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0
3항사 롤리가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 번개 치는 소리가 난다. 놀라 몸을 벌떡 일으키니 이넘의 자명종이 일어나라고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다. 버튼을 누르고 시계를 보니 아침 7시를 가르키고 있다. (해기사들 실습생들 모두 자명종 하나씩 가져가세요. 핸드폰 알람 믿으면 늦잠 잡니다. 초짜가 늦잠자고 그러면 근무평점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실습생끼리 또는 3항기사끼리는 제 시간에 안보이면 서로 깨워주는 에티켓을 갖기로 신사협정을 해야겠죠)
부리나케 일어나려니 몸이 무겁다. 어젯밤에 12시 당직 마치고 일찍 내려와 잘껄 괜히 2항사가 야식먹고 내려 가라고 하는 통에 기다렸다가 야식 얻어먹고 새벽 1시에 내려와 2시쯤 잠들었나..허튼 잠이 좀 부족하다.
가볍게 세수하고 근무복 걸치고 운동화 찾아신고 식당에 아침을 먹으러 내려간다. 식당에 들어서니 1기사님하고 3기사가 먼저 식사중이었다.
" 많이 드십시오! "
인사하고 펜튜리에 왔다는 표시를 하고 공기에 밥을 떠서 내 자리에 앉았다. 앞자리의 김기현 3기사는 목해 31기로 나보다 한해 앞선 기수라고 보면 된다. 말수가 적고 스마트하며 잘 생겼다.
3항 : "3기사님, 이따 당직 마치고 탁구 한게임 하실래여? 실항기사랑 같이 복식 한판?"
3기 : "글쎄요. 오후에 2호 발전기 오버호울(Overhaul) 하는데 그때 좀 도와야 할 것 같은데요."
3항 : " 그래요? 이따 상황봐서 연락하시져 "
그때 조리수 허씨가 미소된장국, 계란후라이를 가져다 주고 간다.
아침엔 입맛이 깔깔해서 된장국에 계란넣고 밥말아 훌훌 마시다시피 먹고 급히 일어난다. 배에서는 365일 매일 아침 메뉴는 밥, 된장국, 계란후라이, 김치, 봉지김, 젓갈이다. 이 메뉴는 모든 한국배는 다 똑같다. 대충 식사를 마치고 3기사랑 같이 일어섰다. 그때 선장님하고 기관장님이 막 식당에 오신다.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올라가 양치를 하고 브릿지 올라가 한가할때 들을 카세트 테이프 하나 골라본다.
7시 45분 브릿지에 올라간다. 15분전 지켜서.
"수고 하십니다"
1항사님이 담배 한대와 커피 한잔을 하면서 "어서와" 하며 반긴다. 바다가 아주 잠잠하고 우리 배는 조용이 물살을 가르며 전진해 가고 있었다. 뭉게구름이 군데군데 낀 날씨라 해가 보일락말락 한다. 3타수 김씨도 올라왔다.
"3항사, 위치는 잘 모르겠고 50마일 간걸로 치고 DR 찍어놓고 간다. 나머진 니가 알아서 해라."
로그북에 대충 적어놓고 내려 가신다. 대양에 나오면 물표가 없기 때문에 해도가 따로 없이 플로팅차트라고 해서 빈 백지에 경위도만 표시해서 줄긋고 다닌다. 1항사님은 4시간동안 뭐 했는지 플차트위에 아무것도 없고 끝에 8시 위치를 추정하여 동그라미 하나 표시해 놓고 있었다.
08:00
3타수 김씨가 "3항사요. 갑판작업하러 내려갑니대이"
대양항해중에는 조타할 일이 없기 때문에 조타수는 갑판부 데이워크(DAY WORK)에 참여하여 갑판장, 갑판원과 함께 홀드 페인팅을 하거나 런닝 리페어 작업을 하면서 당직을 대신한다. 따라서, 브릿지에는 밤낮으로 항해사 혼자 당직을 선다. 타수는 혹 커피나 프리마 떨어지면 보충하고 브릿지 휴지통 비워주러 잠깐 들른다.
