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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장추삼이 빠르게 한발을 내딛었다. 예전 같으면 바로 추뢰보였을 것이나 요
즘의 그는 크게 일보를 떼어 상대와의 거리를 단축시킨다.
상대를 당혹스럽게 만들지만 알고 보면 허점이 많았던 추뢰보... 아니, 여
태까지의 추뢰보.
그러나 한발자국의 접근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가 선점하려는 위치를 장악했
으니까. 추뢰보의 본래적인 의미로 볼 때 이동거리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검을 내치려면 상대와 자신의 일정한 간격이 수반되어야함은 물론이다. 반
대로 얘기해서 손으로 닿을 수 없는 위치라도 검이라는 보조적 수단으로 그
만큼의 거리를 상쇄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거리가 없으면 검은 무용지물이 된다.
지금처럼...
“이익!”
칼을 들고 검극을 이동시키려는 감귀수의 가슴팍까지 단 한걸음으로 밀고
들어온 장추삼이 빛살처럼 손을 뻗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금나수법이 뭔지
는 몰라도 이보다 비쾌한 손동작은 없을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움직임은 천고의 초쾌권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유
성우에서 그 빠름만을 차용하여 손을 내쳤으니까. 어떤 동작을 취할 사이도
없이 옷깃을 빼앗긴 빙심혈세에게 그의 얼굴이 크게 확대되었다.
꽝!
감귀수의 가슴팍에 둔중한 타격이 왔다. 너무 아파서 눈물까지 나려 했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꽝! 꽝! 꽝!
연속적으로 아홉 번이나 장추삼의 어깨에 가슴이 받힌 감귀수가 발악적인
소리를 지르며 검을 교묘하게 틀었다. 기습적으로 당하긴 했지만 빙심혈세
라는 명호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한번의 칼놀림.
스륵.
밑에서부터 쳐 올라오는 검에 손목이 날아갈 판이라 감귀수의 옷깃을 놓고
빙글 몸을 돌린 장추삼이 비틀거리며 가슴을 부여잡는 빙심혈세를 보며 혀
를 찼다.
단지 혓바닥을 위아래로 몇 번 움직였을 뿐이지만 감귀수에게는 수백 번의
조롱보다 더욱 치욕스러웠다.
“아픈가?”
무감정한 물음.
“이노옴!!”
“아픈가보군.”
빙심혈세의 눈에서 귀화와 같은 살기가 일렁였다. 장포는 팽팽히 부풀어 올
랐고, 그의 주위에는 얇은 서리가 맺힌 듯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공력을
극성까지 끌어 올렸다는 증거이니 감귀수의 분노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아픈데다가 열까지 받았나보군.”
여전한 이죽거림. 그런데 표정으로 봐서는 빈정거림이 아니었다.
“네놈이 감히 노부를 능멸하느냐!”
감귀수의 외침 따윈 장추삼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강호의 명숙이
자 검정오존의 일인이라는 위치도.
“내가 아프면 남도 아픈 거야...”
밀을 늘이던 그가 짧게 대화를 맺었다.
“썩을 영감아.”
쿠쿠쿠쿠.
간접적인 모욕을 받은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욕설까지 듣자 감귀수의 이성은
그대로 끊어졌다. 언제나 높은 곳에서 굽어보기만 했기에 이런 식의 대접
은 그가 감내할 성질이 아니었다.
“죽여주마...”
명부의 야차와도 같이 으르릉 거리며 감귀수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입으
로는 실컷 난도질했지만 장추삼 역시 그의 변화에 상체를 조금 숙이고 심호
흡을 가다듬어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싸움을 치렀지만 이렇게 적의를 드러내고 달려든
적과의 생사결은 없었다. 이건 기세싸움의 차원이 아니다. 오로지 상대의
파괴만을 염두하고 벌이는 난장판이다.
왠지... 거부감이 느껴진다.
막무가내의 저돌성과 판단 이전에 손부터 나가는 성격처럼 보여도 장추삼은
어디까지나 보통 사람 가운데 한명이다. 아직 피와 살육에 익숙하지도 않
고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익숙해질 가능성 또한 없다.
절로 움츠러드는 근육. 심장 박동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좋은 것을 가까이하고 나쁜 것에서 멀어지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본능이 그
의 마음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무섭다거나 두려워서 이런 반응이 튀어나온
게 아니다. 그저 피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어디로?
“훗!”
