는 조금 전의 세습무와 전연 성격을 달리한다. 전자가 학습에 의해 무당이 되는 경우임에 비해 후자는 개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무당이 되어야 하는 경우로, 양자는 엄격히 구분된다. 즉, 강신무는 무병(巫病)이라는 특이한 과정을 겪으면서 무당이 되는 경우이다. 이 무병(巫病)의 징후는 신체적으로 건강이 악화되고 아울러 정신적 고통을 받는 것이다. 또는 꿈 속에서 도인이나 천사, 혹은 다른 성자들을 대면하여 계시를 받기도 한다. 이런 신비한 체험이 무병(巫病)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어 무당의 업(業)을 시작함으로써, 즉 본격적인 무당의 길로 들어서게 되면 무병은 자연스럽게 치유된다.
만약 그 무병을 의학적으로나 다른 종교에 귀의함으로써 치유하려 한다던가 또는 무당으로서의 역할을 거부하면 무병은 더욱 심하게 되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 아직도 의학계에서는 무병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학적 치유 역시 불가능하다. 이는 비단 의학계에만 주어진 과제는 아니다. 사회학 중에서 무속을 전공하여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도 무병이 어떤 성질의 질병인가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인데, 그것은 인류의 어떤 학문도 규명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무병의 원인 분석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경험하고 난 후 무당의 역할을 하게 되는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면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모든 강신무(降神巫)에서 예외 없이 체험되고 있으며, 요즘 세계적으로 출현하는 신흥 종교의 교주들도 경험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즉, 무당이 되는 배경과 신흥 종교가 출현하는 배경은 동일한 것이다.
무병을 경험하고 난 후 신비스런 능력자로 변신한 경우를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이런 사례는 무속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저서나 논문에 수없이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는 필자가 조사한 사례와 서정범 교수의 저서 중에서 대표적인 사례를 인용한다.
여고생 반장(이옥경 : 16세)
내가 옥경 양을 처음 만난 것은 그녀가 8세 때였다. 더운 여름이었는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을 모시고 있는 현명분 씨의 내림굿을 한 후였다.
최근 다시 만난 그녀는 여고 1년생으로, 영어 학원을 다녀온 일요일 오후 4시였다. 키도 컸고, 예쁘고 귀여운 여고생이 되었다.
내림굿을 하기 전에는 밤 12시면 일어나 소리를 크게 내어 울었다고 한다. 약 20분 동안 울고는 다시 잠이 들곤 했었다.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나 공부를 안한다고 때리기 때문에 우는 것이었다 한다. 어떤 때에는 이상한 신들이 나타나 무서워서 울기도 했다.
처음엔 할아버지가 하라는 공부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랐는데, 할아버지가 부적과 꽃을 그리라 하였고, 어떤 때는 붓을 잡고 가르쳐 주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꿈에 하늘에 올라가 태양이 되기도 했다.
일곱 살 때였다. 이웃의 어른들이 돈 백 원을 주며「모아둔 돈을 꿔줬는데 그 사람이 언제 주겠냐,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날은 못 받겠고 며칠날 받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그대로 맞자, 소문이 퍼지고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국민학교에 들어왔다. 성적이 상위였다. 산수 시험을 칠 때 몰라서 할아버지(몸주)에게 물었더니 가르쳐 주어 그대로 썼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시험을 칠 때마다 늘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수학 문제를 몰라서 할아버지에게 물었더니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네 실력대로 쳐라」고 한 후는 묻지 않았다.
국민학교 때는 노래 자랑, 그림 그리기, 글짓기 등의 대회에 참가해 늘 당선되고 모든 과목이 우수한 편이였다. 지금 고등학교에서도 성적이 상위고 반장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영어가 좀 떨어져 여름 방학에 공부를 했더니 20점이나 올랐다고 기뻐한다.
중학교 때는 영어와 수학, 그리고 과학 과목이 좋아 과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대학은 철학과 아니면 국문과를 가겠다고 한다. 철학과를 가는 것은「나는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서라고 한다.
나는 왜 무녀인가? 그게 알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문과를 가서, 앞으로 무녀의 세계를 주제로 한 글을 쓰고 싶다고도 한다.
요즘은 학교를 마치고 영어 학원에 갔다가 밤 11시 쯤 집에 돌아오고, 다시 공부를 한두 시까지 한다고 한다.
굿을 할 손님이 있을 때에는 밤새 굿을 하고 새벽 4,5시쯤 집에 돌아와서 학교에 나간다고 한다. 시험을 칠 때에는 오고 가는 차 안에서, 굿상을 차리는 틈에, 시험 공부를 해도 항상 제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초능력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겠다.
대학원에서 석사까지는 꼭 밟겠다고 하며 형편을 봐서 박사 과정까지 밟겠다는 것이 그녀의 포부다.
늘 기도하는 내용은, 공부를 잘하게 해 달라는 것과 자기 말에 실수 없게 해달라는 것과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보통 무녀가 되면 공부가 싫고, 하려고 해도 신이 못하게 하는 것이 상례인데 옥경 양만은 그 예에서 벗어나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박사 과정까지 밟겠다는 학구파 무녀이다. 그것은 꿈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한 희망일 것이다.
위는 그녀의 능력을 할아버지로부터 받고 있는 사례인데, 이와 동일한 사례를 들어 본다.
작두 타는 소녀(이미숙 : 25세)
마포구 아현2동 636-3, 전화 : 363-3941
그녀는 11살에 내림굿을 했다. 어머니가 무녀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신기를 입은 것이다.