우선 커피 한잔 타서 마시고 먼 바다를 쳐다보며 하늘을 계속 올려다 본다. 이거 해가 떠야 사이팅을 한번 할텐데 구름에 가려 해가 영 보이지를 않는다. 차트룸에 가 항해장비 "오메가"의 레코딩 기록지를 살펴본다. 이거 원 1항사님 당직 4시간 동안 슬립된 기록을 전혀 조정하지 않아 현재 찍히고 있는 오메가 위치가 맞는지 알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 배 현 위치를 알수 없다는 뜻이다. 위치도 모르면서 대충 감으로 동쪽으로 항해를 하고 있다. 오늘 4시간 내내 해를 찾아 다니려면 피곤하겠구먼....
8시반쯤 되니 선장님이 브릿지로 들어오신다. 차트를 한번 보시더니
선장 "3항사, 이 위치 맞는거야?"
3항 "아닙니다. 1항사님이 DR로 찍어놓은겁니다. 선장님, 커피 한잔 드릴까요?"
창밖의 바다와 하늘을 한번 죽 둘러보시며
선장 " 아녀! 마시고 왔다. 해 나오나 보고 사이팅 한번 해야겠다."
3항 "예"
선장님이 내려가시고 섹스탄트와 초시계를 들고서 양쪽 윙데크를 오가며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좀 있으니 브릿지 문이 열리며 키다리 통신장이 들어온다.
09:00
통장 "3항사, 고생 많아요!" "커피 한잔 하러 왔어.."
3항 "제가 한잔 타 드릴까예?"
통장 "아니요. 내가 타 마셔야지. 3항사는 근무중이니까" "통신실에서 혼자 커피 마시면 지겨워서"
당시 배에서 가장 편하고 좋은 직책이 통신장이었다. " . _ _ . . _ . _ ." 만 할줄 알면 되고 당직시간이 정해진게 아니니까..배안에서의 먹고 대학생이었다. 그러면서 통신장이 옛날에 탄 배에 3항사가 몇기 누구였고, 2항사가 누구였고..그 사람 아느냐 등 많은 질문이 이어졌지만 나는 대충 건성으로 대답하고 하늘만 보며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니 통신장이 커피 마시고 조용히 내려갔다. 눈치 보였나보다. 10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해사냥을 한번 못하고 롤리는 하늘을 원망하고 있었다.
10:00
갑판을 내려다보니 해치카바를 열어놓고 홀드크리닝에 여념이 없다. 미국에서 곡물을 실으려면 홀드검사를 굉장히 엄격하게 통과해야 한다. 또 브릿지 문이 열리며 기관장님이 들어오신다. 기관장님은 19기생으로 선장님보다 4년선배이다. 그러나, 선장님이 선배 대우를 잘 안해주고 하튼 마작판에서 서로 안좋은 일이 있었는지 언제부턴가 식사도 같이 안하시고 시간을 달리하여 식사하시고 지금도 올라오시면서 "캡틴 왔다 갔나??" 물어보신다. "예. 진작 오셨어여예.." 기관장이 기관실은 잘 안가고 브릿지에서 논다고 캡틴이 흉 본적이 있었다.
3항 "기관장님! 커피 한잔 드릴까예?"
기장 "그래..맛있게 함 타봐라!"
3항 " 네스카페하고 테이스터스 초이스하고 있는데 어떤걸로 드실래예?"
기장 "음..커피는 초이스지. 미제가 최고지."
3항 "설탕하고 크림은요?"
기장 "2-2-2 로 찐하게 함 묵아보자"
여전히 하늘은 구름이 연하게 깔려 환하지만 싸이팅은 할수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기장 "3항사, 니는 배를 언제까지 탈꺼고??"
3항 "아직 잘 모르겠어요. 편입해서 공부를 좀 더 해볼까 고민중입니다."