장추삼이 짧게 코웃음 쳤다, 목을 옆으로 꺾으면서. 생각해보니 긴장할 것
도 없다. 개싸움이든, 막싸움이든, 고수들 간의 대결이든 간에 승부는 언제
나 나뉜다.
애당초에 차분히 앉아서 대화로 풀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박 터지게 싸워야 할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그뿐이다. 그럼 됐지 않은가? 뭘 더 바라는가? 비무도 아닌데 얌전히 포권
하고 통성명 나누고 초식명 일일이 불러주며 화기애애하게 노닥거리길 바랐
는가?
싸워서 이기면 그만이다. 이겨야만하고.
‘에라, 머리 굴려봐야 돌 튀기는 소리만 나지!’
편하게 앞을 보자 기세니, 파괴니 하는 것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눈앞
에는 정신 나간 노인 하나가 어디서 주워왔는지 시퍼렇게 날이 선 칼 하나
를 들고 신성한 사당 안을 어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머리에 꽃만 꼽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베어 나왔다. 장추삼은 잘 모르고 있지만 이 웃음으로
그는 커다란 짐을 덜게 되었다. 극단적인 살기, 즉 앙심(怏心)이라는 감정
에 처음으로 노출되었기에 의식하지 못했지만 운동신경이 굳어졌었다.
만약 이대로 충돌했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을지 모를 터. 가벼운 생각과
살짝 머금은 미소로 전신근육에 가벼운 이완현상이 왔고 무거운 마음까지
도 벗어버릴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감귀수의 증오는 마구마구 증폭되어 거의 유형화를 이루었다. 눈빛 한번,
움직임 하나에도 상대를 갈아 마실 것만 같은 독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 느린 걸음으로 장추삼의 앞에선 그가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스륵.
순간 장추삼이 반보 옆으로 움직였다. 너무 자연스러운 보법이라 처음부터
검이 노린 지점에서 반보 옆으로 비껴서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칼이 몰
고 온 검풍(劍風)은 예상 외로 묵직한 터라 미쳐 움직임을 끝내지 못한 오
른 소매가 잘라져 나갔다.
발을 교묘하게 교차시켜 반 바퀴 몸을 틀고 감귀수에게 달려들려던 장추삼
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뭔가 이상하다!’
그의 눈이 감귀수의 손을 쫓았다. 방금 전의 일검은 초식이라고 하기에 너
무 평이했다. 검정오존의 일원이자 신비의 고수라 칭해지는 빙심혈세의 검
법이 이정도로 단순할리는 없다.
차라리 다음 수를 준비하기 위한 무엇이라고 할까?
내려진 검을 쳐들 생각도하지 않고 그렇게 멈춰있던 감귀수가 눈동자만 움
직여서 장추삼을 바라보았다. 달려 들어올 줄 알았는데 멈춘 그의 대응이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다.
“남들은 노부의 검식을 두려워하여 검정오존의 하나로 지칭했다...”
그의 칼에 강력한 기운이 맺혔다. 검기의 극성에 이른 형태일까? 감귀수의
검신에 아지랑이와도 같은 무엇이 흐르는 착각마저 일었다.
“그래. 그랬지. 검만으로도 적수를 찾기 어려웠지...”
주박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장추삼은 움직이지 않았다. 감귀수의 독백은 을
씨년스러운 사당을 가득 메웠지만 그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있다!’
끼이익...
검극이 땅을 천천히 긁으며 이동했다. 듣기 싫은 마찰음은 귀곡성이 되어
장내를 떠돌았고 감귀수의 입가에 알 수 없는 사기가 스쳐 지나갔다.
“이제... 놀아보자.”
팍!
쳐들렸다 싶었는데 그의 검은 수십 개로 불어났다. 물론 검이 분열 되었을
리 없으니 환검의 일종이라는 소리인데 갈래갈래 나뉜 칼끝마다 웅혼하면서
도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엄청나다!’
칠십이파검(七十二破劍).
청성의 절기로 청운적하검과 함께 청성파를 중원오대검파로 이끈 무서운 검
식이다. 일수에 일흔 두 번의 변화를 보인다는, 다소 과장된 설명이 붙는
검법이지만 그만큼 변화가 심하며 마지막의 파(破)자에서 암시하듯 검세의
성질은 패도적이다.
변환과 강함을 두루 갖춘 검식. 이 검식만으로 감귀수는 빙심혈세라는 칭호
를 얻으며 강호를 종횡했으니 검법의 무서움은 부연할 필요조차 없다.