어머니나 아버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만신(무당)일 때에는 그 자녀가 만신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뿌리가 있는 만신이다. 대개 어렸을 때 만신이 되는 것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만신이기 때문이다.
이미숙 양도 바로 그러한 예가 된다. 그녀가 11살일 때, 국민학교 4학년이었다. 시름시름 몸도 아프고 짜증이 나고 학교에 가도 칠판에 쓰인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어떤 때는 칠판 위의 숫자가 나비같이 날아다니기도 했다. 선생님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들기도 했다. 어린 그의 눈에 하늘에서 장군들이 말을 타고 다니는 게 보였다. 할아버지가 족두리를 쓴 30대 여인과 어린이를 데리고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증세로 인해 학교에 다닐 수가 없게 되고 할 수 없이 내림굿을 하게 된 것이다.
내림굿을 할 때 열한 살 나이에 작두를 탔다. 조금도 무섭지 않았고 작두 위에 올라 서 있는데도 기분은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점을 치니까 손님이 엄청나게 몰렸다.
너무 피곤할 때는 변소에 가서 쉰다. 그러면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쪽을 진 30대 여인이 나타나 다음 손님은 무슨 일로 왔다고 똑똑한 음성으로 일러 준다. 이렇게 변소에 쉬러 가면 그 여인이 점괘를 가르쳐 준다고 한다.
어머니는 친정 어머니가 몸부인데 비하여 그녀는 친할아버지가 몸주이다.
친할아버지가 몸에 실릴 때에는(앞에서 설명한 체납의 경우) 열한 살 나이에 4홉들이 소주 한병을 마셔도 끄떡 없고 도리어 힘이 난다고 한다.
그때는 할아버지로 변해서 그 할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것이 된다.
그녀는 결혼은 안할 것이라고 하며,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고 한다.
학사 출신의 나비 무녀(김현정 : 43세)
중구 신당동 349-90, 전화 : 231-9177, 237-3438
학사 출신 무녀다. 그녀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틀니를 주면서 내가 죽으면 이 틀니도 함께 관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했다. 7월 3일이었다.
그녀가 일어나자 아버지의 모습이 웃는 얼굴이었다. 흔들어 깨웠으나 꼼짝 안했다.
지난 밤에 소꿉장난으로 만든 음식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갖다 드렸다. 노란 꽃으로 만든 음식이었다. 그랬더니 아버지의 인상이 나비로 변해 보였다. 꽃으로 만든 소꿉장난 음식에 나비가 날아와서 앉아 있는 환상이 보이며 향기가 났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녀에게는 나비로 보이는 것이다.
그녀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새로 부임한 선생이 좋아졌다. 그 선생님의 모습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았던 것이다.
대학 2학년, 21세 때였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선생님에게, 선생님은 은사이자 가정 교사이기도 하고 아버지같이 느껴지기도 하며 나를 이해해 주고 내 생활을 알고 있는 유일한 분이라 했다. 그러자 그 선생이 결혼을 하자는 청을 했다.
결혼식날 식장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순간 전신이 화끈하더니 신랑의 머리가 나비로 보이는 것이었다. 나비의 날개가 신랑의 얼굴로 보였다.
첫 아기를 낳기 전날 꿈이다. 큰 나비가 날아와서 왼쪽 젖꼭지에 앉아 있었다. 꿈에도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나비가 젖꼭지에서 날아 가지 않게 하려고 가만히 있었다.
사내아이를 낳은 지 사흘만에 젖이 돌아 나왔는데, 나비가 앉았던 유방에서 먼저 젖이 나왔다.
그런데 아이가 몹시 울었다. 하루는 낮잠이 돌았는데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서 주머니를 던져 주었다. 쨍그렁 소리가 나는 바람에 깨었다. 신을 모시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몹시 우는 것 같아 할 수 없이 신을 모시기로 했다.
그녀는 얼마 후 사랑하던 남편과 헤어졌다.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몸주이기 때문에 그분의 연인이 된다. 나비는 이 꽃 저 꽃 날아다닌다. 한 꽃에만 있지 않는다.
그녀는 어느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겠다. 나비는 아버지인 동시에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녀는 초청을 받아 외국 나들이도 꽤 하는 편인데, 미국이나 일본의 비행장에 내리면 어디선가 나비가 반드시 날아온다고 하는데, 그녀는 아버지의 영혼이 자기를 맞이해 주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은 나비라 하겠다.
(이상 서정범의《허허 별곡》에서)
강신무(降神巫)가 되는 과정을 몇 편의 사례를 통해 살펴 보았다. 영적 체험이라는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신내림에 의해 무당이 되면, 그 이전과 다른 가치관에 의해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다. 무당 중에서도 무병 증세를 보이면서 무업(巫業)에 종사하는 강신무의 숙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필자가 만난 강신무를 그 예로 들어 본다.
거부될 수 없는 길( 황영분 : 51세)
조용히 행복한 삶을 살아왔던 그녀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어느 날부터인가 시작되었다. 한동안 남모르는 비애의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었다. 그녀는 평소 보이지 않는 세게와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또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은 평범한 주부에 불과했다.
