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그날이 오기를 / 최종호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상을 빼앗아 간 지 3년째다. 델타에 이어 이제는 오미크론 변이가 대세다. 처음에는 치명률이 높고, 후유증이 심해 모두 두려워했다. 퇴원 후에도 미각이나 후각이 돌아오지 않는다든지, 폐가 손상되어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있었다. 직장으로 돌아가서도 심한 두통으로 업무 처리에 큰 지장이 있는가 하면, 탈모가 생기거나 피부가 보라색으로 변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무섭기까지 했다.
이제는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엊그제 친구들과 보성 바닷가에 갔는데 대중탕 앞에 차가 많이 보였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처음에는 확진자가 생기면 영업을 제한했지만, 지금은 숫자가 많아도 그렇지 않으며 사람들도 개의치 않고 이용한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 아직도 사적 모임 최대 인원은 여섯 명인데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확진자 숫자가 너무 많아 역학 조사를 하지 않는다. 아마 확산을 막으려는 상징적인 의미일 것이리라.
그런데도 아직은 친구나 지인을 만나는 것이 조심스럽다. 누가 감염원인지 모를뿐더러 확진되면 7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면역력에 따라 이상 반응이 다르고, 노약자나 어린이는 위험할 수도 있어서다. 애경사가 생겨도 꼭 가야 할 곳이 아니면 성의만 표시했다. 가족 행사마저 참석 여부를 고민했으니까. 근무하는 곳이 학교라서 더 조심했다. 다수가 이용하는 곳이라 감염 확산이 우려스럽고, 구성원들에게 검사받는 불편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쾌하지 않은 일로 학부모와 지역 사회에 알려지는 것도 두려웠다.
그런데 최근에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 오미크론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2월 하순, ‘새 학년 집중 준비 기간’ 첫날이었다. 학교 도서실에서 새로 전입한 교사를 소개하고, 교육계획을 설명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교감이 잔기침하는 것을 본 담당자가 검사를 받아 보도록 권유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 두 시쯤 집으로 갔다. 진단 키트에서 양성이라며 같이 있었던 모든 직원은 서둘러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보건교사의 안내문이 올라왔다. 평소에 목이 좋지 않게 보여 설마설마했는 데 당황스러웠다.
서둘러 보건소로 향했다. 직원 몇 명이 대기 줄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곧바로 피시알(PCR) 검사를 받았다. 나이 많은 사람을 대접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런 마음도 잠시, 점점 착잡해졌다. ‘나도 걸렸나? 아니야, 비켜 갔을 거야. 아무 증세가 없잖아.’ 하지만 4일 전, 학교 앞에서 마주 보고 점심을 먹은 것이 꺼림직했다. 결과를 기다릴 것도 없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큰아들 방을 차지하고 스스로 격리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어서 전화가 왔다. 양성 반응이 나와 먼저 알려 준단다. ‘올 것이 왔구나!’ 학교에는 최소 인원만 근무하도록 지시하고, 모든 교직원은 피시알(PCR) 검사를 받으면 좋겠다는 보건교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오후 한 시쯤 교감도 최종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다른 교직원은 무사해야 할 텐데 걱정이었다. 우려와는 달리 새로 전입한 교사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음성이다. 폭풍이 지나가고 고요가 찾아왔지만 피곤한 시간이었다.
격리하는 동안 체온계, 산소포화도 측정 기구 등이 들어 있는 건강 키트를 보내 주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라면, 통조림 등 5만 원 상당의 생필품도 받았다. 그리고 날마다 두 군데서 전화가 걸려와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며, 필요하면 동네 약국으로 증상에 따라 처방전도 보내 준다고 하였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선거 기간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방역과 치료에 노력하는데 어느 후보는 총체적인 실패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이상 없이 목구멍이 칼칼한 증세만 있었다. 하지만 격리하는 내내 가족 감염을 염려하니까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으며 지내지만 갇혀 있으니 답답하다. 때가 되면 문 앞에 반찬 몇 가지가 들어 있는 배식판과 물컵을 놓아두면 혼자 먹고 내놓는다. 이렇게 뒷바라지하던 아내는 “내가 꼭 식당 아줌마 같아.”라며 투덜거렸다. 화장실에 자주 가지 않으려고 물도 많이 먹지 않고, 감염이 두려워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전화로 한다. 거실에서 잠깐 마주쳐도 마스크를 쓴 채로 눈빛만 주고받을 뿐이다. 한 가지 딱 좋은 점이라면 답답한 시간을 이겨내려고 미루어 둔 『노화의 종말』과 『모든 것의 역사』를 읽어 낸 것이었다.
검사한 날을 포함하여 7일 후면 자동으로 격리가 해제된다는 통보가 왔다. 그동안 나 때문에 가족이 곤욕을 치러 미안했다. 아내는 판정 보류로 세 번이나 검사를 받았다. 지인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외출은 꿈도 꾸지 않았다. 기간이 지나 해제되었지만 확실하게 감염을 막으려고 스스로 3일 더 가족과 접촉을 피했다. 목요일 저녁, 밥을 먹으며 “아버지, 직장 동료가 가족 감염이 안 된 비결이 뭐냐고 물어요.”라며 작은녀석이 웃는다. “화장실에 가면서도 거실에서는 숨도 쉬지 않았어.”라며 그동안 조마조마했던 기분을 털어놓으며 혼자 지냈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확진자가 38만 명을 넘었다. 거의 정점에 도달한 듯하다. 희망이지만 조금씩 내려갈 것으로 예상한다. 완만하게 하향 곡선을 그리다가 어느 시점에 개인 방역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할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미 의무적으로 마스크 쓰는 것을 해제했다. 프리미어 리그를 즐기는 축구 관중은 이제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다. 로마의 대표 관광지 트레비 분수를 찾는 사람들도 일상을 찾은 듯하다. 우리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면 전 국민의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돌겠지. 아이들도 이전처럼 체험학습도 자유롭게 하고 해맑은 얼굴로 운동장을 뛰어다닐 것이다. 어서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