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생각을 만들어 준다 / 이훈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경험했겠지만, 어떤 생각을 갖고 글을 쓰더라도 글을 쓰면서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글쓰기를 함으로써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뭘 알아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뭘 알게 된다. 이건 내가 매일 겪는 경험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글을 쓰기 전 이미 어떤 구상을 해놓고 써내려간다. 머릿속에선 전혀 문제가 없는 멋진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중간에 막힌다. 내 주장의 근거가 부실하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더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면 다시 고쳐 써야 한다. 나는 뭘 알아서 쓴다고 생각했지만, 정반대로 쓰면서 알던 것과는 다른 걸 알게 된 셈이다.
강준만, <<글쓰기가 뭐라고>>, 인물과사상사, 2018, 37쪽.
글은 쓰면 써진다고 믿고 써야 한다.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술술 써지는 기적이 일어나겠는가. 기발한 생각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개요도 써야 정리되고 짜인다. 시작할 때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써가며 알게 된다. 알아서 쓰는 게 아니다. 모르니까 쓰는 것이다.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메디치미디어, 2018.
어쩌면 글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쓰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마치 실타래에서 실이 풀려 나오듯 내 안에서 글이 풀려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글에서 글이 나오는 것뿐이랄까요. 그러니 ‘나만의 것’ 또한 표현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거죠.
김정선, <<열 문장 쓰는 법>>, 유유, 2020.
글을 몇 편 써 보면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다.
생각이 있어야 글을 쓰겠지만 그걸 그대로 담는 일은 단언컨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쓰는 과정에서 살펴야 할 일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걸 나름대로 풀어 나가는 것이 글쓰기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의견도 알아보고 내 주장에 문제가 없는지도 따져서 고치거나 바꿔야 한다. 이러다 보면 글을 쓰지 않았다면 생각하지 못할 내용에 이르게도 된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발견이고 창조다. 기존의 생각을 그대로 저장하는 일로 그친다면 글쓰기는 따분한 노동일 수밖에 없다.
알아서가 아니라 모르니까 알려고 쓰는 것이다. 쓰면서 내가 알던 것과 다르거나 심지어 반대의 것을 만난다. 글이 글을 부른다. 글쓰기의 선물이다.
이런 얘기를 글쓰기 수업하면서 첫째 시간마다 강조하는데 여기에 옮긴다.
막연한 상태에서 글쓰기는 시작된다. 미리 머릿속으로 생각하거나 정성스럽게 자료를 준비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의도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세상일과 크게 다르지 않게 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쓰기 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반드시 생기기 때문이다. 이걸 풀어 나가는 것이 글쓰기의 실제다. 그래서 답을 찾고자 고민하면서 책도 열심히 찾아 읽고 옆 사람과도 얘기를 나누게 된다.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이 글쓰기가 어렵다면서 늘어놓는 하소연도 이런 사정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준비 과정이 힘들어서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글쓰기가 온통 고통뿐이기만 할까? 아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모른 채 그냥 지나쳤을 것을 발견하고 깨닫는 기쁨도 누리게 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사실에 부합한다. 물론 내 무식이나 편견, 무관심을 확인하는 괴로움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고통은 나를 더 넓고 깊게 만드는 과정에서 만나는 것이므로 즐거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고통이 있으니까 오히려 즐거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얘기해도 좋다. 한마디로 즐거운 고통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하면 고통의 잔치(축제)가 될 것이다. 이런 기쁨도 없이 기존의 생각을 녹음기처럼 그냥 저장만 하는 것이라면 왜 따분하게 글을 쓰겠는가!
이훈, <글을 잘 쓰려면>, https://cafe.daum.net/ihun/kfdL/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