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하다 몇 번 뜻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때 같은 상황은 아닐까? 수심70m에서 올라오는 대상어가 옆 선수의 줄을 휘감아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옆 선수의 권사와 내 줄이 같은 지점의 수중에서 비슷한 속도로 올라오는 것이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았다. 옆 선수의 줄 감기를 흘깃 살폈다.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 있지만 올라오는 줄의 방향은 같은 지점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심상찮았다.
방어나 부시리 낚시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서해우럭낚시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동 릴의 수심을 체크했다.
남은 거리는 10여m.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클러치를 빼고 즉시 수동으로 전환했다.
파워핸들로 놈의 저항에 대처하며 서서히 줄을 감아 올렸다.
드디어 남은 거리 3m.
강에 비친 달그림자 같은 흰 원형의 자태가 3m 수심아래서 좌우로 몸을 뒤채고 있었다.
“오메! 조거이 뭐당가?”
흥분한 옆 선수의 탄성이 터졌다.
우리들 옆으로 몰려온 사무장과 선장도 흥분하고 있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와! 진짜 대우럭이다!”
“아니야! 광어 같은데?”
오른 쪽의 선수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홍어네!”
“홍어도 아니고 우럭도 광어도 아니야! 따오기야!”
낚싯대를 접고 구경하던 등 뒤의 선수가 소리쳤다.
허지만 옆 선수와 나는 그런 소리에 정신을 팔 겨를이 없었다.
사무장이 뜰채를 대기했지만 4m 수심까지 올라 온 놈은 더 이상 우리들과 접견하려고 하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배 밑창을 향해 파고들었다.
내 초리가 반원을 그리며 뱃전에 붙어버렸다. 옆선수의 초리대도 선체를 따라 완전히 휘어졌다. 옆 선수와 나는 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위험할 정도로 허리를 굽혔다. 그러나 도저히 배 밑창으로 들어 간 놈을 안전지대로 유도할 수 없었다.
허리를 굽힌 옆 선수가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버티며 비명을 질렀다.
“웜메! 웜메! 워엄메!”
나도 한쪽 발을 뱃전에 올리고 꺾인 무릎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쿡! 쿡! 거리는 놈의 마지막저항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렇게 2분정도 버텼을 때였다.
마치 줄이 터진 것처럼 배 밑창에서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 대가 수면과 평행이 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무장의 탄식이 선두를 울렸다.
“아이고! 터졌네!”
옆 선수도 맥없이 펴진 대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워미! 가뿠소! 잡것!”
그러나 놈은 간 것이 아니었다. 아니 내가 보내주지 않는 한 절대 갈수는 없었다. 다시 약간의 요동이 초리에서 일어나고 남은 줄을 거둬들였다.
허어연 놈의 배가 수면에 뒤집혔다. 커다란 함지박만 해보였다.
광어였다. 서해에서 보기 힘든 초대형광어였다.
옆 선수가 수면에 뒤집어진 광어를 보고 외쳤다.
“워메! 뭔괴기가 조롷다요? 하이고야! 조거이 고래 아니어라?”
옆 선수는 뒤늦게 자신의 남은 줄을 거둬들이며 기사회생한 소리를 질러댔다.
그 사이 대광어는 체념한 듯 얌전하게 사무장의 뜰채에 머리를 박았다.
그러나 광어는 단박에 들어가지 않았다. 빠듯하게 뜰채에 몸통의 절반만 담긴 광어를 잽싸게 선상으로 들어 올렸다.
노련한 솜씨였다.
사무장의 뜰채 속엔 광어만 들어 간 것이 아니었다.
꼬일 대로 꼬인 옆 선수와 나의 채비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옆 선수가 내게 말했다.
“사장님 괴기는 안보이지라? 워쩐다요?”
나는 뜰채안의 광어가 자신의 포획물이라고 확신하는 옆 선수에게 실망을 줄 수 없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옆 선수는 뜰채안의 광어를 조심스럽게 벗겨내는 동안 사무장의 등 뒤에서 쉴 새 없이 중얼거리다 가끔 나를 쳐다보고 알쏭달쏭한 웃음을 지었다.
“워쩌면 좋소? 같이 걸었으면 같이 꺼내는거이 원칙인디. 나가 미안혀서 죽겄소.”
뜰채 안의 고기가 자신의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옆 선수의 위로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난감했다.