기장 "배는 1항사까지 타고 육상에 자리 나면 빨리 옮겨라. 1항사는 해야 배가 뭔지 알고 육상에서도 큰소리 치며 일할수 있다. 나는 배탄지 벌써 20년이 넘었네. 옛날에 회사에서 공무부장으로 오라고 할때 갔어야 했는데, 그넘의 돈 때문에 배를 벗어나질 못한다. 그때 공무부장하고 기관장 월급차이가 2배는 되었거던..에휴, 지금 난 돈버는 기계고 마눌쟁이는 딸년들하고 지금 제주도 놀러다니고 난리다..내 팔자가 한심스럽다. 니는 배 오래 타지마라."
3항 " 몇달 안됐지만 배타는 것도 좋아보입니다. 황천에서 고생하는 거 빼고요"
기장 "ㅎㅎ..니 좋으면 좋은거제..커피 잘 마싰데이!!"
항상 이 시간에 올라오셔서 거의 비슷한 말을 매일 하시고 내려 가신다. 기관장님은 배에서 좀 따 당하시는 것 같다. 기관사들과도 소통이 잘 되는것 같지 않고 그래서 3항사에게 놀러와 말동무하고 내려가시는 것 같다.
11:00
롤리 3항사 아직까지 해사냥을 하나도 못하고 우리배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산으로 가는지 강으로 가는지 미국으로 가는지 호주로 가는지 알지를 못하고 있다. 나침반(Gyro Compass)이 있으니 동쪽으로 가는것은 확실하다. RDF 채널을 맞춰 KBS 월드뉴스를 청취해 본다. 서울올림픽 선수촌에 참가국 선발대가 입주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에이, 서울올림픽 구경은 못하겠네. 아, 그때 수평선 저너머에 뭔가 보인다....잽싸게 RDF를 끄고..매가리를 들고 눈에 대어 본다.
오..예..큰 컨테이너선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롤리가 마구마구 흥분하고 있다. 드디어 우리 배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하며 그동안 꺼놨던 레이다를 켜고 VHF 볼륨을 최대한 맑은 크기로 마추어 논다. 구식 레이다는 정상 작동하려면 10분정도 예열을 하여야 한다. 녹색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그 10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어느덧 저 컨테이너선은 우리와 많이 가까와져 육안으로 보일정도가 되었다. 그냥 지나가버리면 안되기에 롤리의 마음이 무척이나 초조하다.
<1편 끝>
첫댓글 헉~~갑자기 총장님 사진이~~~
깜놀했슈~~~
커피는 뭘로~~??ㅎㅎ
겁나 즐겁고 바쁘게 움직였었군요
우리 해대생들 모두가 즐겁게 똑부러지게 잘 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아들도 미니자명종 챙겨가더라구요 ㅋ
여그서 DR은 추측항법 (Dead Reckoning) 임다. 즉 대충 통밥으로 가는 항법.
19기 기관쪼는 목해대. 아님 한해대. 헸갈림다. 3항사가 Sun sighting 못하다니 ? 실습 한바다호에서 뭐하셨슴?
다 한해임다
죄송 . 날씨가 안좋아 해사냥 못한거였슴다. 미안함다
모르는 승선 생활을 알게 되네요..울 해대생들도 그렇게 생활하겠지요?
지금은 좀 환경이 다르죠. 호랭이가 마박슨배님과 맞담배 하던 시절. ㅋㅋ
1월쯤 실습 나간다는데 준비물을 어케 가져가야하는지 멀리 있으니 걱정만 되네요..롤리님 경험상 자명종 말고 또 필수템은 뭐가 있을까요?
실습방을 뒤지면 그안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해학연은 정보의 보물창고임다.
넵!!!
속옷. 양말 .수건 각 10벌 이상, 선내 편하게 입을옷 상하의 3벌. 작업복, 치약, 치솔 샴푸.비누.화장품 . 6개월분
전공서적, 노트. 슬리퍼. 알람시계. 상륙용도옷. 쇠주.