그런데 누구인가로부터 무당이 될 것을 강요받기 시작했고, 이를 단호히 거부하는 그녀에게 육체적 형벌이 주어졌던 것이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 없이 무당의 길을 가게 되었다. 지루하고 힘겨웠던 대결에서 지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갈등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었다. 그녀를 보는 눈이 예전과는 달라졌으며 접근하기를 꺼려하는 것도 느껴졌고, 그녀의 자식들 또한 불평 불만이 대단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무녀의 업을 다시 거부하였다. 그로 인하여 몸은 눈에 띌 정도로 쇠약해져 갔고, 얼굴은 밀가루에 덮인 것같이 병자의 몰골이 되었다.
목을 죄는 듯한 온몸의 통증이 매일 계속되자 더 이상 버틸 기력이 없었다. 그녀는 다시 굴복하였다. 마침내 모든 것을 숙명이라 결론 짓고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녀를 괴롭히던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기나긴 투쟁에서 남은 것은, 일찍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지 못한 후회밖에 없었다. 너무도 힘겨운 힘겨룸이었던 것이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보여 주는 놀라운 예언 능력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가족의 삶을 꾸려가는 데 경제적 모자람은 없어 보이는 듯했다.
강신무(降神巫)가 되는 대표적인 사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무병(巫病)을 경험하고 난 후에 무당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무당이 되면, 그들만이 상호 교제를 하며 밀착한 유대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신분을 감추고 그들만의 결속을 위해 나아가 무당의 일에 종사할 때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그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은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용한 사례에서 보듯, 무당은 사자(死者)인 영혼이 그의 몸과 하나로 되어[體納체납], 그들의 일을 수행한다. 즉, 그를 일방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지휘령(指揮靈)에 의해 지배되고, 필요한 경우에 도움을 받게 된다. 만약 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할 때에는 육체적 고통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루지 않으면 안된다.
누구나 각자 나름대로의 희망이 있기 마련이고, 이를 이루려는 과정은 보람으로서 인생의 등대 구실을 한다. 그런데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을 때 가슴에 여운이 남기 마련이고 응어리는 일생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게 된다. 즉, 그가 받은 정신적 충격과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응어리, 일반적으로 이를 한(恨)이라 부른다. 욕구와 열망에 부응하지 못하고 자신을 패배자라고 스스로 낙인 찍고 심한 자책감과 부끄러움으로 일관된 그의 일생이 평탄할 리 없을 것이다. 예측지 못한 불행을 겪었을 때, 희망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생길 수밖에 없는 이 한(恨)은 인종과 이념을 초월해 누구에게나 있다. 한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있는 고유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한이 많다고 하는 것은 곧 이루지 못한 소망이 많다함이요, 한이 많은 민족은 갈망하는 바가 많은 민족임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혈통에 대한 강한 집착과 애정, 가족 구성원과의 끈끈한 유대 관계, 이 모든 관계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얼키고 설켜 있다. 이를 정(情)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부부 관계보다 오히려 부자, 부녀, 모자, 모녀라는 부모와 자식과의 각별한 애정은 어느 나라에 비할 수 없이 많다. 그토록 부모와 자식간의 밀착관계는 서구인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어떤 희생도 희생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서구화로 인해 전통적 인식이 변화한 것이 사실이나 이런 경향은 아직도 강하게 잘지바고 있다.
앞에서도 영적 세계에 관해 단편적으로나마 살펴보았다. 즉, 생전의 습관 품성 인격이 영적 존재로 변화하여도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가 갖고 있는 생전에 이루지 못한 소망인 한도 함께 갖고 간다.
무당이 하는 일을 배워 사제적 기능인 제사를 주관하는 신분을 세습무라 한다. 영적 체험 없이 무당이 되는 경우이다. 단지 무업(巫業)을 학습하여 무당이 되었기에, 그들에게 신비한 능력이 없다. 경제적 생계 수단은 오직 사제적 기능에 의해 해결된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 직업 전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신무의 경우는 세습무와 성격을 전혀 달리한다.
영적 세계에 존재하는 영(靈)이지만 그가 갖고 있는 한(恨)이 후손이나 가족에게 영향을 줄 때, 달리 표현한다면 영으로부터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에는 이를 피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다. 이것이 과학의 발달이나 교육수준 여하에 관계없이 무당(강신무)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무당의 발생 메커니즘은 현대화의 정도에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지도령의 영적 단계에 따라 무당이 될 수도 있고, 신비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신분이 전환될 수 있다. 토속적 원시신앙의 형태로 분류되는 무당이 이럴진대 어찌 무당이 되어야만 하는 숙명이 따로 있을 것인가?
갖가지 성격으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영들이, 육신을 갖고 있는 후손의 육체를 빌어 자신의 생전의 욕구 내지 소망을 펼쳐 보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능력이, 우리가 볼 때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초과학적 현상, 즉 기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갖가지 초능력은 영의 욕구를 인간의 몸을 통해 발산시키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현상이다. 그러므로「신내림」에 의해 되는 무당, 곧 강신무는 보통의 영인 그의 조상과 가족의 영에 의해 지휘되는 피동적 신분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지구상에 수많은 신흥 종교들 그 중에서도 말세에 중생을 제도하라는 최고신의 계시에 따라 이 땅에 왔다고, 많은 신흥 종교 교주들은 오늘도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 또한 보통 영의 속임수에 현혹된 또 다른 무당일 뿐이다. 치병(治病)과 예언 등 신비한 능력으로 그의 신도들 앞에서 카리스마적 권위로 군림하고 있으나 무당과 동일한 발생 배경을 갖는다.
