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편은 표제가 없습니다.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서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 시편이 원래 90편과 하나의 시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앞에서 우리가 살펴 본 90편은 88편과 89편과 연결성을 지닌다고 지난 주에 말씀 드렸습니다. 88편89편 90편의 공통점은 탄식시이면서 그 특징이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과 찬송부분이 빠져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4권 전체가 그 응답에 확신과 찬송하는 부분을 대신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91편에 그 확신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먼저 1절을 보시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살고 전능자의 그늘에 사는 사람이여라고 하면서 시편을 시작합니다. 이 표현들은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안전한 보호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88편 14절과 89편의 46절처럼 하나님께서 스스로 숨기심에 대해서 탄식하며 빨리 도움을 달라고 했던 기도에 대한 응답이며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숨기시는 것 같았으나 이제 91편에서 하나님께서 시인을 숨기는 분으로 등장을 하게 됩니다. 이 시편의 화자는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에 대해 경험하고 기대하고 의심하지 않는 사람임을 1절에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2절을 보시면 그는 하나님께 대해서 부르짖었던 사람이고 하나님을 피난처와 요새로 삼고 그분을 의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확신시켜 주는 내용이 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시인 자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피나처로 삼는 모든 자들에게 새 사냥꾼의 함정에서 그리고 심판, 전염병에서 건져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새가 그 새끼를 날개로 가리듯이 그분의 깃으로 덮으신다고 합니다. 이것도 1절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호와 인도를 의미합니다.
또 그분은 진실하기 때문에 그분에게 피하는 자들에게 방패와 손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전염병과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미지들은 주로 전쟁의 상황과 연결이 됩니다. 구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근동,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두 나라가 싸우면, 밤에 굉장히 춥고 공포스럽습니다. 당연히 낮에는 서로 전투를 할 때 화살이 날아들고, 또 전쟁 때 시체 때문에 전염병이돌기도 하고 뿐만 아니라 낮에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정렬 중인 군사들이 일사병으로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재앙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수많은 병사들이 서 있다가 수천명씩 쓰러지기도 하고, 전염병으로 죽기도 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안전한 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 재앙이 결코 미치지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악인들의 보응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악인은 특별히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피난처로 삼지 않고 살아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 혹은 그런 세력들을 의미합니다. 그런 자들과 달리 시인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9절에서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을 피난처로 삼고, 지존자, 가장 존귀하시고 가장 능력이 많으신 분이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하고 그분을 거처로, 피난처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그렇다고 하지 않고 실제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마음과 입술의 고백 뿐만 아니라 삶과 실천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천사를 통해서 지켜 주신다고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발이 땅에 부딪히지 않도록 지켜준다고 합니다. 여기서 천사는 천상적인 존재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모든 상황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모든 도구들을 의미합니다. 늘 하나님께서 천사는 보내어 일을 하시지 않고 때로는 사람을 통해서, 다른 상황들을 통해서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신다는 이미지를 이렇게 천사를 보내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해 줄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구절은 마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사탄에서 이끌어 시험을 받으실 때, 사탄이 인용한 말이기도 합니다. 사탄은 예수님께서 높은 곳에 올라가서 뛰어내려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줄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 자체는 사실이지만 예수님은 사탄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말씀과 계획에 순종하시기 때문입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천사가 보호해 주는 것을 통해 유명해지거나 능력을 인정 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것이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을 피난처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시고 부활로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다 것은 단지 내가 잘되고 내 꿈을 이루기위한 수단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 시가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격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 저와 여러분의 향한 격려이지요. 성도들이 믿음의 길을걸어 가다가 만나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피난처로 삼을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고 그늘이 되어 주셔서 힘센 젊은 사자와 뱀을 밟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자와 뱀은 앞에서 말한 공포와 재앙과 화살과 전염병을 포함합니다. 뿐만 아니라 특히 뱀을 밟게 한다는 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말한 사탄을 밟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악과 재앙과 죽음의 근원이 되는 사탄의 머리를 예수님께서 밟으실 것을 내다 봅니다. 예수님께서 밟으신 사탄을 그 백성들도죄를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길을 걸어 감으로 밟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14절에서 긴 침묵을 이어 오시던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확실한 행동의 약속입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이 역시 궁극적으로 예수님께 적용이 될 수 있고, 또 그분의 몸된 교회에 적용이 됩니다. 88, 89, 90편에서 긴 침묵을 이어 오시던 하나님께서 결국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 간구할 때 응답하시고 환난 당할 때 함께 하시고 건지시고 영화롭게 하신다고 합니다. 또 장수하게하셔서 만족감을 주시고 하나님의 구원을 친히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먼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확신과 약속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취하셔서 지금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시는 확신과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함께하시고 건지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분을 피난처로 말로만 고백하는 사람이 아니라실제로 그렇게 믿고 실천하는 사람,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피난처와 전능자의 그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의 기자가 확실한 경험을 가지고 이 시편의 청자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과 같이, 가장 확실한 경험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르짖음에 끝내 응답하셨고, 그분을 건져주셨고 영화롭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그분을 따라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참 어려움을 많이 겪기도 하고, 기가 막힐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 무기력한 자신을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이 매우 더딥니다.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게 될 때, 오늘 시편은 끝내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걸어갈 때 당하게 되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그늘로 삼을 때,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오늘 시편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 삶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시며, 문제를 해결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고 참으로 우리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그분만 의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끝내 응답하시고 개입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