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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TV 광고 감독으로 사회경력을 시작한 영화감독 겸 작가 애드리안 라인(Adrian Lyne)은 1983년 두 번째 장편영화 <플래시 댄스>(Flashdance) 이후, 에로티시즘에 대해 깊고 가치 있는 성적실험을 통해 가장 노골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로맨틱 드라마를 완성했다. 영화 <나인 하프 위크>(1986)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에 비견할 만큼, 관능적이지만 사려 깊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와 상황 전개 보여준다. 그리고 두 주연 배우인 루크와 베이싱어가 서로 어떻게 매력적으로 접근하고 관계를 맺는지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에로틱한 긴장감을 계속해서 유발하게 한다.
두 남녀 배우의 ‘케미’(Chemistry)가 감독의 연출력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1941>로 데뷔 후, 배리 레빈슨(Barry Levinson) 감독의 1982년 작 <청춘의 양지>(Diner)로 돌파구를 마련한 미키 루크(Mickey Rourke)에게, < 9 1/2주 >는 대중적 인기도를 한층 더 끌어 올려준 작품이다. 월스트리트의 주식중개인이면서 독특한 성적 쾌락을 즐기는 미남 여피(yuppie) 존 그레이 역으로 출연한 그는 1980년대 섹시 심볼로 불린 여우 킴 베이싱어(Kim Basinger)와 협연했다.
이전 숀 코너리(Sean Connery)가 본드 역으로 마지막 출연한 007시리즈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1983)에 본드 걸로 출연 후, 이듬해 <내츄럴>(The Natural)로 골든 글로브(Golden Globe) 여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된 베이싱어는 존의 독창적인 구애에 순응하는 매력적 이혼녀 엘리자베스 맥닐을 연기, 성적 해방과 성적 책임 사이에서 매우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뉴욕의 증권거래소와 소호 갤러리에서 일하는 두 남녀는 처음 호기심 어린 접근과 만남, 그리고 순수한 쾌락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점점 더 색다른 관계를 요구하는 존의 비이성적 애정행각은 나날이 그 수위를 더하고, 점점 더 존의 '가학'과 엘리자베스의 '피학'의 관계로 빠져드는 둘의 에로티시즘은 마치 게임과도 같이 9주 반 동안 숨 막히게 펼쳐진다. 자칫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영화는 끝내 여주인공이 독립과 자존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매혹적인 결과물을 만든다.
이목을 사로잡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영화의 완성도에는 또한 촬영감독 피터 비지우 (Peter Biziou)의 기여가 컸다. 1982년 알란 파커(Alan Parker) 감독의 <핑크 플로이드 – 더 월>(Pink Floyd – The Wall) 이후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영화에서 그는 1980년대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광택으로 영화를 물들였다. 감미롭게 구성된 영화의 모든 장면은 잭 니체(Jack Nitzsche)의 스코어와 함께 매우 인상적이다. 니체의 음악은 극의 초반 부둣가 선상 존의 친구 집으로 엘리자베스가 이끌려 가는 장면에 깔린 낭만적인 피아노 ‘러브 테마’를 핵심으로 둘의 사랑을 사색적으로 변주하지만, 때론 실험적이고 괴이한 전자 배음으로 긴장감을 고조하고, 재즈와 팝 그리고 앰비언트적 요소를 포괄한 신시사이저 반주로 사운드트랙에 실린 동시대 팝 음악과 연계되어 음악적 동질감을 유지한다.
니체의 배경 반주음악과 함께 사운드트랙에는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코리 하트(Corey Hart)와 루바(Luba) 그리고 달벨로(Dalbello), 영국 글램록 밴드 록시 뮤직(Roxy Music)의 리더로 유명한 브라이언 페리(Bryan Ferry), 영국 소울 가수 조 카커(Joe Cocker), 영국 뉴 웨이브 밴드 유리드믹스(Eurythmics), 영국 뉴 웨이브 밴드 폴리스(The Police)의 원년 드럼 연주자 스튜어트 코플랜드(Stewart Coppland), 미국 록밴드 디보(Devo)와 같이 1981년 MTV 개국과 함께 뮤직비디오 시대를 관통한 아티스트들이 일맥상통 명함을 내밀었다.