신비한 체험을 통해 대중 앞에서 각종 초능력을 과시하면서, 그는 자기 자신을 진정한 메시아로 변화시켜 가며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로부터 선택된 인물로 평가되면서 하나의 신흥 종교 교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자신들이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로 오해하고 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에 휘말려 현혹되고 있음은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것이 성경에서 이르는 만국을 미혹시키는 거짓 선지자들인 셈이다. 그러나 무당이 될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있듯이 신흥 종교의 교주가 될 가능성도 그러하다. 이러한 신비의 인물들이 대중 잡지에 흔히 소개되는 사례도 여기에 해당된다.
종교의 여하를 막론하고 소위 성령을 받았다고 외치며 보여주는 세계 각국의 종교인들의 안수 능력은 당연히 무당과 동일한 경우에 해당된다. 안수 능력과 그 박의 신비로움이 대중 앞에서 신의 이름 아래 공개되기도 하지만 역시 무당과 마찬가지이다. 믿음의 정도 혹은 종교에 대한 충실도에 비례되지 않은 능력이 발생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성령이 내렸다고 주장하는 종교인들은 영에 의해 능력이 주어지는 곧 서양식 무당을 의미한다 하겠다.
앞에 잠시 유럽의 신탁정치(神託政治)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고대 유럽에서는 신탁정치가 일반적 통치형태였는데 그 중에서도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행해졌던 신탁정치가 가장 유명하였다. 바로 그 신전 앞에서 국가의 대사가 결정되었던 것이다. 즉, 고대인들은 그들의 수호신을 모신 신전에서 영능자인 영매(靈媒)가 신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고, 이에 따라 국정이 결정되었다. 바로 그들이 고대 신탁정치의 주역인 서양의 무당이었다.
신비한 체험을 통해 계시 받은 메시아로 탈바꿈되는 신흥 종교의 발생 배경을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이해해 보자.
부처님의 계시(장영분 : 54세)
처음 그녀가 택한 종교는 기독교로서, 열렬하고 독실하게 종교 생활에 몰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찾아드는 잦은 불행은 정신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처음에는 신앙으로 극복하려는 굳은 의지로 필사적으로 매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히던 시련은 그때까지의 유일한 정신적 의지처를 포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각 종교를 찾아 해맸지만 만족을 얻을 수는 없었다. 결국 종교 자체에 심한 회의감과 거부감이 그녀로 하여금 종교에서 멀어지게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50대 초반 어느 날부터 그녀는 또 다른 불쾌한 경험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던 것이다.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깨어나, 흥건하게 흘러 내리는 땀을 닦으며 밤을 세웠던 날들도 많았다. 그녀의 몸은 서서히 쇠약해져 갔고 자식들의 권유로 병원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가 어떻게 이상이 있는지 진단하는 병원은 없었다. 몸의 특정 부위에 통증이 있는 것이 아닌, 꼭 찝어 말할 수 없는 기이한 증상이었다. 온몸 전체가 힘이 없어지며 무력감과 매사에 의욕을 상실하여 피로감 역시 쉽게 느끼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그녀의 꿈에 부처님께서 현몽하신 것이다. 집안에 우환이 시달릴때마다 유명한 사찰을 찾아다니며 무릎이 벗겨질 정도로 정성을 바치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 아닌가? 그 다음날부터 그녀의 일과는 근본적으로 수정되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목욕을 마치고 모셔진 부처님에 예불을 하는 것으로 하루일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날 밤에도 현몽하였던 것이다. 그리곤 자신도 놀랄 정도의 놀라운 일을 겪게 되었다.
"네가 너의 가족을 위해 바치는 정성이 갸륵하구나. 착한 심성인 너에게 나의 뜻을 전하리라."
"일개 아녀자가 어찌 부처님의 높고 크신 뜻을 헤아려 뜻을 행동에 옮기겠습니까. 집안에 우환이 없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장차 너는 질병에서 신음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게 되리라"
"저는 아무 힘도 없지만 부처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너의 눈과 손은 불쌍한 이웃의 눈과 손이 되어, 그들의 지팡이가 될 것이니 손만으로 병을 낫게 하며, 영을 떼어낼 수 있는 능력을 주리라."
신비한 체험과 함께 예전의 증상은 사라지게 되었고 놀라운 능력자로 변신하였다. 즉, 초면일지라도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고 예언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의학이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과 난치병을 치료하는 능력 같은 놀라운 기능을 발휘하였다.
그녀의 주위에는 찾아오는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고, 아울러 부처님의 계시를 받은 능력자로 확신하고 있다.
이와 매우 유사한 경우를 서정범 교수가 조사한 사례에서 인용해 본다. 사이비 종교라 불리우는 많은 유사 종교의 발생 배경에 대해 이해를 도울 것으로 본다.
카톨릭 신자인 무녀( 박부자 : 46세)
4대째 내려오는 천주교 신자이다. 지금도 자식들과 어머니는 성당에 나가고 있다.
내가 처음 그 집에 갔을 때는 마리아상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신부가 와서 보고 떼는 게 좋겠다고 해서 떼어버렸다고 한다.
