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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양쪽 날개, 말과 웃음
-『사막의 말』(김규화 2016)을 중심으로
김지숙(문학평론가, 시인)
인간의 정서란 신체의 특징적 표현이며, 인간의 감정이란 몸에 나타난 변화를 마음에서 자각한 결과이다.(James-lange 1884) 즉, 신체적 변화나 신체 활동은 정서적 체험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정서 그 자체이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통해 자신만의 정서를 특징적으로 표현하는 한편, 자신의 감정을 통해 몸의 변화를 마음에서 자각하고 이를 말로 구사한다 이러한 정서나 감정은 개인적이면서도 연속성을 지니며 항상 선택의 과정 속에서 끝없이 변화하는 상태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의식은 순수하게 인지하고 수행하는 능력의 주체가 아니라 처음부터 신체적 외부 요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감정적 의지적 요소들이 신체의 변화와 일체화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만이 표현 가능한 ‘웃음’과 ‘말’은 자연스럽게 한 개인이 지닌 의식들이 다양한 요인들과 어우러져서 독특한 내면의 정서를 표출하는 방식 중 하나가 되며, 이는 비언어적 의식 요소들을 신체적 특징으로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된다.
본고에서는 첫째, 시청각적 기능을 사용하는 웃음, 혹은 신체적 표현의 결과로 도출된 웃음이 의도하는 바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H. L. 베르그송에 따르면 웃음은 인간적 범주 내에서 타인과 연결되며 의도하지 않는 바를 목격하는데서 비롯된다. 신체나 태도 몸짓 움직임 등은 기계성을 연상시키는 정도에 정비례하여 우스운 것을 움직임의 희극성 등으로 본다 이러한 희극성의 확산으로 첫째, ‘자연 속에 끼워 넣어진 기계주의’와 ‘사회에 있는 자동적 규칙’은 희극적 효과를 창출한다. 둘째, 우리의 주의력이 내용에서 형식으로, 정신적인 것에서 신체적인 것으로 돌려질 때 희극성이 분출한다. 셋째, 어떤 사람이 사물로 느껴질 때 우리는 언제나 웃는다. 이러한 웃음이 지니는 희극성은 위의 세 가지 방향에서 점검이 가능하며, 희극성이란 독일의 철학사전에 따르면 웃음과 동일한 표제로 다루어진다. 비언어적 표현으로서 웃음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정서적 특성을 드러내므로 그 웃음을 통해 화자에게 주어진 상황을 표출하는 웃음의 현상이나 원인 반응 등을 희극성 등과 관련짓고 다양한 ‘웃음’에 내재된 의미 및 표현 방식을 고찰하고자 한다
둘째, 시에 표현된 ‘말’이 의미하는 바에 관해 고찰하고자 한다 말이란 인간의 정서를 가장 직접적으로 상대에게 전달 표현하는 도구이며, 이는 청자와 화자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그 말들이 의사소통에서 끝나는지 혹은 소통에서 나아가 공감과 공명, 행동을 이끌어낼 정도로 적극적인지에 대해서는 상호 간 대화의 태도 여하에 달렸다 때로는 공감만으로도 감정의 정화가 이루어지고 신뢰를 쌓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하나의 감각만으로 혹은 언어만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소통하지는 않는다. 즉 언어 외에도 비언어적 요소도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흔히 청각을 사용하여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상대의 의도를 짐작한다, 따라서 마음이 자각한 결과로 표출된 말. 함축된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의도를 읽을 수 있고 나아가 다양한 ‘말’을 통해 내면의 가치관이 표출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말은 화자의 내면 의식에서 자각된 행동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말은 가장 정확하고도 직접적인 의사표현 방식으로 대화와 경청의 이면에 실린 정서를 표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대화 중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잘 아는 내용을 상대방도 당연히 알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착오로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며, 이를 심리학자 E. 뉴톤은 ‘지식의 저주’라 했으며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Tapper and Listener)’라는 실험에서 특정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은 그 지식을 습득하고 나면 알기 전 상태를 상상하기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역지사지의 입장을 통해 상대를 되돌아보고, ‘웃음’이나 ‘말’에 대한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 과정에 대해 점검하고, 상호 의사를 확인하여 화합에 이르는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1. 웃음
웃음은 인간만이 지닌 대표적 비언어적 의사 표현이다. 하지만 때로 이 웃음은 음성을 통해 자신이 하려는 말을 강조하거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다 또한 음성언어를 조절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웃음은 그 본질을 내용의 불일치에서 찾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사고를 다른 것에서부터 떼어내거나 하나의 감정에서 다른 감정으로 뚫고 나가는 것에서 웃음이 유발된다(William Hazlitt)
다섯 개의 방이 벽 한 쪽을 함께 쓰며
한 줄로 뻗어 있다.
