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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벧전4:9-11
제목: 마지막 때 성도의 삶(3)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는 지난 2주 동안 마지막 때의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묵상했습니다.
주님의 제자 베드로는 벧전 4:7-8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한 번 벧전4:7-8을 읽어봅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말세에 기도하며,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권면합니다. 어떻게 기도하라고 했습니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했지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정신을 차리라는 말은 '경건한 마음, 자신을 통제하는 마음, 여기 저기 정신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정신없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는 말이며 의미 없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한 근신하라는 말은 '자기를 살핀다, 자기를 이긴다.'는 뜻이 있습니다. 사실 누구든지 자기를 살피면 자신의 부족한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의 부족을 발견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근신하며 자기를 살피는 사람은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했습니다.
또한 사랑은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되며 어떻게 사랑해야 됩니까?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했습니다. 가장 뜨거운 사랑은 주님께서 우리는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우리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이것보다 더 뜨거운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이러한 사랑을 받는 우리에게 베드로사도는 그 사랑의 표현을 다른 사람들의 죄와 허물과 단점을 덮어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서 우리주님께서 하신 것과 같이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사회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공동체의 삶은 반드시 조직이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조직 속에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원망없이 서로 대접해야 합니다.
본문을 벧전4:9을 봅시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9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한 후 무엇보다도 먼저 뜨겁게 사랑한 후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대접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의 심리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여기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 이렇게 내가 먼저 남을 대접하면 또한 상대방도 나를 대접을 하게 됨으로 대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베드로사도는 이러한 대접을 서로 원망 없이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대접을 하면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원망하면서 대접하는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대접이 아니라는 말씀이 됩니다. 원망 없이 서로 기쁘게 대접하는 것이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삶입니다. 성경에서 기쁜 마음으로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 입니까? 족장 중이 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아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이 사람의 이름을 많이 들으면서 신앙생활 합니다. 믿음의 조상입니다.
이쯤 되면 그 이름이 바로 나와야 하지요? 예 아브라함이지요.
창18:1-10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 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어떻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한 낮에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자기에게 닥아 오는 나그네 세 사람을 보게 됩니다. 나그네를 본 아브라함은 자청하여 그들을 최선을 다해서 대접을 합니다. 그 결과 어떤 축복을 받습니까? 자신에게는 이것 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 가장 귀한 축복을 받습니다. 어떤 축복 입니까?”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에게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축복, 자녀의 축복, 그 것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약속의 자녀 축복입니다. 그가 대접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이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대접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작 아브라함은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자신은 거저 지나가는 나그네 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사실을 두고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13:2)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다는 말씀은 자기가 대접한 사람이 자신도 알지 못한 천사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세를 당한 이때 우리는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하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2.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10절)
본문 벧전4:10을 봅시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사랑의 원리가 그러하듯, 봉사의 경우도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대접만 받기만 원한다든지, 섬김을 받기만 원하는 것은 봉사의 질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요13:14절에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봉사하고, 서로 돕고, 서로 섬기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바른 자세입니다.
“서로 봉사하라” 봉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솝우화'에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사자 한 마리가 잘 못하여 그만 그물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맹수의 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자이지만 그물에 걸리면 영락없이 죽은 목숨입니다. 그리하여 사자는 "제발 누가 나를 좀 살려 주시오!" 소리치며 몸부림치면서 사자는 처절하게 울부짖었습니다. 그 때 미침 그리로 지나가던 생쥐 한 마리가 이 소리를 듣고 달려가 봤더니 사자 한 마리가 그물에 걸려 처절하게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그 처지가 가련하기 이룰 때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처지를 불쌍하게 여긴 생쥐는 자기의 날카로운 이빨로 그물을 찢어 사자를 살려내었습니다. 이는 무엇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아무리 강한 자라 할지라도 약한 자를 업신여길 것이 아니며, 또 약한 자도 얼마든지 강한 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우화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러니칼'한 교훈을 안겨주는 것은 그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짐러'라는 작가는 '현대의 이솝'이라는 책에서 그 뒷이야기를 이렇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사자를 살려낸 생쥐가 어느 날 사자들의 사은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성대한 잔치가 베풀어지고 생쥐는 술에 잔뜩 취했습니다. 그러자 생쥐는 차츰 간이 부풀어 기고만장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아주 조그마한 생쥐라는 사실을 까먹게 잊어버리고, 내가 "그물 안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자를 내가 구해 주었지! 내가 사자 보다 더 강하지 않는가?" 하며 거드름을 피었습니다. 사자 쪽에서 듣고 있기가 민망했지만 좋으나 굳으나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에 어찌 할 바가 없어서 그냥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러자 점점 더 방자하게 굴면서 돌아다니다가 생쥐는 마침내 사자에게 밟혀 개미의 밥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깁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고 교만하다가 죽어버린 생쥐를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봉사를 해도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봉사의 자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벧전4:10-11절을 봅시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봉사의 네 가지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1)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해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롬12:6상)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고전12:4-5)
주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봉사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봉사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롬12:6-8,고전12:4-11).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위로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위로하는 일을 해야 하고, 노래 잘 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찬양대로 봉사하거나 찬양사역자로 봉사해야 하고,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무 은사도 없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다 주셨습니다. 은사는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가지 이상의 재능 곧 은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비유를 합니다. 굼벵이도 구루는 재주는 있다고 합니다.