옆 선수가 자신의 포획물이라고 확신할수록 도저히 옆 선수를 마주 쳐다 볼 수 없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시선을 깔거나 섬을 바라봤다.
그런 내 모습이 그에겐 초라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안됐소. 같이 쌔빠지게 올렸는디. 상심이 크겄소야. 허나, 워쩌겄소. 다 지팔자소관인거인디. 아적 실망은 금물이요. 오후에 너 큰놈이 올라올거잉께 마음 푸소.”
옆 선수의 위로에 헛웃음이 터졌으나 입 밖으로 내보내지는 않았다. 침 삼키듯 헛웃음을 꿀꺽 삼키자 마른 목에 통증이 가해져 눈물이 찔끔 솟았다.
“하이고야. 고만한 일로 우는겨라? 지난 주일도 공쳤는디 저 놈을 줄수도 없고 워쩔까이? 참말로 진퇴양난이구만이라.”
도저히 더 참을 수 없어 간신히 삼켰던 헛웃음을 토하고 말았다.
“으하핳하! 으흐흐흐!”
옆 선수가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내게 물었다.
“음메! 미친겨?”
“아닙니다. 그냥 웃음이 나와서요.”
잠시 후 크게 낙담할 옆 선수가 걱정스러웠지만, 나는 낚시자선사업가가 아니다. 더구나 일행도 아닌 옆 선수를 진정으로 위로하는 길은 광어의 소유권을 확실히 가려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장이 꺼낸 광어의 입에 블랙도금28호세이코바늘이 정확히 후킹 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옆선수의 확신을 무자비하게 짓이길 수 없어 모든 것은 사무장에게 맡겨 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묵묵히 엉킨 줄을 풀 때까지 사무장을 지켜보기만 했다.
옆 선수는 사무장이 쉽게 엉킨 줄을 풀지 못하자 사무장의 등에서 ㄱ자로 허리를 꺾고 물었다.
“고거이 뉘꺼라? 나으꺼이지라? 음메! 참말로 크요잉!”
가능한 채비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사무장에게 내가 말했다.
“목줄을 먼저 끊어버리세요.”
“괜찮겠어요?”
“그걸 언제 풀어요? 채비야 다시 매면 되지.”
내가 준 토퍼로 사무장은 즉시 꽁꽁 엉킨 목줄을 끊고 입에 바늘이 꽂힌 광어를 바로 옆의 내 수조에 대가리부터 처박아 넣었다.
그 순간 옆 선수의 두 눈이 사무장을 향해 오징어눈알처럼 튀어나왔다.
“흐미! 지곰 머하는 짓이다요?”
첫댓글 참말로 통쾌하네요^^
옆에계신 조사님옆에 또내가있는
착각이드네요*~*
쓰신글 잘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날이 완전 삶아버리네요..ㅎ
이렇게 더운날은 불가마가 좋다던데 체질상 그럴수도 없고 고민이 깊습니다
그래서 이 글 끝나고 또 줄거리 찾으러 다음주 한번 더 바다로 가 볼까합니다.
오늘도 더위와 함께 행복하세요
아이고~~~ 다음회에 뭐 떨어지겠네요 ㅎㅎ 현장감 어휴~~~
글쎄요...ㅋㅋㅋ
잘될겁니다. 빈잔에 뭔가 채워 드리고 싶은데....ㅋㅋㅋ
오메.지금 뭐한다요
싸게싸게다음페이지엉릉 넹기시요
날이 너무 더워서 에어컨 켜고 조금 길게 썼더니 또 비염이 도졌네요...ㅋㅋㅋ
허지만 제 이야기에 동참해주시는 분들 생각해서 힘 내 봅니다.
오늘도 더위 앞에 당당한 하루 되십시오
오늘도 시리즈 6탄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사진보면 8자급인데 소설속에 푹 빠저 꼭 미터급으로 알었어유
내일 7탄 기다리겠습니다.
무더위가 싹 가십니다.
낚시가서 바닷물에 몇번 코 박으면 비염 그냥 아웃입니다. 즐 밤 되세요
그림을 빌려와서 그렇습니다....ㅎ
오늘밤도 더위가 버릇없이 행패를 부립니다.
이판사판 에어컨 켜고 7회 쓰다보니 비염도 잊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만 바다 나가려면 입장권 끊어야 되는데...그것이 문제네요...ㅋ
고운 밤되십시오
제 예감이 맞았네요 대광어입니다. ㅎㅎ
배경음악 엘도라도 흥겹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고운 밤되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