다섯 개의 방문이 반쯤만 열려 있고
맨끝방에서 5대조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그 앞방에 차례로
4대조 3대조 2대조 1대조 할아버지들이
각각의 방에서 양반다리로 앉아 있다
세배를 받으려는지 할머니와 함께 나란히
나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는다
5대조 할아버지부터 1대조 할아버지까지
점점 내려올수록 웃는 얼굴이 잘 보인다
1대조 할아버지부터 5대조 할아버지까지
점점 거슬러 오를수록 웃는 얼굴이 희미하게 보인다
반쯤 방문을 열며 나온 시간이 문턱에서 걸리고
대를 이어가면서 손녀를 보고 웃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이 똑같다
- 『웃음」 전문
웃음이란 서로 간의 신뢰를 통해 굳건한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영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주요 매개가 된다 따라서 건강한 가족공동체의 형성 또한 웃음 속에서만이 가능하다 웃음이나 미소는 어떤 사회에서는 친근함을, 또 다른 사회에서는 당황스러움을, 또 어떤 사회에서는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적대감과 공격성을 경고하는 표현이 된다.(Gary Alan Fine)
이 시에 표현된 사진 속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를 이어가는 손녀가 그들에게 느끼는 웃음은 낯설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온유함으로 다가온다 또한 화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이 웃음은 ‘흐뭇하게 웃는다’는 의미를 띠는 가만히 웃는 잠소(潛笑), 소리 없이 눈으로만 가만히 웃는 눈웃음에 해당되는 목소(目笑), 소리없이 빙그레 웃는 무음소(無音笑) 등의 의미를 공통적으로 드러내며 이는 화자가 다정다감했던 사람들과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며 타인에 대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시에서 보면 화자의 눈에는 ‘5대조 할아버지부터 1대조 할아버지까지 점점 내려올수록 서로에게 느끼는 정이 각별하다는 뜻을 내포하며 웃는 얼굴이 잘 보인다’고 하여 5대조 할아버지보다는 1대조 할아버지로 내려올수록 웃음은 점점 선명해진다. 이 점에서 보면 화자에게 전해지는 할아버지들의 웃음은 가까울수록 정이 두텁고 웃음도 다정하게 느껴지는 공동체적 감각 속에서 가능한 웃음으로, 혈연관계를 잇는 유대감으로 드러나며 화자는 자신이 선 현재 위치에서 거리에 따라서 강도가 좌우되어 이를 자각하고 이해한다.
B.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신의 욕망의 강도는 자각하지만 그 욕망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잘 모른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전혀 다른 것으로도 만족을 얻는 과정에서, 또 만족의 빈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생존률이 높아진다. 화자를 반기는 미소는 이미 자신을 잘 아는 1대조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미소에서 시작되지만 화자는 1대조 할아버지의 미소 속에서 이미 5대조에 이르는 친근감에 기인되는 웃음의 유사성을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는 이들과의 관계에 만족감을 갖는다는 관점에서 확인 가능하다. 웃음은 저절로 나오기도 하지만, 언제나 함께 웃는 사람과 더불어 공동체적 의식에서 더 잘 묻어나는 감정이자 비언어적 표현이다. 따라서 이러한 느낌은 화자는 한방에 걸린 액자에서는 신경심리학자 G. 뒤셀이 말하는 진짜로 기쁘고 행복에 겨운 웃음, 환대하는 웃음, 상호 소통하는 웃음이 나타난다.
물방울 관음이 버들 한 잎 떼어내 그 속으로 쏘옥 들어가
면서 나를 보고 슬몃슬몃 웃는다
-『물방울관음」일부
당신이 얼굴을 들고 먼 길에서 달려오고
내가 발을 가지고 먼저 와서 기다린다 ‘
우리는 서로 눈과 눈을 맞추고 공중에 떠도는 웃음소리를 맞춘다
-『대화는 진화한다」일부
별은 우리들에게 가진 것 모두 태워버리고 우리들보다
먼저 죽는다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너츠를 우리들은 먹는다
산소와 수소로 만든 맛있는 도너츠
6천도의 웃음으로 우리들을 흔들어 깨우고
점 하나로 떠서 허공으로 사라지는 별하나 있다.