영국 뉴 로맨틱 밴드 듀란 듀란(Duran Duran)의 베이스 연주자 존 테일러(John Taylor)가 주제가(Theme song)의 공동작곡가로 동참한 것을 위시해 라인 감독은 특히, 영국의 비주류 저항운동이자 다양한 대안문화를 제시한 지하 하위문화(Underground Sub Culture)로 태동한 뉴 로맨틱(New Romantic) 밴드 또는 아티스트의 음악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내세워 성적 반란 내지는 도발과도 같은 영화의 이야기를 더욱 보강하려 했고, 이는 매우 주효했다. 덧붙여 브라이언 이노와 로저 이노, 장 미셸 자르와 같이 앰비언트 전자음악 선구자들의 기성 대표곡을 발췌해 쓴 것 또한 상호 대중음악의 시대적 연관성을 반영한 독자적 선곡이었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사용된 곡명]
1. ‘The Best Is Yet To Come’ - Luba
오프닝 편집 영상. 알 그린의 표제곡 ‘Love and happiness’에 이어지는 노래. 킴 베이싱어의 엘리자베스 아침 출근길, 도심을 활기차고 경쾌하게 관통하는 리듬과, ‘더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기대하세요.’라는 의미의 제목이 곧이어 전개될 이야기를 예고.
2. ‘This City Never Sleeps’ - Eurythmics
엘리자베스가 프로젝터를 켜놓고 존을 생각하면서 자기 몸을 만지는 연속장면.
전자음의 오싹한 스릴과 에니 레녹스의 따뜻한 음색이 절묘하게 대비된 '이 도시는 결코 잠들지 않아'가 흐르는 동안 스크린을 뜨겁게 달구는 킴 베이싱어의 선정적 행위 장면은 영화의 농후한 에로티시즘이 짙게 드러나는 시퀀스라 할 수 있다.
3. ‘Eurasian Eyes’ - Corey Hart
함께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부티크에서 드레스를 사는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는 존.
코리 하트의 두 번째 앨범 <Boy in the Box>에 수록곡.
4. ‘Slave to Love’ - Bryan Ferry
데이트하고 성적 교감을 나누는 둘의 연속장면에 이어 존이 엘리자베스의 머리를 빗겨줄 때 우아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의 곡조와 보컬로 장면을 보강한다. 시계탑에서 사랑을 나누고, 즐거운 한때를 보낸 후, 엘리자베스는 존에게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빠질 줄 알았어요?”라고 묻는다. 계속해서 연계되는 존과 엘리자베스의 러브 몽타주를 음악으로 해설하듯 반주한다.
영국의 뉴 로맨틱 운동에 영향을 준 글램록의 대표 밴드 록시 뮤직의 리더 브라이언 페리의 음악 특성, 멜로드라마조이고, 때론 고통스러울 정도로 화려하지만, 파괴적으로 낭만적이고 관능미 넘치는 음악적 관점이 녹아있다.
1985년 페리의 앨범 <Boys and Girls>에서 첫 싱글 컷. 영국 차트 10위까지 등극.
5. ‘Cannes’ - Stewart Copeland
엘리자베스가 존을 뒤쫓아 직장까지 미행하는 연속장면. 스토킹 연주곡.
스팅(Sting)과 함께 뉴 웨이브 밴드 폴리스를 결성한 드러머 스튜어트 코플랜드의 연주곡. 같은 영국 출신 송라이터 마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의 음악처럼 포크, 일렉트로닉, 앰비언트, 뉴에이지, 프로그레시브 록 등의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내포한 곡.
6. ‘I Do What I Do’ (Theme from 9 1/2 Weeks) - Jonathan Elias featuring Lisa Dalbello, Michael Des Barres, B.J. Nelson and Michael Brecker
남장을 한 엘리자베스와 존의 저녁 데이트. 유혹거리를 찾던 중 엘리자베스가 지나가던 차량을 자극해 세우고, 쫓고 쫓기는 장면 연출, 비가 퍼붓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치받는 난투극이 벌어진다. 붉은 등과 검푸른 화면을 뚫을 듯 긴박감 넘치는 리듬과 노래가 상황 종료 시까지 이어진다.
영국의 뉴 로맨틱 대표 밴드 듀란 듀란의 베이스 연주자 존 테일러와 1985년 존 베리(John Barry)의 <뷰 투 어 킬>(A View to a Kill) 작업 중 만난 것을 인연으로 함께 한 조나단 엘리아스(Jonatha Elias), 영국 배우 겸 가수 마이클 데스 바레스(Michael Des Barres)가 공동으로 작곡했다. 극 중에서는 리사 달벨로와 마이클 데스 바레스, BJ. 넬슨의 노래 그리고 재즈 색소폰연주자 마이클 브레커(Michael Brecker), 조나단 엘리아스의 협연으로 녹음된 트랙이 쓰였다.
7. ‘You Can Leave Your Hat On’ - Joe Cocker
엘리자베스 존을 위해 스트립쇼 연출 장면.
