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갈 5:16-26
설교제목: 성령의 열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종종 ‘나무’로 비유하셨습니다.
주인은 나무에서 열매를 기다리는데 열매가 맺지 않자
나무를 찍어버리려고 합니다.
그 때 관리인은 조금 더 기다리자고 청합니다.
그러나 끝내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나무는 찍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람한 나무 가지를 뻗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매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잘 심겨진 나무는 30배, 60배, 100배의 과실을 맺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헌금을 심으면 100배의 복을 얻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는 나무를 만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열매는 내 소원의 성취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맺는 열매가
다 좋은 열매만은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썩고 벌레 든 과일처럼 먹을 수 없는 상한 열매도 있습니다.
19-21절을 보면
영적인 음행으로
1)교회 밖에는 우상숭배와 주술 등이 있고,
2)교회 안에는 당 짓는 것과 분열과 이단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우리를 하나님이 아닌 죄의 길로 이끄는 것들입니다
육적인 음행으로
성적인 죄, 더러운 것, 호색, 분쟁(증으를 의미),
시기, 투기, 술취함, 방탕함 등 겉으로 드러난 죄와
마음으로 저지르는 죄 등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천국을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열매를 맺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는 이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 열매는 나무인 그리스도인에게서 열립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열매’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호칭을 쓰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통해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성령 없이는 맺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밝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접붙여 있을 때 비로소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힘으로 예수께 붙어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있도록
먼저 우리 안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예수 안에서 육신의 정욕을 죽게 하십니다.
이와 같은 변화를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늘 읽은 성령의 열매를 보면 내가 살아있을 때,
내가 드러나고 높아질 때 맺을 수 있는 열매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1)사랑: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는 사랑은 ‘나의 이익은 버리고,
마치 내가 종이 되어 상대를 높이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 내가 참아야 합니다.
그런데 상대가 죄인처럼 여겨질 땐 이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죄인이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2)희락과 화평: 내 열망을 가지고서는
기쁨과 평강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고난 중에도 즐거워했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찬양을 드렸습니다.
내 열망과 기대가 살아있으면 현실을 보고 절망하게 됩니다.
기쁨을 빼앗고 원망과 불평이 생겨납니다.
내 열망이 죽을 때 비로소
‘왜 이런 상황을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셨을까?’
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진정한 희락과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3)자비, 양선, 충성, 온유: 이것들도 내가 주인될 때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 되실 때 주님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선을 행하며,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된 삶을 살아갑니다.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내 뜻대로 행하지 말게 하시고, 주님 뜻대로 행하옵소서.
교회 안에 목사부터 모든 성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주님의 종이 된다면 서로 섬기고, 사랑하고,
충성된 아름다운 모습만 남게 될 것입니다.
4)오래참음과 절제: 오래참음은 인내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일 앞에서 우리는 내가 해결하려고 나서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을 보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도
하나님께서 해결자 되시도록 물러섭니다.
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어”라며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벌일 수 있었는데도
7년 반이나 기다립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더욱 강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다윗이 왕이 되기를 오히려 바라는 상황이 됩니다.
오래참음은 인간적인 성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을 꺾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절제는 자신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나를 드러낼 수 있음에도 자신을 감추고,
내가 할 수 있음에도 멈추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아닌 주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있다면 나를 자랑하고 뽐내고 높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고 주님이 계시면 주님을 높이고,
나 자신을 멈춥니다.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고,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살아계신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 참된 열매를 맺은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맺을 성령의 열매는 결국 우리 힘으로
맺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닙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성령께서 일하실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할 것은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죄를 씻어주옵소서”
“나는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나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소서”라는
고백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게 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몸을 죽음에 던져서
많은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 접붙어야 합니다.
말씀을 늘 묵상하며 말씀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게 하고,
항상 기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우리는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