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 박선애
“애기 받아 놓고 느그 한마니(할머니)는 서운해하는데 나는 10년 만에 딸 낳아서 속으로 반갑드라. 나는 딸도 성제(형제)는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야.” 이것은 내 탄생 비화다. 언니와 나는 열 살 차이다. 그 사이에 아들을 셋이나 낳았지만 오빠 하나 건졌으니 할머니는 또 아들을 바라셨나 보다. 어머니는 외삼촌 넷 가운데 외동딸이라 그쪽으로는 평생 외로웠다고 했다. 어쨌든 어머니가 바라던 대로 언니와 나는 서로 의지하고 속이야기 나누며 사이좋은 자매로 지낸다.
작은아버지 두 분은 목포에서 살았다. 첫째 작은아버지한테서 언니 한 명, 막내 작은아버지한테서는 언니 한 명, 동생 둘이 있다. 그래서 우리 사촌 자매는 시골에 사는 큰아버지 딸 명자 언니까지 일곱이다. 방학 때는 사촌들이 우리집에 와서 같이 지냈다. 아주 가끔은 우리가 목포에 갈 때도 있었다. 막내 작은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그 딸들과는 한자매처럼 자랐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는 집안 행사 있을 때나 만날 수 있었다. 장례식에는 하룻밤 같이 자기도 하지만 결혼식에는 밥 한 끼 먹으면 헤어졌다. 그때마다 아쉬워하며 자주 만나자고 해도 말뿐이었다.
작년에 첫째 작은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자매 없는 병내 언니가 안 됐다고 우리 언니가 나섰다. 명자 언니는 우리보다는 나이가 어머니나 고모들에 가깝고 그쪽과 친밀도도 높다. 그래서 명자 언니를 뺀 여섯이 작년 8월에 첫 모임을 했다. 나이 순서대로 우리 언니가 1번, 막내 작은아버지 큰딸이 2번, 첫째 작은아버지 딸이 3번, 내가 4번, 막내 작은아버지의 둘째, 셋째가 5번, 6번이다. 우리 1번 언니는 광주, 나는 목포에 나머지는 서울에 산다. 호텔에 근무하는, 5번 신랑이 방을 잡아 줘서 우리 언니와 내가 서울로 호캉스를 갔다.
서울 구경도 의미 있지만 밤늦도록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추억이 겹치니 오랜만에 만나도 할 말이 넘쳐났다.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도 서로를 이해하고 새롭게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재밌다. 3번 언니의 자식 자랑도 한몫했다. 지나치게 솔직한 1, 2번 언니와는 달리 3번 언니는 주로 상대방 듣기 좋은 말을 한다. 자기 집 이야기도 좋은 이야기만 한다. 전에도 만나면 꼭 자랑을 안 빼놔서 그걸로 언니랑 뒷담화한 적도 있었다. 나이들어 가며 마음의 여유가 생겨선지 배가 하나도 안 아프다. 회장은 1번, 총무는 2번이 맡았다. 다달이 회비를 모아 여름과 겨울에 만나 여행을 가기로 했다.
겨울 모임은 2월에 2박 3일 제주도에서 했다. 이른 시간에 갔다가 마지막 날은 늦게 오니, 3일을 꽉 채워서 같이했다. 관광지뿐만 아니라 퇴직하고 귀향한 소 선생님의 농장에도 갔다. 나무에 남은 귤도 따서 맛보고 선생님께 귤, 천혜향, 한라봉, 금귤 등 비슷한 나무들 설명도 들었다. 벌써 나와서 제법 자란 쑥도 캤다. 솜씨 좋은 1번 언니가 올망졸망 싸 온 나물과 밑반찬만으로는 우리는 행복했다. 거기에 3번 언니가 딸이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산 방어회는 쫄깃하고 고소했다. 그 뼈에 낮에 캐 온 쑥을 넣어서 끓인 지리는 지금까지 먹어 보지 못한 최고의 맛이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고 먹든 함께하는 것이 상상과 기대를 넘었다. 모임을 진작 할걸.
세 번째 모임은 지난 8월 12부터 15일까지 3박 4일간 진도 우리집에서 했다. 회원보다도 이날을 더 기다린 사람은 우리 어머니다. 언제 한다고 했냐, 누구누구 오냐, 병내도 오냐하고 몇 번을 물어본다. 모임을 만든다고 할 때부터 잘했다고 칭찬했다. 3번 언니와 같이한다고 더 좋아했다. 서울에서 오는 2, 3, 5, 6번 자매를 마중하러 목포역으로 갔다. 광주에서 온 오빠와 언니도 도착했다. 아홉 시 30분에 모두 만났다. 다들 새벽부터 들떠서 왔다. 자격이 안 되는 오빠는 운전해 주겠다, 심부름꾼도 되겠다고 사정해서 기어이 끼었다. 두 차로 나눠 타고 천주교 추모관으로 갔다. 거기에 모신 3번 언니 부모님을 함께 추모하는 것으로 모임이 시작되었다.
원래 계획은 첫날은 목포 구경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웠다. 1번 언니가 만들어 온 음식이 다 상하게 생겼다. 내가 맡은 민어회와 갈치도 마찬가지다. 점심만 먹고 진도로 갔다. 복지관에 가서 어머니를 부르니 반색한다. 저녁에 오는 걸로 알았다가 일찍 가니 아주 좋아한다. 집에다 짐을 풀고 세 시에 하는 토요 상설 공연을 보러 국립남도국악원으로 갔다. 오는 길에 경치 좋은 귀성 바다를 구경했다. 폐교를 가꿔 만든 미술관이 가까이에 있어서 덤으로 마당만 밟고 왔다. 어머니는 외동딸이라는 처지가 같은 3번 언니에게 계속 마음을 쓴다. 제일 오랜만에 온 데다가 작년에 어머니를 잃어서 더 그런가 보다. 무뚝뚝한 딸보다 조카들이 큰엄마 큰엄마하며 비위를 맞춰 주니 어리광하는 아이가 돼 버렸다.