감사합니다..선배님...^^♥
찾아 보시면 더 많은 내용이 있을겁니다.
한가해지면 2기사 2-3 년차 글 올릴까 함다
좋은 생각이시네요...롤리님은 항해사 마박슨배님은 기관사...
역쉬!!!!!
롤리님. 세세하게 지금 승선 중 느낌으로 글 잘 씀다. 마치 내가 승선중인 느낌~~~
선배님 필력도 못지 않으십니다..기대되네요..ㅎㅎ
드디어 해대생 실습가는군요 멀리계시니
더 걱정되시것어요 잘 챙겨서 다녀오믄
좋겠어요 준비물은 실습방에서 꼭 더
챙겨보세요 화이팅입니다 사비나님~♡
왕년엔 몸만 갔어요. 걱정마셈.
지금이랑 같은가용~~??
할아버지~~~?? 라떼는 ㅎㅎ
아들들이 동시에 집을 떠나네요..작은아들은 군대로 큰아들은 실습으로..배웅 못하는 엄마 마음은 안절부절입니다..ㅜ.ㅜ
아 이런 일이 있네요
들어오시지를 못하는군요
진짜 마음이 안타까울거 같아요
우째요 둘다 잘 할거여요
기운내시와요 힘을 실어보내드릴수도 없고
안타깝지만 아이들이 잘 하겠죠
힘내세요♡♡♡♡
네...이런 세상 일줄 어케 알았겠어요....ㅠ.ㅠ
그니까요 전혀 못 들어오시는군요
진짜 애타겠어요 아이들도 보고
싶을텐데요 아~~ㅠㅠ
다른거 많이가져가봐야 필요없음, 운동화 추가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
딴지> 식당사진이 사관식당아니고 부원 식당 인거 같은디요 .
이주일버전.
따진냐???
학실이 하셈 .
식당이 어쨌다고 시비십니껴??
커피를 비율 맞춰 맛있게 타던 손맛 좋은 사람들이 있었죠~~ㅎ
역시 선배님들은 정보의 보고 이십니다
잘 읽었습니다~~88년도에 배를 타고 계셨군요~담편도 기대 됩니다~~
여론조사
승선기 게재하려면 술, 여인
나오는데 올려도 될려나?
보물섬 책에서도 럼은 항상 함께이던데요..ㅎㅎ 여자는 29금은 어려울것 같아요..제가 28세라...ㅎㅎ
3기사 마박의 하루 언제 시작하시나요?
재미나게 읽고 있어요.
다음편이 기다려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조금씩 항해사에 대해 알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태평양 항해중인 3항사 롤리의 하루"를 응원합니다!~^^
흥미진진.다음 편이 기다려지네요.
서울올림픽, 네스까페, 테이터스 초이스.. 캬~ 추억소환. 그 시절 미국/호주에서 사온 커피 선물하면 괜찮았었죠.
롤리님은 녹색기수, 1988년 팬오션 PAN NOBLE호에서 첫 3항사.. 저는 1988년 해대 새내기, 녹색기수, 졸업후 팬오션 PAN NOBLE호에서 첫 3항사. ^^
시차를 두고 같은배 승선
인연이 대단합니다
범양 상선 (PAN )이 라는
영문이 굴뚝에 쓰여있었슴다
벌크주종 선대 100여척 보유한
국내 최대선사
네~ 더 큰 인연은 전공은 다르지만 목해대와서 동문이 된 것이죠. 첫째 아들이란 공통점도. ^^
더불어 해학연 모든 분들이 범상치 않은 소중하고 귀한 인연이시죠. 그저 감사합니다. ^^
연재로 올려주심을 부탁드려요~ 너무 재밌어요^^옛날에(?) 소년중앙 연재 만화보는 기분입니다
정말 한배를 탄것 같은 연재기 잘 보았습니다
어제일처럼 소상히 잘 쓰셨습니다
커피는 초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