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1770~1827)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 8번 비창Sonata for Piano NO. 8 "Pathetique" OP. 13
Piano/Richard goode Piano/Artur Schnabel Richard goode의 연주로 2악장 Adagio cantabile...듣고계십니다 1악장 (Grave-Allegro di molto e con brio) Piano/Richard goode(리챠드 구드) Piano/Artur Schnabel(아르투르 슈나벨) 보통 '비창'이나 '애상'으로 번역되고 때로는 '정열'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곡의 제목을 오히려 '감동'이나 '열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게 느껴질 정도로 슬픈 분위기보다는 정감에 넘치는 곡이다. 물론 비애에 찬 분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감동적이고 정열적인 분위기가 묘한 감동 을 주는 것이 이 소나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도 널리 알려 진 이 곡의 말이 많은 제목은 베토벤 자신에 의해 붙여졌고, 1798년에 작곡된 그의 초기의 작품 중 하나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웅장한 걸작을 창작해 낸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는 그래도 초기 에 만들어진 걸작이라고 인정받는 곡이다. 2악장 (Adagio cantabile)Richard goode 2악장 (Adagio cantabile)Artur Schnabel 1799년에 출판?이 작품은 카를 리히노프스키 공작에게 헌정 되었고 그레베, 알레그로 디 몰토의 제1악장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본질적인 풍부함을 더한 곡으로 유명하다. 곡의 첫머리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장중하고 비장한 정서를 담은 느린 템포가 등 장하는데, 이는 이 곡의 제목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반음계 적으로 점점 상승 하면서 이 악장은 마침내 웅대한 자태를 나타내고 빠른 속도의 재현 부에 의해 분위기가 고조된다. 이어지는 제2악장은 아다지오 칸타빌레, 2/4박자의 구성으로 감격스러운 남성미 와 깊고도 아 름다운 여성미를 같이 지니고 있는 부분이다. 3악장 (Rondo Allegro)Richard goode 3악장 (Rondo Allegro)Artur Schnabel 그의 작품 중에서도 이 이상 깊고 엄숙하며 아름다 운 곡은 없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극히 아름다운 주제로 시작되는 이 부분은 짧지만 만족할 만한 탄탄한 구성으로 듣는 이들을 감동시킨다. 마지막 제3악장은 론도 알레그로, 2/2박 자의 부분으로 교묘한 대위법 적인 기법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완벽한 발전을 갖춘 론도이다. 아 름다움의 경이와 과감한 작곡가의 의지도 이 속에 담겨 있다고 한다. 잘 정돈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흐르는 유연함은 찾기 힘든 이 피아노 소나타 비창은 극적인 긴장감과 웅대한 구성으로 힘이 느껴지는 베토벤다운 명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곡 비창의 악보는 당시 빈의 피아노를 배우던 음악 학도들이 앞 다투어 입수하려 했을 정도로 큰 충격을 준 곡으로 이 소동으로 인해 베토벤의 명성이 전유럽 에 널리 퍼지기도 했다. Richard goode(1943~ , 뉴욕) 미국 뉴욕출생의 리차드 구드는 메네스 칼레지에서 라이젠버그를 커티스 음대에서 루돌프 제르킨을 사사하였다. 그는 영 콘서트 아티스트 어워드와 클라라 하스킬 콩클 우승, 에이버리 피셔상 수상, 클라리네스트 리차드 슈톨츠만의 음반으로 그래미 어워드 등을 수상하면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작품의 텍스취를 전체적 이면서도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구드는 고전음악 특히 베토벤 작품에 탁월한 해석을 보이고 있지만 한 작품에 대한 스페셜리스트보다 모든 종류의 음악을 골고루 다룰줄 알고 특히 조지펄의 음악등 20세기 현존작곡가의 작 품에 대해 정확한 해석들 내린다는 평을받고있다 그는 현재 논서치 레이블 전속 연주자로 이제까지 20종이 넘는 음반을 선보였으며 이중에는 오르페우스 쳄버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모짜르트 피아노협주곡시리즈 음반은 그라모폰지에 Editors Choice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르투르 슈나벨(Artur Schnabel, 1882 ~ 1951)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리브니크 출생. 20세기 최고의 베토벤연주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명성을 떨쳤다. 9세에 빈의 T. 레셰티츠키에게 사사하였고, 급속한 진전을 보여 만년의 J. 브람스에게 재능을 인정받았다. 1900년 베를린으로 진출하여 독주 외에 실내악에서도 활동하였으며, 특히 실내악에서는 바이올린연주가 C. 플레슈와의 2중주가 좋은 평판을 받았다. 25년 베를린음악대학 교수로 취임하여 후진을 양성했으며, 33년 나치스를 피해 스위스, 이어서 뉴욕으로 이주하였고 스위스의 악센슈타인에서 죽었다. 베토벤 외에 브람스·F.P. 슈베르트의 해석으로 명성을 얻었고 유럽과 미국 각지 에서 연주를 계속했는데, 기교적인 약점을 지적받으면서도 음악을 심오한 곳에서 파악한 품격있는 표현으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출처: 아나벨리 원문보기 글쓴이: 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