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륜의 제지
채륜이 세계 최초로 종이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과연 채륜이 종이를 발명했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이 의문을 풀기 위하여 우선 종이의 역사를 더듬어 보기로 하자.
종이는 처음부터 글씨를 쓰기 위한 재료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중국의 태고 시절에는 새끼나 노끈의 매듭 모양과 수로써 서로의 의사를 소통한 일이 있었다고도 하지만 그 시대에는 물론 문자도 없었으며 그것을 쓰기 위한 종이도 없었다.
은·주 시대에 들어서면서 차츰 문자가 발달하였으나 역시 종이는 없었고 종이 대신 거북의 등껍데기나 길짐승의 뼈에 문자를 새겨 넣었다.
춘추·전국 시대에 들어서면서 죽통(竹筒)·목편(木片)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은·주 시대보다는 많이 편리해졌지만 무거워서 여전히 불편하였다. 전한 시대의 이야기지만 유명한 문장가로 알려진 동방삭이 쓴 문장은 죽통이 무려 3천 통에 이르러 이것을 황제에게 바치기 위하여 두 사람의 장정이 짊어지고 힘겹게 운반하였다. 또 전국 시대의 사상가 혜시(惠施)는 유학을 떠날 때 수레 다섯 대 분량의 책(죽통)을 휴대하였다 하여 여기서 ‘오거서(五車書)’라는 말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호남성 장사 마왕퇴(馬王堆)의 고분에서 전한 초기의 백서(帛書)1) 와 백화(帛晝)2) 가 발견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고대에는 종이 대신 비단을 사용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종이지(紙)’ 자에 실사변이 붙은 것도 옛날의 종이가 비단이었다는 데서 유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종이, 즉 비단은 너무 값이 비싸 궁중에서나 대부호가 아니고서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죽간
종이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얇게 쪼갠 대나무판이나 비단에 기록했다.
죽통은 무겁고 비단은 비싸기 때문에 문화의 전파가 어려웠다. 이에 당시로선 가볍고 값이 싼 종이의 생산이 시급한 문제로 대두하였다. 그 결과 후한(25~220)의 채륜이 역사적 대업인 이른바 채후지(蔡侯紙)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채후지’란 채륜(?~121)의 창안과 지도 아래 만들어낸 종이이다. 채륜의 자는 경중(敬仲)이고 계양(桂陽, 호남성 임현) 출신이었다. 재능이 뛰어나고 학문이 높아 궁전의 관리(환관)로 등용되어 국가 직영의 무기류 제조 공장을 관장하고 있었다.
채륜
그의 제품은 “정밀 견고하여 후세의 모범이 되었다.”고 평판이 드높았으며 채륜은 이 방면에 뛰어난 기술자, 권위자로 군림하였다.
식물의 섬유로 종이를 만드는 일은 채륜이 발명한 채후지(蔡侯紙)보다 200년 앞서 이미 민간에서 시도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삼(麻)이나 모시풀(苧)을 재료로 하여 만든 것으로 제조 기술의 미숙으로 품질이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풀솜을 재료로 써야 했기 때문에 여전히 값이 비싸 대중화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채륜은 이와 같은 민간의 경험을 토대로 제조법을 개량하여 나무껍질·삼(麻)·넝마·걸레·폐기된 어망(魚網) 등 값싼 재료로 마침내 가볍고 얇고 튼튼한 필기 재료인 종이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채륜은 그 후 ‘용정후(龍亭侯)’에 봉해졌기 때문에 그가 만든 종이를 채후지라 부르게 되었다.
선인들의 경험을 총괄하고 거기에 개혁을 가하여 고대 제지 기술을 완성시킨 것은 역사적 공적이며, 동시에 채륜은 뛰어난 기술개혁자라고 할 수 있다.
종이는 지남차·화약·인쇄술과 함께 중국이 자랑하는 4대 발명품의 하나이다. 역대의 사가들은 종이의 창조와 발명을 채륜 한 사람에게 돌리고 있으나 이것은 정확한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채륜을 도와 채륜 못지 않은 연구와 기술 개발에 몸바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옛 역사의 기록에는 이러한 예가 비일비재하다.
한대의 종이
역사가 흐르는 동안 여러 사람의 총명과 슬기가 모아져 이루어진 성과가 어느 한 사람의 ‘영웅’의 이름으로 기록되는 사실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것은 영웅이 역사를 만든다는 유심주의적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채륜은 사실 중국 제지술의 창시자도, 발명자도 아니지만, 제지 역사상 중대한 공헌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이 고대 제지 기술은 누가 발명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정확한 해답일 것이다. 최근 신강성, 감숙성, 서안시 등지에서 고고학자들이 전한 시대의 종이를 종종 발견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전한 무제 시대(기원전 140~84) 이전의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것은 채륜이 종이를 만든 시기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고지(古紙)에서는 문자가 쓰여진 것이 없고 후한 시대의 고지에는 문자가 쓰여진 것이 다수 발견되어 채륜의 제지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중국의 제지 기술은 채륜에 의해 개혁되고 그로부터 약 500년 후에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파되었다. 또 600년 후에는 아랍과 유럽에 전파되고 1500년 후에는 미국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출처] 채륜의 제지|작성자 새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