다음 날은 서망항에서 배를 타고 관매도에 가더니 모두 얼굴과 팔이 빨갛게 익어 왔다. 어머니 모시고 교회 가느라 빠진 나는 사진으로만 즐겼다. 낙조도 보고, 운림산방도 가야 하고, 3남매가 걸었던 해안도로도 달려야 하고, 우리 고향 진도는 좋은 데가 너무 많다. 새로운 명소인 솔비치 휴양지의 야경도 빼놓을 수 없다. 아침, 저녁을 다 집에서 해 먹어도 여럿이 하니 그것도 재미있다.
첫날 밤은 잔치가 벌어졌다. 몇 년 전부터 배운, 오빠의 색소폰 연주 실력이 수준급이다. 술은 오빠 다음으로 5번이 잘 마신다. 나머지는 기분 맞춰 몇 잔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도 춘다. 평소 이성적이고 냉정한 편이던 2번 언니가 저렇게 잘 노는 줄은 처음 알았다. 나도 여기서는 음주가무가 무섭지 않다. 구경만 해도 즐겁다. 어머니는 노래는 못하지만 신나게 박수를 친다.
절정은 둘째 날 밤이었다. 이날은 술상에 둘러앉아 이야기로 시작했다. 술잔을 들고 1번 언니가 시키는 대로 “소리재!” 하고 선창하면 모두 술잔을 모으며 크고 강하게 “웍!” 하고 외쳤다. 이게 뭐라고, 하고 나서 누구는 데굴데굴 구르고, 어떤 이는 배를 잡고 웃었다. 소파에 앉아서 보던 어머니도 박장대소한다. 빈 잔으로 기분 내는 내가 우습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로 채웠다. 언니가 어머니도 한번 해 보라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두묵굴재!”라고 가락 맞춰 외친다. 평생 처음 해 보는 놀이에 신이 났다. 원투재, 초상재, 홍두재, 문필봉, 쌀미봉 등이 연달아 나온다. 그때마다 우리는 더 큰 소리로 “웍!”하고 크게 내지른다. 우리 동네는 동, 북, 서쪽이 산으로 둘러싸였으니 마을을 벗어나려면 산골짜기에 길을 낸 재를 넘어야 했다. 지금은 찻길로 포장된 소리재와 두묵굴재 (두목재)만 남고 무성한 숲에 묻혀 버렸다. 들로 간다. 진등, 속등, 재밑, 참샘, 굴앞, 화랑 등 기억나는 대로 언니와 오빠도 외친다. 잃어버렸던 정다운 이름을 찾으니, 마음은 고향의 따뜻함과 우애로 가득 찼다.
너무 오래 사는 것이 부끄럽다고, 당신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어서 빨리 천국 가고 싶다고 하던 어머니의 말이 바뀌었다. “한편으로는 오래 사니 이런 좋은 것을 본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나한테 살짜기 말한다. “우리 딸들 하나같이 다 이삐고 몰똑하드라(훤하다 또는 빠진 데 없다 정도의 뜻)”라는 말도 덧붙인다. 한 달이 지났는데 그때의 추억을 여러 번 말한다. 잠시나마 활력이 된 것 같다.
어머니는 날마다 쇠약해진다. 부엌일, 마당 쓸기, 쓰레기 치우기, 풀 뽑기 등 어머니가 하던 일이 거의 내게로 넘어왔다. 어머니와 함께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히면서 눈물이 난다. 어머니가 없으면 고향집에 갈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계셔야 고향은 따뜻하고 가고 싶은 곳일 것 같다. 그래도 자매들 모임이 있어서 다행이다. 어머니 대신 고향의 정을 채워 줄 이 모임이 보험이다.
첫댓글 1쪽 반쯤 쓰려고 하는데, 주저리 주저리 쓰다 보니 줄이지를 못하겠어요. 읽는 데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교수님, 수업하실 때 앞 부분만 끊어서 해 주셔도 됩니다.
재밌어요. 반가운 명자 언니도 등장하고요.
친척도 많지 않을뿐더러 제가 막내아들인 아버지의 막내라서 친척들간 교류도 없어서 이런 분들 보면 그저 부러워요.
형제 같았던 사촌들과 남처럼 지내는 게 안타까웠는데, 선생님 글 읽으니 더 그렇네요.
사촌간에 우애가 남달라 부럽습니다.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행복한 삶입니다.
저도 그 속에 있는 양 재밌네요.
딸들 많은 집이 재밌다는데 선생님은 사촌까지 더해지니 더 재밌겠어요. 저는 제동생이고 사촌이고 남동생만 바글바글하니 여자형제 있는 집이 너무 부러워요.
자매들과의 돈독한 형제애가 남다르십니다. 나이들어 함께 모이는 게 어려운 일인데
특별한 분들 같습니다. 길게 길게 자주 만나시기 바랍니다.
부러워하며 재밌게 읽었어요.
누군가가 베푸시니 이렇게 추억을 공유하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지금 자랑하시는 거지요?
부러워서, 배 아파요. 하하!
와, 정말 우애있는 자매들이군요. 윗대에서도 형제, 동서들끼리도 화목하게 지냈을거예요. 놀이중에 '소리재!' 선창하면 '웍!' 하고 크고 강하게 외치는 게임, 함께 하는 것처럼 생생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정말 부럽네요.
재미있네요. 소리재, 두목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