그녀는 무녀가 되기 전 건강이 안좋아 백여 명이 넘는 무녀에게 점을 쳐보았다. 한결같이 신기가 있으니 내림굿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무녀(巫女)가 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병이 심해지면 십자가를 가슴에 안았다.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는 아침이었다. TV를 켜려고 하는데 '내 제자야, 법당을 차리고 굿을 하라'는 말이 들렸다. 뒤돌아 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누가 네 돈으로 하래느냐? 내가 해 줄게'
그녀는 문창호지를 꺼내서 빨간 글씨로「천만 원짜리 굿을 한다」고 써서 옷장에 붙였다. TV 뒤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와 오른쪽 옷장에 붙어 있는「천만 원짜리 굿을 한다」를 번갈아 보며 앉아 있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데 문틈으로 무지개가 들어와 앉아 있는 그녀의 목을 감았다. 순간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가 불로 보이더니 그 앞에 있는 TV 등 모두가 불로 변했다. 그 불 앞에는 흰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머리는 곱슬 머리였고 예수님이 입었던 옷과 같은 것을 입었는데 자세히 보니 예수님 얼굴이었다.
그 할아버지가
"너를 내 제자로 쓰겠다"라고 했다.
"저는 무당 안 할래요."
"누가 무당 하래느냐. 너같이 고생하는 사람 병을 고쳐 주어라."
"내가 무슨 힘이 있어 병을 고쳐 주지요?"
"네가 하니? 내가 하지."
하며 옆을 보라고 했다. 십자가와 천만 원짜리 굿을 한다고 써 붙인 중간에 마리아가 아기를 안고 있고, 요셉은 서 있고, 천사 넷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이 때에
'겁내지 말아라. 아기와 같은 분을 내렸으니 중생들은 할아버지라고 하리라. 제자의 말 한마디면 귀신도 떼고 병을 고치리라, 눈으로 진찰을 하리라.'
이후 병을 고치는 능력이 생겼다고 한다. 몸주가 예수님으로, 부르기는 할아버지라고 한다.
부처님이나 보살, 약사여래 등이 무교의 신으로 내리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불교 토착화의 한 현상이다. 예수님을 몸주로 할아버지로 모시고 있다는 것은 기독교의 신이 토착화한 현상이라 하겠다. 그녀에게 실려 있는 옥황상제는 마리아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서정범의《허허별곡》에서)
서정범 교수가 조사한 이러한 경우와 이전에 소개한 사례와 유사한 경험을 겪으면서 유사 종교는 탄생한다. 그들 앞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나 부처, 혹은 그 밖의 신비한 존재는 실제 자기 후손이나 가족에 영향을 주는 보통 영(靈)들로 조상이나 죽은 가족의 영인 것이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음으로 해서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부처님이나 보살, 약사여래 등이 무교의 신으로 내리는 것은 불교 토착화의 현상이며, 예수님을 몸주인 할아버지로 모시는 것은 기독교가 토착화한 현상이라고 서정범 교수는 보고 잇다. 그러나 사실은 외래 종교에서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부처나 예수 그 밖에 신비한 존재로부터 계시와 능력을 받는 이러한 현상이 외래 종교의 토착화와는 관계없다. 단지 그에게 신비한 체험을 겪게 하여 초현실적 존재에 암시를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체험을 통해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되고 있으니, 앞에서 지적 한대로「나는 선택된 특별한 신분」으로 확신케 하고, 비판 능력이 없는 맹신적 종교인에게는 신의 존재가 부정될 수 없는 증거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하게 하니「왜 독실한 종교인인 저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이 주어지지 않는가」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앞에서 논의하였다.
그런데 이전까지는 치병(治病)이나 방언의 은사 등 이른바 신의 은총이라 간주됐던 기적의 능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비판의 영역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한국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사회적 타당성 내지 신에 의한 선택성에 기적이 동원된다. 특히 개인과 사회, 민족과 국가가 재앙에 부딪혀 이를 타개하고자 할 때 이 같은 성격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이는 신을 찾으려 하는 생래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로 이런 요구에 기적이 증거로 동원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또한 종교의 건전성, 즉 성자의 말씀을 신도들에게 전달하는 임무에만 만족하지 않는 것도 명백하다. 건전과 부패라는 굴곡의 변천사를 거듭해온 종교는 신뢰와 불신의 양면성을 동시에 포함할 수밖에 없다. 성자의 말씀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신자들에 대한 일방적 주입이 성직자와 종교 그 자체의 권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 신중히 돌이켜 볼 때가 되었다.
각종 기적이 종교의 포교에 절대적 힘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종교의 성자와 기적은 어떤 연관도 없으며, 그 종교 자체와도 아무 관련이 없다.
일부 종교의 성직자들은 종교의 건전한 발전에 있어 간증 집회가 문제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의 짖거이 성경이나 목회자의 권위가 손상된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안수(按手)나 방언 등 신비한 현상이 종교의 건전성에 유해한 것은 적절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현상의 발생 배경은 밝혀내지 못하면서 무당이 갖는 치병과 방언, 혹은 예언 능력을 단지 미신으로 보는 것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 무(巫)의 능력(能力)
강신무의 기능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장래를 예측하는 예언적(豫言的) 기능, 병을 치유하는 기능, 제사를 거행하는 주관자로서의 사제적(司祭的) 기능이 그것이다. 세습무는 사제적 기능만 담당한다.
고대 국가에서는 바로 이런 능력을 갖고 있었던 무당이 신탁(神託)의 기능을 수행했던 것인데, 이런 면은 그 누구의 침범이 허락되지 않는 일종의 성역으로 취급되었다. 그 무당이 이른바 신관(神官)이다. 그들이 자연과 인간의 운명조차도 바꿀 수 있는 비범한 존재로 비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접신(接神)에 의해 신과 무당이 하나가 되어 신의 뜻을 전달하는 이른바 신탁의 기능이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 되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실제는「신내림」도 아니고 「신의 뜻을 전한 것」도 아니다. 단지 보통영의 지휘를 받는 신분이였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신비의 대상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영들에 의해 영향받고 있음은 오늘날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 기능이 무당의 형태로 남았을 뿐이다.