-『별 하나」일부
사람들은 기쁠 때나 간지럼을 느낄 때 주로 자신의 내면 상태를 드러내는 매개로 웃지만 순수한 의사소통의 몸짓으로서도 웃는다. 기쁨은 동요와 상쾌함의 상태로 혹은 전혀 다른 동기에 대한 이해에서 유발되기도 한다. H. 플레스너( 1941)에 따르면 본연의 의미에서 웃음과 희극적인 것을 동일시 여긴다 나아가 간지럼은 촉각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미각과 후각, 심지어 청각의 영역에서도 작용한다. 따라서 간지럼은 명확하게 몸으로 표현이 가능하므로, 설명 가능한 상태이지만 의사소통으로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 되는 지는 확인할 수 없다
시에서 ‘물방울 관음이 화자를 바라보면 슬몃 웃는 웃음’(『물방울관음」)이나 ‘공중에 떠도는 웃음소리’(『대화는 진화한다」)에서의 웃음은 공유하는 일체감에서 온다 또한 6천도의 웃음으로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별 하나」) 웃음들은 대체로 사바세계의 욕망과 좌절이 어우러진 웃음이라기보다는 이에서 벗어난 관음의 웃음에 가까운 유사성을 지닌다 웃음은 한 가지 이유에서 발생되는 것은 아니다. 다양성을 지닌 웃음은 뇌하수체에서 다량의 엔돌핀이 분비되어 긴장이 해소되는데 이에는 고도의 정신과정으로 이행되는 매개가 필요하다. 심리적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 나타나는 현상인 웃음은 인식 능력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웃음소리에도 분절이 있고 맑고 뚜렷하거나 깨어지는 소리 천둥소리처럼 다양한 음식이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다가오는 웃음소리도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며 범위 또한 한정된다. 따라서 위 시들에 나타나는 웃음은 주로 관음의 웃음으로 이는 우아하면서도 근엄하지만 또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모든 경계를 걷어내는 지혜로움에 바탕을 둔 웃음이다
J. 리터에 의하면, 웃음은 희망적인 것, 기대한 것에 상반되며 질서에 반대적일 때 나타난다. 또 긍정적인 것과 결부되며 기쁨 즐거움 만족 유치함 속에 속한다.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에서 테르지테스를 가장 추한 사람으로 비극적이고 괴로워하는 인간과 결부지어 웃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는 또 웃음을 위대한 것과 거룩한 것을 우스꽝스럽게 끌어내리고, 왜소화하기 위해, 이 위대한 것과 거룩한 것에 달라붙어 있는 조롱의 운동으로 본다 나아가 비정상적이고 희망에 반대되는 것이나 삶의 진지함과 일반적 질서에 대립되는 것으로서 존재하거나 존재하려는 것이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즉, 웃음이 내면 심리와 결부되며 절망도 암울 경멸도 함께 표현한다 따라서 시에서는 내면의 초월성을 드러내는 웃음들이 나타난다.
먼 산이 불룩한 배를 드러내 놓고
포개고 누워서
하늘에 스카이라인을 긋는다
용문사의 천년 은행나무가 바람을 불러
허허, 천개의 귀를 열어젖히며
웃음소리가 허공에 물결쳐 나가고
허공을 움켜쥔 내 손이 흔들린다
안개여.
기차를 타고 가면 산이 허공으로 물든다
남빛 먼 산에서 초록빛 가까운 산까지
허공은 그의 옷과 똑같은 수묵색으로 덧입혀 놓고
청맹과니 눈을 떠서 하늘을 빨아들인다
안개가 용문사 법당 안으로 스며들면
천년 은행나무도 비로소 비에 젖는다
-『비 오는 날에 용문사에 간다」 전문
W. 펜필드의 뇌지도(1937)에 따르면 운동 피질의 부분은 손가락 입 입술 혀 눈을 담당하는 부분의 피질이 넓고 감각피질은 손과 혀가 넓다 따라서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는 손을 통한 접촉이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효율가치가 높으며, 이 부분의 감각은 몸통이나 팔다리 깊은 곳의 근육보다 훨씬 예민하며 나이에 영향을 덜 받는 부분이 된다. 인간의 진화를 손의 진화에 두고 도구의 제작과 사용으로 이어졌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따라서 타인의 손길이 피부에 와 닿는 짧은 순간의 감각으로 상호 정보는 가장 감각적 효과가 크다는 의미를 담는가 하면 교환되고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시에서 화자는 이미 웃음이 빠져 나간 허공을 자신의 손으로 움켜쥔다 은행나무의 귀를 열어젖히는 과정에서 청각을 거쳐 웃음소리가 허공에 물결 쳐 나가는, 보다 확장된 청각적 상황을 맞고 이는 허공을 움켜쥔 화자의 손으로 촉각적 전달력을 갖는다. 가장 민감한 신체 부분인 손의 움직임을 통해서 은행나무의 웃는 소리를 느끼는 날선 화자는 자신의 손을 흔든다 웃음은 바로 화자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되면서 소재 형식 원인 동기 등 모든 것이 그로부터 나온다.