재즈적인 브라스와 강렬한 기타사운드, 균일하게 반복하는 피아노와 전자 리듬반주가 경쾌한 'You can leave your hat on'(랜디 뉴먼 작곡, 조 카커 노래)에 맞춰 관능적인 춤으로 존을 서서히 자극하는 장면은 음악과 영상의 탁이한 내러티브적 조화가 기억의 잔상에 깊이 뿌리박힐 인상을 남겼다.
1972년 랜디 뉴먼(Randy Newman)이 쓴 곡을 조 카커가 1986년 앨범 <Cocker>에 다시 불러 수록했고,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이어서 사용되었다.
8. ‘Let It Go’ - Luba
종영인물자막과 함께 나오는 두 번째 곡. 여가수 루바의 레게 리듬 댄스 팝.
9. ‘Love and Happiness’ - Al Green
영화의 막을 여는 표제곡. 영화제목이 나오기까지 아주 짧게 편집돼 나옴.
소울 가수 겸 작곡가 알 그린의 1972년 앨범 <I’m still in love with you>에 수록곡 발췌.
10. ‘The Strayaway Child(길 잃은 아이)’ - Andy Narell
미국 재즈 스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제작자인 앤디 나렐의 연주곡.
11. ‘Saviour’ - Winston Grennan and Black Sage
존 엘리자베스를 따라가고, 300달러짜리 스카프를 사고 싶지만, 여유가 없는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는 장면. 장터 라이브 밴드를 통해 직접 연주되어 나옴. 자마이카 드러머 윈스턴 그레넌의 레게 송.
12. ‘Strange Fruit’ - Billie Holiday
부두의 집에서 존이 엘리자베스에게 틀어주는 비닐 레코드. 둘의 대화를 여는 노래.
위대한 재즈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시그니처 송. 반인종차별을 울부짖는 홀리데이의 가창이 압권.
13. ‘Ambient 1: Music for Airports’ - Brian Eno
1978년 브라이언 이노의 6번째 스튜디오 앨범 <엠비언트 1: 공항을 위한 음악>에서 발췌 영화에 사용. 미니멀리스트이자 앰비언트라는 용어의 창시자인 그는 작곡가, 제작자, 시각예술가, 전자음악을 이용한 사운드디자이너 등 다방면이 능통한 혁신적 예술가. 영국 출신 대중음악가로서 그는 1971년 글램 록 그룹 록시 뮤직에서 신시사이저 연주자로 합류하여 1973년 탈퇴까지 리더 브라이언 페리와 함께 2장의 앨범 녹음했다. 고요함과 생각할 공간을 유도하기 위한 앰비언트 음악의 개념적 접근법을 영화의 연속장면에 배경음악으로 적용. 극의 전반부 엘리자베스가 찾아간 존의 사적 공간에서 존이 CD로 플레이한 음악. 곧이어 니체의 낭만적이면서 몽환적인 전자음악과 접목된다.
14. ‘Bread and Butter’ - The Newbeats(Devo)
냉장고에서 다양한 음식을 꺼내 서로 먹여주는 존과 엘리자베스.
식욕과 성욕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이 장면은 심장이 터질 정도로 노골적이면서도 음란하다기보다는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느껴진다. 빠른 편집과 함께 경쾌한 음악을 정교하게 조화시키는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재기가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미국 보컬 그룹 뉴비츠(The Newbeats)가 1964년 처음 발표해 빌보드 핫 100순위 2위까지 오른 히트 송을 디보가 리메이크. 영화에는 뉴비츠의 원곡이 사용되었다.
15. ‘Arpegiator’ - Jean-Michel Jarre
빗속 건달들과 한판 난투극을 승리로 끝낸 존과 엘리자베스가 지하 계단에서 열렬한 성애를 나누는 연속장면에 사용.
영국 출신 브라이언 이노와 같은 1948년생 프랑스 대중음악 작곡가, 제작자, 연주자로 미니멀리즘을 추구했으며 전자음악, 앰비언트, 뉴 에이지 장르의 선구자. 1982년 발매 영국 차트 6위까지 오른 앨범 <Les Concerts en Chine>에 수록된 연주곡을 사용.
16. ‘Voices’ - Roger Eno
영국 앰비언트 음악 작곡가 로저 이노의 1985년 발매 앨범에서 발췌. 브라이언 이노의 동생.
17. ‘A Paler Sky’(uncredited) - Roger Eno
화가 판스워드의 집에 찾아간 엘리자베스, 숲속에 홀로 앉아 있는 판스워드와 전시회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을 연속해서 반주. 반복적인 화음의 신시사이저 반주가 비밀스러우면서도 몽환적인 터치로 아름다운 화면을 채색한다.
로저 이노의 1985년 앨범 <Voices> 수록 중 발췌해 영화의 장면에 사용.
18. 'Nine Half Weeks Suite' - Jack Nitzsc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