서양에서 신탁의 기능을 수행한 무당이 중세에는 마녀로 전락되었다. 바로 그들이,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신비한 능력, 즉 강신무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서양식 무당인 셈이다. 일반적인 의술로 치유될 수 없는 질병을 이들이 담당하기도 했지만 국가적 재앙이 있을 때 희생양이 되기도 한 것은 중세인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전에 어떤 종교 생활을 햇건, 혹은 영적 세계를 부인했던 무신론자였건간에 일단 무병(巫病)을 경험하여 그를 지배하는 지도령의 지배권에 속하게 되면 무당이 되어야만 한다. 마녀, 곧 무당이 되는 것을 피하는 방법으로 어떤 종교를 선택하기도 하는데 종교는 그의 간절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인간과 영들의 관계애 대해 종교는 어떤 영향력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동일한 이치로 신과 종교는 어떤 관계도 없다. 다만 성직자들에 의해 신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라고 세뇌되어 왔기에, 종교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점이「내가 무당이 되어야 하는 운명을 왜 신께서 막아주지 못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 된다.
보통영들의 영향권 내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들의 지배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무당의 신분에서도 탈피할 수 없다. 무당과 마녀와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종교인들은 모두 동일한 사례에 해당된다. 즉, 종교의 여하를 막론하고 이른바 성령을 받아 행하는 안수 능력이 무당의 치유적인 기능과 동일한 것이다. 그들은 안수 능력뿐만 아니라 다른 초능력을 신도들에게 공개하기도 하는데 이도 동일한 경우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 내지 가족의 영혼을 힘을 빌어 신비한 현상을 보여주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이념과 사상을 초월해 사회주의(신과 영이 부정되는 이데올로기) 국가에서 각종 신비한 능력자가 있게 되는 것이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서 영의 능력을 응용하여 실제 활요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초능력의 수준은 그에게 영향을 주는 영의 수련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믿음의 정도 내지 종교적 성실도에 비례하지 않는 각종 신비의 능력이 발생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령에 의해 신의 은총이 주어졌다는 것이 실제는 신과는 전연 관계없는 것이고, 보통 영들의 지도를 받는 변형된 형태의 무당에 해당될 뿐이다.
이렇게 무당이 되고 나면 그 후로는 사자(死者), 그 중에서도 조상을 잘 모셔야 함을 강조하게 된다. 그들이 후손과 가까이 하면서 영향을 주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보이지 않는 초현실적 세계에 관한 문제이며 또한 영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타당성 있는 논리가 결여됨으로 해서 미신으로 비판받아도 이에 적절한 반박을 하지 못한다. 구체적인 이론을 갖지 못한 까닭에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한계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초경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낀다.
지금까지는 무속에 흐르는 진실을 바로 보는 데 주된 의도를 두었다. 즉, 무엇보다「무당이 되어야 하는 원인과 발생 배경」그리고「무당이 갖는 능력」에 관심의 초점을 두고 논의해 온 것이다.
(여자 무당인 경우 무녀(巫女), 남자 무당인 경우 격(覡)이라 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무당(巫堂)이라 서술하였음을 부언해 둔다.)
■ 5계층으로 분류된 영계 성격
영계는 크게 5계층으로 분류되어 있다. 삶을 마치면,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심판을 받아 가야 할 곳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5계층 중 하나에 속하게 된다. 저급영계(低級靈界), 초급영계(初級靈界), 중급영계(中級靈界), 고급영계(高級靈界) 그리고 대영계(大靈界)가 그것이다.
저급영계
후손을 무당으로 만들거나, 잔인 무도한 흉악범을 만드는 영가(靈家)들이 여기에 속한다. 어려서 죽은 어린아이의 영, 나쁜 짓만 하다 죽은 자의 영,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을 정도로 샌의 원한과 미련을 품고 죽은 자의 영가들의 영적 단계가 저급영계다. 이 전에 설명된 원인불명의 질병이 여기서 비롯된다. 저급영이 후손과 접촉됨으로써 다음과 같은 변화를 체험하기도 한다. 즉, 처음은 기운이 빠지고 매사 의욕이 사라진다. 학생이면 공부가 싫어지고, 직장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책이나 글을 보면 보이지 않기도 하며,「삶」,「운명」같은 문제로 고민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심하면 앞서 살펴본 무당이 되기 전 증상인 무병(巫病)을 체험한다.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윽고 그 저급영은 변장한 모습으로 현몽하여 무당이 될 것을 강요한다. 이 체험을 한 사람들은 무당(강신무)의 신분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초급영계
저급영보다 수련단계가 높지만 중급영보다는 낮다.
중급영계
대개 평범한 삶을 살다 간 사람은, 뒤늦게 영적 존재로 있으면서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언젠가 후손을 통해 죄를 씻을 때까지 열심히 수도한다. 때로 후손을 통해 자신의 업보를 씻으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급영의 접촉으로 나타나는 능력보다 우월하게 나타난다. 안수능력에 의한 환자치료(기에 의한 치유능력)와 관상 등 월등한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깊은 산속에서 수련하여 도통했다고 주장하는 자, 성령이 내린 성직자, 초능력자, 요가, 단전호흡 등으로 초경험적 세계를 체험했따고 하는 자들은 이같은 조상영에 빙의된 사람들이다. 방언 역시 같은 경우다.