동물 농장에서 동물들이 각각 자기 자랑을 합니다. 말이 강아지를 보고, "난 주인의 짐을 날라다 준단다. 그래서 주인이 나를 최고로 안단다. 그런데 너 꼬마 강아지는 주인을 위해 짐을 날라다 준 일이 있니?" 하고 놀려댔습니다. 이번에는 소가 자기 자랑을 합니다. "나는 주인마님에게 젖을 주고 치즈와 버터를 제공하고 있지? 그래서 주인이 나를 최고로 아는 거야! 강아지 너는 주인에게 무엇을 주니?"
양은 주인에게 따듯한 털옷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기가 최고라고 우기고, 닭은 주인에게 맛있는 계란을 주기 때문에 자기가 최고라고 우깁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주인에게 쥐를 없애 준다고 자기가 최고라고 자랑하면서 강아지를 몰아 세웠습니다.
강아지는 아주 기분이 나빴습니다. 자기는 주인을 위해 아무 것도 해 줄 일이 없는 것 같아 우울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주인이 밭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돌아 올 때, 강아지는 예전과 같이 꼬리를 흔들면서 깡충깡충 뛰면서 주인을 반겼습니다. 주인은 그런 강아지와 한참 놀다가 강아지를 가슴에 안으면서 하는 말이 "난 아무리 피곤해도 너의 재롱을 보면 확 풀린단다. 너는 최고야!"
여러분! 강아지도 주인을 기쁘게 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각 재능을 주시고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은사를 주심은
⑴성도를 온전케 하며, ⑵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⑶봉사의 일을 하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직분을 주신 이유, 은사를 주신 목적은, 바로 봉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자는 누구든지 그 은사대로 봉사를 해야 합니다. 은사를 받고도 봉사하지 않으면 그것은 직무유기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받은 은사를 잘 개발해서 주를 섬기고 형제를 섬기고 이웃과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기면 훗날 주님 앞에 설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 할 지어다‘” 라는 칭찬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됩니다.
2)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해야 합니다.
본문에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했습니다.
선한 청지기가 누구인가? 주인의 일에 선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충성하는 자 입니다.
충성이란, ⑴내가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않고 내가 책임지고 하는 것입니다.
⑵내가 할 일을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오늘 하는 것입니다.
⑶억지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을 아십니까? 그는 눈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1794년 '코르시카' 섬 점령에 공을 세우고 오른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는 손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1797년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 수훈을 세웠으나 오른쪽 팔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폴레응의 프랑스 함대를 나일강 입구 해전에서 격파하였고,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 스페인 연합 함대를 격변시키고 영국을 위기에서 구출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영국의 '넬슨 제독'입니다. 그는 트라팔가 해전이 끝날 때 적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두기 전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했습니다"라는 최후의 말을 남기고 운명했습니다.
넬슨 제독은 참으로 맡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군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충성심을 가져야 합니다.
청지기란 '관리자'란 의미입니다. 즉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잠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실 내 몸도 내 것이 아닙니다. 고전6: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교만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니까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봉사하고도 내 것을 가지고 봉사 한 것처럼 의시 대는 것입니다.
충성된 청지기는, ⑴주인을 압니다.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진정한 주인입니다.
⑵충성된 청지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압니다. 그래서 감사하면서 충성합니다.
⑶충성된 청지기는 작은 것에도 소중히 여깁니다. 여러분! 큰 것에 실패하고 큰 것을 잃었습니까? 작은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큰 것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적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일에도 충성한다고 했습니다.
⑷충성된 청지기는 시작이 민첩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본토 아비 집을 떠날 때도, 독자 이삭을 바칠 때도 그 행동이 민첩했습니다.
⑸충성된 청지기는 끝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넬슨 제독을 보십시오!
계2: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고전4:1-2절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봉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해야 합니다.(11절)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내 의지나 내 능력이나 내 주관으로 봉사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변함없이 꾸준히 봉사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일하면 조금만 해도 피곤해 집니다. 짜증납니다. 일하다 짜증나면 내 힘으로 한 줄 아십시오! 주님께 받아서 하면 짜증내지 않고 잘 할 수 있습니다.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가 힘써 봉사하면, 1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교회가 빛나고 발전하게 되며, 개인적으로도 큰 축복의 열매가 맺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더 할 수 있는 재력과 능력과 건강을 주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상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에덴의 성도 여러분! 우리느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합시다, 또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하며, 다른 사람들의 모든 허물과 죄와 단점을 덮어 주고 오히려 주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하여 줍시다. 또한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하여 생각지도 않았던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최대한 활용하여 주님의 선한 일에 선한 청지기 같이 충성하며, 서로 봉사합시다. 봉사를 하되 내 지신 힘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시는 힘으로 봉사합시다. 또한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여 나의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합시다.
리하여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잘했다 칭찬 받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