이처럼 웃음소리는 인간의 기억에 저장되지만 특정한 감각적 체험과 연결되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위의 시에서 웃음은 인간이 지니는 물욕적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화자는 이미 화자의 손안에서는 더 이상 은행나무의 웃음이 웃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 즉, 그 웃음은 바람이라는 자연 현상으로 인식되고 화자가 이를 극복하는 계기 또한 웃음소리가 된다
아치형 생나무 회랑을 걸어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노란 햇빛과 금부스러기 잎의 나무와
아이들이 어울려 갈갈갈 웃음소리가 난다
나뭇잎천정은 아침 10시
나뭇잎 사이로 금빛 촉화살을 길게
스테인드글라스의 유리조각에까지 스트레이트로 뻗는다
작고 작은 이슬방울이 모여 아래로 기울러진 나뭇잎끝에서
무서워, 무서워, 하면서 천길 허공으로 떨어진다
회랑을 지나는 사람들이 머리와 어깨로 받는다
비로 떨어지는 이슬방울들의 도독, 도도독 옹알이소리
햇빛 닮은 금부스러기 나뭇잎 천장은
끝이 보이지 않으나
둥근 식탁에 모여앉아 어머니가 주는 햇빛 금가루밥을
비벼먹는 아이들 소리, 이슬 진주처럼 굴리는 소리
- 『비 이슬」 전문
H. 코트 & E. 울프(1978)에 따르면 어린 시절 최소한의 사랑을 받아야 건강한 자기애가 생기며 견고한 생명력 있는 느낌과 성공 앞에 자존감을 느낀다 그만큼 어린시절 받는 사랑은 중요하다 충분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잘 웃는다 이러한 웃음은 선행하여 존재하는 정적인 에너지가 방출되어 일어난다(Sigmund Freud)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는 순간에 웃게 되거나 혹은 일상에서의 심리적 긴장이 해소되는 상황에서 유발되거나 인지적 부조화가 발견될 때 웃는다. 이 웃음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유형 성숙으로 어릴 때 형성되어 없어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지체된 성숙에 해당된다.(이윤석 2011)
시에서 아이들은 정말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공간에서 행복하기에 내는 진짜 웃음소리를 낸다 감정의 상호소통에서 비롯되는 완벽한 만족감에서 비롯된 웃음소리이다. 시의 화자는 이 아이들이 웃는 웃음을 ‘노란 햇빛과 금부스러기 잎의 나무’ 와 ‘아이들이 어울려 갈갈갈 웃음소리’로 바라본다 또 둥근 식탁에 모여앉아 어머니가 주는 사랑이 듬뿍 버무려진 ‘햇빛 금가루밥’을 비벼먹는 아이들의 밥먹는 소리가 쟁그랑거리며 들린다. 마치 화가 이순구가 그린 그림「웃는 얼굴」에서 보여주는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이빨과 목젖을 다 드러내고 활짝 웃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눈을 뜨고 웃는 웃음은 타인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웃는 반면 눈을 감고 웃는 웃음은 타인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기 행복을 바라본다는 의미에서 진짜 웃음에 해당된다.