그렇지만 아직도 장추삼은 움직이지 않았다. 변환을 일으킨 검들이 그의 목
전에 온 순간까지도.
‘아직 아니다!’
그의 눈은 감귀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았다.
콰콰콰!
검식이 무르익자 빙심혈세의 검결지를 맺었던 왼손가락들이 춤을 추듯 움직
이기 시작했다. 검결지란 검수들이 둘째와 셋째 손가락을 모아 날렵하게 뻗
은 상태에서 운용하는 검신에 밀착시켜 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수법이다.
결코 독립적인 움직임을 보일 리 없다!
돌연 장추삼이 숙였던 상체를 세웠다. 검기가 눈앞까지 이르렀으니 어떤 식
으로든 움직여야 함은 당연하다.
“기다렸다!”
창노한 외침과 함께 감귀수의 왼손이 활짝 펴졌다.
콰릉!
그의 장심에서 은유하나 뭔가 섬짓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칠십이파검의
진행방향을 완전히 차단하는 형태로.
장추삼은 전혀 모르지만 감귀수의 장법은 천고의 절기라는 최심장(催心掌)
이었다. 마음을 열 듯 소리 없이 다가와 치명적인 흔적을 남기고 돌아선다
는 장법으로 청성에서도 꺼린다는 독한 수법이다.
그렇다면 칠십이파검은 미끼였다는 소리. 늑대를 피하려다 법을 만나는 격
이라 장추삼으로는 진퇴양난의 지경일 터.
그런데...
장추삼은 움직이지 않았다. 상체를 꼿꼿이 세운 그대로 뚫어지게 감귀수의
변화를 쫓고만 있었다. 최심장을 날린 빙심혈세의 득의만만했던 얼굴이 딱
굳어지는 순간 그가 움직였다.
슥!
왼발을 축으로 반 바퀴 회전하여 - 상식적으로 물리적인 공세를 받으면 사
람들은 대개 오른편으로 피한다 - 칠십이파검의 전위공세를 흘려낸 장추삼
이 꺼지듯 사라졌다.
“헉!”
감귀수의 헛바람 삼킨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솟아난 그가 사선으로 튕겨
오른 힘을 실어 왼쪽 어깨로 빙심혈세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큭!”
급급히 뒤로 물러서는 감귀수가 칼을 고쳐 잡았으나 착지하며 딛은 왼발을
축으로 다시 반 바퀴 회전하며 오른발을 강하게 내지르는 장추삼의 동작은
군더더기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깔끔했다..
검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근거리였기에 취심장을 뻗은 왼손으로 겨우
그의 발길질을 비껴냈지만 장추삼의 회전은 반 바퀴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
다.
스륵.
다시 반 바퀴를 회전하게 되자 장추삼과 빙심혈세의 거리는 반보로 좁혀졌
다.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으나 몸을 틀고 돌리는 동작만으로 감귀수
와 자신과의 거리를 완벽히 통제하고 있었으니 그는 이미 산무영과 추뢰보
라는 굴레를 벗어 던졌는지도 모른다.
뻔히 보이는 투로(鬪路)에서 나온 발길질, 그것도 변화 없이 일직선이었기
에 막아내긴 쉬웠지만 감귀수의 손목은 부러져나갈 것 같았다. 어찌나 세게
내질렀는지 장추삼의 발에는 만근거석이라도 부셔버릴 듯한 힘이 담겨 있
었으니까.
그리고 확보되지 않은 거리였기에 쇠붙이만도 못한 검...
화살처럼 날아든 장추삼의 팔꿈치는 감귀수의 명치를 노렸고 한발 물러서며
피하는 감귀수의 목젖에 벌떡 세우듯 펴진 그의 손목이 강하게 꽂혔다. 기
도가 막혀 벌어지는 턱을 마지막으로 손등이 강타하자 빙심혈세의 무릎이
푹 꺾였다.
한손만으로 연결시킨 삼연환타법(三連環打法)!
팔꿈치와 손목과 손등을 연계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관절을 펴는 것이었으
니 그 빠르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쓰러진 감귀수의 앞에 선 장추삼이 손을 탁탁 털며 한마디 던졌다. 들어야
할 사람은 혼절했지만 입이 근질거려서 혼났기에 반드시 뱉고 싶었던 말.
“나를 재대로 알았다면 그런 방자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 거야, 감귀수..
.”
첫댓글 즐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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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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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귀수~~~ 니 제대로 임자 만난거야. 임마!!!
감사 ㅎ
감사합니다
즐감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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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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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