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가방 / 최미숙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재미 동포 목사 최재영 씨로부터 시가 300만 원 상당의 가방을 받은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프랑스 ‘크리스찬 디올’ 사가 판매하는 명품 브랜드라고 한다. 덕분에 ‘디올 백’ 만큼은 몇 달이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명품이란 ‘대단히 뛰어나거나 훌륭한 물건, 또는 명장이 만든 작품이나 예술품’, 쉽게 말해서 장인이 만들어 내는 물건을 뜻한다. 그렇기에 우리 같은 서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만큼 희소성이 있었는데, 2000년대 들어 호화품, 사치품으로 변모해 중산층과 직장인, 심지어는 초등학생도 넘볼 수 있게 됐다. 아직도 서민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100만 원이 넘는 물건을 사려고 20대 여성이 ‘명품계’를 드는 일도 흔해졌고 ‘명품족’이라는 말도 생겼다. 이름을 얼마나 줄줄 꿰고 있느냐에 따라 세대를 구분한다니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은 구세대에도 끼지 못하고 지구 밖 화성쯤에서나 온 외계인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크리스천 디올’이 화장품과 향수로 유명한 회사인 줄만 알았지 가방까지 만든다는 것은 몰랐다. 평소 명품에는 별 관심이 없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도 흘려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몇 개쯤은 말할 수 있다. 나이 예순이 넘도록, 그것도 4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으면서 명품 가방 하나 없다고 흉볼지도 모르겠는데 사실이다. 마음만 먹으면 살 정도는 되지만 좋은 자동차나 비싼 가방과 옷, 이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나 값으로 마음에 드는 것 여러 개 산다는 게 내 신념이다.
그런데 내게도 명품 가방(루이비통)이 하나 생겼다. 3년 전 큰아들이 결혼하면서 며느리 될 아이가 사준 것이다. 자동차로 출퇴근하니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는데도, 내 성격을 아는 아들이 이럴 때 아니면 평생 명품 근처도 가지 못할 거라며 기어이 받으란다. 며느리는, 손잡이에 파란 끈이 달리고 회사 로고가 새겨진 커다란 주황색 종이 가방을 건넸다. 단단한 사각 상자(모두가 주황색이다)를 여니 흰 천으로 둘러싸인 밤색 가방과 품질 보증서가 눈에 띈다. 아들은 명품은 종이가방까지도 사고파니 버리지 말라고 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오 이런,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생애 처음으로 남들이 명품이라고 하는 가방을 만져보게 되었다. 아들과 며느리는 외출하면서 꼭 들고 다니라는 말도 겸한다.
그렇게 내 수중에 들어왔는데 특별하게 가지고 다닐 일이 없어 상자에 넣은 채 한쪽에 고이 모셔 두었다. 실은 꺼내는 게 귀찮은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런 나를 막내아들은 퇴근하고 인사하러 방으로 들어올 때마다 이해할 수 없다며 나무란다. 아끼면 똥 된다느니 사준 사람 성의를 무시한다느니 언제 쓸려고 저렇게 모셔 놓냐며 잔소리를 해댔다. 하기야 지금까지 네다섯 번이나 사용했을까. 아들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상자를 열어 곱게싸둔 가방을 꺼냈다. 지갑과 볼펜, 자동차 열쇠, 수첩을 넣어 정리하고는 거울에 비쳐 보는데 딱히 돋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며느리가 큰맘 먹고 샀을 텐데 이제부터라도 부지런히 사용하리라 마음먹었다.
퇴직하고 나니 가끔 모임 나갈 때 아니면 가방 들 일이 더 없다. 지금 내게는 월, 목요일 시설 아이들에게 한글 가르칠 책을 담을 수 있는 천 가방이 더 요긴하다. 옷장을 보면 잘 쓰지도 않으면서 버리기 아까워 모셔 둔 이런저런 가방이 반을 차지하고 있다. 내 손을 몇 번이나 거쳤을까? 이제는 이것도 하나하나 정리해야 할 판이다.
혹시 이런 나를 명품 좋아하는 사람을 경멸한다든지 속 빈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오해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명품이 지니는 가치가 충분하니 여유가 되면 얼마든지 좋아하는 것에 투자할 수 있다. 단지 이런 것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거쳐온 내게는 낭비이고, 아무런 위안을 얻지 못하며, 명품으로 도배한 사람을 만나도 부럽다고 느낀 적이 없을 뿐이다. 사람이 명품이어야지 가방 하나 사는데 그렇게 큰돈을 들이는 게 아깝다.
며느리가 사준 비싼 가방이 막내아들의 잔소리 때문에 지금은 내 눈에 띄는 곳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리만 지킨다. 저게 언제나 빛을 발하려나.
첫댓글 저도 간편하게 책을 담을 수 있는 천 가방을 애용합니다.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내 기준의 명품은 들고다니기 편하고 사용하기 좋으면 그만이던데...ㅁ
며느리 성의가 있으니 가끔은들고 외출하세요.
선배님이나 저나 특수한 부류입니다. 명품이 있어도 그리 넣어 두고, 들고 다닌 이들도 전혀 부럽지 않으니!
공감합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장신구가 진짜 명품이지요.
명품 가방을 들면 제약이 많아지겠어요.
저는 없어서 다행입니다.
사람은 그 자체로 다 명품이죠. 선생님 같은 분은 인품도 뛰어나시니 더 훌륭한 명품이고요. 그러니 막 들고 다세요. 하하.
"사람이 명품이어야지."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며느님이 사 주신 가방은 자주 들고 다니셔요. 명품 사람이 가방까지 명품이면 더 좋지 않을까요?
옆에 계시면 제가 대신 들어드리고 싶네요. 하하. 저도 아직 그런 가방이 없어서.
명품은 손때 묻으면 더 빛이 난다던데요. 하하
아이들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자주 들고 다니십시오.
선배님이 명품입니다.
그래도 가방은 며느리의 정성이 들어가선지 이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