고급영계와 대영계
살아 생전에 선행을 많이 실천한 자, 국가와 민족에 헌신하고 부모에 효도한 자들은 이같이 높은 영적 계층에 속하고, 그 곳에서도 영적 완성을 향해 수련을 계속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후손을 괴롭히는 경우는 없다. 한편, 인류구원에 자신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헌신하는 자, 중생을 위해 봉사한 위대한 공덕을 쌓은 자의 영은 더 높은 대영계에 해당된다.
■ 샤머니즘의 뿌리
샤머니즘은 최고신에 제시하던 신교(神敎)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서 시베리아 및 동북 아시아 일대에 퍼져 있는 원시 종교 현상을 일반적으로 사며니즘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 영역이 북유럽과 동유럽, 그리스, 중국과 멀리는 아메리카 인디언까지 펼쳐져 있다고 한다.
많은 현대인들은 무속을 비과학적이며 비합리적인 미신으로 간주하고 배척해야 할 대상 또는 추방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반면 전통적 권위와 재정적 기반 그리고 많은 신도 수를 자랑하는 종교는 신뢰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다.
일반적으로 별다른 저항감이나 경계심을 갖지 않고 대할 수 있는 종교는 합리적인 고등 종교라고 맏고 있다. 그러나 영혼과 신을 전제하여 성립하는 것이 종교라고 가정한다면 합리적인 것으로 주장할 어떤 근거도 없다. 그 자체가 초현실적인 대상을 말하기 때문이며 이는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경계선이 분명히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종교는 지구상에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속의 어느 부분이 비판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절대 설명하지 못한다. 이 점은 무속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초현실적인 현상에 있어서도 이런 성격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인류 역사 이래 초현실적인 대상과 혹은 현상에 대해 체계적이며 타당한 설명을 했던 사상과 종교도 없었다. 이 역시 겸허하게 수긍하지 않으면 안 될 부분이기도 하다.
동일한 신비 현상임에도 종교인들의 능력은 신의 자비로 보는 데 비해 무속에서 나타나는 그것은 악마의 장난으로 보려는 막연한 선입견에 젖어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정신적 사대주의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앞에서 기적이라고 부르는 실체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발생되는 것인가를 거듭 밝혀 놓았거니와, 그것은 더 이상 기적이 될 수 없다.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현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속에서의 무당 역시 성직자들이 갖는 능력을 갖고 있다. 전에 무속과 성직자들이 보여주는 신비로운 능력은 동일한 발생 배경에 있음을 설명하였다. 무속에서 강신무가 갖는 초능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함은 바로 우리가 그들을 정확히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이다. 고대 신탁정치에서 그들의 능력은 윤색되었고, 오늘날은 평가절하되고 있다. 무속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기에 그들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그늘에서 특이한 신분으로 결정되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에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고대 국가의 무당은 신을 모시고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는 절대적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 점은 우리의 역사에서도 동일하였다. 즉, 그들로부터 시작된 역사가 이어져 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역사의 원형은 무엇일까?
단군왕검은 학자들 사이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되고 있다. 즉, 단군은 알타이어로「하늘」을 뜻하는 탱그리(Tengri)의 음을 딴 것이며, 왕검의 '검'은 신령(神靈)을 뜻하는 캄(Kam)의 음을 따서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단군왕검(檀軍王檢)은 단순히 우리 민족의 시조의 이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아들을 의미하며, 제사장(祭司長)과 군왕(君王)의 임무를 동시에 수행했던 존재였다.
오늘날도 호남 지방에서는 세습무를「단골」이나「단굴」로 부르고 있어 그 어원을 짐작하게 하고 있다. 이 단군왕검이 예언적인 기능과 사제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던 이른바 무당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무당의 의미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점차 제정이 분리되었고 삼한 시대에 들어와서는 오직 사제적 기능만 전담했으니 그가 곧 천군(天君)이다. 삼한 시대에 들어와서도 이런 전통은 계속되고 있음을 역사서에서 볼 수 있다.
마한의 천군(天君), 동예의 무천(舞天), 가야의 계락(禊洛:제천의식을 말함),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등이 바로 무당이 하늘에 제사하는 축제였던 것이다. 신교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무당과 신이 하나가 되어 신의 뜻을 계시해 주었으므로 무당은 그 시대에 있어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었다. 그가 신의 뜻을 받아 전달하는 장소 이른바 신전이 성역으로 취급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천제(天帝)에 제사를 올리는 주관자가 무당이 되고, 제사를 올리던 장소 곧 신전에서 국가의 대사가 결정되었다. 이같이 무당은 군왕으로서의 세속적 지위와, 신과 인간의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함께 한 초인적 존재였으므로 만인으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그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했던 것이다.
이렇게 부족 국가 시대에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갖던 무당은 삼국 시대까지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능력 중에 중요시 되었던 것은 예언적인 힘이었다. 무당의 이 같은 예언적인 기능은 제도적인 장치로 구비되어 국사(國事)에 동원되기도 했다.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중기 이후의 신라 시대가 여기에 해당된다. 고구려에서는 무인(巫人) 중에서 왕의 자문에 응하는 무를 사무(師巫)라 했고 국사를 결정하기 전에 이 사무의 자문을 얻어 집행했다. 백제에서도 국가의 각종 대소사에 일자(日者)가 동원되었다. 이 일자(日者)의 자문을 얻어 국가적 행사를 치러 왔던 것인데, 이 일자는 곧 무당으로서 예언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가는 능히 상상이 되는 대목이다. 초기 신라에서는 무당이 군왕이며 군왕이 곧 무당이었다. 다시 말해 무당과 군왕의 역할이 분리되지 않은 시대였다.