시에서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한 공간에서 있기에 마음껏 활짝 웃는다 이처럼 웃음이란 가장 긍정적인 의사소통의 한 부분으로 유머러스한 자극에 대한 흔한 표현(Bennett & McCann 2003)이 된다 이 웃음은 희소(喜笑) 혹은 함박웃음에 해당된다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과 신뢰를 공유한다는 표시이다. 또 웃음은 정서를 향상시키고 신체의 건강을 지켜주는 효과가 있다. 긍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웃음은 신경내분비계나 면역계와 같은 변화를 가져온다(Berketal 1989)
생후 6개월에 접어든 아이들은 낯가림(stranger anxiety)을 하는데 이 현상은 자신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르는 낯선 이를 경계하고 유사시 부모를 부르는 적응현상으로 진화적 기능을 수행하는 특질로서 대부분의 문화권 아기들에게 나타난다. 엄마 앞에서는 방긋방긋 웃다가도 낯선 이를 바라보면 바로 울음으로 바뀌는 것은 오랜 세월 맞닥뜨린 적응 문제들을 잘 해결하기 위한 자연적 선택이 모인 심리적 적응 및 해결책의 덩어리가 반응한다 즉 자신이 위험에 처할 지도 모르니 예의주시해 달라는 엄마에게 보내는 다급한 신호이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시에서 아이들은 무장 해제되고 경계심이 사라진 상황에서 웃고 먹고 행복한 상황들을 웃음소리로 표현하는 점에서 낯가림 현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소소(小小)한 스티로폴 조각들이 뱃전에 둘러 있다
가벼운 몸을 썰물에 한참 맴돌리다가
바닷가운데로 가물가물 사그라진다
소소(炤炤)하게 웃으며 소소 뜨는 아침해
소소(昭昭)한 해를 맞으려고 방파제를 달리는
소소(小少)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정박해 놓은 뱃전을 두드리며 소소(疎疎)한 바람이
일출을 두런두런거리면
부두에 소소(蕭蕭)히 눈 날리고
남도 어시장의 어부들 소리가 소소((騷騷)하다
- 『소소」 전문
웃음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주위의 모든 것을 활동하며 말로 표현이 가능하다 몸짓 목소리 표정 외모 등등 이는 감정 태도 개성 반응 주목 끌기 등의 기능을 하며 다양한 상황 속에서 중요하게 작용하고 반복 불일치 대체 강조 절제 조절 등으로 언어와의 상호관계를 설명한다. 그밖에도 친밀감 보여주기 지배 인사 대화 정체성 드러내기 등과 같은 다방면에서 활용된다. 이처럼 비언어는 생물학적 요인과 경험 문화 계층 등에 따른 산물로 본다. 웃음 역시 이러한 비언어적 표현의 범주에 해당된다.
시에서 살펴보면 웃음은 화자와 먼 거리에 놓인다. ‘소소하게 웃으며’ ‘소소한 아이들의 웃음’에서와 같은 표현을 통해 직접적으로 와 닿는 감정은 아니라는 점은 확인 가능하다 이렇게 화자가 시에 언급되는 웃음과 거리를 가질 경우, 독자조차도 그 웃음에서 멀어지고 객관화되어 공감을 형성하기보다는 풍경으로 바라본다.
첫 번째의 ‘소소(小小)’는 대수롭지 않고 자질구레하다는 의미를 지니며, 또한 ‘소소(炤炤)’는 ‘드문드문하고 성기다’의 의미를 지니며, ‘소소(昭昭)’는 ‘사리가 밝고 또렷하다’, ‘소소(小少)’는 ‘키가 작고 어리다’, ‘소소(蕭蕭)’는 ‘바람이나 빗소리가 세차다’. ‘소소((騷騷)’는 ‘부산하고 시끄럽다’ 등으로 ‘소소’라는 단어의 동음이의어를 활용하여 시에서 다양한 분위기로 풀어낸다. 그런 가운데서도 ‘소소(炤炤)하게 웃으며’ ‘소소(小小)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웃음의 정도를 가장 잘 알려준다. 이러한 웃음은 억지로 웃는 웃음과는 확연히 다르다 활기찬 신체과정을 촉진시켜 건강하게 하며 부정적 원인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면서 신체에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정신건강을 일깨워주는 웃음(문병교 2007)이 바로 시에서 나타나는 웃음이다 또한 웃음을 통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통제하는 통제능력도 지닌다(Lefcourt 1990)
