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이 법정에 끌려왔는데, 그는 죄의식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저자인 한나 아렌트마저도 ‘이 사람은 무죄다.’ 라고 이야기를 하죠.
무죄의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이
생각의 무능성, 판단의 무능성, 말하기의 무능성, 이 세 가지 무능성입니다.
예를 들면 그것이 어떤 뜻인지도 모르고, ‘조국을 위하여’라는 말에 세뇌되어 맹종해왔던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버튼을 하나 누르죠.
그 버튼의 결과로 미사일이 날아가서 민가에서 수 백명의 어린아이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타깃에 미사일이 떨어진 것을 보고 ‘브라보’라고 했을 거예요.
이게 바로 판단의 무능성이죠. 생각의 무능성이기도 하고요.
그 때 ‘브라보’라고 하는 것은 말하기의 무능성이지요. 적절치 못한 거죠.
우리는 그런 무능함 속에 있거든요. 이런 무능함은 곧 악이에요.
우리는 희대의 살인마, 절대악만 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더 악한 것은 무능함 자체입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는 모습 바로 그 자체가 악이다,
이게 악의 진부함이다.’ 라고 아렌트는 이야기를 하고 있죠.
지금 우리가 또 한 번 읽어보고 만인 토론이라도 해봐야 될 그런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의사 박경철의 서재 中]
10월 14일 구글 메인 페이지에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성의 그림을 내걸었습니다.
구글은 현대 대표적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를 기리며
이 그림으로 메인을 업데이트 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한나 아렌트라는 여성은 어떤 사람일까요?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 정치철학의 대표자로 떠오른 정치사상가입니다.
그녀의 대표적인 논문은 ‘악의 평범성(Banalities of Evil)’의 개념을 설명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있습니다.
‘악의 평범성(Banalities of Evil)’이란, 1960년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한 배경의 악명 높은 장교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에 참여하여 도출한 개념인데,
아이히만이 무기력하게 재판에 참여한 것을 보고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함이
유대인을 학살할 수 있게 한 악의 원천이다’라고 결론지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보고서는 ‘실제로 저지른 악행에 비해 평범하다’고 아이히만을 평가했는데요.
재판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상실감에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되풀이해서 대답했다고 합니다.
수 백만명을 죽인 정말 끔찍한 일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자신의 일과 연결해 생각하지 않고
정말 좋은 미소를 띄며 대답한 모습을 보고,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일은 (…) 정치적 자유가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저명한 학자들이 보통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참으로 불행히도
생각하도록 하는 힘은 인간의 다른 능력에 비해 가장 약하다.
폭정 아래에서는,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이 훨씬 쉽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난 뒤 유대인 학살 소식이 전세계에 알려졌을 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나 아렌트도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믿지 못했지만
결국 그 소식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렌트는 예정되었던 대학의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의 교양잡지 『뉴요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이로써 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탄생한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 보고를 하면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언급을 하였는데, 이는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사실적인 어떤 것,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 악행은 악행자의 어떤 특정한 약점이나 병리학적 측면,
또는 이데올로기적 확신으로 그 근원을 따질 수 없는 것으로,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징은 아마도 특별한 정도의 천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또 그에 앞서 있었던 경찰심문에서 보인 그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에서 사람들이 탐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특징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흥미로운,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그는 한때 자기가 의무로 여겼던 것이 이제는 범죄로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그는 이러한 새로운 판단의 규칙을 마치 단지 또 다른 하나의 언어규칙에 불과한 것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스탠리 밀그램이 수행한 한 실험은 '권위에 복종(obedience to authority)'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수준까지 기꺼이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대학교 감옥 실험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실험에서 학생들은 교도관 혹은 죄수의 역할을 임의로 배당받았다.
그러자 교도관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곧 잔인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 사이먼 배러코언, 『공감 제로』
잠자코 복종하는 것은 때로는 편안한 길이기는 하지만
결코 도덕적인 길은 아니다. 그것은 비겁자의 길이다
-마턴루터킹-
'중립'은 항상 압제자를 도와주지 박해자를 돕지 않는다.
침묵은 고통주는 사람을 장려하지, 고통 받는 사람을 보호하진 못한다
비폭력은 악을 행하는 인간의 의지에 얌전하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폭력자의 의지에 대해 온 영혼을 던지는 것이다.
영국작가 - 올리버 골드스미스
불의에 대한 방관에 '침묵은 동의를 뜻한다.'
침묵하는 사람은 모두 공범이다.
- 골드스미스의 법칙
사회적 전환기에서 최대의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에 선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단테 신곡 중에서
“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
"선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피운다."
에드먼드 버크 [Edmund Burke, 1729.1.12~1797.7.9]
"중립을 지켜야 할때는 상식과 상식이 대립하는 상황이고 자신이 공적인 자리에 있을 때이다.
하지만 상식이 비상식과 대립하는 상황에서라면 지켜야 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양심일 것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는 냉철한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현재의 부조리에 대한 비겁한 묵인이자 소극적인 동조이다."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 않아 그대는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발레리 [1871.10.30 ~ 1945.7.20]
“생각하는 일은 (…) 정치적 자유가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저명한 학자들이 보통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참으로 불행히도
생각하도록 하는 힘은 인간의 다른 능력에 비해 가장 약하다.
폭정 아래에서는,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이 훨씬 쉽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