신라에서는 무당을 차차웅(次次雄)이라 불렀다. 신라의 2대 왕은「남해 차차웅(南海 次次雄)」이었는데, 이는 군왕과 제사장을 겸했던 신분이였음을 말해 준다. 이와 같이 제정(除政)이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자충(慈充)은 신라어로 무당을 말하는데,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기 때문에 모두 두려워하며 존경받았다,'
이런 관습은 고려에서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삼국 이전보다 성행하는 경향까지 보였다. 도성 안에 국무당(國巫堂)을 설치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정책적 차원에서 지원되었던 것이다.
무당들은 점차 이런 특권을 남용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급기야 이들의 배척을 주장하는 정부 관리들로부터 상소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무당은 배척을 주장하는 움직임으로 한때 위축하기도 했으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무시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무당이 다른 사람들의 옷까지 벗겨간다고 할 정도였따. 그들의 이 같은 교만방자한 몸가짐과 함께 부의 축적, 성적 문란 행위는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하는 등 사회 문제화 되었던 것이다.
이런 사회적 역기능 현상은 조선 시대에서도 나타났다. 백성의 약한 마음을 역이용해 가산을 탕진시키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백성의 원성은 곧 유생들의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무당을 궁중으로 불러 들여 굿을 거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국왕조차 이들의 역할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했떤 것 같다. 국왕이 바라보는 무당의 위치는 삼국 시대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즉, 국가의 각종 제사에 있어 국왕의 필요에 따라 동원되었던 것이다. 성리학적 통치 이념에서 보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만만찮은 유생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불교만큼 백안시되지는 않았다.
조선조 초기 정도전(鄭道傳)은 조상에 대한 의례를 중시하는 한편 불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배척하는데 앞장서 대표적인 배불론자(排佛論者)로 불린다. 그는 그의 저서인《삼봉집(三峯集)》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치성으로 제사하여 영(靈)들의 음덕을 받아야 백성이 평안을 누리고 나라가 보존될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영(靈)이지만 그들이 국가와 개인에 영향을 부단히 주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조상에 대해 후손들이 정성을 올리는 것을 후손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국가와 사회적 안정을 선영들에 대한 후손의 보살핌과 함께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상에 대한 봉사(奉祀)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불교가 배척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울러 배불론이라는 그의 입장이 단순한 불교의 배척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상에 대한 뿌리깊은 애착은 수입된 불교 본래의 모습뿐만 아니라 어떤 종교든지 막론하고 재구성하게 되었다. 무릇 탄생되는 종교와 전래되는 종교의 모습은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나 우리의 경우에서는 본래의 색깔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토착화되는 특이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이 땅에 들어온 종교들은 뿌리를 존중하는 본래의 토양과 타협을 하면서 정착되어 갔다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무당이 역사 속에서 적지 않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어도 역대 어느 국왕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은 것은 그들의 사회적 기능이 존중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조상의 음덕을 장고하는 그들의 기능이 무시될 수 없기 때문이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선조와 후손과의 관계를 유교의 통치 이념과 동일한 맥락에서 보려고 하는 고정된 시각이 그것이다. 그런데 유고에서의 선조와 무속에서의 선조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은 분명히 구분되고 있다. 유교에서의 제례의식은 제도화되고 정형화된 절차라는 성격이 짙은데 비해 무속에서의 그것은 망자에 대한 직접적인 관계에 있음을 무엇보다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앞서 고찰한 점에서도 이 점은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데, 곧 강신무라는 특이성은 망자의 영이 분명히 후손과 함께 있음을 깨닫게 하고 있다. 조상의 음덕만을 단순히 강조하는 유교의 형식성과 근본적으로 대조를 보여 주고 있는 점이다.
유교(儒敎)에서는 제사(祭祀) 의무를 갖고 있는 자를 봉사자(奉祀者)라 하고, 이 제사를 받는 대상인 조상을 향제자(享祭者)라 한다. 그리고 이 두 관계느 부계(父係)를 중심으로 하는 혈통관계에서 정해진다. 그러므로 모든 사자(死者)가 제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예컨데 어려서 죽은 아이나 후손을 남기지 못한 사자(死者)는 제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와같이 의례절차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규범 중의 하나가 조상에 대한 제사다.
그러나 이에 비해, 무속에서는 제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정해져 있지 않다. 제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확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조상은 당연히 포함됨과 동시에 사망한 모든 자가 전부 포함된다. 즉 모든 망자(亡者)는 향제자(享祭者)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무속이 모든 망자의 영을 제사(祭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숙원을 풀지 못하고 죽은 원혼(怨魂)이 그의 가족과 후손에 미칠 수 있는 온갖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억울한 죽음을 한 경우, 간저란 소망을 성취하지 못하고 떠난 망자(亡者), 어려서 죽은 아이, 결혼을 못하고 사망한 처녀의 원혼(怨魂)에 제사하는 것에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제사의 대상이 유교의 그것보다 확대됨은 이 때문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아 무속은 사자(死者)에 대한 단순한 우상 숭배가 될 수 없고 원시 신앙이 될 수도 없다. 자신의 생전에 못다 이룬 한, 원통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고 위로하는 해원(解寃)이라는 실질적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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