결국 시에서 표현된 ‘소소한 웃음’은 작은 소리의 웃음이지만 그 소리들은 공명 현상을 일으켜서 더 큰 소리로 들리며 적극적 삶의 의지를 상징한다 이처럼 동음이의어는 우연히 소리만 같을 뿐 소리에 담긴 의미들은 서로 연관이 없으며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별개의 단어로 문맥과 상황에 따라 의미를 구별하여 쓴다. 대체로 이러한 동음이의어는 해학이나 풍자 언어유희에 많이 쓰인다 마찬가지로 시에서도 이러한 동음이의어의 사용은 말이 지니는 다양성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한편, 혼동 혼란 혼재 등의 심리를 자극해서 어휘가 갖는 해학적 의미와 희화적 의미를 담아낸다
행랑어멈은 문간방에 들어앉아서 방문에 구멍 두 개를 빠끔히 낸다 눈을 네모로 만들어 두 개의 문구멍을 꼭 대고서 눈동자 가늘게 그어 門자를 만들고 안채의 마님을 살핀다 門의 얼굴은 가로로 짧게 두 눈만 뜨고 코와 입은 사라져 버렸다 양쪽 귀 없는 귀 밑까지 내려가다가 그만두었다
찌그러진 그믐달눈의 처용아비가 탈을 쓰고 집에 들어가다가 싸리울타리에서 미끄러져 넘어진다 넘어지자마자 두 눈만 가늘게 뜨고 오달지게 웃는다
코와 입이 떨어져 나간 탈바가지로 두 눈만 가린 독립군이 종로 네거리에 유유히 나타난다 길거리의 문이 모두 닫힌다 눈을 가리면 門이 안 보인다
행랑어멈 여럿이 비명을 지른다
독립군 여럿이 담을 넘는다
- 『문․ 1」 전문
H. 홉스는 웃음이란 그들을 유쾌하게 해 주는 그들 자신의 어떤 갑작스러운 행동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어떤 흉한 일을 발견하고 비교하여 갑자기 자찬하여 생긴다고 했다(1651) 이는 타인의 열등함과 비교하여 형성된 자만심에서 솟아나는 갑작스러운 우월감이 되지만 웃음에 대한 비중을 크게 두지는 않았다.(이승하) 또 웃음은 긴장된 기대가 무로 환원되는 것에서 발생하는 ‘정동’이라고 칸트는 말한다.(ImmanuelKant) 말로 표현하는 의사가 아니라 심리를 표현하는 행위로서의 웃음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호감을 유발하기 위한 공통된 의사 표시의 방식이 된다
H. 베르그송에 따르면 희극성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은 특정한 상황이 반복되거나 완고하다. 상황이 개선되지 않지만 그 상황이 희극성을 띤다. 우리가 어떤 대상의 행동에 웃는 것은 그 대상과의 일체감 결여와 혹은 비대상들 간의 일체감 추구를 위해서이다 이를 그는 무감각 혹은 냉담이라 한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화자의 웃음은 쓰고 절박하나 시의 화자나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거리감이 느껴지고 바로 이 거리감에서 연민은 사라지고 웃음이 나온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세의 변화보다 실수로 넘어지면서 자신이 실수한 점이 겸연쩍어서 도리어 웃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나타나는 웃음은 감정의 섬세하고 미묘한 변화를 한번에 표현한다 ‘오달지’다는 말 자체가 규범의 일탈에서 벗어난 상황을 극복하는 격렬한 흥분의 표현이다 하지만 웃음은 슬픈 분노의 한 형태로 나타난다. 즉, 화자의 웃음은 기쁨이 아니라 허탈 분노 허망과 버림 등의 부정적인 의미에서 벗어나려는 너털 웃음이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이지만 그 고통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웃는 웃음으로 내 처진 상황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긍정적인 성향을 찾기 위한 의도적 웃음이다 이 웃음은 부교감 신경을 자극해서 심장을 진정시키고 몸을 안정시키는가 하면 스트레스의 요인에 대한 합법적인 대처방법이 된다.
일반적으로 웃음은 심리학에서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 하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웃음과 마음에도 없는 가짜 웃음이다. 인간은 42개의 얼굴 근육으로 19가지 웃음을 웃지만 진짜 웃음은 눈꺼풀(eyelid)을 닫는 근육인 안륜근(Orbicularis oculi muscle)을 사용하는 웃음이고, 이때에는 눈이 많이 감기는 현상이 나타나며 이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이 웃음은 18세기 프랑스 신경심리학자인 G. 뒤센 박사가 발견했으며 그의 이름을 따와서 뒤센의 웃음이라 한다. 아마도 시의 화자가 웃는 웃음은 정말 웃는 상황에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 만들어진 웃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